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은 이루어진다] “딸 대학공부 시킬 수 있어 행복해요”

워싱턴-이진서 leej@rfa.org

북한의 경제난과 인권탄압은 새로운 이산가족을 만들고 있습니다. 탈북여성 이명옥씨의 경우가 그렇습니다. 이명옥씨의 경우를 보면 북한 계급사회와 인권탄압, 경제난 등이 가족들에게 이산이라는 또 다른 고통의 씨앗이 된 것을 잘 알 수 있습니다. 이진서의 “꿈은 이뤄진다” 이 시간에는 지난해 말 북한을 떠나 먼저 탈북한 딸과 함께 남한에서 살고 있는 이산가족 탈북여성 이명옥씨의 이야기입니다.

지금 소개해 드릴 탈북여성은 먹고 사는 문제뿐만 아니라 자식의 장래 때문에 북한을 나와야했습니다. 이 탈북여성에게는 딸이 한명 있습니다. 그러나 북한에서는 딸이 아무리 공부를 잘해도 대학을 갈 수 없습니다.

평범한 노동자로 생활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고 이런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서 이 탈북여성은 목숨을 건 탈북을 감행했습니다. 이 탈북여성은 아직 북한에 다른 자녀들이 있기 때문에 이명옥이란 가명을 써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어머니로서 자식을 낳아서 이 세상에 내놓을 때 잘되길 바라지 잘못되길 바라는 부모가 어딨어요? 북한이나 남한이나 다 같습니다 부모들의 마음은...

딸과 헤어진 해는 지난 1999년, 이명옥씨는 딸을 데리고 북한을 탈출했지만 자신은 북한으로 되돌아갑니다.

공부 가르치고 싶어서 내가 얼마나 애를 썼다고요. 우리아이가 원래 공부 잘했어요. 그래서 대학갈 준비 다하고 있었는데 집안에 월남자가 있어서 대학에 못 갔죠. 그래서 3년 동안을 대학을 가자고 벼루다가 못가고 내가 너무나도 화가 나서 자식들 키워서 하나도 대학을 못 보내는 것 같아서 중국 삼촌의 집에 고난의 시절에 데리고 떠났죠.

그러나 이명옥씨는 딸이 너무 보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다시 딸을 만나기 위해 중국으로 북한을 탈출해 건너갔습니다. 그때가 지난해 말입니다.

이명옥씨가 북한을 다시 떠나던 지난해 말에도 북한의 식량사정은 여전히 힘들고 특히 노약자들은 자식들의 도움이 없으면 생활하기 힘들 지경이었다고 함경도 지방의 사정을 들려줍니다.

입쌀 한키로에 천200원 했어요. 달걀은 250원, 돼지고기는 2천700원 어쨌든 식량값이 오르면 달걀도 식량으로 먹이잖아요. 닭을 키워야 하니까 식량값이 오르면 고기값이나 달걀 값이 오릅니다. 기름은 콩에서 짜는 인조고기 기름은 좀 싸고 수입한 기름은 좀 비싸고... 수입산 기름은 3천500원 정도하고 곡산공장에서 만든 것은 3천600원 정도 인조고기 기름은 2천800원했어요. 그것이 함흥시 장마당 가격입니다. 함흥시에는 큰 것하고 작은 것하고 장마당이 한 8개있는데 금사 장마당 가격하고 사포 장마당 평수 장마당 가격이 거의 일치합니다.

중국에 있다고 믿고 있는 딸을 본다는 마음에 북한을 탈출하기 했지만 북한에 남겨진 다른 자식들이 혹시 고초를 당할지도 모른다는 걱정에 무서운 마음이 가슴을 짓눌렀다고 이명옥씨는 말합니다.

