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여러분 안녕하세요. '시사진단 한반도' 시간입니다. 저는 진행을 맡은 박성우입니다. 북측 당국이 김일성 광장에서 마르크스와 레닌의 초상화를 철거했습니다. 오늘도 국가안보전략연구소의 고영환 전략정보실장과 함께합니다.
박성우: 실장님, 지난 한 주 잘 지내셨습니까?
고영환: 잘 보냈습니다.
박성우: 김일성 광장에서 마르크스와 레닌의 초상화가 철거된 것으로 뒤늦게 확인됐는데요. 북측 당국이 평양의 상징인 김일성 광장에 걸려있던 사회주의 창시자의 초상화를 없앤 이유를 어떤 맥락에서 보면 될까요?
고영환: 그렇습니다. 말씀하신 대로, 최근 김일성 광장에 걸려 있던 맑스와 레닌의 초상화가 철수된 것으로 확인됐지요. 북한은 김일성의 유일영도체계가 확립된 1970년대부터 ‘맑스-레닌주의’라는 표현보다는 ‘주체사상’이라는 표현을 썼지만, 평양의 상징인 김일성 광장과 정부청사에는 사회주의 창시자인 맑스와 레닌의 초상화를 걸어 놓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최근에 촬영된 김일성 광장의 모습에서 이 두 사람의 초상화가 사라진 것이 확인된 것이지요.
그런데 북한이 맑스와 레닌의 초상화를 없애고 2009년 개정헌법에서 ‘공산주의’라는 표현을 없앤 것만 갖고는 북한이 사회주의나 공산주의를 포기하였다고 보기는 힘들다고 보고요. 맑스와 레닌보다 나름 더 “훌륭한” 지도자들, 즉 김일성과 김정일을 두었다고 자랑하려는 데 그 목적이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맑스와 레닌이 사회주의 이론을 내놓고 사회주의 첫 국가를 세운 지도자라고 하여도 그들이 김일성과 김정일 보다 더 위대한 인물일 수는 없다는 말을 하고 싶어하는 것 같고, 인민들에게도 그렇게 교양을 하려는 의도가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박성우: 김정은 체제가 여러모로 다양한 변화를 추구하고 있는 듯 한데요. 특히 경제와 관련한 정책의 변화가 주목받고 있습니다. 가시적이진 않지만 시범 조치들을 조심스레 하나씩 시행하고 있는 모양새인데요. 실장님은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고영환: 중국의 한 대북 소식통은 북한이 이달부터 일부 국영 기업소에서 배급을 중단하고 월급도 3만6천원에서 5만4천원의 실질 임금을 지급하는 일종의 실험을 시작하였다고 전했습니다. 이 소식통에 의하면, 기존 외국인과의 합작, 합영 기업 이외에 외국인 독립경영 기업의 설립 지역도 확대하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김정은도 만경대학원과 강반석혁명학원 창립 65돌 기념 서한에서 “컴퓨터 교육, 외국어 교육, 경제학 교육의 질을 높일 것”을 지시했지요. 또 북한의 대학, 기업, 정부 당국자 20여명이 지난달 2주간 스웨덴(스웨리예)를 방문하여 국제무역, 경영, 가격과 임금 책정 등 시장경제를 배우고 돌아가기도 하였습니다.
북한이 보이고 있는 일련의 변화는 우선 외국인 투자를 적극 유치하여 외화도 벌고 일자리도 만들며 근로자들의 노동 의욕을 적극 자극하여 노동 생산성을 올려 종국적으로는 경제를 회복하겠다는 의지로 보입니다. 그러나 이것을 본격적인 중국식 개혁개방으로 보기에는 아직 이르다는 생각이 듭니다. 북한이 취하고 있는 여러 조치들이 김정일 시대에 비해 발전적인 것은 사실이지만, 북한이 보다 본질적인 변화를 하려면 외국인 투자와 경영을 통제하지도 간섭하지도 말아야 하며, 외국인들의 자유로운 입출국을 보장하고, 외국인들과 북한 사람들의 자유로운 접촉을 보장하며, 당의 경제부문에 대한 각종 간섭과 통제를 없애야 할 것입니다. 더 중요하게는 남북관계를 개선해 대외적으로 우호적인 분위기를 조성하는 등의 가시적인 조치를 취해야 하는데, 아직은 그런 게 보이지 않습니다. 북한은 좀 더 대담한 조치들을 취했으면 좋겠습니다.
박성우: 북한의 경제 개선 조치가 효과를 거두기 위해서는 아무래도 종자돈이 필요할 것이고, 그 종자돈을 북한은 중국의 투자를 받아서 마련하려 할 것이라는 게 상당수 전문가들의 전망인데요. 그래서 그런지 요즘 북중 간 경제교류를 강화하려는 노력이 자주 눈에 띕니다. 결국 관건은 ‘북한이 중국으로부터 대규모 투자를 받아낼 수 있을 것인가’라는 점인데요. 실장님은 어떻게 전망하십니까?
고영환: ‘2012년 중조 경제무역문화관광박람회’가 지난 12일 북중 국경 도시인 단동시에서 열려 16일까지 계속됐습니다. 북한은 이 박람회에 100여개 기업소, 300여명 규모의 경제 대표단, 100여명의 예술단원을 보냈지요. 또 북중 양국은 지난 9월 15일 ‘황금평 경제특구관리위원회’ 청사의 착공식을 진행하기도 했습니다.
