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 안녕하세요. ‘시사진단 한반도’ 시간입니다. 저는 진행을 맡은 박성우입니다. 북한과 러시아의 외무상이 회동했습니다. 김정은의 모스크바 방문 문제를 논의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오늘도 국가안보전략연구원의 고영환 수석연구위원과 함께합니다.
박성우: 위원님, 지난 한 주 잘 지내셨습니까?
고영환: 잘 보냈습니다.
박성우: 요즘 북한과 러시아의 고위급 외교 관료들이 부쩍 자주 만나는 것 같은데요. 아마도 김정은 제1비서가 오는 5월에 모스크바를 방문하는 문제를 놓고 의제와 회담 형식 등을 정하는 논의가 진행된 것 아니냐는 추정이 있습니다. 위원님은 어떻게 보시는지요?
고영환: 러시아 외무부는 지난 13일 리수용 북한 외무상과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이 모스크바에서 만나 회담했다고 밝혔습니다. 러시아 외무부는 이날 발표한 언론 보도문을 통해 “라브로프 장관이 모스크바에 들른 리수용 외무상과 만났다”며 “양자관계 발전, 한반도 및 동북아 지역 정세, 상호 관심사가 되는 국제 문제 등이 논의됐다”고 전했습니다.
리수용 외무상은 3월 8일부터 나흘간 벨라루스 방문을 마친 후 모스크바를 방문하였죠. 지난 12일 모스크바에 도착한 리 외무상은 푸틴 대통령은 만나지 못하고 라브로프 외무장관만 만난 후 러시아를 떠나 지난 16일 쿠바에 도착하였습니다. 리수용이 외무상으로 된 후 뉴욕과 제네바, 모스크바와 아바나 등 여러 곳을 방문하며 부지런히 외교활동을 전개하고 있는 것으로 평가됩니다. 단 아직도 베이징은 방문하지 못하고 있죠.
리수용 외무상이 모스크바를 방문하여 라브로프 외무장관을 만난 것을 두고 외교가에서는 그가 러시아 측과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의 러시아 방문 문제를 논의한 것 아니냐는 관측을 하고 있습니다. 이에 앞서 크렘린 궁은 지난 1월 이미 김정은 제1위원장이 5월 러시아의 모스크바에서 열리는 제2차 세계대전 승리 70주년 기념행사에 참석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는 김정은이 오는 5월에 러시아를 방문할 가능성이 반반이라고 생각합니다. 모스크바 행사에는 수많은 외국의 취재진, 대표단, 관광객들이 몰리고, 그래서 혼잡한 상황이 연출될 것이 분명합니다. 많은 사람들, 별의별 사람들이 다 모이기 때문에 김정은의 신변안전을 최고의 과제로 여기는 북한의 최고위급 간부들과 호위사령부 등이 그의 방러를 만류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둘째로 중국을 먼저 방문하지 않고 러시아에 김정은이 갈 경우 가뜩이나 김정은을 좋게 보지 않고 있는 중국 지도부가 김정은에 대하여 더 좋지 않게 생각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돌출행동을 많이 하는 김정은이 모스크바에 가겠다고 할 경우 그 누가 김정은을 막을 수 있겠습니까? 특히 중국을 좋지 않게 생각하고 있는 김정은이 중국을 자극하기 위해서라도 모스크바에 갈 가능성은 여전히 존재한다고 생각합니다.
박성우: 김정은이 모스크바를 방문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건 뭐라고 보면 되나요?
고영환: 올해 5월 9일 러시아에서 열리는 대독전승기념일 행사에 김정은이 참석할 것인지에 세계의 관심이 쏠려 있습니다. 집권 4년차이지만 김정은은 아직도 베이징도, 모스크바도 방문하지 못했기 때문에 그의 첫 외국 방문지가 어디로 될지에 관심을 보이는 것이죠. 만일 그가 오는 5월에 모스크바에 간다면 이는 그의 첫 해외 방문지로 될 것입니다. 핵무기를 발전시키려 하면서 한반도와 동북아시아 정세를 극도로 긴장시키고 있는 그가 모스크바에 간다면 이는 여러가지 의미를 내포하게 될 것입니다.
첫 번째 의미는 집권 4년차가 되도록 베이징의 초청을 받지 못한 상태에서 그의 러시아 방문은 중국을 흔들고 자극할 수 있는 요긴한 외교적 카드가 될 수 있다는 점입니다. 핵실험과 장성택 처형 등으로 현재 북한은 중국과 냉랭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때 그가 러시아를 방문하게 된다면 이는 중국을 자극할 것입니다. 그러나 중국은 1970년대 중국이 아닙니다. 미국과 함께 세계를 흔드는 2대 강국입니다. 러시아를 통해 중국을 자극하려 하다가 중국을 영영 잃을 수도 있다는 뜻입니다.
두 번째 의미는 조부 김일성이 써왔던 전통적인 중소 등거리 외교를 재현하여 국가적 이익을 최대화한다는 전략을 쓰려 한다는 점입니다. 제가 북한에서 외교관을 해서 북한의 등거리 외교를 잘 아는데요. 김일성은 중국이 원조를 줄이면 구소련에 가 붙었고, 구소련이 마음에 안 드는 외교를 하면 중국에 가 붙는 식의 전통적인 양다리 외교를 펼쳤습니다. 김정은이 할아버지 김일성의 외교를 그대로 답습하려 한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나 중국도, 러시아도 이전의 중국, 이전의 구소련이 아니기 때문에 위험이 뒤따를 수 있습니다. 즉 러시아도 중국도 다 잃을 수 있다는 약점이 있는 거죠.
