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여러분 안녕하세요. '시사진단 한반도' 시간입니다. 저는 진행을 맡은 박성우입니다. 김정은 제1비서의 생일이 조용히 지나갔습니다. 오늘도 국가안보전략연구소의 고영환 수석연구위원과 함께합니다.
박성우: 위원님, 지난 한 주 잘 지내셨습니까?
고영환: 잘 지냈습니다.
박성우: 김정은의 생일이 별다른 행사 없이 지나갔습니다. 그 이유는 뭐라고 보면 될까요?
고영환: 말씀하신대로 김정은의 생일이 큰 행사가 없이 지나갔습니다. 어린이들에게 당과류를 선물로 주는 정도로 끝이 났는데요. 이는 어느 정도 예견되어 있었습니다. 달력에 1월 8일이 공휴일 표시도 되어있지 않았고, 개성공단 근로자들에 대한 공휴일도 북측이 요구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김정은이 자신의 생일을 크게 쇠지 않은 것은 부친 김정일의 3년상도 지나지 않았고, 인민들의 생활도 나아진 것이 없고, 아직 권력기반도 확실하게 자리잡지 못한 탓이라고 봅니다. 특히 나이도 젊은 사람이 벌써부터 자신의 생일을 크게 경축하는데 부담을 느낀 결과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박성우: 김정은이 지난달에는 ‘국제김정일상’이라는 걸 만들었지요. 이건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고영환: 그 질문에 답하기에 앞서서, 우선 김정은의 우상화가 도를 넘고 있는데 대해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지난 7일 로동신문은 김정은 제1비서가 고난의 행군 시절 “풋 강냉이 한 이삭으로 끼니를 에울 때도 있었으며, 거의 매일 줴기밥과 죽으로 끼니를 에웠다”, 그리고 “나는 고난의 행군 전 기간 인민과 함께 있었고 인민들이 하는 고생을 같이 겪었다”는 발언을 소개해 눈길을 끌었습니다.
김정은의 보호자로 스위스에서 오랜 시절 대사를 지낸 이수용 당중앙위원회 부부장이 쓴 이른바 ‘덕성실기’에 의하면, 김정은은 6세 때 차를 몰았는데 차를 모는 기술이 어른을 능가하여 보는 사람들이 혀를 두를 정도였다고 합니다. 그런데 김정은은 1984년생이니 6세 때라면 1990년이고, 이때 이수용 부부장이 스위스 주재 대사였으니 김정은은 그 당시 스위스에서 유년시절을 보냈다는 의미입니다. 스위스 공식기록에 의하면 김정은은 1990년대 대부분을 스위스에서 보냈습니다. 김정은 제1비서는 1998년부터 2000년까지 스위스 베른의 공립학교와 국제학교를 다녔다는 공식기록도 있다고 스위스 신문 ‘르 마탱’이 밝힌 바 있지요.
김정은이 어린 시절의 대부분, 특히 ‘고난의 행군’ 시기를 스위스에서 보냈는데, 어떻게 김정일 위원장과 함께 그리고 ‘고난의 행군’ 시기를 인민들과 함께 했다는 말인지 이해가 안 됩니다. 북한에서 살지 않았는데 어떻게 장군님과 같이 전선길을 다니고 줴기밥과 죽을 먹을 수 있단 말입니까? 또 김정은이 여섯 살 때 승용차를 몰았다고 하는데, 어느 부모가 어린이에게 운전대를 맡겨 위험한 차를 운전하게 하겠습니까? 구석구석 이상한 점들이 많습니다.
더구나 북한은 지난해 12월 ‘김정일 국제상’을 만들었습니다. 북한은 이 상을 세계의 평화 위업, 인류문화 발전에 특출한 기여를 한 인사들에게 수여한다고 하는데, 누가 김정일 위원장이 세계 평화에 이바지하고 인류발전에 기여하였다고 인정을 하는지, 그리고 세계에서 유명하다는 사람들 중 그 누가 이 상을 받겠다고 하겠는지 모르겠습니다. 북한이 이런 상을 제정한 것은 외국을 겨냥하였다기보다는 북한 주민들에게 김정일 위원장이 그렇게 이른바 “위대하였다”는 것을 우상화 차원에서 선전하기 위해서라고 봅니다.
박성우: 김정은의 행보와 관련해서 하나 더 살펴보지요. 귀화한 일본 여성에게 김정은이 최근에 친필 답장을 보낸 게 눈길을 끌었는데요. 이건 어떻게 해석하셨습니까?
고영환: 지난해 12월 30일 로동신문에 의하면 함경남도 영광군에서 살고 있는 림경심이라는 재일동포여성, 그러니까 정확히 말하면 조선사람과 결혼한 일본인 여성으로서 귀국한 사람이 김정은 제 1비서에게 편지를 보냈고, 김정은이 이에 답장을 하였다고 합니다. 림경심은 그 편지에서 자신의 자식들을 노동당에 입당시켜 준 것에 감사를 표하였으며, 자신이 일본인이라는 사실을 저주하기도 하였는데 김정은이 자신과 같이 허물이 많은 사람도 사랑해주시는데 크게 감동을 받았다는 등의 내용을 썼습니다. 이에 대해 김정은은 “우리 당은 가슴에 아픈 상처들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을 더 깊이 품어주고 있다”는 내용의 친필답장을 보냈습니다.
