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한국인] 미국 의회를 울린 탈북자 모녀의 생생한 증언 ② '중국은 탈북자 강제북송 중단 하시오'

워싱턴-이현기 leeh@rfa.org
2012-0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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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5일 미국 의회 산하 중국위원회의 '중국 탈북자 강제송환 청문회'에 참석한 탈북자 모녀 한송화(왼쪽), 조진혜 씨(오른쪽).
RFA PHOTO/홍알벗
탈북자의 강제 북송에 반대하는 항의 데모와 규탄 대회가 한국을 비롯해 유럽, 북미 지역 등 세계 곳곳에서 일고 있다. 정치인부터 인권단체, 인권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죽음으로 몰아넣는 강제북송은 절대 안 된다고 한목소리를 높인다.

지난 3월 5일 미국 의회 산하 중국위원회 ‘중국 탈북자 강제송환 청문회에는 탈북자 모녀 한송화, 조진혜 씨가 증인으로 나와 자신들이 겪은 고초를 털어놓으며 탈북자가 강제 북송 되면 죽음 앞에 직면한다면서 그들을 살려달라고 호소했다.

4차례 중국에서 북한으로 송환된 바 있는 이들 모녀는 보위부 요원들이 탈북자를 대상으로 자행하고 있는 상상하기 어려운 고문과 성폭력을 생생하게 증언했다.

자유아시아방송 세계의 한국인, 오늘은 탈북자 모녀 한송화 씨와 조진혜 씨의 의회 증언 2부 ‘중국은 탈북자 강제북송 중단 하시오.’를 함께한다.

북한을 탈출해 모진 고통 끝에 자유를 찾았고, 미국에 난민으로 정착해 사는 한송화 씨의 가장 큰 소망은 최악의 굶주림에 몸부림치고 있는 탈북 인들이 자신과 같이 자유를 찾는 것이다.

한송화: 안녕하십니까? 2004년 미국 국회에서 인권법안이 통과되어 2008년 난민으로 인정받아 두 딸과 함께 미국에 정착한 탈북민 한송화입니다. 북한주민 최하층 백성에겐 간절하고도 간절한 소원이 있습니다. 그것은 최악의 굶주림의 고통과 얽매인 인권의 자유에서 해방되는 것입니다. 그 간절한 소원과 모든 자유를 살아남은 저희 가정에 베풀어주신 하나님께 와 미국 정부에 감사 인사를 드립니다.

한송화 씨의 증언은 슬프고도 슬픈 이야기다.

한송화: 저는 1998년에 두 딸을 데리고 첫 탈북 했습니다. 탈북 전 우리 가족은 8덟 식구였습니다. 저의 어머니와 태어난 지 2달 된 막내아들은 굶어 죽었고, 그 당시 18살 된 큰딸은 가족 식량 해결하러 떠났다가 지금까지 소식도 없이 행방불명 됐습니다. 그때 당시 5살 된 아들은 남의 집에 맡겨놓고 탈 북 했습니다. 다섯 밤만 자면 쌀이랑 사탕을 메고 너를 데리러 오겠다고 약속하고 헤어져서 탈북 했습니다. 그 후 영양실조에 걸린 불쌍한 저의 아들은 남의 집에서 쫓겨나, 어머니! 누나야! 언제 돌아오니 애타게 기다리며 울고 울다가 풀밭에서 굶어 죽었다고 제가 보낸 심부름꾼에게서 전해 들었습니다. 저의 남편을 오랫동안 굶어 쓰러진 자식들을 살리려고 두만강을 건너 중국에 가서 쌀 한 배낭을 메고 온 것이 죄가 되어 끌려가 감방에서 고통 당하다가 돌아가셨습니다.

한송화 씨가 진짜 탈 북을 결심한 것은 산골 집을 빼앗긴 이후란다. 굶어 죽느니 차라리 자유를 찾기로 마음먹고 두 딸과 함께 탈북 하게 된다.

한송화: 그 후 저의 가정이 중국에 갔다 왔다는 이유 때문에 나라를 배반한 반역 죄인이라고 안전 원과 보위 부 지도원들이 산골 집에 찾아왔습니다. 남은 우리 가족들을 다른 곳으로 이사 가라고 쫓아냈습니다. 저의 가정이 당과 수령을 위해 충성 다했지만, 인민을 보호해야 할 북한 안전 원은 이사 가지 않으면 저희가 사는 집에 불을 지르겠다고 소리쳤습니다. 저는 더 이상 도와달라고 빌며 사정할 수 없었습니다. 저는 그때 결심했습니다. 앉아서 굶어 죽느니 가다가 죽더라도 자유를 찾아가자! 한 끼라도 자식들에게 흰 쌀밥을 배부르게 먹여보는 것이 저에 간절한 소원이며, 다시는 굶어서 고통 당하거나 억울하게 죽임을 당하지 않기를 다짐하고 7살이 되지만 영양실조로 자라지 못한 작은딸을 배낭에 넣어 메고 큰딸의 손을 잡고 서로 의지하고 허리 차는 두만강을 무사히 건너 탈북 했습니다.

