[서울생각 평양생각] 변함없는 내 고향
김춘애∙ 탈북 방송인
2009-08-10
주말에 시집간 큰딸 내외와 손녀 그리고 갓 시집간 작은딸 내외가 함께 친정을 왔습니다. 우리는 늦은 저녁을 먹고 창문이 활짝 열린 베란다에 섰습니다. 마을 주변에 있는 낮은 산들과 몰라보게 높이 서 있는 수많은 아파트 건물들을 바라보던 딸들이 ‘엄마, 우리 집주변도 몰라보게 많이 변했네요.’ 했습니다.
아닌 게 아니라 정말 많이 변했습니다.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는 말이 있는데, 이곳 남한에 보금자리를 잡은 지도 벌써 7년이 됐고 그 사이 집 주변도, 우리도 많이 변했습니다. 새삼 이렇게 변했다는 것이 놀랍다고 했더니, 딸들은 그것도 모르고 감정 없이 산다며 제게 핀잔을 줬습니다.
생각을 해보면 저는 감정이 없이 사는 것이 아니라 아침에 눈 뜨면 회사 출근, 주말이면 친구들을 만나 시간을 보내느라 집 주변 경관도 한번 돌아볼 틈이 없이 살았습니다. 딸애들 핀잔이 일면 맞는 얘깁니다.
이곳 남한의 건설 속도는 너무도 빠릅니다. 하루아침 자고 일어나면 몰라보게 아파트 몇 개 건물이 척척 일어서지, 눈 한 번 감았다 뜨면 없던 다리도 생기고, 없던 도로와 지하철역도 척척 생겨나는 것 같습니다. 물론, 그 건물이나 도로가 그렇게 빨리, 뚝딱 만들어 지지는 않을 터인데, 아마 이곳에서의 시간이 빠르게 지나가고 있다는 뜻일 겁니다.
생각해보면 중국에서의 6년이란 세월은 저에게 있어서 너무도 힘들고 고달픈 생활이라 까마득히 먼 시간과 세월이라 생각했었는데, 이곳 남한에서의 7년은 너무도 빠르게 흘러갔습니다.
제가 사는 아파트 베란다에서 천천히 주변을 둘러봤습니다. 제가 이사 올 때만 해도 없었던 몇 개의 아파트 단지들이 들어 선지 모르겠습니다. 서울 시내중심에서 조금 벗어난 변두리라 옛날 작은 건물들이 많았던 곳인데, 지금은 큰 아파트 단지가 몇 개나 생겼고 번듯한 새로운 거리도 생겼고 병원과 식당들도 새로 들어왔고 전자 제품 가게들도 생겨서 생활이 더 편해졌습니다.
물론, 지금도 건설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우리 집 주변뿐 아니라 서울의 곳곳에서 이런 건설과 새로운 변화는 언제나 볼 수 있는 일입니다.
제가 고향을 떠나온지도 10년이 넘었습니다. 10년이면 많은 것이 변했겠는데, 텔레비전이나 신문 화보에서 보이는 고향의 모습은 요즘이나 과거나 변함이 없이 그대로입니다. 남쪽 친구들이 물어오면 여기는 버드나무 거리, 여기는 광복 거리, 이곳은 통일 거리, 또 이것은 강남 거리 여기에는 문수거리가 있고 개선문과 천리마 동상, 4.25 문화회관, 압록강 체육단이 있고 체육단 옆에 바로 우리 집이 있었다고 설명할 수 있습니다.
평양시의 만경대 거리와 통일거리, 문수거리 하나하나에도 저의 손길이 묻어 있습니다. 손에 삽과 곡괭이를 들고 기초부터 파는 작업부터 시작하여 도배와 장판지 작업인 마감정리까지도 동원되었었습니다. 지금와 생각해 보니 평양시의 건설에 저도 한 몫 단단히 한 셈이네요.
그러나 이곳 남한의 건설은 모두 기계가 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랍니다. 몰탈 혼합은 레미콘 차들이 도맡아 하고, 사람이 몰탈 혼합을 나르는 것이 아니라 자동차가 쏴 올려 부어주고 골고루 펴 가며 다져 주기까지 합니다. 저는 며칠 전에 아는 분에게서 이런 말을 들었습니다. 외국에서 오랜 생활을 하시던 분인데 몇 년 만에 이곳 서울에 오니 너무 많이 몰라보게 변해 아는 길도 잘 모르시겠다고 말입니다.
매일 사는 저도 간혹 한 번씩 바뀌는 모습에 놀라곤 하는데, 해외생활을 하는 사람이 몇 년 만에 와서 놀라는 것은 당연한 일일 겁니다. 그런데 내 고향은 예전이나 10년이 지난 오늘이나 하나도 변한 것이 없습니다. 지금도 또 앞으로 몇 년이 더 지나 찾아가도 정겨울 것 같아서 마음은 편하지만, 남들이 다 변하는 지금 제자리를 걷고 있는 내 고향의 모습이 반갑지만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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