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진단 한반도] “연평해전이 우발적 사건이라고? 천진난만한 생각”

서울-박성우, 고영환 xallsl@rfa.org
2012.06.29
chamsoori_ship_305 제2연평해전 10주년을 하루 앞둔 28일 오후 서울 용산구 전쟁기념관에서 관람객들이 해전 당시 전투에 나섰던 참수리호 모형을 둘러보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앵커: 여러분 안녕하세요. ‘시사진단 한반도’ 시간입니다. 저는 진행을 맡은 박성우입니다. 김대중 정부 당시 발생한 연평해전이 오늘로 10주년을 맞이했습니다. 오늘도 국가안보전략연구소의 고영환 전략정보실장과 함께합니다.

박성우: 실장님, 지난 한 주 잘 지내셨습니까?

고영환: 잘 보냈습니다.

박성우: 10년전 6월 29일은 연평도 인근에서 북측 경비정의 기습 선제공격으로 남북 간 교전이 일어난 날입니다. 벌써 10년이 지났습니다. 실장님은 당시에 어떤 생각을 하셨습니까?

고영환: 제2 연평해전은 한국의 섬인 연평도 영해상에서 2002년 6월 29일 서해함대사령부 8전대 소속 경비함 684호가 북방한계선 NLL을 넘어와 한국의 고속 경비정인 참수리 357호에 선제공격을 가하여 한국 해군 6명이 전사한 사건입니다.

월간조선 7월호는 북한 경비함 684호가 8전대 지휘부에 “발포명령만 내리면 바로 발포하겠다”고 한 북측의 통신을 한국군 통신부대인 5679부대가 감청한 내용을 공개했습니다. 교전이 있은 후 북한 경비함은 서해함대사령부와 해군사령부로부터 “사격을 했으니 이탈해서 올라오라”는 지시를 받았고, 이 내용도 감청됐다고 월간조선은 공개했습니다. 이는 제2 연평해전이 우발적인 사고가 아니라 북한군이 철저히 준비한 선제적, 군사적 도발이었음을 밝히는 겁니다.

그 당시는 한국에서 세계축구선수권 대회가 열리는 중이었고, 29일 당일은 한국과 토이기(터키)가 3-4위를 가르는 중요한 경기가 있었습니다. 저도 그날 텔레비전을 통해 축구 경기를 보며 응원을 하고 있었는데, 뉴스 속보로 연평도 근처에서 남북한 해군 사이에 교전이 벌어졌다는 소식을 접하고 큰 충격을 받았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이 소식을 들으며 ‘역시 북한은, 그리고 공산주의자들은 적이 안심하고 있을 때 공격을 하는 상투적인 수법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였고, 그래서 ‘우리가 절대로 안심하고 신뢰할만한 대상이 아니구나’라고 생각했습니다. 1950년 6월 25일도 일요일이었고, 병사들이 농사일을 돕기위해 휴가 명령을 받고 집으로 간 사이,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편안히 잠을 자는 일요일 새벽 4시에 전쟁이 일어났거든요.

연평도 해전 때도 많은 한국사람들은 ‘우발적 사고려니’ 하였고, 더구나 북한도 “이는 우발적으로 일어난 사고다, 유감이다”라고 한국측에 통보해왔어요. 그러나 북한에서 자라고 일을 해본 저로서는 그렇게 큰 군사적 공격이 김정일의 지시를 받지 않고 감행되었다는 것은 애초부터 믿지 않았습니다. 기술자 한 명을 외국에 파견하는 것도 김정일의 친필 지시를 받는 나라인데, 잘못하면 전면전이 일어날 수 있는 큰 군사적 도발이 김정일의 승인 없이 일어났다고 믿는 것은 그야말로 천진난만한 생각입니다. 북한은 연평해전을 철저히 준비해 도발을 일으켰습니다. 북한은 다시는 이러한 도발을 일으키지 말아야 합니다. 다시 이런 일이 일어나면 북한 체제도 무사하지만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박성우: 지난 25일은 한국전쟁 62주년이었지요. 6.25 전쟁과 관련해서 새로운 문건이 몇 개 발견됐는데요. 어떤 의미가 있습니까?

고영환: 미국의 유명한 연구기관인 우드로윌슨센터가 2008년 중국 중앙문헌연구실이 출판한 ‘주은래문고(建國以來周恩來文稿)’를 입수해 그 내용을 공개했습니다. 1950년 전쟁 상황과 관련하여 1950년 4월부터 12월까지 주은래가 작성한 총 31건의 외교전보문이 공개된 겁니다.

주목되는 점들을 몇가지 소개하면, 주은래는 1950년 4월 스탈린에게 소련이 전투기, 낙하산, 훈련교관 등을 조선전쟁에 지원해줘야 하며 6.25 전쟁에 소련이 해군과 공군을 참가시켜 줄 것을 요청한다는 내용이 있습니다. 또한 주은래는 1950년 10월 14일 스탈린에게 전보문을 보내 소련군이 빨리 폭격기를 지원해야 한다고 요청했습니다. 그러나 소련은 10월 29일에야 공군을 조선전쟁에 지원하겠다고 허락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중국군은 10월 19일 압록강을 넘어 한국전쟁에 참전합니다. 전보문에 의하면 스탈린은 1950년 11월 15일 미그기 120대를 추가로 지원하기로 결심합니다. 이는 전쟁이 중국과 소련, 그리고 김일성 사이에서 얼마나 치밀하게 준비돼 일어났는지를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또 한가지 중요한 게 있습니다. 북한군이 인천상륙작전으로 패배하여 후퇴할 때 중국군이 북한을 지원할 것을 스탈린이 명령하면서 군사 지휘권을 중국군 사령관인 팽덕회가 가져야 한다고 명령했다는 내용도 공개됐습니다.

