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한 봄날 나물을 캐며

김춘애∙ 탈북 방송인
2017.03.24
spring_greens_b 1990년 봄나물을 캐는 여인들.
사진-연합뉴스 제공

따사로운 햇살과 함께 설렘이 가득한 봄입니다. 살랑살랑 꽃 내음을 실은 봄바람이 불어오는 지난 주말이었습니다. 동네 아줌마 친구들과 함께 들판으로 갔습니다. 따사로운 햇살에 눈이 부셨습니다. 이마에 땀이 나는 줄도 모르고 냉이와 민들레를 캡니다. 갑자기 어디선가 노랫소리가 들려 왔습니다. “봄이 왔네. 봄이 왔네. 숫처녀의 가슴에도 나물 캐러 간다고 아리랑 타령이 절로 나네.”

은방울 소리 같으면서도 구성진 목소리가 그야말로 봄바람에 잘 어울려 온 벌판에 울려 퍼져갔습니다. 봄나물을 캐던 아줌마들이 노랫소리에 맞추어 손에 호미를 든 채 춤을 추기도 했습니다. 정말 영화의 한 장면 같기도 했습니다. 비록 나이 많은 분들이었지만 30대 40대의 젊음이 넘쳤습니다.

잠깐 사이에 캔 냉이 무침과 함께 민들레를 깨끗이 씻어 점심 밥상에 올려놓았습니다. 보자기와 신문을 깔고 우리는 둥글게 모여 앉았습니다. 요즘 날씨에는 컨테이너 안보다 벌판이 더 따뜻했습니다. 김이 몰몰 나는 찰밥에 오리 훈제도 김밥도 있었지만 아줌마들이 가지고 온 김밥에는 숟가락이 가지 않았습니다. 여기에 또 빼놓지 않은 것이 있었습니다.

제가 담근 복분자술이었습니다. 한창 즐거운 점심식사를 하시던 나이가 제일 많은 70이 된 언니 한 분이 임진강을 바라보며 저에게 말합니다. 고향을 바라보며 갈 수없는 아픔이 얼마나 크겠는가고, 통일되면 내 고향인 평양 구경 시켜달라고 부탁까지 합니다. 저는 통일 되면 내 고향 평양에 있는 옥류관으로 모시겠다고 약속했습니다.

한참 즐거운 웃음으로 웃고 있는데 군인들의 훈련 모습이 보이네요. 무거운 배낭을 지고 땀을 뻘뻘 흘리면서 걷는 모습이 보기에도 힘들어 보였습니다. 3명중 한 군인이 손을 들어 주네요. 가까이에서 보니 미군 군인들이었습니다. 저도 손을 흔들어 주었습니다. 말은 통하지 않았지만 웃음으로 통했습니다. 얼굴이 까만 여성 군인도 있었습니다. 남자 군인들 보다 두 배나 작아 보이는 여성 군인은 자기 몸무게만한 배낭을 어깨에 메고도 힘든 내색 없이 당당하게 나란히 걸었습니다.

여성 군인의 모습을 보는 순간 왠지 마음이 짠하기도 했습니다. ‘나도 한때에는 저런 시절이 있었는데’하는 순간 지나간 세월 군복무 시절이 그림의 한 장면처럼 지나갑니다. 그 때 역시 한미군이 합동훈련이 한창인 이맘때였습니다. 우리 부대는 여단 지휘부로부터 기동 훈련하라는 명령이 내려졌습니다.

저녁 5시부터 폭풍 발령 신호와 함께 전투 준비를 시작했거든요. 14.5mm와 3.7mm 쌍신 고사포로 구성된 우리 중대는 30분이면 철수준비가 끝나지만 대대가 가지고 있는 지휘차와 송수신차 그리고 배전차와 로켓포 발사대와 포알들과 통신 카벨 철수시간은 5시간, 예비진지까지 가는 소요시간은 3시간, 예비진지에 도착해 전투준비 완료시간 역시 5시간이 걸리거든요.

은밀히 진행되는 야간 기동이라 유선은 사용할 수 없고 무선이나 수기로 전투 지휘를 해야 했습니다. 기동 도중 새로 입대한 신입대원이 대대장의 명령이라면서 포 전투 준비를 완료하고 지휘소에 도착하라고 했습니다.

중대의 전투준비를 완료하고 보니 날이 훤히 밝아왔습니다. 연락병과 함께 례성강을 건너 대대 지휘소로 갔습니다. 작은 돌다리로 한 발 한 발 건너던 연락병이 그만 깜박 졸음으로 물에 빠졌습니다. 대원을 잡느라 저 역시 발이 물에 흠뻑 젖었습니다. 군복에서 흘러내리던 물은 그만 고드름이 되었습니다.

기동훈련이 끝나고 그 대원은 독감으로 오랜 시간 고생을 했습니다만 한미 작전이 무사히 조용히 끝나고 훈련총화에서 국기훈장 3급을 수여 받았거든요. 따사로운 봄날 봄나물을 캐는 즐거운 시간과 함께 미군여군의 행군 모습에서 흘러간 추억을 해 보았습니다. 서울에서 김춘애였습니다.

댓글 달기

아래 양식으로 댓글을 작성해 주십시오. Comments are modera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