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한국인] 독도 화가 권용섭 씨의 그림세계② -온몸으로 그려낸 독도 사랑

워싱턴-이현기 leeh@rfa.org
2011-0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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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도 절경을 그린 수묵속사 앞에서 설명하는 권용섭 화가.
사진제공: 권용섭 화가
온몸으로 독도를 그려온 화가가 있다. 바로 독도 화가 권용섭 화백, 그는 50여 차례의 국내외 전시회를 통해 독도가 한국의 영토임을 세계에 알리고 있다.

자유아시아방송의 세계의 한국인, 오늘은 독도 화가 권용섭 화백의 그림세계 2부 ‘온몸으로 그려낸 독도 사랑’을 함께한다.

권용섭 씨가 독도 화가로 가는 길목인 1977년에 대전의 한 신문사에서 삽화를 그리면서 ‘동곡’이란 호를 받게 된다.

권용섭: 대전 한 신문사에서 일하고 있었습니다. 뭔가 새로운 특종을 만드는 사람들의 생태를 보며 많은 것을 느끼며 사회 초년생이 시작된 것입니다. 이때 신문사의 논설위원인, 문학 작가로부터 ‘동곡’이란 아호를 받게 됩니다. 대전에서 보면 저의 고향이 '동쪽 골짝에서 나타난 놈'이라는 설명과 함께 ‘동쪽계곡은 태양과 가까이 있지만, 빛을 볼 수 없고 석양이 되어야 찬란한 빛을 받는다.'라는 '서광'의 뜻이 마음에 들어 받아 드린 것입니다. 그 최 위원님과 함께 숙직실에서 밤새 그분은 글을 쓰고 저는 삽화를 그렸습니다.

권용섭 씨가 초창기에 귀한 화선지를 구해 필력을 쌓던 이야기다.

권용섭: 누군가 그런 말씀을 했습니다. 화가는 화선지를 한 수래 없애야 대가가 된다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저는 당시 시골뜨기인 나에게 화선지는 고급 종이였습니다. 그런데 신문사 재지 창고에 몇 년째 뒹구는 화선지 더미를 발견했습니다. 직원들께 물어보니 종이를 잘못 들여와 언젠가 버려야 할 폐지라는 것이었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저는 늘 이런 횡재가 자주 따르는 편인데 그 화선지를 마구마구 쓰면서 확실한 필력을 키운 셈이죠.

권용섭 화백의 본격적인 독도 사랑은 언제 시작됐을까? 권 씨가 독도를 처음 찾아간 것이 2000년 4월이라고 한다. 꿈에도 그리던 독도를 찾아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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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지도본 앞에서 세계에 독도홍보를 다짐하는 권용섭 화가 (사진제공: 권용섭)
권용섭: 독도가 나에게 말을 걸어온 것입니다. "한국에 모든 곳을 다 그리고 동쪽 끝의 막내 섬인 독도를 왜? 찾지 않느냐?"라는 듯 아우성을 치는 것 같았습니다. 저는 지난해 금강산 방문까지 하고 왔는데 "왜 북녘 땅보다 왜 독도를 가기가 더 어렵나?"리고 생각하며 독도로 갈 것을 기도했습니다. 신기하게도 몇 일 후 커다란 배(썬플라워호)가 저를 태워서 독도를 갔고 저는 현지에서 그림 40컷을 그려 왔습니다. 독도에는 동도의 한반도지도, 서도 뒤편에 백두산천지 모양의 바위 섬 들 30여 개의 독도의 애기 섬들을 하나하나 보트를 타고 보듬어 그림을 그렸습니다. 정말 독도는 한국영토의 축소판처럼 별의별 모양의 소재로 나의 산수화 모델이 되어 주었습니다.

권용섭 화백이 독도를 갔다는 소문이 종교계에 퍼지면서 200여 명이 포항에 내려가 독도를 찾으려 했지만 파도 때문에 뱃길이 막혀 무산됐다. 그리고 얼마 뒤 가족들만 다시 독도를 찾는 행운을 얻어 재미있는 독도 생태계를 그렸다고 한다.

