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생각 평양생각] 꿈속에 나타난 남동생
김춘애∙ 탈북 방송인
2009-10-28
며칠 전 밤에 저는 또 악몽을 꾸었습니다.
안타까움 속에서 목 놓아 울다가 울음소리에 놀라 눈을 떠 보니 온몸이 땀으로 흠뻑
젖어 있었습니다. 전신은 떨리고 심장은 쿵쿵 쉼없이 뛰었습니다.
꿈 속에서 저는 전기에 감전되어 타들어가는 동생을 봤습니다.
저는 어떻게든지 동생을 전기줄에서 떼어 살려보려고 싸리 빗자루를 들고 이리 뛰고 저리 뛰어 다니다가 어떻게 할 재간이 없어서 넋놓고 앉아 통곡을 하다가 결국엔 내 울음소리에
놀라 잠에서 깨어났습니다.
이런 악몽은 제게는 이제 습관이 됐습니다.
요즘은 전기줄에 감전되어 매달린 채 살려 달라고 애원하는 남동생이 제 꿈에
자주 나타납니다.
제 동생은 7남매 중에 외아들이었습니다. 우리 집안은 3대째 아들이 귀한 집안이었습니다.
이 때문에 집안 어른들은 남동생에 대한 애틋한 사랑이 남달랐습니다.
남동생은 어릴 때부터 그야말로 어머니와 누나들의 사랑을 듬뿍 받으며 자라 응석이
많았습니다. 그렇긴 하지만, 집안을 맡을 남자라면서 의젓하게 자랐습니다.
인민무력부에서 일하면서 전국 마라톤 달리기에서 1등을 해 금메달도 땄고,
평양에 있는 4.25체육단에도 선발됐습니다.
무력부 태권도 경기에서도 우승을 하곤 해서 화선입당을 한 동생이었습니다.
1990년 중반 고난의 행군이 시작되자 집에 뜻하지 않은 일이 생겨 저는 중국으로
탈북하게 되었고 군에서 갓 제대하고 온 하나 밖에 없는 남동생은 누나인 저를 찾아 무작정
두만강을 건너 중국으로 탈북을 하게 됐습니다.
말도 모르는 중국 땅에서 이리 헤매고 저리 헤매던 중 남한의 좋은 분을 만나 도움을 받게 되었다고 합니다. 남한 분은 누나와 조카를 찾아 고향으로 가서 잘 살라며
중국 돈 5천 위안까지 줬습니다.
그런데 중국에서 만나 친하게 지내던 남동생 뻘 되는 19살짜리가
제 동생에게 자꾸 두만강을 넘어 북한으로 가자고 졸랐다고 합니다.
추석도 얼마 멀지 않았고 해서 남동생은 아버지 산소도 찾을 겸 해서 그의 말을 믿고는
두만강을 넘었는데 바지에 묻은 물이 채 마르기 전에 미리 대기하고 있던
북한 무산군 보위부에 체포되었습니다.
제가 탈북해서 중국에서 지내다가 2000년에 다시 북송돼 무산군 보위부에서
심문을 받고 있었을 때 일입니다.
종합지도원이 들어와서 “저 의자가 어떤 의자인줄 아느냐”고 물었습니다.
모른다고 하자, 제 남동생 이름을 들먹이며 그가 앉았던 의자라는 종합지도원의 말에 저는 깜짝 놀랐습니다.
다짜고짜 저는 동생이 어디에 있느냐고 물었습니다.
보위지도원은 중국에 가서 남한 사람을 만났고 돈을 받은 죄로
동생을 정치범 관리소에 보냈다고 말했습니다.
이곳 남한 사람을 만났다는 죄 아닌 죄, 돈을 받았다는 죄 아닌 죄로
정치범 관리소로 갔다는 말에 저는 어이가 없어 그 자리에 쓰러졌습니다.
그 이후로 지금까지 저는 하나밖에 없는 사랑하는 남동생이 죽었는지
살았는지조차 모릅니다.
지금도 동생들과 전화 통화를 할 때 남동생 소식을 물으면 동생들은 이제는 오빠에 대해
포기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살아있으면 가족을 찾았을 텐데 이 세상에 없는 몸이기에
아직 찾지 않고 있겠지‘ 하고 말입니다.
하지만, 저는 아직도 믿어지지가 않습니다.
동생이 아직도 군에서 군 복무를 하고 있을 것만 같습니다.
언제쯤이면 동생이 괴로워하는 모습으로 나오는 악몽을 꾸지 않게 될까요?
정치범 수용소에서 인권유린을 당하고 있을 수많은 사람들을 생각하면
남의 일 같지가 않아 마음이 아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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