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공식 접촉이라도 자꾸해야 신뢰 생겨’

서울-박성우, 고영환 parks@rfa.org
2014.08.22
kimyangkun_parkjiwon-305.jpg 17일 오후 개성공단 종합지원센터 옆 북측 개성공단 총국사무소에서 박지원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 마중 나온 김양건 노동당 통일전선부장 겸 대남담당 비서와 악수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여러분 안녕하세요. ‘시사진단 한반도’ 시간입니다. 저는 진행을 맡은 박성우입니다. 김양건 통전부장이 과거 김대중 정부 시절 인사들과 개성에서 만나 박근혜 정부의 대북 정책을 비난했습니다. 오늘도 국가안보전략연구소의 고영환 수석연구위원과 함께합니다.

박성우: 위원님, 지난 한 주 잘 지내셨습니까?

고영환: 잘 보냈습니다.

박성우: 북측이 김대중 전 대통령 5주기를 맞이해 남측에 조화를 보내겠다고 했고, 그래서 지난 17일 양측이 개성공단에서 만났는데요. 양측의 대화 내용이 관심을 끌었습니다. 위원님께서는 어떻게 보셨습니까?

고영환: 북한은 최근 김대중 전 대통령의 사망 5주기를 맞으며 조화를 보내겠다고 하면서 한국의 새정치민주연합 박지원 의원 등을 개성에서 만나자고 제의하였고, 그래서 박지원 의원 등이 개성에 가서 김양건 비서를 만나고 돌아왔습니다. 박지원 의원 등을 만나 김대중 전 대통령의 묘소에 보내는 조화를 전달한 자리에서 김양건 비서는 남측을 향하여 수많은 불만을 쏟아 냈습니다. 김 비서는 ‘요새 남쪽에서 하는 소리가 반가운 것이 하나도 없다’고 말한 후에 ‘군사훈련을 하면서 왜 고위급 접촉을 하자고 하느냐’고도 하였고, 박근혜 대통령의 8.15 경축사에 대해서도 ‘자꾸 핵문제를 거론하며 어떠한 것을 하자고 하는데, 그 내용이 실현될 수 있겠느냐’는 등의 이야기를 했습니다.

박지원 의원이 ‘박근혜 정부는 이명박 정부와 다르다, 이런 호기를 김정은에게 보고해서 쉬운 것부터 풀어나가고 대화를 하지 않으면 기회가 없다, 뭔가 하려고 할 때 기회를 잡아야 한다’고 얘기를 하자 김양건 비서는 ‘(고위급 접촉을 하자는 남측의 제안을) 당중앙에 보고를 하였다’고 답변을 하기도 했습니다. 꽉 막혀 있는 남북관계를 풀려고 한국 정부는 최근 북한에 고위급 회담을 제의하였는데, 북한이 아직 대답하지 않고 있는 상태죠.

저는 이런 비공식적인 접촉이라도 자꾸 진행을 하고 서로 마주 앉아 대화를 나누면 오해가 풀리고, 오해가 풀리면 신뢰가 쌓인다고 생각합니다. 일각에서는 북한이 남남갈등을 조장하고 시간을 벌기 위해 이번 조화 전달 행사를 만들었다고 하는데, 저는 남북 고위급이라고 할 수 있는 사람들이 서로 만났다는데 의미를 두고 싶습니다.

박성우: 김양건과 관련해서 하나 더 여쭤보죠. 한동안 공식석상에 나타나질 않아서 신변에 이상이 생긴 것 아니냐는 추정이 나돌기도 했는데요. 이번에 개성에 나타난 걸 보면, 건강에 이상은 없는 것 같죠?

고영환: 그런 것 같습니다. 김 비서는 지난 4월 최고인민회의 13기 1차 회의 이후 최근까지 공개석상에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한국에서 김 비서의 신변에 관심을 가지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입니다. 첫째는 그가 대남 정책을 총괄하는 중요한 자리인 통일전선부장 겸 대남 담당 비서이기 때문입니다. 둘째로는 김양건 비서가 장성택 전 행정부장과 가까운 사이였기 때문입니다.

김양건 비서는 장성택 부장과 당 국제사업부 시절부터 같이 당 중앙위원회에서 일했고, 김양건이 장성택과 친하다는 것은 알만한 사람은 다 아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그가 공식석상에 나타나지 않으면서 혹시 이영호 전 총참모장이나 우동측 전 보위부 제1부부장, 리룡하 행정부 제1부부장처럼 장성택 일당으로 몰려 숙청되지 않았나 하는 우려를 하고 있었던 것이죠.

그러나 장성택을 치기 전에 백두산에서 김정은의 지휘 아래 진행됐던 이른바 ‘백두산 모임’에 김양건이 참석했고, 그때 김 비서가 장성택 부장의 비리를 보고하는데 앞장서면서 살아난 것 같다는 판단이 우세해졌습니다. 이번에 개성에서 박지원 의원을 만난 것을 보면 그의 정치적 생명에 이상이 생긴 것이 아니라 건강상의 이유로 치료를 받고 있었던 것 같다는 그간의 추정이 맞았던 거죠.

박성우: 김양건이 3개월간 사라진 이유에 대한 기사가 남측 언론에 보도되기도 했었는데요. 이건 어떻게 보셨나요?

고영환: 김양건 비서가 수개월 동안 공식 석상에 나오지 못한 이유에 대해서 한국의 중앙일보는 지난 해 말 김정은이 개장을 앞둔 마식령 스키장에 가서 주변에 있던 당과 군의 고위 간부들에게 스키를 타라고 했고, 김정은의 권유에 따라 고령의 나이인 김양건이 스키를 타다가 미끄러지면서 다리가 골절되는 중상을 입었기 때문이라고 보도했습니다.

