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한의 보금자리 - 북한 김정일 위원장 경호원 출신 이영국

매주 남한에 정착한 탈북자 삶의 이모저모를 알아보는 ‘남한의 보금자리’ 시간입니다. 오늘은 그 다섯 번째 순서로 10년간 북한 김정일 위원장의 밀착 경호를 맡았던 이영국 씨의 이야기 입니다. 이영국 씨는 지난 2000년 남한에 입국해 ‘나는 김정일 경호원이었다’는 책을 써서 남한과 일본에 출판해 화제가 되기도 했습니다. 담당에 이진서 기자입니다.

1962년 함경북도 무산에서 노동자의 외아들로 태어난 이영국 씨는 17세에 친위대로 선발돼서 10년 동안 모진 군사훈련과 경호원 훈련을 받으면서 국가와 인민에 대한 충성만을 생각했었다고 합니다. 그런 이 씨는 경호원을 그만 두고 10년 만기 제대를 한 뒤 고향으로 돌아가서 북한의 현실을 접하고는 자신이 살았던 세계가 허상이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말합니다.

이영국: 좋은 환경에서, 좋은 것을 보고, 잘 먹고 잘살았습니다. 그러다가 복무가 끝나고 고향에 도착해서 현실을 접하게 됐습니다. 국민들의 지상낙원이라던 세상이 겨우 죽이나 먹는 신세였습니다. 내가 제대 만기로 나왔는데 바깥에 나가면 생활수준이 절반은 될 것 이라고 생각을 했는데 백분지 일도 못되더라고요.

10년 동안 외부세계 소식을 몰랐는데 나와서 상당히 허탈감을 느꼈습니다. 10년 동안은 저도 졸리면 눈꺼풀에 성냥개비를 끼고 경호를 서고했는데 배신감도 들고 그런 과정에 사회를 바로 보고 중국으로 오가면서 자유세계에 가야 되겠다는 결심을 했습니다.

이영국 씨는 무산에서 당위원회 지도원으로 일하면서 당 간부들의 비리를 보게 됐고 북한 사회에 대한 환멸을 느끼던 중 연변 방송을 몰래 보면서 개방정책으로 자유로워진 중국이 너무 행복해 보였다고 합니다. 게다가 남한 라디오 방송을 우연히 접하게 된 이 씨는 어떻게든 북한의 실상을 세계에 알려야겠다고 마음을 굳히게 됩니다.

처음부터 단독으로 탈북을 하려고 했던 것은 아니었지만 사정이 여의치 않아 94년 혼자서 겨우 두만강을 건너 중국으로 갔지만 뜻을 이루지 못하고 강제 북송을 당하게 됩니다. 그리고 5년 뒤 정치범 수용소에서 기적적으로 살아나온 이 씨는 99년 다시 북한을 탈출 그 다음해 남한 땅을 밟았습니다.

이영국: 제가 간 것은 요덕이구요. 그곳보다 힘들었던 것은 남한의 안기부와 같은 국가안전보위부 예심국 지하에 들어가 있었습니다. 그때가 저의 인생에 있어서 제일 고달팠던 시절입니다. 거기 한 6개월 있었습니다. 북한에서 비행기를 보내서 제가 잡혀와 평양 순안 비행장에서 옮겨졌습니다. 내 몸에다 마취약도 놓고, 붕대로 몸을 감았던 것을 풀고 지하 1호 감방에다 넣었는데 세상에 그렇게 독한 것도 있구나 하는 것을 알았습니다.

요덕에서의 4년 6개월 보다 예심국에서의 6개월 동안이 너 힘들었다는 이영국 씨는 북한 당국이 강제 북송당한 사람들은 인간취급을 하지 않는다면서 당시의 기억 때문에 아직도 북한 체제에 대해서는 좋은 기억이 없다고 고백했습니다.

이영국: 사람이 죽는다고 생각하니까 허탈감보다도 나를 이곳에 잡아넣은 사람에 대한 원망이 많았습니다. 콧구멍에다 물을 퍼 넣고, 다리를 참나무 몽둥이로 두들겨서 사람이 앉아서 똥, 오줌을 막 싸게 하고, 이빨이 싹 부러지게 하고... 그래서 북한에 대한 인식이 좋지 않아요.

이영국 씨는 처음 남한에 도착해서는 북한에 있는 가족과 친척들을 걱정해 김정일 위원장의 경호원 출신이라는 사실을 숨겼지만 북한의 가족들이 강제 수용소로 끌려갔다는 소식을 접하고는 ‘나는 김정일 경호원이었다’라는 책을 쓰게 됐다고 합니다.

이영국: 남한에 와서 내 일기처럼 내가 살아온 자서전이나 같죠. 시작은 어린 시절부터, 학창 시절, 당 기관에서 일하던 시절, 요덕관리소 시절 순서로 썼습니다. 그 책에 잔인하게는 안 썼습니다. 일반 사람들에게 참고가 되고 북한 사람들에 대해 도움이 될까 해서 썼습니다. 이번에 재판이 나왔어요. 제목은 같고요. 한 3개월 전에 나왔습니다.

현재 이영국 씨는 남한에서 집안에서 내려오는 비법을 이용해 만든 천연 건강식품을 만들어 파는 개인 회사를 운영하고 사장이 되었습니다. 아직은 광고가 많이 되지 않아 고전하고 있지만 그의 목소리에는 하면 된다는 자신감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이영국: 사실 개인 사업이라는 것이 기침이나 가래가 많이 나오는 사람을 위해 만들었는데... 여러 번 실패를 했어요. 저는 다른 사람들처럼 방부제를 쓰지 않아서 인체에는 전혀 해가 없어요. 잘 되고 있었는데 경기가 죽어서 좀 힘듭니다. 하지만 앞으로 잘되겠죠.

남한입국 4년 9개월 그 동안 북한의 실상을 알리는 책도 쓰고, 개인 사업으로 남한의 삶도 이제는 안정감을 찾았지만 그래도 마음 한구석에는 언제나 쓸쓸한 마음을 지울 수는 없다고 합니다.

이영국: 아무래도 여기도 친구가 있어도 옛날 북한 친구와 다르고 ... 그렇게 볼 때는 독재의 세상이 아니면 고향에 가고 싶은 생각이 있죠. 내가 태어난 땅인데... 거기 가서 살아서 친구들도 만나고 싶은 생각이 있죠. 김정일 그 사람도 동족, 핏줄인데 자기 하나만 생각 하지 말고, 온 나라 백성을 자기가 쓰고, 먹고 하는 것의 백분의 일이라도 관심을 갖고 국민들에게 인간으로서의 삶을 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입니다.

남한에 정착한 탈북자 삶의 이모저모를 알아보는 ‘남한의 보금자리’ 오늘은 지난 2000년 남한에서 입국한 후 변비와 호흡기 질환에 좋은 건강보조식품 회사인 백룡을 운영하는 김정일 위원장의 경호원 출신 이영국 씨의 이야기였습니다.

이진서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