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산의 잘사는 경제 이야기] 신발이 넘쳐나는 나라와 맨발로 학교 가는 나라
2008-10-15
남쪽에 온 탈북자들을 만나 얘기를 해보면
온 시기야 언제든 간에
처음 도착을 때의 얘기는 거의 비슷합니다.
거의 모든 탈북자들이
길거리 헌 물건 수거함에 버려진 신발을 모았었다는 얘기를 하는데요.
아직도 충분히 신을 수 있는데 버려진 것이 아까워서
한동안 고향에 가져가면 좋겠다는 생각에
집에다가 한 자루 가득 모으기도 했다고 말입니다.
물론 나중엔 고향에 쉽게 보낼 수 없으니 누굴 주거나
버렸다고 말하는데,
그만큼 고향에서 이 신발이 구하기 쉽지 않았다는 겁니다.
원료를 구할 수 없어 경공업이 제대로 돌아가지 못하고
신발 뿐 아니라 옷, 치약, 비누, 칫솔 같은 생활필수품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북쪽 사회.
전 세계 신발 생산량의 50% 이상을
강 건너 중국에서 만드는 현실을 보자면
이 차이는 어디서 나오는 지 궁금하기도 합니다.
잘 사는 경제 이야기, 오늘은 신발 얘기를 해보겠습니다.
탈북 방송인 김태산 씨가 전해드립니다.
북조선에 있을 때 경공업 부문에서 종사하면서
‘신발’ 소리를 너무나 많이들은 탓인지
남쪽에 와서도
우선 신발 상점부터 눈에 들어왔습니다.
이 남쪽도 북쪽과 마찬가지로
생고무나 원유가 한 그람도 나오지 않는 나라지만,
상점에는 각 종 신발들이 차고 넘쳐납니다.
노동화도 작업 특성에 따라 수십 가지,
체육신발도 그 종목에 따라 수십 가지,
운동화나 구두도 수십 가지 종류나 돼
그 가지 수는 다 헤아릴 수 없습니다.
남쪽의 신발 공업은 6.25전쟁 직후 까지만 해도
몇 개의 중소기업들에서
고무신과 군용신발이나 겨우 생산하는 수준이었습니다.
그러던 것이 1962년에 처음으로 12만 달러의 고무 신발을 미국에 수출하였고
그로부터 10년 후인 1972년에는
한해에 1억 달러 이상을,,
지금은 5억 달러 이상의 각종 신발들을 생산해 세계 각지에 수출하고 있습니다.
특히 남조선에서 생산한 각종 운동화는
그 모양이 좋고 성능과 질이 높아
세계적으로 당당한 1등의 자리를 수십 년간 차지하고 있습니다.
운동화뿐만 아니라 체육선수들이 신는
축구화나 테니스화도 세계적으로 1등의 자리를 유지하면서
체육선수들의 희망 사항이 되고 있습니다.
남쪽에서 신발 공업이 활발한 곳은
원료 자재 수입과 생산품의 수출에
유리한 항구도시, 부산입니다.
그러나 근래에 와선 남쪽의 신발생산 공업들은
더 싼 노동력,
그리고 더 많은 소비자들을 확보하기 위해
부산 등 남쪽을 떠나 중국을 비롯한 동남아 나라들에
신발생산 공장들을 설립해 가동하고 있습니다.
남쪽에 남아 있는 공장도 있지만
그런 공장에서는 정말 고가의 고급 신발들만
만들고 있는 상황입니다.
처음 제가 남쪽에 왔을 때,
아파트 주변의 고품 처리장마다에
아직도 몇 년은 더 신을 수도 있는 생생한 신발들이
가득가득 쌓이는 것을 보면서
참으로 너무들 한다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러나 상점들 마다 값이 싸고도
새로운 유행의 신발들이 철따라
계속 쏟아져 나오는 것을 보고 있자니
이런 현상도 이해할만 했습니다.
유행을 따라가고 싶은 젊은 청춘 남녀들이
철지난 신발들을 누가 다음 해에 신으려 하겠습니까.
