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에서 의과대학에 다녔거나 의사로 일했던 사람이 한국에 가서 의사나 약사, 또는 북한에서 동의사로 불리는 한의사가 된 사람은 현재 10이 조금 넘습니다. 탈북자 1만 6천여 명 중 10여 명이라면 결코 많은 수는 아니지만, 이들은 한국에 사는 탈북자들에게 성공한 고향사람으로 선망의 대상이 되고 있습니다.
'꿈은 이뤄진다' 이 시간에는 북한에서 청진 의과대학을 다니다 탈북해 한국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현재 자신의 한의원을 운영하는 정일경 씨를 소개합니다.
진행에는 저 이진서입니다.
정일경: 졸업하고 바로 2008년 1월 국가고시를 보고 개업을 했습니다.
정일경 씨는 한국에 들어가서는 북한에서 공부하던 양방이 아닌 한의과 대학에 입학해 6년 동안 공부한 끝에 한의사가 됐습니다. 한의과 대학을 다닌다고 모두 한의사 면허를 받게 되는 것은 아닙니다. 어떤 탈북자는 몇 번을 시험에 떨어지고 합격을 하기도 하지만 정 씨는 단 한 번에 합격해 바로 자신의 한의원을 열었습니다.
정 씨가 한의학을 공부한 것은 아버지의 영향이 컸습니다. 정 씨의 아버지는 북한에서는 이름난 동의사였고 자신도 한의학은 아니지만 양방의가 되고자 청진의대 5년을 다닌 의학도였습니다. 하지만 졸업을 앞두고 목숨을 건 선택을 할 수밖에 없는 처지가 됩니다.
정일경: 탈북은 1998년 시도를 하다가 국가 보위부에 체포돼서 한 6개월 구류장에 있었습니다. 그때 전 죽는 줄 알았습니다. 정치범이었기 때문에 나간다는 것은 기대할 수도 없었고 인생이 이렇게 끝나는구나 했습니다. 그런데 전혀 이해가 안 되는데 살아 나왔습니다. 그다음 해 재차 탈북을 시도해서 1999년 탈북에 성공했습니다. 그 뒤 중국에 가서 8개월 정도 있다가 한국에 들어왔습니다.
정 씨는 의사가 되고자 하는 꿈을 버릴 수 없었고 자기만 열심히 하면 실력으로 인정받을 수 있다는 것도 알게 됐습니다. 한의과 대학을 다니자고 한 것은 큰 고민 없이 내릴 수 있는 선택이었습니다. 학비까지 정부에서 지원을 해주는 데 마다할 이유가 없었던 것입니다. 물론 북한에서 하던 양방과는 방향이 좀 다르지만, 환자의 병을 치료하는 것은 같기에 한번 해볼 만하다는 자신도 있었습니다.
정일경: 제가 나왔던 2000년 당시엔 의사 공부를 해야 하는데 치대를 갈 생각은 없었고 의대나 한의대를 가려고 생각했는데 한의대가 문이 열려 있었습니다. 한의대는 외국인 특별전형이라고 해서 입학을 시켜줬습니다. 그 길이 있어서 한의학 공부를 시작했고 기초 공부인 영어나 한문은 북한도 다 가르칩니다. 일반 경제 상황이 어렵고 가정마다 당장 먹고 살기가 어려워서 아이들이 공부를 안 해서 그렇지 북쪽에서 제대로 공부를 했으면 남쪽에서도 공부하는데 별 어려움이 없다고 봅니다. 저의 경우는 그랬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성공한 탈북자를 말할 때 중국을 거쳐 와서 한의학을 하는 데 유리한 면이 있는 것 아니냐? 또는 중국말을 알기 때문에 한문을 기본으로 알아야 하는 한의학 공부가 쉬워 북한 출신 한의사가 많은 것 아닌가 하고 막연히 생각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정 씨는 현실을 알면 그런 생각을 하지 않을 거라고 말합니다.
정일경: 한문이라는 것이 중국에서 조금 살았다고 한의학 공부에 도움이 됐다고 보진 않습니다. 한의학하고 중국어는 다릅니다. 우리는 고문자를 쓰는데 중국은 문자 개혁을 해서 다른 체를 씁니다. 글자 자체도 다르고 한의과 6년 다니는 중에 중국어가 도움되는 일은 없었습니다.
정 씨는 대학에 들어가 정말 코피가 터지도록 공부를 했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대학생활 6년 동안 힘들었던 것은 학교 수업을 따라가는 공부가 아니었습니다. 한의대는 학교마다 차이는 있지만 보통 한해에 60-70명이 선발돼서 입학 때부터 졸업 때까지 그 학생들이 똑같은 강의실에서 모두 같은 수업을 받고 생활합니다. 다른 학과의 학생이 자신의 전공과목을 자율적으로 선택해 반을 옮겨 다니며 강의를 듣는 것과는 좀 다릅니다. 아침 9시에 수업을 시작하면 점심도 같이 먹고 수업이 끝나면 여가도 함께 보내는 일이 허다했습니다. 그러나 북한 출신의 정일경 씨는 한국 학생들과 처음 2년은 그런 분위기에 동화되지 못하고 물 위에 뜬 기름처럼 힘든 시절을 보내야 했습니다.
