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에서 일어나는 일이나 북한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일들을 진단하는 뉴스해설 ‘박봉현의 북한전망대’ 시간입니다. 오늘은 ‘벌목공’에 관해 이야기해 봅니다.

한국의 경상남도 남해군에 ‘독일마을’이란 곳이 있습니다. 말 그대로 독일사람들이 사는 곳입니다. 그런데 이 마을 주민은 한국인과 독일인이 거의 반반입니다. 1960년대와 70년대 외화벌이를 위해 간호사와 광부로 독일에 갔던 한국인들이 현지 독일인과 결혼해 살다가 노후에 다시 모국의 품에 돌아와 보금자리를 마련했기 때문입니다.
독일에서 피땀 흘려 자리를 잡았지만, 자나깨나 잊지 못한 고향에 대한 그리움이 2003년 독일마을을 생기게 한 원동력이었습니다. 지금 독일마을에선 30여 가구가 오순도순 평온한 새 삶을 꾸려가고 있습니다.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지만, 한국의 박정희 전 대통령 내외가 1964년 12월 10일 당시 서독의 함보른 광산에 갔습니다. 이곳에서 한국인 광부와 간호사 600여 명을 만났습니다. 박 전 대통령은 격려사에서 “광부 여러분, 간호사 여러분, 가족이나 고향 생각에 괴로움이 많을 줄 알지만, 비록 우리 생전에는 이룩하지 못하더라도 후손을 위해 번영의 터전만이라도…”하며 울먹였습니다. 광부와 간호사들도 울음을 터뜨렸습니다.
한국경제가 어려웠을 때 독일에 간 간호사 1만여 명과 광부 8천 명은 소중한 외화를 벌어다 준 애국자들이었습니다. 한국 정부와 국민은 이들의 노력을 높이 평가했습니다. 이들의 희생은 한국 경제발전에 많은 기여를 했습니다.
외국에 나가 외화벌이 일꾼으로 일하는 북한주민도 많이 있습니다. 러시아에는 약 4만 명의 외화벌이 일꾼이 있습니다. 이들 대부분이 벌목공입니다. 한국의 외화벌이 일꾼들과 달리 북한의 외화벌이 일꾼들은 북한정부로부터 희생을 인정받는 것은 고사하고 노동착취를 심하게 당하고 있습니다.
러시아에서 일하는 벌목공은 한 달에 미화 200달러 정도를 법니다. 그러나 벌목공의 손에 들어가는 돈은 70달러에 불과합니다. 노임을 받으면 거의 절반가량을 북한정부에 상납해야 하고 남은 돈에서도 35% 정도 러시아 현지 기업소와 벌목사업소에 빼앗깁니다. 북한 정부는 벌목공들의 고강도 노동 덕에 연간 미화 700만 달러를 벌어들이고 있지만, 정작 벌목공들로선 일할 맛 안 나는 구조입니다.
작업환경도 말할 수 없이 열악합니다. 김일성, 김정일의 생일만 놀고 일 년 내내 일해야 합니다. 시베리아의 혹한에도 작업은 쉬지 않습니다. 밤 9시가 넘어도 마찬가집니다. 게다가 할당량을 채우지 못한 벌목공들은 처벌을 받습니다. 창살 없는 교도소와 다를 바 없습니다.
견디다 못 해 사업소를 탈출하는 벌목공들이 속출하고 있습니다. 이들의 수가 1만여 명이나 되는 것으로 추정됩니다. 이들이 러시아 이곳저곳을 떠돌아다니고 있습니다. 그러나 벌목사업소의 당비서와 지배인들은 가족까지 러시아로 데려와 여유 있는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소위 지배인과 벌목공의 관계는 왕조시대에 맛난 음식을 먹으며 거드름피우는 양반과 손발이 부르트라 일만 하는 하인의 주종관계와 다르지 않습니다. 굳이 역사를 들추지 않아도, 현재 북한 체제만 보아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부분입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후계자인 김정은은 당 간부들에게 뚱뚱해지지 않도록 다이어트에 특별히 신경을 쓰라고 지시했다는데 정녕 몸이 부서지라 일하는 노동자들은 야위어만 갑니다. 춥고 배고프고 일이 힘들어 마약에 빠지는 사람도 있습니다. 결국, 빈털털이로 고향에 가거나 아예 현지에서 자살하는 벌목공도 있다고 합니다.
북한정부와 벌목사업소의 인권유린을 피해 북한 벌목공 두 명이 사업소를 빠져나왔습니다. 이 중 한 명은 지난 9월 미국정부로부터 난민인정을 받았습니다. 이 탈북자는 인간다운 삶을 살아보겠다는 일념으로 지금 이 순간도 미국에서 영어와 컴퓨터 학습에 열중하고 있습니다.
벌목공들의 탈출은 앞으로 지속될 것으로 보입니다. 북한의 사업소가 중국과 동남아 벌목공들에게 밀려 자리를 빼앗기고 있기 때문입니다. 보도된대로 시베리아의 열다섯 개 사업소가 다섯 개로 대폭 축소되면 적지 않은 벌목공들이 귀국하지 않을 것입니다.
북한당국이 대량 탈출사태가 발생할 것을 우려해 사업소 간부들과 보위지도요원들에게만 철수 사실을 귀띔해주고 벌목공들에겐 철저히 비밀로 한 것도 바로 이런 이유에섭니다. 그러나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릴 수는 없습니다. 귀한 외화벌이에 나선 벌목공들에게 이렇게 비인간적 대우를 하는 북한정부이니 북한에 사는 일반 주민에 대해서는 보지 않아도 불을 보듯 합니다.
RFA 자유아시아방송 박봉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