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한의 보금자리 - 가족의 행복이 가장소중해, 탈북자 김승철

남한에 정착한 탈북자 삶의 이모저모를 알아보는 ‘남한의 보금자리’ 시간입니다. 오늘은 스물아홉 번째 순서로 탈북자 김승철 씨의 이야기입니다. 김씨는 현재 남북한 통일문제를 연구하는 민간단체인 북한연구소에서 7년째 일하고 있습니다. 담당에 이진서 기자입니다.

남한생활 11년째인데 정확히 언제 입국을 한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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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철: 94년 5월 18일 한국에 왔으니까 이제 만 11년 1개월 되죠.

94년 당시는 남한입국 탈북자가 그리 많지 않았는데 어떻게 북한을 떠나서 남한까지 왔습니까?

김: 그때 남한에 입국한 탈북자가 한 40명 밖에는 안 됐었죠. 저는 북한에서 함흥에 살았는데 발전소 설계를 하다가 어린이 자전거 공장 노동자 1년 하면서 그때 러시아로 벌목을 하러 들어갔습니다. 그때는 북한에서 일반 사람들이 돈 벌러 가는 유일한 통로였으니까 돈 벌러 러시아를 갔습니다. 91년 10월 말에 러시아로 가서 거기서 한 1년 넘게 있었습니다. 그때 보니까 러시아가 아무리 망했다고 해도 상점에 쌀도 있고, 사탕도 있고 하니까, 그런 유혹에 여기서는 삶을 한번 능력껏 살아 보겠구나 해서 93년 1월에 탈출을 해서 중앙아시아 쪽으로 가서 또 한 1년 있다가 결국 한국으로 오게 됐죠.

11년을 남한에서 생활을 했는데 남북한을 비교를 해주실 수 있을까요?

김: 저의 아버지가 남한 출신이다 보니까 제가 북한에 있을 때는 대학시절, 또 사회에 나와서도 불만이 하나 있었는데 뭐냐면 실력으로 한번 해보자 그것이었습니다. 설계 사업소에 있을 때도 잘나가다가 콧대가 높아서 마지막에 자의반 타의반으로 쫓겨났는데 거기서는 기껏 잘해야 지도원이었겠지만 여기서는 자기가 원하는 것은 전부 할 수 있잖습니까? 북한에서는 희망이라는 것이 간부가 되서 좀 잘 살고, 다른 사람들한테 인정받고 하는 것이었지만 남한에서는 내가 바라는 것이 스스로 만족할 수 있는, 남한테 인정받아서 좋은 것이 아니라, 내가 생각하기에 나는 행복하다, 잘살고 있다는 만족감, 살아가는 희열감이 있습니다. 북한에서는 그런 것을 느낄 수 없겠죠.

서울에서는 무슨 일을 하고 계십니까?

김: 저는 북한연구소에 있습니다. 맨 처음에 얻었던 직장은 현대전자에서 무선전화기와 간단한 컴퓨터 기계 수리를 했었습니다. 그러다가 나와서 북한에 관해서 글을 쓰다가 어떤 분 소개로 97년에 북한연구소에 들어온 뒤 지금까지 쭉 있습니다.

북한연구소가 순수 민간단체죠?

김: 예, 정부기관은 아니고 민간단체입니다. 북한에 대해서, 남북한이 통일이 되면 어떻게 될 것이냐, 북한과 남한이 6.15공동선언이나 교류협력, 남북한 사람들이 서로 만나서 통일하면 어떻게 될지 이런 것들을 연구하는 곳인데 저는 북한에서 왔으니까 자료실 쪽을 관리하고 있습니다.

남한사람들하고 사회생활 하다보면 자연스럽게 경쟁을 하게 되기도 하는 데 힘들지는 않는지요?

김: 아직 여기 사람에 대하면 뒤떨어지죠. 제가 지금 45세인데 또래의 여기 사람들 보면 성공했다고 하는 사람들 보면 교수가 됐다거나 대기업 부장, 전무, 이 정도의 높은 지위까지 가있거든요. 저는 그렇게는 안돼 있지만 저도 나름대로 이쪽에서 인정을 받고 하니까 많이 부럽고 그런 것은 없습니다. 자유롭고 다른 사람 간섭받지 않고 그런 것이 좋습니다.

남한의 가족관계를 여쭤 봐도 되겠는지요?

김: 여기 와서 - 남자란 것이 혼자 살기가 어렵잖아요? - 제가 재혼을 했습니다. 그래서 남한 여자 하고 살고 있습니다.

자녀도 있고요?

김: 여기서 제가 낳은 자녀는 없고, 집사람의 아이가 있습니다.

가족관계는 남한사회에서 제일 첫째로 치는데 어떻게 가족의 행복을 꾸려 나가실 계획이신지요?

김: 특별한 것은 없습니다. 제가 북한에서 결혼하고 살다가 집이 없어서 참 힘들었거든요. 그래서 사실 집 살 돈을 벌자고 러시아를 갔다가 (남한에) 왔어요. 그쪽에 있을 때는 가족을 책임지지 못했잖아요. 그런데 여기서는 먹을 것 엄청 풍부하고 얼마나 좋습니까? 그런데 본인이 능력이 없어서 책임을 지지 못하면 안돼잖아요. 북한에서처럼 또 그런 결과를 반복하고 싶지 않습니다. 그래서 항상 책임감을 많이 느끼고, 가족들이 안정적으로 살아갈 수 있데 하는 그것이 저의 소망의 전부입니다.

이진서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