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생각, 평양생각] 떡 대신 제사상에 올린 빵 5개
김춘애
2008-09-12
서울에서 5번째 맞는 추석입니다.
추석 명절이 다가올수록 주위 사람들을 살펴보면
무척이나 바쁩니다.
시골 부모님들이 도시에서 내려오는 손자손녀들이
제일 좋아 하는 음식을 마련하느라 분주히 시장으로 마트로 분주히 드나들고
도시에서 살고 있는 자식들은
시골에 계시는 부모님께 선물을 마련하느라
백화점과 인터넷 카페를 분주히 찾고 있습니다.
이곳 남한에서는
경제 사정이 나빠져서
서민들에게 이번 추석은 부담이 되고 있지만
그래도 부모님 선물, 자식들 선물은 빠뜨리지 않고 있습니다.
저는 추석도 되기 전에
빨갛게 익은 사과와 달고 맛있는 곶감 한 상자와
제주도에서만이 먹을 수 있는 도미 한 박스를
추석 선물로 받았습니다.
추석이 다른 때보다 조금 이르긴 하지만
서울 근교에 나가 보면
들판에는 누렇게 익인 벼 이삭들이 머리를 숙이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이제 얼마 지나지 않아 황금들녘에선
가을걷이도 하겠죠?
풍요로운 가을이고
저도 이제 남부러울 것 없이 행복하게 살고 있지만
추석 같은 명절 때만 되면
고향 땅에 묻혀 계시는 부모님이 하염없이 그립습니다.
맛있는 음식을 해 놓고 아이들과 먹으며
생각을 하니 마음이 쓸쓸했습니다.
오늘도 저는 하나 밖에 없는 아들마저 탈북의 죄 아닌 죄로 정치범 수용소에 간 뒤
살아 있는지 죽었는지 생사여부를 알지 못한 채...
남한에 있는 딸이 금방이라도 문 열고 들어서는 것만 같은 마음으로
애타게 기다리다 지쳐 돌아가신 부모님의 산소에도 가 볼 수 없다는 생각을 하니
하염없이 눈물이 쏟아집니다.
빨간 사과와 노랗게 익은 크고 맛있는 배와 말랑말랑 하고 달고 맛있는 곶감을
손에 쥐고 저는 한참 동안 멍하니 북녘 하늘을 바라보았습니다.
제 손에 있는 이 과일을
부모님 제사상에 내 손으로 직접 올려놓을 수는 없지만
어떻게든 보낼 수만이라도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 간절했습니다.
저는 2000년도에 북한으로 북송됐을 때
평양으로 이동 도중에 탈출해 동생 집에서 추석명절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생활이 매우 열악해서 제사상에는 겨우 사과 한 알과 배 한 알을 올려놓고
떡은 생각도 못하고 밀가루로 만든 빵 5개를 놓고
부모님에게 미안하다는 말만 되풀이하고 눈물만 흘렸습니다.
한참 동안 저의 가정은 눈물바다로 변했습니다.
쓸쓸한 마음을 달래기도 하고 시원한 가을바람도 맞아볼 겸
저는 아이들과 함께 통일 전망대를 찾았습니다.
고향을 바라보는 우리의 모습이 안쓰럽고 처량해 보였던지
한 어르신이 다가와 말을 시켰습니다.
고향이 평양인 그 실향민은 고향에 대한 그리움으로 먼 곳에서나마
고향을 볼 수 있는 이곳 통일 전망대를 찾았다면서
고향 사람을 만났다고 무척 기뻐하면서
저에게 평양에 대해 이것저것 많은 것을 물었습니다.
옛날과 지금 현재 주소지가 많이 달라졌지만, 저는 아는 대로 알려줬습니다.
이곳 생활이 행복하지만, 한해 두해 세월이 흘러 나이가 들면서
고향 생각이 더더욱 새삼스럽게 그리워지는 마음은 어쩔 수가 없습니다.
저는 언제인가 백령도에 다녀온 적이 있습니다.
그 때 한 실향민의 말이 떠올랐습니다.
황해도 장연이 고향인 80고령의 그 실향민은 고향이 그리워서
육지에서 5시간의 배를 타고 고향이 제일 가까운 백령도를 찾아
사랑하는 아내를 부른다고 했습니다.
해마다 고향이 가까운 이곳에 왔지만 내년에는 올 수 없다며
하염없이 울었다고 했습니다.
실향민들과 우리 탈북자들이 서로 고향을 떠난 이유는 달라도
고향에 대한 그리움과 가족의 대한 그리움은 꼭 같습니다.
실향민들은 60년 동안 그리워하던 고향도 가보지 못한 채 하나 둘 세상을 뜨고 있습니다. 저의 삼촌도 북에 두고 온 사랑하는 아내와 아들을 보지 못한 채
한을 안고 세상을 뜨셨습니다.
추석 같은 큰 명절만 되면 고향이 더욱 그립습니다.
언제나 부모님의 산소를 찾을 수 있을까?
언제이면 부모님 산소에 가서 다리던 딸이 왔다고 큰 절을 올릴 수 있을 까?
그날을 손꼽아 기다리며 서울에서 김춘애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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