한송화 씨가 북한 수용소에서 경험한 이야기 함께 들어보자! 이것이 탈 북 여성이 겪는 슬픔의 한 단면이다.

한송화: 저도 중국에 갔다 왔다는 죄로 몽둥이에 맞아 머리뼈가 부서져서 4조각이나 머릿속에 박혀 있었습니다. 그 외에도 주먹으로 사정없이 때려 제 눈과 고막이 터져 현재까지도 듣기 힘듭니다. 물이 없어 목말라도 물을 주지 않아 물탱크의 썩은 물을 마시고 대장염에 걸려 아무런 대책도 없이 죽어간 사람들이 얼마인지 셀 수 없습니다.

한송화 씨는 아무리 죽음의 고통이라도 한 번 탈북 하면 재 탈북 하는 것이 현실이라고 했다.

한송화: 탈북자들은 구사일생으로 살아나 풀려나면 죽으면 죽으리라고 결심하고 또 다시 탈북합니다.

한송화 씨의 간절한 소망은 미국이 많은 난민을 받아 주기를 바라며, 중국의 강제북송을 미국이 막아 달라고 간청한다.

한송화: 저는 오늘의 이 기회를 빌려 간절히 청원합니다. 2004년 북한인권법 통과 후 탈북민들은 100명 조금 넘게 밖에 미국이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부모와 헤어지고 자식들과 헤어지고 갈 곳 없는 탈북자들 중국에서 공포에 떨고 있는 탈북자들은 미국에서의 자유를 원하며 하루속히 받아주기를 애타게 기다리고 있습니다. 앞으로 미국정부는 많은 탈북자가 한국과 같이 탈북자들의 희망과 소원대로 받아 줬으면 간절함과 동시에 그들의 마음을 담아 대신 부탁하는 바입니다. 저는 또 이 기회를 빌려 미국 정부에 지금 중국에서 북송 되는, 불안 속에 떨고 있는 탈북자들을 위해 강력히 저지해 주시기를 간청하는바 입니다.

한송화 씨는 강제북송 반대 운동에 나서는 전 세계 모든 분에게 감사하고, 탈북자들은 통일 이후 북한 발전의 큰 힘이 될 것이라고 강조한다.

한송화
: 우리 탈북자들이 미국이나 한국에서 살면서 미국과 한국에서의 발전을 많이 배워서 앞으로 북한에 미국이나 한국과 같은 발전하는 북한 땅이 될 수 있도록 우리 탈북자들이 많은 노력을 할 수 있다는 것을 말씀 드립니다. 세계 모든 사람이 지금 서명 운동을 펼치고 탈북자들의 강제북송 반대에 투쟁하는 데에 대해서 대단히 감사 드립니다.

한송화 씨의 딸 조진혜 씨가 증언을 시작하면서 자기 나라 수도인 평양은 못 가봤지만, 미국의 수도에 살고 있다고 말한다.

조진혜: 안녕하십니까? 탈북자 조진혜 입니다. 먼저 천국 같은 미국에서 살 수 있게 또 이런 자리에서 간증을 들을 수 있는 자유를 허락하신 하나님과 미국 정부와 국민에게 진심으로 감사의 인사 드립니다. 북한에서는 죽을 때까지 김정일의 가문이 아니면 수도인 평양에 가볼 수 없습니다. 하지만 저는 미국의 수도인 워싱턴 DC 인근에서 살고 있으며, 간곡한 부탁을 하기 위해 이 자리에 섰습니다.

조진혜 씨는 굶주린 배를 채우려고 간 중국 땅은 거대한 인신매매 도굴로 두려웠단다.

조진혜: 굶주린 배를 채우고 저 그리고 어머니께서 얘기하시던 자유를 위해 중국으로 탈출했지만 우리를 기다리는 것은 탈북자를 잡으려고 혈안이 되어 있는 중국 당국의 경찰들과 두 아이의 엄마가 아닌 돈벌이용으로 생각하고 있는 인신 매매 인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철없던 저희는 흰 쌀밥을 먹을 수 있어 너무 좋았습니다. 하지만 자고 일어나면 엄마가 누구에게 끌려가 팔려가지 않을까? 아니면 어머니가 우리를 버리고 떠나지나 않을까라는 두려움 속에서 항상 살아야 했습니다.

조진혜 씨는 미국까지 오게 된 배경에는 신앙의 힘이었다고 설명한다.

조진혜: 우연히 시골 교회에서 하나님을 만났고 그 하나님의 보호 속에서 4번의 강제북송을 당했고, 북송 되어서 맞아 죽지 않고 굶어 죽지 않고 살아 이 자리에까지 올 수 있었습니다.

