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콩을 수확하면서

김춘애∙ 탈북 방송인
2014.11.13
bean_harvest_305 강원 춘천시 서면 농촌들녘에서 농민들이 수확한 콩을 탈곡하며 바쁜 하루를 보내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올 여름은 제 인생에 있어서 기억에 남을만한 아주 좋은 계절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을 갖게 됩니다. 한 살, 두 살 나이가 들면서 저에게는 언제인가부터 작은 소원이 있었거든요. 자그마한 텃밭에 상추 고추 등을 심어 직접 내가 가꾼 채소로 매일 매일 내 가족의 식탁에 올려놓았으면 하는 바램이었습니다. 아마도 마음이 조금씩 늙어 가고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면서도 자주 그런 상상을 해 보았습니다.

그런 상상과 꿈을 드디어 지난여름에 이루게 되었습니다. 늦은 봄 딸의 소개로 얼마 동안 사용하지 않던 작은 텃밭 100평을 얻게 되었습니다. 채소농사 경험이 부족한 저로서는 처음부터 무엇부터 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했습니다. 그나마도 중국에서 잠깐 농사를 지어 본 경험을 살려 손자들이 제일 좋아하는 도마도와 가지 그리고 서리콩이라고 하는 깜장 콩을 심었습니다.

깜장 콩을 많이 먹으면 우선 흰 머리가 없어지고 부족한 머리카락이 많이 나오기도 한다고 합니다. 처음 콩을 심으려다 보니 다른 사람들의 밭에는 벌써 콩잎이 3잎 4잎 자라고 있었습니다. 조금 망설이기도 했었는데 아는 분의 얘기로는 콩도 모를 심어 키울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북한에서 김장 배추나 무, 그리고 옥수수 영양 단지, 오이 영양 단지, 벼 모내기 때나 모를 심어본 경험이 있는 저는 콩을 모로 심는다는 얘기가 잘 믿어지지가 않았습니다.

하지만 남쪽에서는 다들 그렇게 한다는 말에 한 번 경험도 해 볼 겸 대담하게 뭐든 저질러 보는 것이 워낙 체질인 터라 콩 모를 얻어 심었습니다. 30cm 정도 자란 콩모를 심으면서도 과연 이 콩이 자라 열매를 맺게 될지 궁금했었거든요. 하지만 콩 모를 심고 나서 시간이 가면서 쑥쑥 자라는 모습을 보고 깜짝 놀라기도 했지만 마냥 신기하기도 했습니다.

나름대로 꽃이 피고 콩 열매가 맺히는 모습을 보면서 과연 내가심은 콩이 맞을까 하는 의문도 생겼고 마치 내 손자 개구쟁이들이 자라는 모습과 다르지 않구나 하는 생각도 해보았습니다. 이런 재미와 즐거움 그리고 이런 행복이 있기에 농사를 짓는구나 하는 생각도 해 보게 됐습니다.

내 손으로 직접 심고 가꾼 도마도와 상추쌈을 먹으며 가족이 행복해 하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먹지 않아도 배가 부르고 흐뭇했지요. 누렇게 익어 가는 콩을 보며 빨리 가을이 되어 콩가을을 할 시간만을 기다리기도 했습니다.

어느덧 무더웠던 여름도 지나고 가을이 왔습니다. 다른 집들 못지않게 내 텃밭에 심은 콩잎도 누렇게 단풍이 들어 하나 둘 떨어지기 시작했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이미 콩을 가을하여 탈곡을 했었지만 저는 지난 주말 비로소 콩을 가을 했습니다.

아침 일찍 철물점 가게에 들려 멋지게 생긴 낫 한 개를 구입했습니다. 그리고는 30분 동안에 내가심은 콩을 수확했습니다. 누렇게 잘 익은 콩 무지를 보는 순간 기쁨과 즐거움이 한꺼번에 몰려 왔습니다. 어떤 것은 너무 익어 까만 콩알이 툭툭 터져 나왔습니다. 8살짜리 손녀와 4살짜리 조카 손녀는 할미 뒤를 따라다니며 땅에 떨어진 엄지손가락만큼 큰 콩알을 줍느라 바빴습니다.

야간 특근으로 조금 늦게 도착한 아들과 며느리는 방망이 같은 나무대로 콩을 두드렸습니다. 보태지 않고 제 엄지손가락만 큰 까만 콩알들이 툭툭 튀어 나와 수북이 쌓였습니다. 올  겨울 내내 두부와 비지를 해 먹고도 남을만한 량입니다.

갑자기 올 겨울 이 콩을 먹으면 할머니 머리가 많이 나올 것만 같다는 뜬금없는 손녀의 말에 한동안 동네가 떠날 갈 것 같은 폭소가 터지기도 했습니다. 저는 손녀의 잔등을 두드려 주었습니다. 너무도 대견했습니다.

농사 경험이 부족한 아들의 어설픈 솜씨를 핀잔하는 며느리가 마냥 예쁘기만 합니다. 비록 얼마 안 되는 농사고 또 그냥 취미와 재미로 지은 콩이었지만 내 마음에는 한해 먹을 식량을 마련해 놓은 그런 기분이었습니다.

푸짐한 한 해 농사 뒤 끝에 없어서는 안 될 콩 청대를 했습니다. 그야말로 콩이라 안 할까봐 콩알이 콩당콩당 익자마자 튀어 나왔습니다. 손자들과 아들 며느리 역시 입주변이 까만 줄도 모르고 머리를 수그리고는 정신없이 콩을 주워 먹었습니다. 서로 얼굴을 마주보며 웃기도 했습니다. 이곳 남한에서는 건강을 위해서 그리고 취미와 즐거움으로 농사를 짓지만 내 고향 북한 주민들은 생계를 위해 잔뼈를 긁히며 농사를 지어야 합니다.

푸짐한 가을추수 끝에 빠지면 안 될 삼겹살 구이로 온 가족이 모여 파티를 했습니다. 조카 딸 식구까지 모두 13명이나 되는 대 부대였습니다. 집으로 돌아가는 가족들에게 봉지에 담은 콩을 똑같이 나누어 주었습니다. 이렇게 기쁘고 보람 있는 인생을 하루하루 이어가는 삶이 너무 행복합니다. 서울에서 김춘애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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