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일성이 톈안먼 성루를 봤다면…

서울-박성우, 고영환 parks@rfa.org
2015.09.04
china_park_parade_b 박근혜 대통령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가운데),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오른쪽)과 함께 3일 오전 베이징 톈안먼 성루 위에서 중국의 항일 전쟁 승리 70주년 열병식을 지켜보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여러분 안녕하세요. ‘시사진단 한반도’ 시간입니다. 저는 진행을 맡은 박성우입니다. 박근혜 대통령이 중국의 전승절 70주년 행사에 참석했습니다. 오늘도 국가안보전략연구원의 고영환 수석연구위원과 함께합니다.

박성우: 위원님, 지난 한 주 잘 지내셨습니까?

고영환: 잘 보냈습니다.

박성우: 지난 3일 전승절 기념행사가 베이징 톈안먼 광장에서 열렸는데요. 위원님, 뭐가 가장 인상적이었나요?

고영환: 중국의 수도 베이징에서는 지난 3일 오전 10시부터 70분 동안 '항일전쟁 및 세계 반 파시스트 전쟁 승전 70주년' 기념행사가 진행되었습니다. 한국의 박근혜 대통령은 대한민국 정상으로는 최초로 이날 시진핑 중국 주석과 나란히 톈안먼 성루에 올라 중국 인민해방군의 열병식을 지켜봤습니다.

박 대통령이 오른 톈안먼 성루는 1954년 10월 북한의 고 김일성 주석이 모택동 국가주석과 함께 중국 건국 5주년 기념 열병식을 참관했던 바로 그 장소였습니다. 61년 전 김일성과 모택동 주석은 한국전쟁 휴전 직후 항미원조의 혈맹국가, 즉 피로써 맺은 동지국가임을 과시했지만, 현재 박근혜 대통령과 시진핑 주석은 10년 동안 인연의 오랜 친구로서 한반도 평화와 안정을 위해 손을 맞잡고 한중관계가 얼마나 밀접한지를 과시한 것입니다.

중국의 혈맹으로 불리는 북한의 지도자가 아닌 한국의 대통령이 톈안먼 성루의 가운데 오른 것은 한중관계의 질적 도약과 변화된 북중관계, 더 나아가 동북아의 역동적인 역학 관계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역사적 장면이라는 평가가 많습니다.

특히 박 대통령은 이날 톈안먼 광장을 바라보는 방향으로 시 주석의 오른편 두 번째 자리에 착석해 중국 인민해방군의 열병식을 지켜봤습니다. 중국의 전통적 혈맹인 푸틴 대통령 다음 자리였습니다. 시 주석이 "박 대통령은 가장 중요한 손님 가운데 한 분이다. 박 대통령을 잘 모셔라"는 지시를 실무진에 하달하고, 중국 네티즌들이 박 대통령을 '퍄오다제' 즉 박근혜 큰누님이라는 애칭으로 부르는 것에는 전승절 행사에 참석한 박 대통령에 대한 중국의 인식이 고스란히 녹아있다는 평가입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중국군 열병식에 참가한 30여명의 국가 및 정부 지도자 중 유일하게 시진핑 주석과 정상회담을 가졌고 시 주석 부부와 특별연회도 가지는 등 최고로 극진한 대접을 받았습니다.

저도 시 주석과 푸틴 대통령 옆에 서있는 한국의 박근혜 대통령의 모습, 그리고 60여년 전에는 적대국 군대로 싸운 중국군의 경례를 받는 박 대통령의 모습을 보면서 영원한 적도, 영원한 친구도 없다는 세계사의 진리를 다시 한 번 똑똑히 느꼈습니다.

박성우: 북한의 최룡해 비서도 참가했는데요. 싸늘해진 북중관계의 현주소를 보여주는 한 장면이 아닌가 싶습니다. 위원님은 어떻게 보셨습니까?

고영환: 1954년 중국의 건국 5주년 열병식에서 김일성 주석은 모택동 당시 주석의 바로 오른쪽에 위치했었으나 지난 9월 3일 열병식에서는 최룡해 노동당 비서가 성루 앞열의 오른쪽 제일 끝편 구석으로 밀려나 달라진 북중관계의 현주소를 상징적으로 보여줬습니다. 물론 김일성 주석에 비해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을 대신해 참석한 최룡해 비서의 위상이 떨어지는 것이 주원인이긴 하지만 달라진 북중관계의 현주소를 단적으로 보여주기에 부족함이 없다는 분석입니다. 최룡해 비서는 2일 저녁 단체만찬에서 시진핑 주석과 인사만 나누고 3일에도 열병식에 앞서 의례적인 악수를 나눴을 뿐이었습니다.

박성우: 박근혜 대통령과 시진핑 주석의 정상회담도 열렸는데요. 어떤 내용이 눈에 띄었나요?

고영환: 앞에서도 잠깐 언급한 바와 같이 중국 국가 행사에 참석한 여러 나라 지도자 중 한국의 박근혜 대통령만이 지난 2일 시진핑 주석과 정상회담을 가지고 특별연회에도 참석하였습니다. 두 시간 동안 두 수반이 동시통역으로 진행된 밀도 있는 회담을 가진 것입니다.

