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은 오늘] 파격적인 대사면, 석방자 생활 안정에 주력

서울-박성우, 문성휘 xallsl@rfa.org
2012.02.06
hamnam_yoduk-305.jpg 2004년 일본 후지 TV가 공개한 북한내 정치범 수용소로 알려진 함경남도 요덕군 요덕수용소에 수감된 부녀자들의 모습.
사진-연합뉴스 제공
박성우 : 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자유아시아방송 문성휘 기자와 함께하는 ‘북한은 오늘’입니다. 북한의 현실과 생생한 소식, 문성휘 기자를 통해 들어보시겠습니다. 저는 진행을 맡은 박성우입니다.

오늘 소개해 드릴 내용입니다.

- 북한 당국이 파격적인 대사면 조치와 함께 석방된 주민들의 생활을 지속적으로 돌보기 위한 대책도 마련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파격적인 대사면, 석방자 생활 안정에 주력


박성우 : 문성휘 기자, 안녕하세요?

문성휘 : 네, 안녕하세요?

박성우 : 네, 지난 2월 2일이었죠? 북한 당국이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생일 70돌을 맞으며 대사면을 실시했다, 이런 보도들 나오지 않았습니까? 이 조치로 석방된 주민들 근황이 어떤지 궁금합니다.

문성휘 : 네, 앞서 1월 10일에 북한 당국은 김정일 국방위원장 생일 70돌과 김일성 주석의 생일 100돌을 맞으며 유죄판결을 받은 주민들에게 대사면을 실시한다는 보도를 내보내지 않았습니까? 당시 대사면 날짜를 2월의 첫째 날이라고 못 박았는데 한국의 일부 언론들은 2월 둘째 날에 대사면이 단행됐다, 이런 보도들을 내보냈습니다.

박성우 : 아, 그니깐 2월 1일이 아니고 2월 2일이다, 이렇게 보도했다는 거죠 한국의 일부 언론들이?

문성휘 : 네, 하지만 저희 소식통들은 대사면 날짜가 정확히 2월 1일이 맞다고 주장하면서 열차가 제대로 뛰지 않고 운송수단들이 없어서 일부 정보의 혼란이 있었을 수도 있다고 전했습니다.

박성우 : 네, 그러니까 열차가 제대로 운행되지 않아서 정보의 혼선은 있을 수 있다, 이런 말인데요. 자, 그런데 제가 먼저 궁금한 것은 이번에 석방된 주민들이 어떤 형태의 유죄판결을 받았었던 사람들인가, 그리고 얼마만큼의 인원이 석방됐는가, 이런 건데요. 알려진 게 있는지요?

문성휘 : 네, 이번 대사면 조치로 석방된 주민들의 대다수는 횡령 혐의로 구속되었던 경제사범들과 또 강도, 강간, 절도행위와 같은 죄를 저지른 일반사범들이고요. 또 유죄판결을 받고 구속 중이던 일부 정치범들도 포함되었다고 합니다.

박성우 : 오, 대사면에 정치범들도 포함됐다, 북한사회에선 좀 파격적인 내용 아닌가요? 어떤 사람들이 여기에 해당됐습니까?

문성휘 : 네, 우선은 한국행을 목적으로 탈북 했던 주민들이라는데요. 한국행을 목적으로 탈북했던 주민들의 경우 7년부터 15년까지의 유죄판결을 받고 요덕이나 개천 수용소에 수감되었다고 합니다. 이렇게 수감되었던 주민들 중 앞으로 출소 일까지 만기 5년이 남은 주민들을 석방시켰다고 하고요.

함경북도 명천군의 경우 유죄판결 없이, 그러니까 이건 무기형이죠. 이렇게 개천수용소에 수감되었던 군 도서관 관장도 이번 대사면 조치로 석방되었다고 합니다.

박성우 : 오, 무기형을 받았던 정치범도 석방되었다, 이런 말이군요?

문성휘 : 네, 그렇습니다. 명천군 도서관장을 지내던 박 모 씨가 그 사례라고 하는데요. 이 분의 경우는 좀 특별한 형태라고 합니다.

박성우 : 어떤 점에서 그렇습니까?

