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재민 대하는 남북 당국의 상반된 태도

김춘애∙ 탈북 방송인
2016.10.14
chaba_recovery_b 해병대 신속기동부대원들이 태풍 '차바'로 큰 피해를 본 울산 태화강 일대에서 뻘 제거와 침수 가옥·도로 정비 등 복구 작업이 한창이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때늦은 태풍 ‘차바’가 휩쓸어 간 흔적이 하루가 다르게 원래의 모습으로 변해 가고 있는 것을 보면서 많은 생각을 해보게 됩니다. 대한민국 정부에서는 수재민들에게 수억 원을 지원해 주고 있을 뿐만 아니라, 남의 일이 아니라 내 아픔으로 간주한 전 국민들이 정신적으로 물질적으로 수재민들을 적극 지원하는 모습에서 뿌듯한 마음을 금치 못합니다. ‘언제 태풍이 휩쓸었나’ 할 정도로 달라지고 있습니다.

한 소방관은 하나의 생명을 지키기 위해 자기 몸을 희생했고 군 장병들 역시 국민들의 생명과 재산을 지켜 모든 힘을 다하고 있는 늠름한 모습과, 누가 시켜서가 아니라 젊은 청년들과 자원 봉사자들의 자랑찬 모습을 많이 보면서 너무도 다른 내 고향을 생각해 보게 되네요.

내 고향 북한에도 많은 홍수로 수많은 생명을 잃었고 집 잃고 한지에 나 앉아 있는 모습을 보았거든요. 특히 두만강 지역인 함북도 무산군 1000세대가 물에 잠겨 있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중국 빨간 집에서 빤히 바라보이는 두만강 기슭에 자리 잡고 있는 첫 집, 낯이 익은 집입니다. 제일 가까운 친척이 살고 있는 그 집이 절반 이상 두만강 흙물에 잠겨 있었습니다.

심장이 멎는 것만 같았습니다. 사람들은 모두 무사한지 많은 근심과 걱정으로 잠을 잘 수가 없었네요. 지난 2000년도에 강제 북송되어 탈출해 그 집에 잠시 잠깐 머물러 있었거든요. 그때에도 며칠째 이어지는 늦은 장마 비로 두만강 물이 불어나, 야심한 밤에 잠자다 말고 중요한 물건만 챙겨들고 높은 지대로 피신을 했었거든요.

그 당시에도 생각보다 넘치게 집안에는 두만강 물이 방안 가득 들어 차 있었습니다. 더 놀란 것은 물살 빠른 두만강 물위로 큰 돼지가 살려 달라고 왝왝 소리를 지르며 떠내려가고 있었고 그 옆에는 누구의 집인지 빠른 물살에 떠내려가는 지붕이 보였습니다.

다음날 비는 멎고 서산으로 넘어가는 저녁노을과 함께 붉은 용꼬리가 하늘로 올랐다는 입소문이 났거든요. 당장 먹을 걱정, 잠잘 보금자리가 없는 함경북도 무산군 사람들은 붉은 용꼬리가 몇 백 년 만에 보인 모습이기에 통일이 되든지 아님 꼭 무슨 변통이 일어 날 것이라고 기뻐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아직도 주민들의 그 밝은 모습이 잊히지가 않습니다만, 올 수해 홍수로 인해 무산군 뿐만 아니라 수많은 인민들이 사망되고 집 잃고 굶주림에 시달리고 있는데 북한 당국은 인민들의 생활은 어떻든 관심 없이 김일성 김정일이 동상만을 건설하고 군부대 시찰만 하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 어쩌면 남한의 차바 태풍 피해와 북한의 홍수 피해 장면을 비교해 보게 됩니다.

이곳 남한은 정부에서 수재민들을 위해 수억 원을 풀어 경제적으로 노력적으로 지원해 주고 있지만 북한당국은 인민들을 상대로 1조원의 현금을 수탈하고 있다고 합니다. 하기야 북한 당국은 홍수로 인해 수많은 사람이 죽고 굶주림에 허덕이는 현실을 외면하고 있는 것이 어제 오늘 일이 결코 아니기에 특별히 놀랄 만한 뉴스가 아닙니다.

60년대 중반에도 평양시 큰 장맛비로 대동강 물이 불어나 대동교 옥류교가 물에 잠겼고 수많은 사람들이 산사태와 물에 휩쓸려 대동강으로 떠내려 오다 죽었지만 대동강 제방 뚝 건설에 대학생들과 돌격대, 평양시민들을 총 동원하는데만 연연 했습니다. 90년도 초반에 역시 대동강 미림 관문의 수문이 막혀 평양 시내가 물에 잠겼었습니다.

저녁 5시쯤 갑자기 물이 하수도에서 샘솟듯 역류해 나와 한 개 동 주민들이 아파트 옥상으로 피신해 연 3일 동안 갇혀 있었지만 당국에서는 아무런 대책이 없었습니다.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에도 당시 남편도 없이 세 아이와 함께 인민반 주민들을 피난시켰던 그 당시 일에 대해 기억조차 하기 싫습니다.

한반도에서 한 날 한시에 시작된 같은 민족인데도 어쩌면 너무도 비교가 안 되는 이 두 현실. 영하로 떨어지는 추운 날씨에 홍수로 집 잃고 추위와 굶주림에 시달리고 있는 고향 사람들을 생각하면 마음이 아픕니다. 서울에서 김춘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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