박근혜 대통령과 시진핑 주석은 2일 “올해 10월 말이나 11월 초를 포함한 상호 편리한 시기에 한국에서 한·중·일 3국 정상회의를 개최하자는 데 의견을 같이 했다”고 밝혔습니다. 두 정상은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정상회담에 이은 특별오찬을 함께한 뒤 이 같은 내용을 포함한 10개 항의 회담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특히 두 정상은 한반도 정세와 관련해 “9·19 공동성명과 유엔 안보리 관련 결의들이 충실히 이행되어야 할 것”이라며 “한반도에 긴장을 고조시키는 어떠한 행동에도 반대한다”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유엔 안보리 결의에는 북한의 추가 핵실험 및 탄도미사일 발사 금지 등의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 한국 정부 관계자는 “북한이 노동당 창건일을 전후해 미사일 도발을 할 수 있다는 우려를 감안해 두 정상이 공감한 문구”라며 “북한이 인공위성이라고 주장하며 미사일을 발사하는 것도 반대한다는 강력한 의지가 담겨 있다”고 말했습니다.

저는 두 정상이 북한의 핵과 장거리 미사일 발사에 의한 유엔안보리 제재의 적극 이행, 그리고 통일문제 등에 대한 토의를 한 것을 가장 인상 깊게 보았습니다. 저는 이번에 중국이 북핵과 장거리 미사일 개발을 적극 반대하고 평화적 방법에 의한 한반도 통일을 중국이 지지한다는 것을 확실하게 알게 되었습니다.

박성우: 한중 두 정상이 한반도 통일 문제에 대해서 이야기를 많이 나눴다고 하는데요. 이게 뜻하는 바는 뭐라고 보시는지요?

고영환: 박근혜 대통령과 시진핑 주석은 지난 2일 베이징에서 열린 한중 정상회담에서 남북통일 문제에 관해 깊이 있는 대화를 교환했습니다. 이날 박 대통령은 시 주석에게 "조속히 평화롭게 통일되는 것이 이 지역의 평화와 번영에 기여할 것"이라며 남북통일의 필요성을 거듭 강조했습니다. 박 대통령의 '협력 요청'에 대해 시 주석은 "한반도가 장래에 한민족에 의해 평화적으로 통일되는 것을 지지한다"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특히 박 대통령은 "얼마 전에 있었던 북한의 비무장지대 도발 사태는 언제라도 긴장이 고조될 수 있는 한반도의 안보 현실을 보여주었고, 한반도 평화가 얼마나 절실한가를 보여준 단면이기도 했다"면서 "한중 양국의 전략적 협력과 한반도의 통일이 역내 평화를 달성하는 데 얼마나 중요한지도 보여줬다"고 강조했습니다.

시 주석은 "중국은 남북 양측이 대화를 계속함으로써 관계를 개선하고 화해와 협력을 추진하는 것을 환영한다"고 했습니다. 이는 '남북 간 대화를 통해서 자주적인 평화통일을 실현하는 것에 중국이 반대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재확인하면서 한국 측의 '인내와 대화' 노력을 인정한 것으로 해석됐습니다.

제가 눈여겨 본 부분은 북핵 폐기와 한반도 통일 문제였습니다. 중국 주석이 북한의 비핵화를 요구하고 한민족에 의한 통일을 지지하였다는 것은 커다란 정치적, 외교적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현재 중국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는 나라는 북한이 아니라 한국이고, 핵 문제를 안고 있는 것도 한국이 아니라 북한입니다. 결과적으로 문장의 행간을 읽을 수 있는 사람이라면 시 주석이 말하는 통일이 어떤 통일인지를 명확하게 알 수 있는 것입니다. 박근혜 대통령에게 시종일관 웃는 모습을 보여준 시 주석, 최룡해에게 근엄한 표정을 보인 시 주석의 얼굴이 이 모든 상황을 다 설명해 주고 있다고 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

박성우: 마지막으로 이거 하나 더 여쭤보죠. 최룡해는 사실상 빈손으로 귀국했는데요. 북중관계의 냉기를 직접 피부로 느끼고 돌아간 셈이죠. 위원님은 이번 최룡해의 방중 결과를 어떻게 평가하시는지요?

고영환: 최룡해 비서는 중국 전승절 기념대회에 참가하기 위하여 지난 2일 베이징에 도착하였다가 3일 열병식에 참가한 직후 같은 날 평양으로 돌아갔습니다. 최룡해는 2013년과는 달리 특별 비행기도 타지 못하고 중국 심양을 거쳐 베이징으로 왔었습니다. 그리고 전승절 당일 시 주석 부부와 기념사진 한 장을 찍은 후 열병식을 관람했고, 시주석과 회담도 하지 못하고 열병식 행사가 끝나자마자 평양으로 급히 돌아갔습니다.

한국의 대통령은 특별기를 타고 베이징에 도착하여 시진핑 주석과 정상회담 후 단독 특별오찬에 참석했고 중국의 2인자인 리커창 총리까지 만나고 돌아갔는데, 북한의 최룡해 비서는 그저 열병식만 보고 돌아간 것입니다. 최룡해 비서의 기분이 참으로 어땠을까요? 최룡해 비서의 뒷모습이 그렇게 측은해 보일 수가 없었거든요. 정말 많은 것을 느낀 열병식 행사였습니다.

박성우: 베이징에서 열린 전승절 기념행사를 시진핑 주석, 푸틴 러시아 대통령, 그리고 박근혜 남한 대통령이 나란히 서서 지켜보는 모습을 만약에 김일성 주석이 봤다면 무덤에서 벌떡 일어나지 않았을까 싶은 생각이 듭니다. 그만큼 북한으로서는 충격적인 장면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지금까지 국가안보전략연구원의 고영환 수석연구위원과 함께했습니다. 위원님, 오늘도 감사드리고요. 다음주에 다시 뵙겠습니다.

고영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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