북쪽에 있을 땐,
겨우 신발 한 두 켤레 씩 밖에 없던 우리 가족들도
지금은 외출 신발이 보통 세네 개씩은 있고
산에 갈 때 신는 등산화, 걷거나 달릴 때 신는 운동화,
그리고 각자에 맞는 체육신발 하여 여섯-일곱 개는 되니
그 보관만 해도 만만치가 않습니다.
북에서 온 어떤 탈북자들은
수 백 달러 이상씩 하는 최고급 운동화나
악어가죽 신발들을 신고 다니면서
한이 맺혔던 신발에 대한 소원들을 풀어 보기도 합니다.
물론 북쪽에서도 신발 생산은 하지요.
한때는 이름 있던 신의주 신발공장과 평양 구두공장,
보통강 여자 신발공장들을 비롯하여
각 도 마다 신발생산 공장들을 건설하여 놓았지요.
그런데 신발생산을 위한 원료 자재의
거의 100%를 수입에 의존해야 하는 조건에서 달러가 없는
북쪽에서는 그 공장들을 돌린다는 것은 매우 힘든 일이었습니다.
아무리 자력갱생 구호를 잘 부르는 북쪽 사람들이지만
신발 바닥을 고무가 아닌 나무나 쇠 덩어리로 만들 수는 없는 것입니다.
신발생산이 거의나 안 되서 1990년대 초 중엽에는
아이들이 맨발로 학교를 가고
농민들이 짚신을 삼아 신는 사태까지 일어났지요.
지금도 중국에서 싸구려 신발들이 들어오지 않는다면
여전히 지방의 인민들은 발을 벗어야 할 형편이지요.
형식상 내각에 세 개의 무역지도국을 두고
그 회사들에서 번 돈으로 신발 자재를 사온다고는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어림도 없지요.
연간 신발생산계획 8천만 켤레를 목표로 세웠으나 그 절반도 생산을 못하는 형편이며
그나마도 기본생산원료인 생고무를 너무나 적게 두고
파고무만 많이 넣어서 신발창을 찍어 내다 보니
애들이 신는 운동화는 보름도 못가서 바닥에 구멍이 나는 형편이지요.
외화의 부족으로
신발생산의 현대화와 형태 바꿈은 꿈도 못 꾸고
1950년대에 생산하던 운동화 디자인을
아직도 그대로 유지 하고 있습니다.
사실 신발의 형태야 어찌되었든
그 양이라도 많아서 아이들과 노동자 농민들이 걱정 없이
신발을 신을 수 만 있다면
소박한 북조선 인민들은 아마 만족해 할 것입니다.
오직 자신들의 수령과 정부만 바라보고 살아가는
이런 소박한 자기 인민들에게 이 세상에 그렇게 흔한 운동화 한 켤레도
제대로 못 신겨 주면서
어찌 충성만을 하라고 할 수가 있겠습니까.
이제라도 쓸데없이 큰 신발생산 공장들을
돈을 얼마들이지 않고도 기술갱신이 가능하도록 작게 분할하고
그 운영과 무역활동의 자유를 허용해 준다면
국가에 손을 내밀지 않고도 아마도 6개월 이내에
낙후한 고무신이나 비닐 신이라도 마음대로 신을 수 있게 될 것입니다.
당장 급한 불부터 이렇게 끄면서
점차 질 좋은 고급 신발생산에로 이행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강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는 중국을 보십시오.
1970년대 말까지만 해도 중국 사람들은 신발이 너무도 없어서
북조선에서 생산한 그 프레스 한 노동화를 얼마나 부러워했습니까.
그러나 이제 중국은
한해에 90억 켤레 이상, 세계 신발 생산량의 50%를 생산해
자국 내 충족은 물론 전 세계에로 수출하여
한해에 840억 달러 이상의 외화를 벌어들입니다.
해방 후에는 중국보다 훨씬 발전했고 잘살던 북조선이
왜 이제는 신발도 제대로 못 생산하는 나라로
경제가 이렇게 무너졌는지를 다시 생각해 보게 하는 판이한 두 현실입니다.
오늘은 이만하겠습니다. 지금까지 김태산 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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