조진혜 씨가 중국에서 강제 북송 되어 직접 겪은 이야기다.

조진혜: 우리 가족이 마지막으로 북송 당했을 때 어머니를 밖으로 끌고 나가 고문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어머니의 비명소리에 우리 두 자매는 겁에 질려 심장이 멎을 듯했습니다. 보위부 지도원은 저희 앞에서 겁을 주며 사실대로 말하면 어머니를 때리지 않겠다고 핍박했습니다. 그래도 저희는 입을 열지 않자 머리채를 잡고 쇠창살에 짓 찢는 것이었습니다. 저희 머리를 너무 짓 쪄2주 동안 머리가 아파 누울 수도 움직일 수도 없었습니다.

조진혜 씨는 떨리는 목소리로 자신도 갖가지 고문으로 정신을 잃은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고 말하면서 당시의 악몽이 떠오르는 듯 몸서리친다고 했다.

조진혜: 취조실에서 무릎 끊게 하고 사각이 난 나무를 저희 허벅지 다리 사이에 끼워 넣고 물음에 아니라고 답할 때마다 발로 어깨를 차 뒤로 넘어지게 했습니다. 각이 난 나무 때문에 넘어질 때마다 숨이 넘어가는 듯한 아픔으로 고통을 주고 고문을 했습니다. 또 문턱에 발끝을 올려놓고 서게 하고 구둣발로 사정없이 내려 밟아 대기도 했습니다. 무릎을 끊고 앉은 허벅지를 발 뒤축으로 내리 밟아 정신을 잃게 하고 정신 잃은 사람에게 담뱃재를 떨어 놓는 재터리에 물을 퍼서 얼굴에 뿌립니다. 이것이 다 한국으로 가려고 했는지 교회를 다녔는지를 알기 위해서 하는 고문들이었습니다.

조진혜 씨는 북한 동포들에게 자유의 방송과 풍선 사역이 아주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조진혜: 풍선을 보내거나 라디오를 방송하는 것도 굉장히 중요합니다. 세 번째 제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중국의 많은 도시에서 사는 많은 탈북자가 정착하는 방법을 찾아 줄 수 있도록 미국 정부나 한국계 교회 여러 분이 도와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왜나면 저희가 가족같이 이 자리에 설 수 있게끔 도와주신 것은 윤요한 목사님이나 그 외 한인 목사님들, 선교사님들이 우리 가정의 정착을 위한 생활비를 대 주었고 힘을 주셨기 때문에 미국에까지 와 자유를 찾을 수 있었습니다.

조진혜 씨는 현대판 21세기 최대의 고문 현장을 알리라고 자신들을 신께서 살려 주셨다고 말한다.

조진혜: 우리 가족은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 속에서 구사일생으로 살아났습니다. 또 하나님이 많은 사람의 억울함과 현대 최악을 세상에 알리라고 살려 주셨다고 믿습니다.

조진혜 씨가 북한동포에게 주는 이야기다.

조진혜: 정말 숨이 넘어가기 직전까지는 인생을 포기하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러고 조금만 힘을 내셔서 또한, 북한정부를 무서워하기보다 그 사람들과 대응을 했으면 좋겠습니다. 어차피 굶어 죽을 건데 싸우다 죽는 건 죽는 거니까? 조금만 노력을 했으면 좋겠고 또 세계적으로 북한 안의 내부를 아는 길은 우리 북한사람들이 직접 이야기하지 않으면 누구도 알 수 없습니다. 해서 위험하기도 하지만 그래도 많이 탈출하셔서 세계에 북한 사정을 알리고 북한을 변화시킬 수 있는 노력하시는 분들이 됐으면 좋겠고요. 또 세계적으로 많은 사람이 매일 같이 눈물로 호소하면서 기도하며 또 중국 대사관 앞에서 지금도 투쟁하는 대학생 분도 계시고 70이 넘은 노인이 3년 동안 북한을 위해서 대사관 앞에서 기도하시는 분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심신만 잃지 않으신다면 어느 날엔가는 하나님의 때가 이르면 북한이 변화되고 붕괴해서 사람이 살 수 있는 나라로 변할 수 있을 거로 생각합니다. 많은 탈북자가 한국에서 세계 곳곳에서 아직 남아 있는 가족들을 위해서 형제들을 위해서 노력하고 있으니까요. 힘을 잃지 마시고 열심히 살아만 주셨으면 그랬으면 만날 수 있는 그날이 올 거라고 믿습니다.

자유아시아방송 세계의 한국인 오늘은 탈북자 모녀 한송화 씨와 조진혜 씨의 의회 증언 2부 ‘중국은 탈북자 강제북송 중단 하시오.’를 함께했다. 지금까지 진행에 RFA 이현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