이 여성이 말한 것처럼, 귀국한 재일 동포들, 그리고 배우자들을 따라 일본을 떠나 북한에 정착한 일본인들은 북한에서 ‘2등 국민’ 대우를 받았습니다. 입당도 못하고 군대에도 나가지 못하고 공무원도 되지 못하는 등 온갖 차별을 받아왔습니다. 그런데 이런 사람들을 김정은이 입당시켜 주고, 심지어 그런 사람들에게 친필로 답장까지 해 주고, 더 나아가 이를 노동신문을 통해 온 세상에 알린다는 것은 김정일 시대에는 상상도 못할 일이었습니다.
이는 김정은의 어머니 고영희와 연관되어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김정은이 친어머니 고영희를 그토록 사랑하고 못 잊어 한다는 것은 온 세상에 다 아는 사실입니다. 다들 아시다시피 고영희는 일본 오사카에서 태어나 북한으로 귀국한 재일교포입니다. 고영희를 김정숙처럼 우상화하기 위해서는 기초 작업을 하여야 하며, 이를 위해서는 재일동포들에 대한 북한사회의 차가운 시각을 교정하여야 합니다. 김정은 제 1비서는 림경심이라는 일본에서 귀국한 여성에 대한 사랑 표시를 함으로써 귀국동포인 어머니 고영희에 대한 우상화, 신격화 작업의 기반을 닦고 있다고 보면 될 것 같습니다.
박성우: 그러고 보니 김정은은 자신에 대한 우상화도 이미 진행하고 있고요. 또 김정일을 포함해서 이른바 ‘만경대 가문’과 관련된 사람들에 대해선 모두 우상화를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유독 고영희에 대해서는 아직까지 아무런 이야기도 하지 않고 있는데요. 위원님께서는 고영희에 대한 우상화 준비 작업이 아직 덜 끝난 걸로 생각하고 계시는 거군요?
고영환: 김정은은 조모 김정숙에 대한 우상화를 하고 있고, 부인 리설주를 대대적으로 공개했습니다. 그런데 김정은 1비서가 가장 사랑하고 존경하였다는 친어머니 고영희에 대해서는 별다른 우상화 작업을 하지 않고 있어 많은 사람들이 궁금해 하고 있습니다. 북한 중앙텔레비전 등에서는 고영희라는 이름을 절대로 언급하지 않고 이따금 ‘평양 어머니’라는 호칭을 쓸 뿐입니다. “현지지도의 길에서 돌아오지 않는 장군님을 어머님과 함께 밤새도록 기다린 적이 있다”는 김정은의 발언을 북측 매체가 소개한 적도 있지만, 여기에도 고영희의 이름은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한번 본적도 없는 조모 김정숙을 그토록 찬양하고 젊은 부인을 그토록 내세우면서도, 정작 가장 못 잊어 하는 어머니 고영희에 대한 우상화 작업을 하지 못하는 가장 직접적인 이유는 고영희가 재일교포 출신이고 만수대예술단 무용배우였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앞에서도 잠시 언급했지만, 북한 사람들은 재일교포를 ‘째포’라고 부르며 수십년째 멸시하고 있는데, 지도자의 어머니가 귀국동포 출신이라면 사람들이 많이 놀랄 것입니다. 고영희란 이름조차 공개하지 못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봅니다.
그러나 김정은의 어머니에 대한 사랑이 각별하기 때문에 북한은 고영희에 대한 우상화 준비를 더욱 철저하게 할 것이며, 김정은의 권력기반이 확고해진 뒤에 좀 더 세밀한 작업을 거쳐 고영희 우상화의 결과물을 텔레비전을 통해 공개할 것으로 전망합니다.
박성우: 위원님이 북한에 계실 땐 김씨 가문 우상화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셨습니까? 그리고 지금은 어떠십니까?
고영환: 저는 북한에서 자라고 공부할 때는 김일성 주석이 하느님보다 더 위대한 줄 알았습니다. 그렇게 교육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외교관이 된 후 김일성 주석 가까이에서 불어 통역을 하며, 그리고 김 주석이 식사하는 모습 등을 보면서 ‘아, 김주석도 인간이구나’ 하는 것을 느꼈습니다. 특히 김정일 위원장을 위한 외교행사를 하고, 외화를 벌어 ‘정성금’으로 바치고, 김정일 위원장이 쓰고 먹는 이른바 ‘아미산’ 물자, 즉 세상에서 가장 맛있고 비싼 것들을 비행기로 공수하여 저택에 들여보내는 것을 보면서 사회주의 국가의 지도자가 저래도 되는 것인지에 대해 많이 회의를 느꼈습니다. 저 뿐만 아니라 지금 북한에 있는 많은 외교관 동료들도 그렇게 생각했거든요.
지금은 세계에서 북한처럼 우상화를 심하게 하는 나라가 없다는 생각을 새삼 깊이 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추위에 떨며 굶고 있는데, 만수대 언덕에 김정일 동상을 하나 세우기 위해 1천만 달러를 썼다니 기가 막힙니다. 언제나 되어야 북한이 이런 우상화 작업을 그만두고 민생에 신경을 쓸까, 이런 생각을 하면 참으로 답답합니다.
박성우: 그렇습니다. 북한 정권이 우상화가 아니라 민생에 신경쓰는 모습을 저도 하루빨리 보고 싶습니다. 지금까지 국가안보전략연구소의 고영환 수석연구위원과 함께했습니다. 위원님, 오늘도 감사드리고요. 다음주에 다시 뵙겠습니다.
고영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