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얼마전 한국 여성재단에서 진행하는 탈북 여성리더십 교육졸업증을 받았습니다. 그동안 저는 매주 한차례 3시간씩 실시되는 교육을 받으려고 힘든 줄도 모르고 일이 끝나기가 바쁘게 달려가곤 했습니다.
이런 저를 두고 회사 동료들은 화요일과 수요일엔 어디로 바삐 가느냐며 함께 가면 안되냐면서 웃곤 했습니다. 저는 매주 화요일이면 회사 일이 끝나는 대로 목동에서 전철을 타고 약 40분간 걸려 대방동에 있는 서울시 여성 가족재단으로 가서 먼저 저녁을 먹고 7시부터 3시간 동안 진행되는 "탈북여성 리더십교육"에 빠짐없이 참가했습니다.
교육 프로그램은 주로 한국 내 저명 인사들의 강의와 강연으로 이뤄졌습니다. 한국 여성재단 이사장이었던 박영숙 님의 "남북 여성의 평화리더십"강의와 강연, 한국 유스호스텔연맹총재인 동시에 전 15대, 17대 국회의원이었던 유재건 님의 "글로벌 시대 국가전략과 여성리더십"에 대한 강연, 전 여성장관이었던 변도윤 님의 "탈북여성의 경제활동 촉진을 위한 정책지원"에 대한 강의 등 유익한 교육 내용을 저는 누구보다도 열심히 들었습니다.
저는 그동안 이런 분들이 강의를 새겨들으면서 새로운 정보도 얻고 많은 것을 생각하게 됐습니다.
여성 리더십이란 북한식으로 말하면, 지도력 있는 여성이 사람과의 사업을 할 때 발휘하는 능력과 자질을 말하는 것입니다. 남한에 와서야 알았지만, 북한 사회는 남성 우월주의가 너무나 강합니다. 이 때문에 북한 여성들은 스스로 많은 권리와 이익을 포기하고 살고 있습니다. 하지만, 북한 여성들은 그런 줄도 모르고, 여성들의 삶은 다 그런 것이라고 생각하고 체념하며 살고 있습니다. 이런 마당에 여성들의 권리와 이익을 위해 뜻을 모으고 여성들을 이끌 만한 리더십을 갖춘 여성은 생각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하지만, 남한에서는 이제 공무원 시험 등에서 여성들의 능력이 남성 못지 않게 두드러지고 있습니다. 남한에서 여성 리더십을 강조하는 이유도 그런 배경 때문입니다. 저는 교육기간 강연 내용을 재미있게 들으면서 남한에 와서 그런대로 잘 정착하고 있는 탈북자로서, 특히 탈북여성으로서 책임감도 느끼게 됐습니다.
교육을 모두 이수하고 졸업증을 받던 날엔 제가 대표로 가장 먼저 졸업장을 받았습니다. 그것도 영광인데 제가 이곳 남한에 들어와 살아온 정착사례 강연까지 한 시간 했습니다. 처음 저는 그저 강사라기보다 저의 인생살이를 이야기하겠다고 서두를 뗐습니다. 다 같은 탈북자들이라 뭐 별로 말이 없는 줄 알았는데 정작 마이크를 드니 저절로 말이 술술 나왔습니다. 마음의 상처들이 하나 같이 깊은 여성들이다 보니 그 중에는 눈물을 흘리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여성 리더십 교육은 끝났지만, 특히 마지막 날 강의는 잊혀지지 않습니다. 지나온 생활들을 추억해 보는 시간이었는데 나에게 있어서 가장 슬펐던 일들, 그리고 가장 행복했던 일들과 즐거운 시간들에 대해 다시 한번 추억해 보는 시간이었습니다. 제 생애에서 제일 밉고 나쁜 사람이 누구인가를 말할 차례에 저는 주저할 것 없이 '김정일'이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북한에 김정일 같은 지도자가 버티고 있어서 결과적으로 우리 가족이 남한까지 올 수 있었기 때문에 그 원수를 미워하지 말아야 한다는 제 농담에 많은 사람들이 웃음을 터뜨리기도 했습니다.
삶을 돌아보는 시간을 끝내고 우리는 택시와 자가용 승용차를 타고 이태원 랜드로 갔습니다. 사우나였습니다. 제법 큰 규모의 사우나 같았습니다. 4층으로 돼 있었고 외국인들도 많았습니다. 새벽 2시까지 프로그램 교육이 있었고, 2시부터 아침시간 까지는 자유시간이었습니다. 사우나에 가면 입는 가운을 입고 동료들과 찜질방에 들어가 땀도 내고 서로 잔등도 밀어 주기도 했고 넓은 휴식 공간에서 저마다의 인생살이에 대해 말하며 밤새도록 이야기꽃을 피웠지만 피곤한 줄 몰랐습니다.
정말 어느 누구 하나 마음의 상처가 깊지 않은 사람이 없었습니다. 비록 내가 나서 자란 정든 고향을 그리워하는 마음은 한결 같았지만 잘못 태어난 고향이라고 저주하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남과 북이 지척에 있는데도 어쩌면 그렇게 생활이 다르고, 내 고향 사람들은 지금도 굶주림에 허덕이며 인권 유린을 당하면서도 그런 줄 모르고 살고 있을까요? 생각하면 할수록 마음이 답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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