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녀딸과의 하루

김춘애∙ 탈북 방송인
2013.07.25
kwar_pictures_305 권유미 블루유니온 대표가 지난달 25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6ㆍ25 남침 전쟁 사진전 및 북한 정치범수용소 전시전에서 사진을 보며 당시 상황을 설명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며칠 전 손녀와 함께 세종대왕 동상과 이순신 장군 동상이 있는 서울의 중심, 광화문을 다녀왔습니다. 장마라 후텁지근한 날씨였지만 손녀는 생각 외로 즐거워했습니다. 우리는 세종대왕 동상과 이순신 장군 동상을 돌아보고 청계천 쪽으로 갔습니다.

장마로 물이 불어난 탓에 흐르는 청계천 안으로는 감히 들어가 볼 수 없었지만 손녀는 2년 전에 왔던 기억을 살려 청계천에 와 본 기억이 난다고 말했습니다. 어렸을 때 물장난을 하는 모습을 사진까지 찍었다면서 제법 어른이 다 된 것처럼 쫑알쫑알 자랑까지 했습니다.

이번에도 비록 청계천 물에 손발을 담가 보지는 못했지만 청계천을 배경으로 찍은 사진 한 장을 제 엄마한테 보내라는 성화에 못 이겨 저는 손전화기로 사진을 한 장 멋있게 찍어 회사에서 일하고 있는 큰딸에게 보내주었습니다. 요즘 한창 방학인 손녀를 매일 데리고 다녀야 해 저에게는 때로 조금 버거운 짐이 되기도 하지만 늘 말벗이 되어 주어 고맙기도 하고 때로는 내가 할미인지, 친구인지 헷갈려 해 둘이 크게 웃기도 하는 행복한 시간이 되고 있습니다.

하기에 친구들도 저의 이런 행복한 모습에 대해 부러움을 금치 못하고 있답니다. 청계천광장에서 한참을 보내던 손녀는 갑자기 6. 25전쟁 사진들이 전시되어 있는 사진전시회장으로 달려갔습니다. 사진을 한참 들여다보던 손녀는 두 귀를 막고 있는 아이들의 사진과 미군이 주는 빵과 우유를 받아먹고 있는 아이들의 모습, 그리고 전쟁에서 다친 상처를 치료받는 아이들의 사진을 보고는 많이 아프겠다고 불쌍하다며 눈에 눈물까지 글썽했습니다.

저는 손녀에게 이 사진들은 북한군이 우리 대한민국을 침범했던 6. 25전쟁에서 용감하게 싸우는 대한민국 군인들의 모습이 담긴 사진들이라는 것과 두 귀를 막고 있는 아이들의 사진은 북한군이 쏘아대는 총포탄 소리에 놀라 그런 것이며 전쟁으로 부모를 잃은 고아들에게 미국 군인들이 우유도 주고 빵도 주고 또 총포탄에 맞아 죽어가는 우리 아이들을 치료해주고 있는 사진들이라고 알아듣기 쉽게 설명해 주었습니다.

그런데 손녀가 저를 더욱 놀라게 한 것은 할머니는 전쟁 때 이 세상에 태어났었는가 하는 물음이었습니다. 할미는 전쟁이 끝난 이후에 태어났다고 얘기했습니다. 그런데 손녀는 끈질기고 또 엉뚱하게 그런데 어떻게 그렇게 잘 아는가 하고 물었습니다. 학교에서 배웠다고 했더니 손녀는 또 엉뚱하게 군인들과 경찰아저씨들이 우리나라를 지키고 있기 때문에 오늘의 평화가 있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저는 한참 발걸음을 멈추고 손녀를 멍하니 내려다보았습니다. 나이 많고 점잖은 택시 기사아저씨가 옆에서 듣다가 너무도 똑똑한 아이라고 말하면서 잔등을 두들겨 주었습니다. 손녀는 신이 나서 한마디 더 했습니다. 북한은 우리 대한민국에 로켓발사를 한다고 말입니다. 그래서 할머니와 로켓발사하지 말라고 추울 때 풍선도 날렸다고 했습니다.

저의 당황스러워하는 모습을 바라보던 기사아저씨는 저에게 보아하니 북한이탈주민 같기도 하지만 어디서 많이 본 기억이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저는 당당하게 탈북자라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그분은 대뜸 ‘대찬인생’이라는 텔레비전 프로그램에서 본 듯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맞는다는 제 대답에 정말 3남매와 함께 어렵게 이곳으로 온 분이냐며 강한 어머니 못지않게 자녀들 역시 열심히 키우고 있는 것 같아 대단하다고 치켜세웠습니다.

그분은 제가 북한에서 자녀들을 키우면서 해주지 못했던 것을 손자들에게 마음껏 원 없이 해준다는 말에 더욱 감동받았다고 합니다. 기사 분도 부족한 것이 많았던 지난 시절이 있었다면서 건강하게 그리고 행복하게 열심히 잘 살아야 한다고 했습니다.

특히 고생을 많이 한 분이라 손녀딸도 예쁘지만 교육을 잘 받은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저는 순간 똘망똘망한 손녀 덕분에 잠깐 유명한 인사가 된 듯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택시기사 분들과 잠깐 얘기를 나누었지만 한국 사람들은 정이 깊다는 것을 다시 한 번 느꼈습니다.

지난날 반세기 동안 서로 체제가 다른 곳에서 살아온 분들이었지만 제가 탈북자라고 하면 말 한마디라도 도움을 주곤 합니다. 그래서 저는 손녀의 고사리 같은 작은 손목을 잡고 서울역으로 가면서 지난날 우리나라를 지켜 용감하게 싸우신 영웅아저씨들이 있었기에 오늘 우리가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는 것이라고 얘기하면서 앞으로 커서 나라를 위해 큰일을 하는 훌륭한 사람이 되라고 말했습니다.

이내 달리는 기차를 타서도 뭐가 그리 궁금한 게 많은지 입을 다물지 않고 계속 쫑알쫑알 물었고 그 물음에 답해주느라 저 역시 분주한 하루를 보냈습니다. 서울에서 김춘애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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