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은 이루어진다] 제주지역 탈북자 회장 김영덕 씨 “뒤에 오는 사람들 정착 도와야죠”

남한의 신혼부부들이 결혼식을 올리고 가는 관광지 중 한 곳은 단연 남쪽 끝 자락에 있는 제주도입니다. 섬이라고 하지만 인구 56만여 명에 자동차 23만여 대가 다니는 특별자치도입니다.

0:00 / 0:00

육지와 떨어져 있는 섬이라 한때 탈북자들이 많이 살지 않는 곳으로 알려졌지만, 최근에는 그 수가 꾸준히 늘어 120여 명의 탈북자가 살고 있습니다. 꿈은 이뤄진다. 오늘 소개하는 김영덕(가명) 씨는 가족과 함께 제주에 보금자리를 틀고 현재 제주지역 탈북자 회장을 맡고 있습니다.

진행에는 저 이진서입니다.

김영덕: 그 당에도 소망과 기쁨이 있겠지만 북한에서의 기쁨과 소망은 절대자인 김일성이나 김정일을 통해 얻는 것인데 자유대한민국에서는 기쁨과 소망이란 것이 내 자신으로부터 나오기 때문에 그것의 기쁨을 누리면서 살아갈 수 있는 사회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김영덕 씨가 남북한의 생활을 비교한 말입니다. 2004년 12월 제주도에 주택을 받은 김 씨는 줄곧 제주에서 아내와 아들 이렇게 세 식구가 살고 있습니다.

40대인 김 씨는 순복음 신학대학 3학년에 재학 중인 대학생이기도 합니다. 중국에서 한차례 공안에 붙잡혀 강제북송을 당했을 때도 그는 탈북자를 대상으로 기독교 복음을 전파하는 선교 사업을 했습니다. 김 씨가 최초 탈북한 것은 1998년입니다.

김영덕: 2월 16일 맞아 김정일 외화벌이 일을 친구와 하게 됐습니다. 김정일에 바치는 충성의 외화벌이 물품 가운데 금을 받치는 일이었습니다. 금 생산이 안 되니까 당 자금으로 금을 사야 했는데 속아서 가짜 금을 사고 말았습니다. 자금은 평성 보위부에서 나온 외화벌이 자금이었습니다.

고난의 행군 시절 모두가 살기 어려울 때 가족을 위해 친구와 함께 일을 도모했다가 당 자금 30만 원을 몽땅 날리고 말았습니다. 김 씨는 결국 당자금을 마련해 보자고 가진 재산은 모두 팔았고 당국에서 통제하는 금속품 장사는 물론 중국과 밀수까지 했지만 날린 돈을 마련할 길이 없었습니다. 결국, 가족과 탈북을 결심하고 북한 땅을 떠납니다.

김영덕: 하늘이 도왔습니다. 당시 작은아들이 4살이었고 아들, 아내와 함께 탈북을 했는데 평성에서 두만강 연선까지 들어오는데 친구들이 많이 도와줬습니다. 지금도 그렇지만 그 당시에도 부정부패가 심했습니다. 돈만 주면 기차 앞, 북한에서 말하는 기관차 대가리에 기관사와 함께 탈 수 있어서 기관사의 도움으로 변방까지 나올 수 있었습니다.

이제 남한 생활이 햇수로 5년. 한국 정부는 만 35세까지 대학에 다니고자 하는 탈북자에겐 등록금을 지원해 주지만 35세가 넘은 김 씨는 정부의 지원 없이 스스로 학비를 내면서 신학 공부를 하고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남한의 물가나 적잖게 드는 사교육비 정도를 고려한다면 늦은 나이에 남한에 정착한 탈북자가 대학 공부를 한다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닙니다.

그러나 김 씨는 경제적 어려움 보다는 한국 사회에서 겪는 문화적 충격과 서로 이해해 주지 못하는 안타까운 마음이 더 힘들다고 말합니다. 북한에서는 지도원이 시키는 일만 하면 되지만 자본주의 사회인 남한에선 맡은 일이 끝나면 동료를 도와 다른 일을 하거나 또는 창조적으로 일을 만들어 내야만 능력을 인정받게 됩니다. 이런 남한 사회를 이해하는 데는 시간이 걸렸고 그 이면에는 남북한의 서로 다른 언어 때문에 웃지 못할 일들도 있었습니다.

