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주 남한에 정착한 탈북자 삶의 이모저모를 알아보는 ‘남한의 보금자리’ 시간입니다. 오늘은 탈북여성 최옥경 씨의 이야기입니다. 올해 33세의 최 씨는 북한에서 경리일을 하다가 업무사고의 책임을 피해 단독으로 중국으로 건너갔고 중국에서 4년을 숨어 살다가 지난해 남한에 입국해서 살고 있습니다. 꿈같은 남한생활이 좋지만 외로움은 정말 견디기 힘들다고 말하는 탈북여성 최옥경 씨를 서울에서 이진서 기자가 만났습니다.
최옥경씨는 어떻게 해서 북한을 떠나게 된 것인가요?
최옥경: 다른 사람들은 먹을 것 때문에 강을 건너고 했지만 저는 조금 산다는 집안에서 살았습니다. 남들이 죽 먹을 때 강냉이 밥 먹고 살았고. 아빠도 어느 정도 직위에 있었는데 98년도 제가 일하던 회사에서 돈이 잘못됐습니다. 제가 회계일을 했는데, 당시 북한 돈 38만원이 하룻밤 사이에 온데 간데 없어진 겁니다. 그래서 그 돈 때문에 사실은 강을 건넜죠.
실무책임자였군요.
최: 네, 책임은 두 사람이 지는 겁니다. 기지장하고 나하고요. 무산이란 곳에서 강을 건너겠다고 체류하고 있으면서 한달 보름을 있었는데 처음으로 거기서 5일 동안도 굶어 봤습니다.
중국에서의 생활은 어땠나요?
최: 중국에 건너갔을 때 남들처럼 붙들려서 팔려간다든지 그런 것은 몰랐습니다. 들어가 보니까 생각하고 너무 틀리더라고요. 그쪽에서는 탈북자 색출이 너무 심해서 어머니 친척분이 있는 흑룡강으로 갔습니다. 거기서 만 4년을 있었죠. 중국 생활이란 것이 여기 와보니까 같은 탈북자들끼리 얘기 할 때는 듣고 보니까 황홀한 것이 너무 많은데 저는 너무 피곤하게 살았어요.
인신매매 얘기를 하셨는데 경험을 하신 것은 아니구요?
최: 옆에서 많이 봤습니다. 조선족 촌에 북한 여자들이 팔려가지 않은 곳이 없습니다. 심지어 몽골까지 팔려갔을 겁니다. 실례로 친척(이모) 오빠가 장가를 가려고 했었는데 동네에 북한 여자가 왔다고 이모가 북한여자가 왔으니까 네가 한번 보라고 해서 갔습니다. 그때는 중국말로 하니까 못 알아들었는데 자기가 데리고 자는 여자라면서 암퇘지라고 하면서 끌고 다닌다고 하더라고요. 팔아먹는 그런 장소에서 그런 얘기를 하든 것에 너무 놀랐습니다. 그리고 한족하고 같이 살던 북한 여자가 맞아죽는 것도 제가 직접 봤습니다. 발가벗겨 놓고 때려죽이는 거요.
중국에서는 어떻게 생계를 유지했습니까?
최: 중국에는 쌀이 많아요. 싸기도 하고. 일단 동네에서 주는 것으로 먹고 살았죠. 장사는 붙들리니까 못하고요. 일단은 돈도 없고, 항상 신을 머리맡에다 놓고 자는데, 여기 온 북한 사람들이 심장이 아주 안 좋은 것이 경찰차 사이렌 소리에 하도 놀라서요.
남한에 왔을 때 어땠습니까? 새로운 세상이 기다리고 있던가요?