권용섭: 그날은 파도가 포항에서부터 뱃길을 막아 행사가 무산되었습니다. 실망하고 돌아온 아내에게 4학년 딸아이가 영적으로 용기를 줬습니다. "엄마 우리끼리 기도하고 다시 가보면 되잖아." 우리는 감동해 그 자리에서 4명이 얼굴을 묻고 기도하고 일어나 곧바로 썬플라워라는 선박회사에 전화했습니다. 아무 연고도 없지만, 우리 가족을 태워 독도로 가겠다는 겁니다. 그래서 3일 뒤 우리 가족이 화구를 챙겨 들고 독도로 가게 됩니다. 집사람의 주특기인 리얼티한 극 사실의 바위 묘사, 아이들은 재미있는 독도생태계를 그렸습니다. 삽살개(뛰어 노는 독도리와 독순이)도 그리고, 과자를 받아먹는 괭이갈매기 등 독도의 실황을 가족이 그려낸 것입니다.

드디어 권용섭 화백의 독도 절경이 언론을 통해 전해진 그 당시를 들어보자!

권용섭: 독도를 내 화폭에 등기 이전을 했다고 선포를 했고, 언론들은 이를 대서특필했습니다. 물론 나의 미술 활동의 수단이지만 이는 영토실효적 지배에 파급 효과는 상상을 초월했습니다.

권용섭 화백은 독도를 화폭에 담는 것은 물론 전시를 하고 싶은 욕망이 가득했다. 그리고 그의 꿈이 이뤄진다.

권용섭: 경북경찰청과 도청을 찾아가 독도 그림 전시회를 하자고 부탁했으나 두 기관은 독도 '독' 자도 꺼내지 말라는 태도였습니다. 하지만, 저는 정황으로 보아 오히려 저를 도와 전시해서 독도를 문화적으로 지켜보자는 애국심이 더욱 불타는 것 같았습니다. 이는 싸우지 않고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때 서울에 있는 한국경찰청에서 미술관을 포돌이 문화공간을 만들어 그 개관기념전을 저하고 하겠다는 것입니다. 기적 같은 일이었습니다. 경찰 관계자는 금강산 전을 하자고 했으나 저는 독도 전을 하자고 했지만, 독도는 민감한 부분이라시며 안된다고 했는데, 몇 일 회의를 한끝에 독도를 허용해 주었습니다. 대신 외부에 홍보하지 말고 경찰청 내만의 행사로 하자는 단서로 했지만, 언론이 이를 놓치겠습니까? 일본대사관을 습격한 시위대는 경찰에 수감돼 조사를 받고 저는 그 본청에서 독도전시를 하는 진풍경이 벌어진 것입니다. 그래서 문화홍보가 상당히 목적 달성에 효과적이라는 것을 새삼 느꼈습니다.

이 전시장에는 일본 경시청에서도 관람을 왔는데 제가 그림으로 발표한 독도의 진경 중에 한반도지도를 보고 굉장히 부러워하며 정말 이런 모양이 독도에 있더냐고 물어왔습니다. 저는 가서 확인해 보라고 했고 그 일본경관은 웃으며 자기는 갈 수 없다고 했습니다. 때마침 여경의 날 업무로 방문한 대통령이 경찰청을 방문해 "그림이니까 괜찮겠지."라며 격려가 있자. 저의 독도 그림 전시를 보고서 그제야 확산하여 국내 몇 군데 경찰관서를 순회했습니다.

권용섭 화백은 지난 2000년 독도를 알리는 해외 전시를 떠나게 된다. 브라질에서의 전시 이야기다.

권용섭: 관객 중 이런 것은 국내보다는 세계에 알리는 해외전시를 해야 한다며 함께 지구 끝, 브라질의 관광지인 이과수폭포 카리마 호텔에서 9일간 전시했습니다. 하지만, 독도를 모르는 이국의 사람들에게 별 관심을 끌지 못했습니다. 저는 다음 날부터 현장으로 나가 폭포를 그리며 독도전시장으로 인도, 홍보했습니다.

