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손녀딸애는 책가방을 메고 학교로 갑니다. 학생이라고 자랑하면서 책가방을 메고 집을 나서는 손녀의 모습을 보는 제 마음 역시 대견하지만서도 마치 내가 초등학생이 된 기분도 들기도 했습니다. 학교에 입학한지 열흘밖에 안됐지만 손녀는 아침 일찍 누가 깨우지 않아도 일어나 제 손으로 양치를 하고 비누 세수를 하고 크림을 바릅니다. 유치원 시절에는 다른 애들보다 어리광이 많았지만 초등학생이라는 이유로 며칠 사이에 제법 어른스러워졌답니다. 누가 묻지 않아도 학생이라고 자랑도 합니다.
이런 손녀의 모습을 볼 때마다 웃음이 저절로 나기도 하건만 저에게는 참 시간과 세월이 어느새 훌쩍, 눈 껌벅하면 하루가 지나고 또 한 번 껌벅하고 기지개 한 번하면 한 달이 가고 한번 자고 일어나면 어느새 1년이란 세월이 지나가는 것이 정말 세월은 시냇물 흐르듯이 흘러가는 것 같네요.
지난 3월 3일은 기다리고 기다리던 손녀의 개학날이었습니다. 이 날은 눈에 들어가도 아프지 않을 만큼 소중하고 귀한 내 강아지 손녀딸이 학교에 가는 날이기도 했습니다. 첫 개학을 앞둔 손녀 딸 못지않게 저 역시 설렘으로 잠을 설치기도 했답니다. 첫 손녀의 개학 준비물 역시 이 할미가 직접 책가방도 구입해주었고 연필과 필통, 공책, 신주머니, 실내화, 그림책, 알림장, 지우개 등등 하나에서 열까지 세심하고 아주 꼼꼼하게 준비해주었답니다.
손녀딸애의 준비물을 하나하나 갖추면서 지나간 세월 내 고향에서 우리 아이들을 키우던 추억도 해보았습니다. 내 인생에서 처음 맏이를 인민학교에 입학시켰던 그 시절, 누구에게 뒤 질세라 다른 부모 못지않게 밤낮 가리지 않고 피곤함도 모른 채 글을 가르쳐 주곤 했던 추억, 그리고 둘째와 막내아들을 첫 입학 시켰던 추억도 해보았습니다.
너무도 부족한 것이 많았던 그 시절, 9살짜리 아들은 그 어린 마음에도 공책을 아껴 쓰려고 네모 한 칸에 깨알만한 두 글자를 또박또박 써 넣다가도 달콤한 꿈을 꾸며 자고 있는 아들의 모습을 한참이나 넋 놓고 들여다보면서 눈물을 흘렸던 지나간 아픈 기억도 해보았습니다.
입학하기 전부터 손녀딸은 책가방이 닳도록 만지고, 메보고, 열어보고 심지어는 잠자리에 들기 전에 책가방을 머리맡에 꼭 놓고야 잠들곤 했습니다. 그렇게 기다리고 기다리던 개학날이기에 저도 잊을 수가 없네요. 첫날 아침 누구보다도 일찍 자리에서 일어난 손녀는 세수도 하기 전에 벌써 책가방을 메고 있었습니다.
어른 손바닥만한 작은 등에 책가방을 메고 출입문을 나서는 손녀의 모습을 보니 조금은 마음이 짠하기도 했습니다. 같은 또래 친구들보다는 한 뼘만큼은 키가 작거든요. 지방에 강연이 있어 개학식에는 가지 못했습니다만 제가 저녁에 집에 들어서자마자 제일 먼저 개학식에서 있었던 재미있었고 즐거웠던 일들에 대한 자랑이 한참이었습니다.
그날은 첫날이라 수업은 하지 않고 개학식만 하고 집으로 왔다고 하면서 손녀는 쫑알쫑알 자랑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초등학교가 워낙 작은 학교다보니 올해 1학년에 입학한 학생 수는 모두 27명이라고 합니다. 저는 놀랐습니다. 아무리 작은 학교라 해도 못해도 3개 학급은 될 것이라고 생각했거든요. 내 고향에서의 초등학교는 한 학급에 30명 이상씩 한 학년 학급이 7~8개 반은 됐습니다. 제가 다닐 때만 해도 14반이었기도 했거든요.
그리고 손녀가 또 즐겁고 재미있었던 것은 졸업반 언니 오빠들이 신입생들을 등에 업고 운동장 한 바퀴를 돌았는데 손녀를 업은 언니가 1등이었다는 것입니다. 언니, 오빠들이 태극기를 선물도 주었다면서 태극기를 들고 나와 깃대에 끈을 매달라고 했습니다. 태극기를 보는 순간 괜스레 제 마음은 숭엄해지기도 했습니다. 저 역시 자유와 독립, 민주주의 등 우리 선조들의 큰 뜻이 담겨있는 태극기를 무척 좋아하지만 손자들 역시 태극기를 무척이나 좋아합니다.
이런 자랑찬 우리 깃발이기에 오늘도 우리 손자, 손녀들은 태극기를 서로 만져보겠다고 다툼을 합니다. 손녀의 첫 입학을 두고도 저는 지나온 추억 속에서 오늘의 행복한 삶에 대한 고마움을 가져 보았습니다. 서울에서 김춘애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