해군에 가서는 10km 해상 전투수영을 하라고 해군 장령들에게 지시하여 장령들이 바다에서 거의 죽을뻔 하였다는 소식이 있고, 군 지휘관들은 자동소총 사격을 하고 천리 행군을 하였다고 하지요. 나이 많은 당.정.군의 간부들이 그야말로 진한 고생을 하고 있는 모양새입니다.

지난 20일 로동신문은 ‘간부들이 특혜를 바라지도 말고 겸손해야 한다’는 내용의 기사를 실어 주목을 받기도 했습니다. 이는 현재 북한 간부들 속에 특권 의식이 만연하고 거만하여 주민들을 깔보는 현상이 심각하다는 것을 반대로 증명해 주는 기사입니다. 김정은이 스키를 타라면 타고, 360도 돌아가는 놀이기구인 ‘회전매’도 타야하고, 행군도 해야하고, 전투수영도 하여야 하고, 특권 의식도 버리라고 하니 죽을 맛이겠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는 북한의 김일성 주석, 김정일 위원장도 없애지 못한 간부들의 특권의식과 교만함을 김정은 제1비서가 없앨 수 있을지 의문이 듭니다. 바로 그래서 수영도 시키고 행군도 시키는 극단적인 방법을 쓰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지도자부터 간부들부터 특권의식을 버리면 주민들의 생활이 좀 나아질 것이라는 생각도 함께 하게 됩니다.

박성우: 간부들 이야기 좀 더 해 보죠. 예전엔 간부들이 경제적으로도 잘 살았는데, 요즘은 꼭 그렇지는 않다는 뉴스가 있더라고요. 노동자가 월급을 더 많이 받기도 한다는 건데요. 북한 사회도 많이 바뀌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런 현상을 보시면서 위원님은 어떤 생각이 드시던가요?

고영환: 한 가지 명백하게 해둘 것이 있습니다. 평양의 고위급 당.정.군 간부들의 생활 수준은 웬만한 자본주의 나라들의 부자 뺨치게 잘산다는 점입니다. 지금 박성우 기자께서 말하는 간부들은 지방의 초급 간부들입니다.

북한에서는 기간경제가 무너지면서 몇 개의 중요한 공장들, 군수 공장들을 빼놓고 지방에서는 거의 자체로 공장을 돌리고 있습니다. 북한식 표현대로 하면 기업의 ‘독자경영’ 체제인데, 중앙이 대주지 못하니 지방이, 지방공장들이 알아서 자재 공급부터 판매, 보수 지급까지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자발적으로, 독자적으로 돌아가는 공장들이 중앙의 큰 공장들보다 더 잘 돌아가고 있다는 것이죠. 예를 들어, 혜산광산 같은 곳에서는 노동자들이 평균 30만원 정도의 북한 돈을 받는다는 것이고, 그 지역에서 일하는 지방 당 간부들은 3-4천원의 월급을 받고 있으니, 소득 차이가 백배 이상 나는 것입니다.

물론 당 간부들이나 보안 간부들이 자기네 월급으로만 살지는 않을 것이고, 그래서 뇌물이 오고갈 것인데, 그런 것을 제쳐 놓고라도 이제는 시장경제가 우월성을 발휘한다는 게 100퍼센트 증명된 것입니다. 북한 인민들은 ‘고난의 행군’ 이전에는 자본주의를 경멸하였는데, 이제는 돈에 의해 돌아가는 자본주의가 은을 내고 있으니 정말로 북한이 조금씩 변해가는 것은 사실인 것 같습니다.

박성우: 마지막으로 이 소식도 전해드립니다. 김정은을 풍자하는 사진이나 동영상이 중국에서 계속 인기를 끌고 있는데요. 왜 이런 현상이 지속된다고 보시나요?

고영환: 최근 중국의 인터넷에서는 김정은을 풍자하는 사진이나 동영상들이 차고 넘치고 있습니다. 예로 최근에는 김정은이 윤활유 공장을 참관한 사진을 풍자적으로 묘사하였는데, 기계 위에 북한 사람들을 세워놓고 기름을 짜는 모습을 보며 김정은이 기뻐하는 모습이 나옵니다. 말하자면 김정은이 북한 인민들의 고혈을 짜내면서 좋아한다는 의미입니다.

이 외에도 김정은이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나 아베 일본 총리와 유도, 즉 유술을 하다가 맞고 넘어지고 하는 동영상을 포함해 수많은 김정은 풍자 동영상들이 인터넷에 떠돌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중국 사람들이 인민의 고혈을 짜내 착복하는 중국의 몰상식한 고위 관리들과 김정은이 비슷하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데서 이런 것들이 대유행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박성우: 요즘 북한 사회를 들여다보면 희극 영화 같은 일들이 좀 많이 벌어지는 것 같습니다. 나이 많은 간부들에게 ‘회전매’를 타라고 시킨다든지, 스키를 타라고 권유한다든지, 이런 일이 대표적인 예가 되겠지요. 중국 사람들이 김정은 제1비서를 희화하는 이유 중에는 이런 희극 영화 같은 북한의 현실도 포함된 게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듭니다. 지금까지 국가안보전략연구소의 고영환 수석연구위원과 함께했습니다. 위원님, 오늘도 감사드리고요. 다음 주에 다시 뵙겠습니다.

고영환: 감사합니다.

댓글 달기

아래 양식으로 댓글을 작성해 주십시오. Comments are modera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