문성휘 : 박 모 씨로 말하면 군도서관 지붕수리를 제때에 하지 않아 장마철에 내리는 비에 많은 도서들이 파손되었다고 하는데요. 그 중에 김일성주석과 김정일 위원장의 사진작품 도서들, 또 저작집과 노작 책자들이 대부분 파손되었다고 하는데요. 그에 따른 처벌로 지난 2006년에 재판도 없이 수용소행을 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당시 박 모 도서관장의 수용소행에 대한 주민여론은 상당히 좋지 않았다고 합니다. 우선 도서관이라는 게 군에서도 제일 힘없는 기관이니까 지붕수리를 할 자재를 구하기 어려웠고요. 지붕으로 비가 새기 때문에 도서들이 훼손될 수 있다고 상급 간부들에게 수차례나 제기했다고 합니다.

박성우 : 네, 사전에 방지하기 위해 노력을 했었군요?

문성휘 : 네, 결국 집단적 책임을 져야 할 사건인데 그가 혼자 죄를 뒤집어쓰고 수용소행을 했다는 건데요. 이렇게 좀 애매하고 억울한 누명을 쓴 정치범들에 대해 국가보위부가 재조사를 하고 김정은의 서명을 받아서 일부 석방시키는 조치가 있었다고 합니다.

과거에는 김일성 주석 생일 80돌이었던 1992년 4월에 북한 당국이 가장 포괄적인 대사면을 실시했다고 하는데요. 이때에는 정치범들에 대한 석방이 없었고 또 대사면으로 석방되거나 감형을 받은 수감자들이 전체 수감자들 중 30% 정도였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잔여 형기가 3년 이하의 수감자들은 전원 석방했다고 하는데요.

그러나 이번 대사면의 경우 석방된 주민들이 전체 수감자들 중 40%이고 남은 수감자들에 대해서도 최고 5년까지의 감형조치를 취했다고 합니다.

박성우 : 아, 그러면 이렇게 됩니까? 5년까지 감형조치라면 예컨대 7년 형을 선고받은 주민이면은 앞으로 2년만 더 수감생활을 하면 된다, 이거군요?

문성휘 : 네, 그렇죠. 2년만 하면 된다는 거죠. 이렇게까지 많은 수감자들이 풀려날 수 있었던 배경에 대해 북한 내부 소식통들은 ‘노동단련대’ 형을 받은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이렇게 말했습니다.

박성우 : 무슨 말입니까 그게?

문성휘 : 네, 북한은 1988년경부터 ‘노동단련대’라는 수용시설을 만들어 놓고 여기에 사법처리 대상자이기는 하나 교화형(교도소)에 처하기는 좀 애매한 주민들을 구속시켰습니다. 매 시, 군들에 교화소나 꼭 같은 ‘노동단련대’ 시설을 만들어 놓고 죄의 경중에 따라 최하 15일부터 최고 10달까지 처벌을 받은 사람들을 이곳에 수용해 놓고 하루 12시간 이상의 강제노동을 시켰습니다.

보통 한 개 군에 있는 ‘노동단련대’에 적게는 100명, 많게는 150명~200명까지 수용돼 있는데요. 이들이 모두 풀려나다 나니 사면대상의 폭이 굉장히 넓어졌다는 겁니다.

박성우 : 무슨 말인지 알겠습니다. ‘노동단련대’에 구속되었다 석방된 사람들을 빼고 나면은 순수하게 교화소에 수감되었던 사람들, 숫자가 별로 많지 않아 보이는 군요?

문성휘 : 네, 겉으로 보면 굉장히 많은 숫자 같은데 실제 순수 교화소에만 수감되었던 사람들을 보면 그리 많은 것 같지 않은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번 사면대상자들은 김정일 국방위원장 사망 이전인 12월 17일 이전에 유죄판결을 받은 대상자들만 속했다고 하는데요.

이번에 집으로 귀환하는 사면대상자들을 위해 시, 군별로 자동차와 버스들까지 동원했다고 하는데 전기사정으로 인해 지금 열차운행이 거의 중단되다 시피 했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열차로 이동시킬 경우 가뜩이나 체력이 약해질 대로 약해진 수감자들이 객지에서 사망할 수 있기 때문에 특별한 혜택으로 이런 조치가 취해졌다고 합니다.