정일경: 함께 어울리는 것. 북한 말로 섞이는 것인데 사람들과 어울려서 교류하고 의사소통을 하고 감정 소통을 하는 것이 많이 어려웠습니다. 학교를 그만둘까 하는 생각도 했습니다. 친구도 없이 다니고 밥 먹을 때도 혼자였고 처음엔 결혼도 안 한 상태여서 힘들었습니다.
한고비를 넘기면 그다음부터는 쉬워진다고 시간이 지나면서 마음의 문은 조금씩 열렸고 학우들도 정 씨를 자연스럽게 받아주기 시작했습니다. 지금에 와서야 북한출신은 한국 사람보다 좀 각이 나있고 거친 면이 있다고 말하는 정 씨. 처음에는 자신의 자연스런 행동과 말에 대해 남한 사람이 왜 껄끄럽게 생각하는지 몰랐지만 이런 문제는 시간이 모두 해결해 줬습니다.
정 씨가 한의대에 대한 매력을 느낀 것 중의 또 하나는 의과대학을 졸업하면 인턴과 레지던트 등 일정한 수료의 과정을 꼭 거쳐야 하지만 한의대는 국가고시에 합격해 면허가 나오면 바로 다음날부터 개업할 수 있는 점이있습니다. 사회생활을 하지 않고 대학에서 공부한 시간은 한의사 국가고시에 합격하고 자신의 한의원을 개원해 보상받습니다.
정일경: 개업할 때 어려웠던 것이 목돈이 들어가는데 그것은 면허증이 있으면 은행에서 필요한 만큼 대출을 해줍니다. 3억 정도 대출받아서 돈 걱정은 없었는데 혼자 하다 보니 뭘 어떻게 해야 할지 절차상의 문제, 법 문제를 몰라서 힘들었습니다. 모든 것을 혼자 했어야했습니다. 아는 사람은 동기밖에 없는데 바로 학교를 나와서 나와 같은 처지라 도움을 받을 수 없었고 특히 이쪽 업계에서 물어볼 사람이 없어서 혼자 뛰어다니면서 알아보고 책을 뒤져봐야 하고 그런 것이 어려웠습니다. 공부하는 것보다 개업을 준비하는 기간이 더 어려웠습니다.
1월에 국가고시를 보고, 2월 한의사 면허가 발급돼서 3월부터 병원 자리를 보러 다니고는 6월에 자신의 한의원을 번듯하게 열었습니다. 정말 빈손 맨주먹으로 한국에서 이룬 쾌거라 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한국에서 같은 북한 출신의 여성과 결혼을 한 정일경 씨는 이제 경제적으로도 안정적인 생활을 하면서 인술을 펴고 있습니다. 그는 말합니다. 의술보다 인술이 앞서야 한다는 말도 있듯 환자의 처지에서 아픔을 느끼고 병을 보는 친절함을 제일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다고.
그는 또 요즘 한국에서는 젊은 여성들은 미용에 신경을 많이 쓰면서 흉터가 남는 뜸치료를 꺼리지만 아버지에게 배운 비법으로 특화한 뜸을 사용해 치료와 효능에 환자들에게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고 말합니다.
남들은 정일경 씨가 짧은 시간에 한국 정착에 성공할 수 있었던 특별한 비결이 무엇이었는지 묻습니다. 정 씨 자신도 가끔은 그런 질문을 스스로 해보지만, 진리는 먼 곳에 있어 보이지 않습니다.
정일경: 제가 한가지 꿈만 꿨고 그것이 이뤄졌습니다. 그 비결이 뭘까 저도 생각을 많이 합니다. 나만 이뤄지나 아니면 남들도 이 정도 하면 이뤄지는지 궁금합니다. 노력은 다하시고 하지만 실패하는 사람도 많고 성공하는 사람도 많은데 내가 성공한 경우라고 한다면 남보다 뭘 더 특별히 잘해서 이 자리에 왔을까 봤을 때 특별한 것이 없습니다. 운이 좋은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하고 네가 기독교인인데 하나님이 이끌어 주신 것이 아닌가 막연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꿈은 이뤄진다고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동의합니다. 내 꿈이 이뤄졌으니까요.
정일경 씨가 환자를 보는 시간은 아침 8시30분부터 오후 6시까지. 하지만, 한의원에는 노인 환자가 많고, 갑자기 발목 삔 환자, 아이가 탈이 났다고 급하게 오는 환자 등이 있어 자신을 찾는 환자를 다 볼 때까지 정 씨의 하루 일과는 이어집니다.
“꿈은 이뤄진다” 이 시간에는 북한출신으로 2008년 한국에서 동한의사가 된 정일경 씨의 이야기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