최: 국정원과 하나원을 통해서 나와서 집을 받았잖아요. 집에 왔는데 일단 그전에는 중국에서 살 때는 쫓겨 다니다보니까 외로움이란 것을 몰랐어요. 그런데 한국에 오니까 집도 받고 국적도 받고 하니까 두 다리가 펴지는 겁니다. 그다음에 외로움이 찾아오는 것이더라고요. 중국에서는 탈북자들이 가까이 있고 하니까 전화를 하고 조선족하고라도 술을 먹고 하는데 한국에 오니까 서로서로를 숨기고 사니까 서로 연계가 안 되는 겁니다. 그러니까 더 외롭고.
집에 도착하고 나서 더 외로웠단 말이군요.
최: 너무 외롭고 집이 왕왕 울리는 겁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중국에서는 집이 울렸었는지 안 울렸는지 기억이 안 납니다. 그때는 숨어 살아야 되고 하니까 그것까지 생각이 안 나는 겁니다. 말하자면 초인간적인 뭔가가 한국에 오니까 전부 풀어져서 기가 빠진다고 봐야 하나.
지금은 혼자 사십니까?
최: 혼자 있습니다. 강아지 똘이가 있는데 최근에 샀구요. 그래서 저는 집에 알콩달콩 많이 사놨습니다. 그전에는 북한 사람이 밥만 먹으면 되지 뭘 그리 사놓느냐 생각을 했는데, 집에 가니까 허전하고 집이 막 울리고 해서 생각을 바꾸게 됐습니다. 집은 나만의 보금자리잖아요. 집에 들어오면 아늑함을 느끼자 하고 남들이 웃을 진 몰라도 나만의 공간을 꾸몄어요. 소파도 사놓고 침대에서도 자보고 집에서 영화도 보고 해보자 해서 다 샀습니다.
돈이 있어야 사고 싶은 것을 살수 있을 텐데 무슨 일을 해보셨어요?
최: 제가 주유소에서 일했습니다. 여자라고 해서 식당에서만 일하란 법은 없잖아요? 나는 아직 가정도 못 가져 봤고, 아이도 못나봤고 해서 너무 억울해요. 나이는 33세인데 마음은 23살입니다. 주유소에서 일하는데 한국에서는 돈 단위가 너무 높아서 계산이 안 되는 겁니다. 그래서 욕도 많이 먹고. 나중에는 경리일을 했습니다. 한 1년 5개월을 했습니다. 그리고 꿈이 있어서 나왔습니다.
지금은 뭘 하세요?
최: 학원 다니면서 벽지 견본품 만드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생활비 정도는 벌고 있습니다.
앞으로 하고 싶은 일은 뭔가요?
최: 저는 하고 싶은 것이 많아요. 의사도 되고 싶고, 책도 쓰고 싶고, 사진도 찍고 싶고, 인터넷에 동영상도 올려주고 싶고. 그리고 나중에 홀아비라든가 짝이 찾아지겠죠.
남한 땅에서 사는 것이 행복합니까?
최: 행복해요. 진짜 행복해요. 우선 밥을 먹고 다릴 펴고 사니까. 그런데 외로움도 만만치 안 습니다. 한국 와서 죽고 싶은 적도 있었어요. 우리 집이 14층인데 그냥 떨어져 죽을까도 생각 했습니다. 왜냐하면 혼자니까 아무리 맛있는 밥도, 집도 - 솔잎도 따서 먹고, 사과밭에 습격해 들어갔던 추억이랑, 사회자체가 좋아서가 아니라 정말 그리움이 애달픈 마음은 경험하지 않은 사람은 모릅니다.
그렇게 외로우면서도 내가 사는 것은 나한테 엄마가 없었으면 나는 살지 못했어요. 내 책 제일 앞에 적어가지고 다니는 것은 ‘나에게 엄마라는 존재가 없었다면 벌써 죽었다’ 북에 있는 엄마를 행복하게 해줘야 한다는 생각에 저는 죽을 수가 없었어요. 전화통화를 하고, 엄마가 살아 있다는 말을 들으니까 살아야겠다, 돈을 푼푼히 모아서 돈을 엄마 손에 쥐어주고 싶다, 그래서 살아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