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 안녕하세요. ‘시사진단 한반도’ 시간입니다. 저는 진행을 맡은 박성우입니다. 북한이 외교 다변화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오늘도 국가안보전략연구원의 고영환 수석연구위원과 함께합니다.
박성우: 위원님, 지난 한 주 잘 지내셨습니까?
고영환: 잘 보냈습니다.
박성우: 북한 외무성이 요즘 바빠진 것 같습니다. 인도와 아세안을 상대로 관계 증진을 시도하고 있는데요. 어떤 의도가 있다고 보시나요?
고영환: 북한이 국제기구와 연대를 강화하고 과거 불편했던 관계를 유지하고 있던 국가들과의 관계 회복을 노리는 다방면적인 외교를 전개하고 있습니다. 핵과 인권 문제로 국제사회의 전방위적 제재를 받는 상황에서 경제제재와 봉쇄에서 벗어나고 외교 다변화에 힘을 쏟아 부어 경제 성장을 위한 외자 유치에 유리한 환경을 조성하려는 의도인 것으로 보입니다.
북한은 최근 동남아국가연합, 일명 아세안(ASEAN)에 ‘공식 파트너십’을 요청했다고 말레이시아 외교부의 고위 관리가 지난 4월 25일 밝혔습니다. 아세안은 싱가포르처럼 경제발전을 이룬 국가뿐 아니라 석유 부국인 브루나이, 그리고 말레이시아, 라오스, 태국, 베트남, 버마 등 경제 성장 가능성이 큰 아시아 국가들이 모인 국제기구입니다. 북한의 다변화 외교에 아세안이 적격인 셈입니다.
리수용 외무상도 4월13일 북한·인도 수교 42년 만에 북한 외무상으로서는 처음으로 인도를 방문하였습니다. 북한은 인도와 대립관계에 있는 파키스탄과의 핵·미사일 등 군사협력을 강화하면서 인도와의 외교를 소홀히 해왔지만 인도와도 본격적인 관계 회복에 나선 것입니다. 리 외무상은 42년 만의 인도 방문 시 자존심을 접고 북한에 식량을 지원해달라고 요청했고 인도 외교장관으로부터는 파키스탄과 북한의 군사협력에 대한 우려를 들어야 했습니다. 그럼에도 일단 양국관계의 첫발을 내디딘 만큼 인도 외교장관의 방북을 적극 추진하는 등 인도와 파키스탄 양국 모두와 협력관계를 꾀할 것으로 관측됩니다.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도 반둥회의 참석차 인도네시아를 방문하여 조코 위도도 대통령과 양자회담을 가졌습니다. 또한 반둥회의 기간 이란, 인도네시아, 베트남, 짐바브웨 수반들을 접촉하며 다방면적인 외교를 펼쳤습니다.
북한이 경제협력을 위한 외교 다변화에 총력을 기울이는 데는 중국과의 관계 악화가 한몫을 한 것으로 보입니다. 반둥회의에서 예전 같으면 당연히 만났을 김 상임위원장과 시진핑 중국 주석의 회동도 이뤄지지 않은 사실이 특이한 점인데, 이는 북한이 여전히 중국 지도부를 반목하고 있다는 증거로 평가할 수 있겠습니다.
박성우: 오늘은 북한과 관련된 외교 사안을 좀 더 살펴보죠. 최근에 쿠바와 미국의 관계가 급진전했는데요. 그런데 북측 매체들이 이 소식을 보도하지 않고 있죠. 그 이유는 뭐라고 보십니까?
고영환: 쿠바와 미국은 지난해 12월 국교 정상화를 선언하고 지난 4월 14일에는 오바마 행정부가 쿠바를 테러지원국 명단에서 해제키로 하는 등 양국 관계가 빠르게 진전되고 있습니다.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라울 카스트로 쿠바 국가평의회 의장은 지난 4월 11일 파나마 수도 파나마시티의 미주기구 정상회의에서 만나 회담도 가졌습니다.
그런데 쿠바와 가장 친한 관계를 가지고 있는 북한이 이런 움직임에 대해 현재까지 단 한 번도 이런 사실들을 소개하지 않고 있습니다. 마치 미국과 쿠바 사이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는 듯이 여전히 북한·쿠바 간의 전통적인 친선을 내세우며 쿠바를 ‘반미’와 엮어 반미 선전의 소재로만 활용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더더욱 그 배경이 주목되는데요.
북한이 미국과 쿠바 사이의 외교관계가 정상화되는 사실, 라울 카스트로와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만나는 사실 등을 숨기고 있는 것은 국제사회에서 사회주의를 표방하며 반미를 외치는 마지막 보루라 할 수 있는 쿠바까지 미국과 관계 개선이 이뤄지는 상황이 상당히 불편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사회주의 서방 초소는 쿠바가, 동방초소는 북한이 지키고 있다고 오랫동안 선전을 해 왔는데, 그런 쿠바가 미국과의 관계를 개선하고 있다니 이를 북한 주민들에게 설명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박성우: 한국도 쿠바와 수교를 준비하고 있는데요. 이게 북한에 의미하는 바는 무엇인가요?
고영환: 윤병세 한국 외교부 장관이 지난 2월 10일 국회 외교통일위원회에 출석해 2015년 업무보고를 하던 중 “그간 다소 미진했던 중남미 지역으로도 외교의 지평을 확대해 나가겠다”면서 “쿠바와의 관계 정상화도 추진하겠다”고 밝혔습니다.