김영덕: 교회에서 점심 먹고 설거지를 하는데 북한에선 사발을 까신다고 말합니다. 고향 사람 왔는데 밥 먹고 눈치 보면서 일하기 싫어한다. 뭐 이런 얘기를 듣기 싫어서 내가 사발을 가시겠다고 자원을 했습니다. 그랬더니 사모님이 눈이 휘둥그레지면서 이상한 사람으로 보는 겁니다. 분위기가 이상한 겁니다. 내가 뭐 잘못됐는가 하니까 사모님 하는 말이 왜 그릇을 부시려고 합니까? 라고 하는 겁니다. 우리는 열심히 하려고 하는데 오해를 한 겁니다. 그래서 한참 웃은 적이 있었습니다.

김 씨는 신학 대학을 다니면서 선교단체 열방대학의 북한선교단 간사로 일하고 있습니다. 주로 하는 일은 제주도에 전입한 탈북자가 빨리 지역 사회에 적응할 수 있도록 먼저 정착한 탈북자로서 조언도 해주고 자신의 경험을 알려주는 일입니다. 그런 일을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제주지역 탈북자 회장이라는 직도 맡게 됐습니다.

김 씨는 가정일에도 충실 하려고 애쓰고 있습니다. 시간이 되면 이제 중학교에 다니는 아들과 고향에 대한 얘기도 자주 나누곤 합니다. 4살 때 고향을 떠나 아무런 기억이 없는 아들이지만 훗날 고향으로 가서 완전한 통일을 이루는 데 일꾼이 되어주길 바라는 아버지의 마음을 전하는 겁니다.

김영덕: 저의 아들은 순종적입니다. 얘길 하면 예 알았습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라고 하지만 통일이 언제 될까요 이런 말도 묻습니다. 제가 뉴스를 꼭 보니까 아들도 뉴스를 보면서 아빠 저렇게 북한은 김정운이 3대 세습하면서 후계자로 나선다는데 통일이 될까요 하면서 되물어 보는 대도 있습니다. 그때마다 전 우리 민족은 계속 분단국가로 살지 않고 언젠가는 반드시 통일된다. 통일을 위해 준비를 해야 하고 준비된 자만이 통일됐을 때 일을 할 수 있다고 얘길 합니다.

항상 아내에게 미안한 마음을 갖는 김 씨. 더 예쁜 옷도 사주고 싶고, 비싼 화장품도 마음껏 마련하라고 하고 싶지만, 생활이 그리 넉넉한 편이 아닙니다. 여자의 마음은 다 같을 것인데 그런 마음을 자상하게 헤아려 주지 못하는 점에 대해선 나중에 잘해줄게 라며 훗날을 기약합니다.

김영덕: 가끔 저의 아내가 그럽니다. 여보, 왜 우리도 힘든데 다른 사람들을 돕고 합니까? 우리도 우리만의 생활을 하자고 합니다. 지난주에도 제가 이번에 온 탈북자에게 부식물인 감자랑 쌀, 고등어를 사서 갔었거든요. 우리가 먼저 왔으니까 도와주고 그러면 보기도 좋고 하지 않겠는가 그럽니다. 그래서 될 수 있으면 여름휴가 때면 가족과 시간을 보내려고 하는데 쉽진 않습니다.

두만강을 건너야 했던 어려운 시절을 추억해 보면서 또 신앙인으로 기도를 통해 현재의 어려움을 극복해 나간다는 김 씨는 그 어떤 장애도 그리고 시련도 이겨낼 수 있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소망하는 사람은 그 답을 꼭 이룰 수 있다고 확신합니다.

김영덕: 꿈은 반드시 이뤄집니다. 그 꿈이 현실적이냐 허황한 꿈이냐에 따라 결과가 달라지는 겁니다. 현실적인 꿈을 꿀 땐 이뤄지지만 허황한 꿈 다시 말해서 북한 사람들이 꾸는 허황한 꿈 중의 하나가 자본주의 사회에 와서 한국 사람들이 50년 동안 이뤄놓은 것을 자기도 노력도 없이 바로 이루려는 것인데 자신의 꿈을 이루려고 하나하나 준비를 한다면 그 꿈은 반드시 이뤄진다고 생각합니다.

모든 사람이 한 번 때어난 이 땅에서 기쁨으로 충만한 삶을 살길 바란다는 김 씨. 가정에 충실하면서 제주도에 정착한 탈북자들이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도록 주변의 어려움도 살피면서 김영덕 씨는 오늘도 자신의 꿈을 만들어 가고 있습니다. 꿈은 이뤄진다. 오늘은 제주지역 탈북자 회장 김영덕 씨 편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