김정은은 중국보다 러시아를 먼저 방문함으로써 단기간에는 러시아의 원조를 조금 받아내고 북한 주민들에게 이른바 ‘외교의 천재’라고 선전할 수 있겠으나, 전통적인 우방국가들을 잃을 수 있다는 위험성을 가지고 있다는 뜻입니다.
박성우: 모스크바에서 남북 정상회담이 이뤄질 가능성은 점점 낮아지고 있다는 지적이 있는데요. 위원님은 동의하시는지요?
고영환: 오는 5월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열리는 제2차 세계대전 승전 70주년 기념행사에 미국, 독일, 영국 등 서방 정상들이 잇따라 불참 의사를 밝히고 있습니다. 지난 12일 영국 정부 대변인은 데이비드 캐머런 총리가 올해 5월 9일 러시아 승전 기념행사에 참석하지 않을 계획임을 밝혔습니다. 영국 정부는 “러시아와의 토론, 러시아의 행동에 대한 우려라는 맥락에서 이 문제를 검토할 것”이라며 “현재 계획으로는 총리가 행사에 참석할 것으로 생각지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메르켈 독일 총리도 동 행사에 불참 의사를 확인했습니다. 독일 주간지 디자이트는 “총리가 오랫동안 고민하다 며칠 전 모스크바 기념행사에 불참하기로 결정했다”며 “결정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사태 개입과 연관된 것”이라고 전했습니다. 오바마 미국 대통령도 벤 로즈 백악관 국가안보회의 부보좌관을 통해 모스크바 전승기념일 행사에 불참 의사를 이미 밝힌 바 있습니다. 러시아는 현재 우크라이나 문제, 크림반도 문제로 국제사회와 갈등을 빚고 있습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개입에 반대해 온 한국 정부도 미국 등 주요 서방국가 정상과 다른 입장을 취할 가능성은 낮아 보입니다. 따라서 박근혜 대통령의 모스크바 방문도 어려울 것으로 보이나 한국 정부는 공식적으론 여전히 “아직 아무것도 결정된 게 없다”는 입장입니다. 결과적으로 오는 5월 모스크바 대독전승기념일 행사를 매개로 박근혜 한국 대통령과 김정은 노동당 제1비서가 조우해 러시아 현지에서 남북 정상회담을 가질 수 있는 가능성은 낮아지고 있다고 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푸틴-김정은 정상회담 가능성은 있지만, 한국의 박근혜 대통령과 김정은 사이의 모스크바 정상회담 가능성은 매우 낮다고 판단합니다.
박성우: 그렇다면 모스크바에서 북중 정상회담이 이뤄질 가능성은 어떻게 전망하십니까?
고영환: 오는 5월 9일 제2차 세계대전 승전 70주년 기념 모스크바 행사에 시진핑 중국 주석과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참석을 통보한 것으로 전해지면서 북중 정상회담 성사 여부에도 세간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습니다.
지난 17일 러시아 신문 이즈베스티야에 따르면, 러시아 외무부 관계자는 “지난 1월 말까지 확인된 기념행사 참석 지도자가 20여명이었으나 이달초 30명 이상으로 늘었다”면서 특히 시 주석과 김 제1위원장 등이 참석한다고 확인하였습니다. 이론적으로는 오는 5월 시진핑 주석과 김정은 제1위원장 사이의 정상회담 가능성은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김정은이 복잡한 모스크바에 실제로 갈지, 가서도 푸틴과 만날지, 시진핑 주석과 만날지, 이 모든 것이 아직은 불투명하다고 생각합니다.
박성우: 북중관계도 좀 살펴보죠. 북중 양국이 평양 주재 중국대사를 바꾸는 절차를 밟고 있는데요. 위원님의 관전평을 전해주시죠.
고영환: 중국이 지난 17일 리진쥔 중국 공산당 대외연락부 부부장을 북한 주재 신임 중국 대사로 내정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1956년생인 리진쥔은 상하이외국어학원 독일어과를 졸업하고 독일 유학을 거친 유학파입니다. 리진쥔의 임명으로 중국은 부상급 이상의 고위 간부를 북한 대사로 파견하는 전통을 지속하고 있습니다. 한국에 외무성 국장급 인사를 대사로 보내는 것에 비교하면 중국이 북한을 예우하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그런데 주목되는 점은 북한이 5년 만에 이뤄진 평양 주재 중국 대사의 교체 사실에 대해 입을 다물고 있다는 점입니다. 알렉산드르 티모닌 전 북한 주재 러시아 대사가 그만둘 때 김영남 등 간부들을 잇달아 만난 것과 대조됩니다. 류훙차이 전 대사가 귀국한 지 이미 한 달이 지났는데도 북한이 침묵하고 있는 것은 냉각된 현 북중관계를 보여주는 증거로 풀이할 수 있겠습니다.
박성우: 북한을 둘러싼 복잡한 외교관계를 살펴봤는데요. 오는 5월에 김정은이 어떤 결정을 내릴지 관심을 갖고 지켜볼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지금까지 국가안보전략연구원의 고영환 수석연구위원과 함께했습니다. 위원님, 오늘도 감사드리고요. 다음 주에 다시 뵙겠습니다.
고영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