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한의 보금자리 - 나에게 남한은 천국, 탈북여성 김영순

매주 남한에 정착한 탈북자 삶의 이모저모를 알아보는 ‘남한의 보금자리’ 시간입니다. 오늘은 탈북여성 김영순 씨의 이야기입니다. 올해 68세의 김 할머니는 북한에서 사람들과 얘기도중 예술학교 시절 알았던 김일성의 부인 성혜림에 대해 잠깐 입에 올린 것이 화근이 돼서 지난 70년 10월 요덕수용소에 끌려가 8년 동안 수용소 생활을 해야 했습니다. 김 할머니는 2003년 남한에 입국한 후 최근 스위스 제네바 인권회의와 영국 상원증원, 벨기에 유럽연합 위원회와 미국 상윈 등에서 북한의 실상을 증언한바 있습니다. 서울에서 이진서 기자가 김영순 할머니를 만났습니다.

전 세계적으로 북한인권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김영순 여사께서 생각하는 북한인권 어떤 것이 가장 시급 하다고 보십니까?

김영순: 우선 마음대로 북한 내에서라도 자유롭게 이동이 가능하게 만들어야 합니다. 왜 통행증을 제정하고 평양하고 국경연선, 분계선 지대는 승인번호가 있어야 가는가 하는 겁니다. 팔, 다리가 붙어 있어도 자기 마음대로 가는 곳이 하나도 없잖습니까? 북한은 신조화, 신격화로 인한 전 국민을 눈, 코, 귀, 입 다 막아 놨습니다. 손과 발을 전부 얽어 메어 놓은 하나의 철조망이 없는 감옥으로 되어 있는 나라입니다.

그것이 해결되지 않고서는 북한주민이 어떻게 살 수 있습니까. 평양에 가는 승인 번호도 바꾼 돈 십원을 내야 - 야매로 - 갈 수 있습니다. 그런 비리가 어디 있습니까?

북에 살고 있는 분들이 원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김: 제 생각은 인간은 세상에 태어날 때부터 누구나가 인간 본능적으로 자유와 행복을 위해서 태어나는 것만은 확실한 것 아닙니까? 그런데 북한 국민들은 자유와 행복이 어디 있습니까? 오직 김일성, 김정일 만이 자유와 행복을 나에게 줄 수 있단 말입니다. 그런 원리가 어디 있습니까? 내가 김일성, 김정일을 위해서 죽어도 행복하게 죽어야 하고 그를 위해서 목숨을 바쳐야 하고, 총, 포탄이 되어야 하고. 그것이 해결 돼야죠. 자유민주주의 체제가 이뤄져야 해요.

북한에서도 그렇게 생각했기에 탈북을 했습니까?

김: 그렇습니다. 아니 세상에 북한 여자들처럼 여자답지 못한 것이 어디 있습니까? 화장품을 마음대로 쓸 수가 있습니까, 반지, 귀걸이, 목걸이를 할 수가 있습니까? 무슨 여자가 그런 것이 있습니까? 세계의 여자들은 전부 누리고 있는 것을 북한 여자들만 왜 편리화를 신고 갈치자로 뛰어 다녀야 합니까? 배낭을 쥐고 식구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서 말입니다.

그런 남녀평등권 법령이 해결됐다는 나라가, 어쩌면 남존여비 사상이 그렇게 많습니까, 남자는 앉아서 전부 받아먹어야 되고 여자는 뛰어 다녀야 되고 세상에 그런 나라가 어디 있습니까?

가족들이 궁금한데요. 어떻게 다른 분들에게 자신 소개를 하는지요?

김: 남편은 1970년 7월 4일 영원히 나올 수 없는 곳으로 갔지만 죄명도 모르고 현재까지도 생사 여부를 모릅니다. 나는 70년 10월에 정치범 수용소에 가서 부모님은 영양실조로 죽고 - 이런 연좌제가 어디 있습니까? - 3세, 5세 8세, 10살짜리를 데리고, 70세가 넘는 부모님과 나 하나의 죄로 그런 곳엘 가는 것이 이 지구상에 어디 있습니까, 재판도 없이? 거기서 부모님은 굶어 죽고, 아들 하나는 학교 갔다가 다리 없는 곳을 건너다 물에 빠져 죽고, 세 식구를 죽이고 나왔습니다. 딸도 생계유지가 힘들어서 수용소에서 나와 남에게 줬습니다. 그 다음에 88년에는 아들 하나가 탈북하려다가 붙잡혀서 총살당했는데 이렇게 다섯 식구를 죽이고 보위부 감시 속에서 내가 무엇 때문에 살겠습니까?

남한에 온 것이 정확히 얼마나 됐습니까?

김: 1년 6개월 됐습니다. 전 많은 것을 느꼈습니다. 여기서 처음에 지하철을 탈 때 눈시울이 뜨거워졌습니다. 사회주의, 인간중심의 사회라는 북한에는 어디 장애인 좌석이 있고 노인석이 있습니까? 북한은 60년도에 장애인을 평양에서 전부 추방 시켰습니다.

그리고 “국민 여러분 죄송합니다” 어떤 공사장에 가니까 그런 말이 있더라고요. 저는 울었습니다. 국민여러분 죄송합니다가 북한에 어디 있습니까? 인민이 중심이라고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라는 호칭이 아까울 정도입니다. 여기는 고객중심으로 어느 사람을 보더라도 존중하지 않습니까? 북한은 계급에 따라서 야, 자 그러거든요. 또 경찰서에 가니까 편안한 사회, 치안하는 사회, 그런 술어가 어디 있습니까?

전 정말 대한민국에 와서 흙 한 삽도 안 뜨고, 아무것도 한일이 없습니다. 그러나 인간답게 살 수 있게 지옥으로부터 천국에 와서 더운물 찬물이 나오고, 정말 먹고 싶은 대로 먹고, 벗지 않고 사는 것만도 너무 고마운 겁니다. 항상 감사한 마음으로 살고 있습니다.

북한인권관련 행사에서 북한 실상을 알리는 일에 적극적인데 특별한 동기가 있다면 무엇입니까?

김: 이제 죽어도 대한민국에 와서 제가 행복한 생활을 해봤잖아요. 그래서 인권을 위해서 - 저는 북한에 친척이 하나도 없습니다. 북에 대고 돌아서 방구도 뀌고 싶지 않습니다 - 하지만 제가 세상을 좀 돌아보니까 북한 정권이 국민들을 너무 머저리로 만들고 있는 겁니다. 그것이 너무 가슴이 아픈 겁니다.

그들도 자유민주주의라는 그 여섯 글자가 해당이 되면 정말 활보하고 살 수 있는 사람들인데 왜 거지처럼 살아야 되고 강냉이밥을 먹고 살아야 되나 그겁니다. 그게 너무 가슴 아파서 저는 내 생애 여기서 사는 날까지 북한인권을 위해서 세계만방에 호소하고 죽고 싶은 겁니다. 그래서 그러는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