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생각 평양생각] 친구의 눈물

2009-09-21

지난 주말 친구들과 저녁 식사를 함께 하기 위해 음식점으로 갔습니다. 먼저 식사를 마친 저는 밖에 나와 커피를 마시며 친구들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식당 밖에서는 식당 사장의 쌍둥이 딸이 뛰어 놀고 있었습니다.

10살쯤 되어 보이는 두 여자 아이는 분홍색 옷을 입었는데 예쁘장하고 유난히 귀여웠습니다. 한참 뛰어노는 두 아이를 보며 저는 모든 것이 부족한 사회에서 우리 아이들을 키우던 생각을 하고 있는데 옆에 저와 나란히 앉아 있던 친구가 눈에 눈물이 가득했습니다.

저는 영문을 몰라 왜 우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친구는 천진난만한 아이들을 보니 먼저 간 딸아이 생각이 난다고 말했습니다. 지금 딸이 살아 있으면 18살이라면서 12살 때 보위부에 잡혀가 죽었다고 말했습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저는 말문이 막혔습니다. 항상 쾌활하고 언제나 밝았던 친구에게도 마음 아픈 상처가 있었다는 걸 알게 되는 순간 제 마음도 아팠습니다.

친구는 죽은 딸 얘기를 시작했습니다. 그 친구는 남편과 이혼하고 고향으로 돌아와 부모님 곁에서 어린 딸을 홀로 키우며 행복하게 살았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아침 생각지도 않은 일로 한 시간 내로 두만강을 넘어야 하는 일이 생겨 어린 딸을 데리고 탈북해 중국에서 살았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하루는 일을 마치고 저녁에 집에 돌아와 보니 12살 딸아이가 없어졌다고 합니다. 이집 저집 찾아다니다가 낮에 중국 공안이 와서 잡아갔다는 말을 동네 사람을 통해 들었다고 했습니다.

중국 단동을 거쳐 북한 신의주로 잡혀간 딸은 어린 마음에도 외할머니 집주소를 대면 엄마가 위험해질 것 같아 아버지가 살고 있는 주소를 담당 안전원에게 알려줬다고 합니다. 그런데 정작 그 아버지는 “자기는 모르는 아이라고, 이미 이혼해 엄마가 키우는 아이”라고 무책임하게 말했다고 합니다. “어린 아이가 거짓말 한다”며 안전원이 딸아이를 한 대 때렸는데 그만 잘못 맞아 딸아이는 관리소에서 죽고 말았다는 것입니다.

그 때 이후로 그 친구는 고혈압이 생겼다고 말했습니다. 또래 아이들을 볼 때면 자기도 모르게 눈물이 하염없이 나와 밤에도 자지 못하고 뜬눈으로 새운 적이 한두 번이 아니라고 그 친구는 울면서 말했습니다.

저는 한참 동안 친구 얼굴을 보며 ‘이런 가슴 아픈 상처가 있어 지난 6월에 우리 작은 딸의 결혼식에 와서 그렇게 눈물을 흘렸구나' 하고 생각했습니다.

우리 탈북 여성들의 가슴에는 이루 말할 수 없는 상처들이 묻혀 있습니다. 제가 중국에서 붙잡혀 북송돼 갔을 때에도 안전원들이 부모 없는 애들을 마구 발로 차고 주먹으로 때리고 해서 9.17 관리소로 보내곤 했었습니다. 관리소는 굶어 죽지 않을 정도로 멀건 죽이 나오거나 통 강냉이 삶은 것 몇 알씩 밖에 나오지 않고 그나마 그것도 먼저 들어온 애들이 빼앗아 먹으면 힘없는 아이들은 굶어야 합니다. 그런 곳에서 12살 그 어린 것이 죽으면서 얼마나 괴로웠겠는가를 생각하면 자식을 둔 부모로서 제 마음이 쓰리고 아픕니다.

제 아이들도 이 자리에 있기까지 고생도 많이 했고, 마음의 상처도 크지만 뿔뿔이 흩어지고 죽음으로 갈라진 가족들에 비하면 지금 이 순간 우리 가족이 한국에 함께 있다는 사실 만으로도 감사할 따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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