한국이 정상적인 외교관계를 가지고 있지 않은 나라는 쿠바 외에 시리아, 마케도니아, 코소보 등 4개국입니다. 쿠바는 1949년 7월 한국 정부를 승인했지만 1959년 혁명 후 교류를 중단했고, 북한과는 1960년 수교하고 61년 대사관을 개설했습니다.
한국 정부 고위 인사가 공개적으로 쿠바와의 관계 정상화 뜻을 밝힌 건 이번이 처음입니다. 그런데 외교관계는 없지만 한국과 쿠바 사이의 경제·문화적 교류는 활발해지고 있습니다. 2005년 쿠바의 수도 아바나에 한국무역관이 들어섰고 2014년 1월부터 11월 사이 한국이 쿠바로 수출한 물품의 액수는 약 5,100만 달러, 쿠바로부터의 수입액은 약 673만 달러였습니다.
북한이 자신의 뒷동산으로 여겨왔던, 그리고 같은 전호를 쓴다는 형제 국가가 한국과 외교관계를 맺는다는 것은 북한 외교로서는 뼈아픈 실책으로, 커다란 타격이 될 것입니다. 북한 외교관을 지낸 제 경험으로 보아 현재 쿠바 대사관에 있는 북한 외교관들은 전전긍긍하고 있을 것입니다.
박성우: 20여일 전 일입니다만, 쿠바와 관련해서 빼놓을 수 없는 일이 하나 있었죠. 미국 오바마 대통령과 쿠바의 카스트로 국가평의회 의장이 정상회담을 가졌습니다. 우리 청취자들을 위해 그 의미를 설명을 좀 해 주시죠.
고영환: 쿠바혁명 이후인 1961년 국교가 단절되고 가장 냉랭한 ‘적’이었고 두 나라 사이에 겹겹이 쌓여 있던 원한 관계가 최근 급속도로 풀리고 있습니다. 파나마의 수도 파나마시티에서 열린 미주기구정상회의에 함께 참석한 미국의 오바마 대통령과 쿠바의 라울 카스트로 의장이 지난 4월 11일 정상회담을 가졌습니다. 피델 카스트로가 쿠바혁명을 일으키기 3년 전인 1956년 이후 처음으로 양국의 수반이 역사적인 만남을 가진 것입니다. 1시간 넘는 정상회담을 마치고 오바마 대통령은 기자들과 만나 “솔직하고 유익한 대화였다”고 말했습니다.
저는 오바마·라울 정상회담 장면을 텔레비전을 통해 보면서 “영원한 적도, 영원한 동맹도 없다”는 세계 정치의 진리를 다시 한 번 깨닫게 되었습니다. 북한도 쿠바처럼 미국과의 관계를 개선하고 국제사회에 저렇게 당당하게 등장하면 얼마나 좋겠는가,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박성우: 오바마와 카스트로의 정상회담을 보면서 김정은 제1비서는 어떤 생각을 했을까요?
고영환: 최근 세계는 국제 안보적 측면에서 주목할 만한 변화를 보이고 있다. 이란을 일방으로 미국과 서유럽을 타방으로 하는 핵 협상이 타결되었습니다. 버마도 급속도로 변화하고 있고 리비아와 베트남, 그리고 쿠바에 이르기까지 여러 나라들이 지난 몇 년간 서방세계와 화해하고 개혁·개방의 길로 들어섰습니다.
이 나라들은 하나의 공통점을 지니고 있습니다. 인민들의 삶이 피폐했고 한결같이 반미 반제를 주장하였다는 점입니다. 그리고 최근 들어서는 개혁·개방을 하고 미국과 유럽 등 서방 세계와 관계를 개선하면서 주민들의 삶이 나아지고 있다는 점도 공통점입니다.
특히 핵문제를 해결하고 미국과의 관계를 개선하면서 경제적인 발전을 일으키고 있는 이란의 사례는 북한에 던져주는 의미가 특별합니다. 이 나라들의 변화는 해당 국가 지도자들이 주민들이 굶주리고 헐벗은 현실을 그대로 둘 수 없다는 판단을 하였고 그래서 과감하게 화해와 개방을 선택하는 결단을 했기에 가능하였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는 김정은이 이 나라들이 변화하는 것을 보면서 핵을 더 끌어안고 자신의 1인 체제를 꽉 잡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을 가능성이 훨씬 더 높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그럴수록 체제는 더 불안정해진다는 것을 김정은이 왜 모르는지 안타깝습니다.
박성우: 그렇습니다. 쿠바뿐만이 아니고 버마나 이란 같은 나라들도 미국과 관계를 개선하고 있는데요. 아마 북한 지도부도 세밀하게 지켜보고 있을 겁니다. 그래서 북한이 요즘 외교 다변화 전략을 시도하고 있는 것 같다는 말씀을 드렸는데요. 이런 측면에서 보자면 김정은 제1비서가 러시아를 방문할법한데 ‘안 가기로 했다’는 보도가 지난 목요일에 나왔죠. 그 이유와 배경을 놓고 한동안 다양한 이야기가 나올 텐데요. 이것도 지켜볼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지금까지 국가안보전략연구원의 고영환 수석연구위원과 함께 했습니다. 위원님 오늘도 감사드리고요. 다음 주에 다시 뵙겠습니다.
고영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