함경북도 소식통에 따르면 회령시에서는 2월 1일 오후 3시 경에 ‘시 노동단련대’와 주변 ‘전거리 교화소’에 수감되었다가 석방되는 주민 200여명을 ‘회령국수집’에 집합시켜 놓았다고 합니다. 여기에서 시 보안서장이 나와 후계자 김정은의 사랑과 배려에 충성으로 보답해야 한다는 연설이 있었고 석방된 수감자들과 그 가족들을 대표해서 몇 명의 주민들이 김정은에게 충성서약을 하는 토론들도 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석방되는 주민들에게 한 끼 식사를 시켜 집으로 돌려보냈다고 하는데요. 노동단련대에 들어갔다가 이번 대사면 조치로 두 달 만에 석방된 한 주민은 우리 자유아시아방송과의 전화통화에서 “작은 장군님” 그러니까 이게 후계자 김정은을 빗대놓고 하는 말인데요. “작은 장군님 덕분에 ‘돼지가 장화신고 지나간 물’ 한 그릇 마시고 나왔다” 이렇게 말했습니다. 비록 고깃점은 없었어도 돼지까지 잡아서 성의를 보였다고 하고요. 또 집이 없는 주민들을 위해 협동농장 선전실들과 회령일용품공장과 같은 일부 기관건물들까지 내어 이들의 거처지(거처)를 마련해 주었다고 합니다.

박성우 : 식사도 대접을 하고, 그리고 거처까지 마련해 줬다, 과거하고 비교하면 좀 많이 달라진 것 아닙니까?

문성휘 : 그 과거에도요. 대사령, 대사면이 있을 때마다 유사한 조치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지속적이고 안정적인 생활을 보장해주지 못하다 나니 이들이 또다시 범죄의 길에 들어설 수밖에 없었는데요.

회령시의 경우 이번 대사면 석방자들에 대해 매 기관기업소들에 과제를 주어서 땔감을 마련해 주었고 또 시 여성동맹 차원에서 비닐그릇과 밥그릇 같은 생활도구들도 마련해 주었다고 합니다. 그와 함께 또 시에서 비록 강냉이라고 하지만 한 달 분의 배급도 주었다고 하고요. 나름대로 그들이 상당한 혜택을 느낄 수 있도록 적지 않은 노력을 한 것 같습니다.

또 이와 함께 주민들속에 이번 대사면 조치가 북한 건국 이래 가장 크고 대범한 조치였다는 내용들을 지속적으로 주입시키면서 이 모든 조치가 후계자 김정은의 인덕정치, 광폭정치로 하여 이루어지게 된 것이라고 선전하고 있다고 합니다.

박성우 : 그렇군요. 그런데 문제는 이번에 석방된 이들이 다 취약계층에 속해있지 않겠습니까? 이들에 대한 지속적인 배려, 그리고 보살핌, 이게 있어야 되겠는데 현재 북한의 형편에서 과연 그럴 수 있을까 이런 생각이 계속 드는 건데요. 어떻게 보십니까?

문성휘 : 네, 그러한 부분에 대해서도 상당히 조치를 취했다고 합니다. 석방된 이들 중에는 일부 가족이 해체된 사람들도 있다고 하는데요. 이들에 대해서는 기관, 기업소들마다 한사람씩 맡아서 김일성 주석의 생일 100돌이 되는 4월 15일까지 땔감을 보장해주고 특별히 보살피라는 지시가 내려졌다고 합니다.

또 이번 조치를 지켜본 주민들도 “워낙 가진 게 없어서 그렇지 상당히 노력은 하는 것 같다” 이렇게 김정은에게 후한 평가를 내리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기도 했습니다.

박성우 : 네, 상당히 노력은 하는 것 같다, 일단 김정은한텐 듣기 좋은 평가인 것 같습니다. 이게 그런데 보여주기 식의 일회성 행사여서는 안 될 것 같고요. 주민들에게 희망이 되는 지속 가능한 사업이 되길 기대해 봅니다. 자, 문 기자 오늘 얘기 잘 들었고요. 다음시간 또 기대해 보겠습니다.

문성휘 : 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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