우선 마음적으로 힘들었어요. 내가 갔다가 다시 올려는지 이런 걱정도 했고 조선에 있는 아이들이 어떻게 될지 엄마가 갑자기 없어졌기 때문에 아이들이 대대손손 진짜 수용소로 갈지 어떻게 될지 모르니까 오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도 떠나지 못하거든요... 떠나온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 상상 못 할 겁니다. 우선 증명서가 걸리지 기차가 안다니지 돈이 엄청 많이 들지 않고는 온다는 생각을 못합니다. 난 딸이 보고 싶은 마음에 죽기를 각오하고 왔는데 한국까지 오게 됐어요.

이명옥씨가 어떻게 다시 북한을 빠져나올 수 있었고 중국에서 남한까지 오게 된 경로는 자세히 밝힐 수 없습니다. 다른 탈북자들이 경로가 밝혀지면 큰일을 당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이명옥씨는 지금 남한에 가있습니다. 남한에서 놀란 적인 한두번이 아닙니다. 우선 생활적인 것에서 북한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 편리함에 이명옥씨는 매일 신기한 경험을 하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와서 어리둥절했어요. 가스 틀 줄도 모르고 이런 세상도 있는가 했어요. 정말 사람살기 편리해요. 우선 집에 들어오면 더운물 쓰자면 더운물, 찬물 쓰자면 찬물, 목욕을 내 할 수 있고 화장실 집안에 다 있고 깨끗하다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뭐 행복하다고 말하기도 너무 벅차고...

이명옥씨의 딸은 현재 남한에서 외국어 대학교에 다니고 있습니다. 이명옥씨는 딸이 중국에서 생활하고 있는 줄 알았지만 남한에 들어가 있던 딸이 사람을 보내 북한에서 어머니를 남한으로 모셔가게 된겁니다.

북한에서 딸을 대학에 보내고자 그렇게 노력을 했지만 성사되지 않았는데 혼자 남한 땅에서 회사 생활을 하며 대학을 다니고 있는 딸을 보니 이명옥씨는 대견하기만 합니다. 그리고 딸이 마음 아파할까봐 소리 내서 말은 못하지만 밤이면 북에 있는 자식들 생각에 또 가슴이 아려집니다.

남한까지 올 거라고는 생각도 모르고 이렇게 세상이 좋은지도 모르고 남한가게 되면 다시는 너를 보지 못할 것 같고 그러니까 남한에는 가지 말라고 내가 말했거든요. 그런데 남한에서 소원성취 되니까는 ...소원이 다 이뤄졌는데 뭐 더 이상 바랄 것이 있겠어요. 한편으로는 북한에 있는 자식들 생각이 계속 하며 그 아이들도 데려왔으면 하는 생각이 들죠. 그리고 한편으로는 빨리 통일이 돼서 아이들 만나봐야지 그런 생각뿐이예요.

남한 사회에 대해서 너무 알고 싶은 것이 많아서 매일 책을 보고 신문을 읽고 텔레비전을 본다는 이명옥씨, 자식이 잘사는 부모를 골라서 태어나지 못하듯 어디서 태어나는가도 인간 마음대로 할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이명옥씨는 이제 남한에서 딸 대학공부에 따뜻한 쌀밥을 해먹이고 좋은 사람 찾아서 딸 시집도 보내야 한다며 또 다른 꿈을 꾸며 살고 있습니다. 언젠가는 북한에 살고 있는 가족들을 다시 볼 수 있다는 믿음도 북한에 가족을 남겨둔 채 남한 생활을 꾸려가는 이명옥씨의 활력소이기도합니다.

아들 생각하면 그렇지만 여기 현재 눈앞에 보이는 상황이야 좋죠. 좋은 아파트에서 불땔 걱정이 있나 차를 타고 고속도로를 타고 나서면 발전된 한국의 모습을 보면서 정말 여기 사람들이 어떻게 일을 많이 했을까도 생각을 하고 그런 것을 볼 때 난 아무것도 안하고 복을 누리는구나 하는 생각을 가져요. 그래서 나는 행복한거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