권용섭 화백이 그동안 세계 곳곳에서 활동한 이야기를 들어보자!

권용섭: 저의 독도행사를 할 때마다 주제로 '온몸으로 독도를 사랑하는 민족만이 내 땅이라 주장할 수 있다.'라며 2002 월드컵 한국 개최를 기념하는 행사로 안면도 해변에서 60미터 초대형 그림으로 3시간 반 동안 그려 세계최대 수묵 퍼포먼스, 즉 현장에서 직접 그리는 행사를 기록하게 되었습니다. 이후, 필리핀 아이아스 대학, 중국 연변예술대학, 독일 프랑크푸르트, 미국 할리우드, 세계한상대회, 미국 국회 의사당, 한국국회, 평양 일본 등 50여 회 수묵화로 아름다운 독도를 현장에서 그려 보여 주며 홍보를 했습니다.

권용섭 씨가 2004년에 미국에 오게 된 동기는 딸의 요청이란다.

권용섭: 나의 방랑 끼는 독도를 홍보한답시고 해외 전시를 자주 나갔습니다. 미술치료, 독도그림전, 해외 수묵스케치 저는 어느 나라든 도착을 하면 밤 낮 없이 분주하게 다녔습니다. 해외에서 돌아오면 가족들에 늘 미안했습니다. 그래서 모처럼 딸아이의 부탁으로 미국 이민 길에 올랐습니다. 우리는 생활이 단출하여 3개월 만에 한국생활을 정리하고 미국으로 왔습니다. 이때가 2004년 9월이었습니다. 물론 일사천리가 아니라 여기 와 보니 누구나 이야기가 있듯이 저희 같은 무계획 이민의 모험은 우여곡절이 많았습니다. 이민 재정, 장기 거주 자격 등 열약한 가운데 LA 근교 토렌스라는 바닷가 마을에서 마음으로나마 낭만의 미국생활을 시작했습니다. 이 무렵에 독일 문화원에서 전시 요청이 왔고 LA 문화원에서도 독도전시를 요청해 올 만큼 독도는 상한가를 달리고 있었습니다.

권용섭 화가는 삼일절 기념으로 LA Gaia Gallery에서 대한 독도 만세전을 열고 있다. 그리고 미국의 911테러를 맞아 평화의 메시지도 전하며 세계 곳곳을 다니며 독도 홍보도 계획하고 있단다.

권용섭: 9월에는 캘리포니아 주 정부청사에서 한인의 날 행사로 독도 퍼포먼스와 전시회를 할 예정이고요. 한 10년 전에 911 때 미국을 오고 2주년 때도 현장에 있었고 3주년 때에는 이민을 왔고, 911테러 현장을 지켜보면서 이것을 세계의 평화의 메시지를 전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911 현장에서 수묵화로 퍼포먼스를 재현했으면 합니다. 그래서 1시간 만에 무너진 두 빌딩을 다시 그려보면 어떨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가을에 한국 부산, 서울 등 여러 행사가 있을 것 같습니다. 꾸준히 지구촌의 비경을 그리며 각 나라 도서관 등 주요기관에 독도 그림을 걸어 한국화가의 아름다운 국토 독도를 자랑할 것입니다. 그리고 몇 년 후 한국으로 돌아가 독도미술관을 설립해서 자라나는 어린이와 청소년을 위한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싶습니다. 제가 각 나라를 돌며 독도홍보를 하기 위해 꼭 그 나라 그 지역을 함께 그림을 그려 전시를 할 겁니다. 그렇게 지구촌의 비경과 함께 독도미술관을 통해 글로벌, 지구촌의 문화를 보여주고 싶습니다. 아마 내심 결국 나는 대한민국이 가장 아름답다고 자랑할 것 같습니다. 그것은 세계인과 견주어 위대한 한민족의 정신과 주체성을 확인시켜 주기 위함일 것입니다.

자유아시아방송의 세계의 한국인, 오늘은 독도 화가 권용섭 화백의 그림세계 2부 ‘온몸으로 그려낸 독도 사랑’을 함께했다. 지금까지 진행에 RFA 이현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