북한 역시 경제 회복이든 경제 개선이든 개혁이든 뭔가 하려면 외화 즉 종잣돈이 필요하다는 것을 인식하고 있습니다. 지난 8월 13일부터 18일까지 장성택 국방위원회 부위원장이 대규모 대표단을 이끌고 중국을 방문하여 후진타오 주석과 원자바오 총리 등 중국 지도자들을 만나 중국이 북한에 경제적 지원을 해 줄 것을 요청한 바도 있었지요. 이 방문 이후 북한과 중국사이에 경제 교류가 활발해지고 있다는 건 사실입니다.
특히 북중이 지난 10월 4일 “농업부문 협조에 관한 양해각서”를 체결한 것이 주목을 끕니다. 중국은 농업 개혁부터 시작하여 현재의 눈부신 개혁 성과를 이루었습니다. 이런 중국과 맺은 양해각서여서 저부터도 관심을 갖고 있는데요. 장성택 부위원장이 직접 나서 중국과의 경제 협력을 이끈다는 것이 일단은 희망적입니다.
중국은 북한의 개혁개방 의지에 대해서 일단 반신반의하면서도, 김정일 시대와 다른 모습을 보이고 있는 북한에 지원을 늘려 중국식 개혁개방을 북한이 따라 배우도록 유도하는 측면도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북한도 역시 중국에 ‘북한이 변하고 있으니 도와달라’는 메시지를 보내고 있는 모양새입니다.
그러나 앞에서도 잠깐 언급하였지만, 이런 변화가 진정한 개혁개방일지는 두고봐야 할 것 같습니다. 중국도 북한을 100% 믿고 있는 모양새는 아니고, 그래서인지 북한이 그렇게 공을 들이는 황금평 개발도 아직은 지지부진한 상태이지요. 북한은 개혁과 개방을 하려면 통이 크게 하여 중국으로부터, 그리고 더 나아가 같은 동포인 한국으로부터 경제개발을 위한 자금과 기술을 받아들여 적극적으로 개혁을 하였으면 좋겠습니다.
박성우: 그나저나 경제를 되살리기 위해서 북한 당국이 나름의 노력을 하고 있는 걸로 파악되고 있습니다만, 동시에 북한 당국이 내부 단속도 강화하고 있다는 소식이 들리는데요. 그 이유는 뭐라고 보면 될까요?
고영환: 지난 6일 김정은이 국가안전보부를 방문하여 “불순 적대분자들을 단호하고 무자비하게 짓뭉개 버려라”고 지시했다고 하지요. 저는 이 말을 듣고 깜짝 놀랐어요. 북한은 최고지도자의 지시 내용을 신문 등에 이렇게 적나라하게 공개한 적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공개했다는 게 놀라운 것이고요. 지시 내용도 살벌하기 그지없습니다.
김정은은 인민보안대학에 ‘김정일인민보안대학’이라는 칭호를 주었고, 보위부가 맨 처음으로 김정일 동상을 세우도록 허락했습니다. 일종의 배려를 한 것이죠. 이는 김정은이 강력한 사회통제를 하겠다는 의미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현재 북한의 내부가 아직 혼란스럽고, 북한 주민들의 인식도 예전과 비교할 때 많이 달라졌음을 의미합니다.
북한이 경제 부문에서 보이고 있는 일련의 변화 조치들과 공포 정치를 연결시켜 보면, 북한은 강력한 사회적 통제를 통해 사회를 일단은 저들의 입맛에 맞게 안정시킨 다음 경제개선 조치를 취하겠다는 의지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북한이 사회 통제와 경제 발전이라는 서로 상반되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는지는 좀 더 지켜봐야겠습니다.
박성우: 경제 상황도 좋지 않은데, 공안통치가 강화되다 보니, 주민들의 삶은 더 피폐해지는 것 같습니다. 미국의 저명한 신문들이 북한 주민들의 힘든 생활에 대해 보도했는데요. 실장님도 관심을 갖고 보셨을 것 같습니다. 어떤 생각 나시던가요?
고영환: 뉴욕타임스가 북중 국경도시인 단동에서 북한 주민 4명을 만나 인터뷰를 하였는데요. 그들에 의하면, 북한 주민들의 삶은 더 힘들어지고 있다고 이 신문은 보도했습니다. 평양은 더 화려해졌고, 휴대전화를 갖고 다니는 멋쟁이 처녀들이 길거리를 다니고 있지만, 그들은 고위층 사람들이고, 이들을 제외한 다른 많은 사람들은 끼니도 제대로 때우지 못하고 있다고 이 신문은 전했습니다. 또 엘에이타임스도 단동에서 북한주민들을 만나 이야기한 내용을 신문에 보도했는데요. 평양에 새 건물이 올라가고 있지만, 일반 사람들은 살기가 이전보다 더 어렵다, 배급도 잘 안 나오고 있고, 먹을 게 없어 힘들게 산다는 내용입니다.
제가 이걸 보면서 느낀 바가 많습니다. 김정일 시대에도 북한은 도시의 겉모습에만 신경을 썼습니다. 내부나 주민들의 삶에 대해서는 관심을 두지 않았던 것이죠. 북한이 변화한다고 많이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본질적으로는 이전과 달라진 게 하나도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좀 씁쓸합니다.
박성우: 겉모습은 사실 중요한 게 아니지요. 북한 정권도 요즘 여러가지 정책을 추진하고 있는 듯 한데요. 그 정책이 북한의 본질적인 변화를 가져오기를 기대해 봅니다. 지금까지 국가안보전략연구소의 고영환 전략정보실장과 함께했습니다. 실장님, 오늘도 감사드리고요. 다음주에 다시 뵙겠습니다.
고영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