현재 공개된 이런 문건만 가지고도 북한이 얼마나 면밀하게 6.25 전쟁을 준비했고, 그 뒤에 모택동, 주은래, 스탈린 같은 사람들이 김일성을 어떻게 지원했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이제 시간이 갈수록 이런 증빙 문건들이 수백, 수천건 더 쏟아져 나올 것입니다. 북한은 6.25전쟁을 미국이 일으켰다고 계속 주장하는데, 이런 역사적 사실들을 가리려고 한다고 가려질지 의문입니다.

박성우: 다른 소식도 좀 살펴보겠습니다. 김정일의 첫째 아들인 김정남에 대한 기사가 지난 주에 몇 차례 보도됐는데요. 김정남의 위상과 관련해서 좀 엇갈린 해석이 나왔습니다. 실장님은 어떻게 보셨습니까?

고영환: 동아일보는 김정일의 맏아들 김정남이 최근 북한을 방문하여 장성택 등을 만나고 돌아 왔다고 6월 27일 보도했습니다.

그 동안 김정남은 중국과 마카오에서 살면서 떠돌이 생활을 했고, 김정일 장례식에도 가지 못했고, 일본 기자와 전자우편을 주고받으면서 후계자 김정은을 수 차례 비판했었지요. 특히 중국도 하지 않은 3대 세습을 북한이 하고 있다고 비판해 눈길을 끌었습니다. 그래서인지 김정남은 김정은을 피해 한곳에 정착하지 못하고 잠자리를 이리저리로 옮기면서 불안하게 살고 있습니다. 김정은은 2009년 4월 우암각을 습격하여 김정남을 처리하려 하였다는 탈북자들의 증언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김정은이 김정남을 치지 못하는 것은 김정남이 중국 고위인사들과 그 자녀들이 포함된 태자당 성원들과 친분이 있기 때문이라는 해외발 보도들도 있었지요.

확실한 것은 김정남이 평양에서 살지 못하고 여기저기 피해다니면서 살고 있으며, 부친 김정일이 사망한 후에는 평양으로부터 자금 지원도 끊어져 빈털터리가 되었다는 점입니다. 예로부터 왕자는 한 명만 제대로 살 수 있었습니다. 조선시대에도 그랬고 현재 북한도 그렇습니다. 김평일과 김영일 등 김일성의 다른 아들들은 죽거나 외국에서 거의 연금된 생활을 하다시피 하고 있습니다. 김정일의 아들들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김정은 하나 말고는 김정남, 김정철 모두 사라졌습니다. 다른 아들들이 살아남기는 좀 힘들 것 같고요. 권력은 나누어 가지는 것이 아니라는 걸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합니다.

박성우: 눈에 띄는 소식이 하나 더 있습니다. 평양 주재 영국 대사였던 존 에버라드 씨가 최근에 책을 한 권 냈습니다. “북한 사람은 미국인보다 중국인을 더 혐오한다”는 내용이 있는데요. 실장님도 그렇게 생각하시는지요?

고영환: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2006년부터 2년 반 동안 평양 주재 영국 대사를 지낸 에버라드 씨가 ‘아름다운 것만을’이라는 책을 냈습니다. 자신의 평양 생활에 대해 쓴 것인데요. 이 책에서 그는 평양의 한 마사지 업소를 찾아갔을 때 일화를 소개합니다. 북한 봉사원이 “나는 독일인도 러시아인도 다 마사지하는데 중국인은 상대도 하지 않는다. 중국인들은 냄새가 난다”고 말했다는 겁니다. 에버라드 씨는 “여러 북한 사람들을 만났는데 그들은 ‘중국 사람들은 건방지다, 미국놈들보다 중국놈들이 더 밉다’는 소리를 자주했다”고 책에서 썼습니다.

북한 사람들이 이러는 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미국과는 60여년 전에 전쟁을 했고, 이미 먼 옛날 이야기가 된 거지요. 그런데 중국은 현재 눈앞에 있다는 겁니다. 장마당에 가도 중국 상품 일색이고, 북한은 중국 관광객들로 넘쳐납니다. “중국 사람들은 북한 사람들이 못산다고 깔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더구나 북한 지도부도 “미국보다 중국이 더 나쁘다, 우리에게 개혁 개방을 유도하니 더 나쁘다”는 말을 많이 했습니다. 간부는 간부대로, 또 주민은 주민대로 중국을 싫어하고 있는 거지요.

박성우: 알겠습니다. 북한에겐 중국의 지원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상황이지요. 그런데 북한 사람들이 갖고 있는 중국 사람들에 대한 평가는 참 흥미롭다는 생각이 듭니다. 지금까지 국가안보전략연구소의 고영환 전략정보실장과 함께했습니다. 실장님, 오늘도 감사드리고요. 다음주에 다시 뵙겠습니다.

고영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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