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주 남한에 정착한 탈북자 삶의 이모저모를 알아보는 ‘남한의 보금자리’ 시간입니다. 오늘은 지난 1994년 4월, 일가족 4명과 함께 남한에 입국한 여만철 씨 장남 금용씨 이야기입니다. 여금용 씨는 현재 한족 여성인 굴염경씨와 결혼해 중국 하북성 샹허현에 새 보금자리를 꾸몄습니다. 담당에 이진서 기자입니다.
여금용 씨는 올해 서른 살로 함흥에서 태어나 19살 탈북 때까지 고향을 떠난 적이 없다고 합니다. 당시 금용 씨는 19살로 인민군 입대를 앞두고 있었지만 그의 아버지 여만철 씨는 이미 남한행을 준비 중이었기 때문에 금용 씨의 몸이 안 좋다고 상부에 보고하고 1년간 집에서 놀게 했었다고 합니다. 여금용 씨는 지난 94년 남한에 입국했을 때 길거리에서도 자신을 알아보는 이가 있을 정도로 유명세를 톡톡히 치루는 등 몇 년은 정신없이 보냈다고 남한 입국 당시를 회상했습니다.
여금용: 텔레비나 신문, 방송에서 많이 기사가 나갔고, 성당, 교회 이북에서 먼저 넘어오신 분들에게 연락이 왔고... 김신조 씨를 교회에 가서 만났고요. 그리고 먼저 오신 분들 중에는 김만철 씨, 아직도 개인적으로 만나지는 못했는데 그분의 부인이 저희 집에 자주 오셨었습니다.
그는 당시 가장 당황스러웠던 것이 언어문제였었다고 합니다.
여금용: 지금 기억에 처음에는 한국 기자 분들하고 얘기를 하면 못 알아들은 것이 많았던 것 같아요.
이제 남한입국 10년을 돌아보면서 가장 큰 사건으로 기억에 남는 것이 학교생활에서 남한 학생들과 대학을 가기 위해 경쟁을 해야 하는 것이었다면서 아찔했던 순간을 고백했습니다.
여금용: 제가 고등학교를 저보다 두 살 아래인 동생들하고 같이 다녔는데 고3때 입시에 대한 압박감이 너무 컸고 그때 또 집에서 누나하고 싸웠었나? 그래서 수면제를 샀던 적이 있어요. 살기가 너무 싫더라고요. 너무 힘들어서... 지금 생각해 보면 아무것도 아닌데 친구하고 밤새도록 얘기를 하면서 고비를 넘겼던 것 같습니다.
지금은 당시 누나와 어떤 문제로 다퉜는지 생각도 잘 나질 않지만 형제들과의 사이가 나쁘지 않았다고 합니다.
여금용: 제가 고3때 게임에 빠졌어요. 삼국지 게임을 했던 것 같은데 집에 오면 아버지나 누나 몰래 컴퓨터 게임도 하다가 당시 대학생인 누나한테 공부 안한다고 소리를 듣고 크게 다퉜던 것 같습니다.
여금용 씨는 남한에서 대학생활을 하다가 중국으로 어학연수 갔을 때 만났던 자신의 과외 선생님과 결혼을 해서 현재 베이징 근교의 샹허라는 곳에서 행복하게 살고 있습니다. 만난 지 6개월 만에 정식으로 교제를 하자고 아내에게 말하고 결혼에까지 성공한 금용 씨는 국경을 뛰어넘은 사랑에 대해 남들은 어떻게 말할지 모르지만 자신은 별다른 의미를 부여하지는 않았습니다.
여금용: 음식이나 중국 사람들 만나 얘기 하면 못 느끼는데, 한국 사람들 하고 같이 있다 보면 국제결혼 했다는 것, 내가 중국 사람이랑 살고 있다는 것을 한국 사람을 만날 때만 느껴요. 저를 가르쳐 주던 선생이었잖아요. 처음에는 말을 배우다가 아무래도 만나는 시간이 처음에는 하루 한 시간씩 하기로 했었는데 어떤 땐 길어지고... 말을 배우면서 천천히 좋아졌다고 할까요.
그리고 무엇보다 지난해 딸을 낳고 이제 3식구가 된 것이 가장으로서 책임감을 느끼게 만들기도 하지만 그만큼 행복이 배가 되었다고 합니다.
여금용: 책임감이 무거워 졌다고 해야 하나... 옛날에 둘이 금방 한국에 들어갔을 때는 친구들 전화가 오면 쉽게 나가서 술 한 잔 먹고 그랬는데 애기가 생기고 나서는 안 되더라고요. 하루 종일 힘들었다가도 집에 들어와서 웃는 모습을 한번 보면 피곤이 싹 풀리는 것 같고요.
여금용 씨의 아내 굴염경 씨는 중국어로 자기는 여금용의 아내이고 이름은 취엔쵠이라면서 방송을 듣는 모든 분들께 새해 복 많이 받으라는 인사를 했습니다.
여금용 굴염경 씨 부부는 앞으로 중국에서 딸 지나와 함께 평범한 가정을 이루며 행복하게 살고 싶다는 소박한 희망을 갖고 있었습니다.
이진서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