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생각 평양 생각] 눈물의 결혼반지

2009-01-16

하루 일을 마친 저는 퇴근길에 올랐습니다. 회사에서 저의 집까지는 걸어서 불과 10분이면 도착하는 거리랍니다. 얼굴로 스쳐 가는 차가운 겨울바람에 목을 움츠리고 부지런히 걷고 있는데 손 전화기가 울렸습니다. 남편에게서 오는 전화였습니다.

회사에서 업무를 수행하면서도 은근히 기다리고 기다리던 남편의 전화였기에 저는 반갑게 손 전화기를 꺼내 들었습니다. 마침 주말이라 남편은 여느 때보다 조금 일찍 일이 끝났다고 했고 저도 마침 회사를 나와 집으로 가는 도중이라고 말했습니다. 남편은 그새 보고 싶어 죽을 것 같아 전화했다고 농담까지 슬쩍 해왔습니다. 별일이 없었던 것 같은데, 남편의 목소리는 평소보다 올라가 있었습니다.

저도 역시 보고 싶으면 빨리 날아오라는 농담을 하고는 집으로 돌아가 부리나케 저녁 준비를 했습니다. 남편이 어느새 달려왔는지 벨 소리가 났습니다. 부엌에서 한달음에 달려나가 현관문을 열었습니다. 남편의 일 때문 주중에는 떨어져 지내야 하는 우리 부부. 그래서 금요일 저녁, 이 시간은 그야말로 이산가족 상봉입니다.

서둘러 저녁을 차리겠다니, 남편이 일주일 동안 고행했으니 나가서 저녁을 사먹는 것이 어떠냐고 했습니다. 집을 나가 택시를 잡은 남편이 택시 기사에게 부천으로 가자고 했습니다. 저의 집에서 부천은 20분이면 갈 수가 있거든요. 그래도 밥 먹으러 부천까지 가는 일은 별로 없어서 왜 하필 부천으로 가냐고 제가 물으니 남편은 오늘은 아무 말 없이 그저 자기를 따라 달라고 부탁을 했습니다.

택시는 어느새 부천에 있는 금은방 백화점 앞에 와 섰습니다. 결혼 기념 반지를 하자는 것이었습니다. 지난 가을, 재혼을 하면서 저는 결혼반지를 맞추자는 남편의 말을 거절했습니다. 이미 금반지와 금목걸이 금팔찌가 다 있는데 뭣 때문에 또 돈을 쓰는가라고 했던 것입니다.

남편은 저에게 10돈짜리 금목걸이를 목에 걸어 주었고 우리는 가게에서 제일 좋은 것으로 결혼 기념 반지를 맞추었습니다. 반짝거리는 보석이 박힌 반지를 낀 제 손이 진짜 제 것이 맞는가요? 저녁은 일식 요리 집에서 남편과 회에 소주를 한 잔 곁들였습니다. 저는 아끼고 사랑해 주는 남편과 함께 마시는 소주 한 잔이 달았습니다.

남편은 저에게 지난날 못 누렸던 것을 마음껏 하고 살 수 있도록 해주고 싶다고 했습니다. 설령 남편이 저에게 말한 만큼 다 차려주지 못해도 이런 마음만으로 저는 세상을 다 가진 것 같이 행복했습니다. 눈물이 흘렀습니다. 아이들 때문에, 또 친구들 때문에 고마운 마음, 다행이라는 마음에 가슴을 쓸어내리며 눈물을 흘린 적은 있지만, 저 자신의 행복에 겨워서 눈물을 흘린 적이 있었던가요?

택시를 타고 집으로 오는 내내 남편이 제 손을 꼭 잡고 놓지 않았습니다. 남편의 손에도 저의 손에도 새로 산 반지가 반짝반짝 빛났습니다.

집에 도착한 남편이 좋은 기분에 약주 한잔을 또 했습니다. 작년 봄에 큰 딸이 시집에 갔다가 오두를 따서 담근 오두 술을 열어 술기운에 우리는 흘러간 옛 추억을 얘기했습니다. 한때, 남편도 마음고생이 심해 술로 세월을 보낸 적도 있었다고 했습니다. 워낙 술도 많이 못하는 사람인데 얼마나 마음이 아팠으면 그랬을까 하고 저는 생각을 했습니다.

저도 역시 지금까지 살아오는 동안 마음의 상처가 컸습니다. 열악한 환경 속에서 아이들과 남편 공대를 하느라, 언제 한번 저의 생활에 대해서는 생각도 못해 본 저였습니다. 부족한 것이 많은 가정생활에 시달리다 못해 부족한 것을 채워 달라고 조르는 우리 아이들에게 때로는 욕설과 뭇매를 안겼고 때로는 남편과의 마찰로 가정불화로 서로 웃는 낯 보인 날보다 힘들고 짜증 난 얼굴로 산 적이 더 많았습니다.

지난날이 힘들어 이제 저에게도 이런 선물이 오는 걸까요? 사랑한다고 말하는 남편, 행복한 부부 생활은 새로 산 결혼반지처럼 조금 어색할 때가 있습니다. 그래도 반지가 제 손가락에 잘 자리 잡은 것처럼 언젠가 저도 이런 행복을 당연하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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