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전망대] 초고속 승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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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에서 일어나는 일이나 북한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일들을 진단하는 뉴스해설 ‘박봉현의 북한전망대’ 시간입니다. 오늘은 ‘초고속 승진’에 관해 이야기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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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8일 조명록 노동당 정치국 상무위원 겸 국방위원회 제1부위원장의 빈소를 찾아 조문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한국의 대기업 임원은 샐러리맨, 즉 ‘봉급생활자의 꽃’으로 불립니다. 일반 샐러리맨이 임원이 되는 데 걸리는 기간은 평균 22년 4개월입니다. 그러나 재벌가 후손은 부모 덕에 고속 승진합니다. 입사 후 평균 4년 8개월 만에 임원이 됩니다. 한국의 경제개혁연대가 한겨레신문과 공동으로 한국의 자산순위 상위 30대 기업의 재벌 3-4세 72명을 분석한 결과 밝혀진 내용입니다.

일반 봉급생활자로선 재벌가 후손들의 고속승진에 배 아파 할 수 있지만, 아무리 재벌가 자손이라 해도 입사하자마자 도깨비 방망이 두드리듯 며칠 몇 달 만에 뚝딱 임원이 되는 게 아닙니다. 회사를 잘 이끌어가려면 최소한의 경영자 수업기간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대기업일수록 경영자 수업은 까다롭습니다.

특히 한국 최고기업 삼성의 재벌 3세 이재용씨는 할아버지 이병철, 아버지 이건희에 이어 삼성그룹을 이어받기 위해 혹독한 경영수업을 받았습니다. 그는 입사 후 9년 4개월이 돼서야 임원이 됐습니다.

한 기업을 이끄는 경영자 수업이 이렇다면, 한 나라를 책임지는 지도자 수업은 어떻겠습니까? 자유민주국가에서 나라의 최고지도자를 꿈꾸는 사람들은 지도자 수업을 차곡차곡 밟아갑니다. ‘정치 계단’을 하나씩 올라갈 때마다 그동안 쌓은 업적을 토대로 국민의 냉엄한 심판을 받습니다. 이 과정을 통해야 국민으로부터 진정한 최고지도자로 선택될 수 있습니다.

자유민주국가의 지도자뿐 아니라 독재자라도 지도자 수업의 중요성을 부인하거나 토를 달지는 않을 겁니다. 그런데 북한의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삼남 김정은에게 권력을 승계하는 과정은 타의 추종을 불허합니다. 북한 주민이나 국제사회의 눈치를 전혀 보지 않고 도도하게 ‘제 길’을 가고 있습니다.

김정일 위원장은 단 하루도 군대생활을 하지 않은 27살의 삼남 김정은을 지난 9월 27일 대장으로 만들었습니다. 아닌 밤중에 홍두깨식 인사에 놀라지 않은 사람이 없었습니다.

군 생활을 수십 년 해도 대장이 되는 것은 하늘의 별 따기입니다. 김정일 위원장이 애당초 김정은을 대장으로 만들려는 복안이 있었다면 군에 들어가 적어도 몇 년은 지내도록 해야 조금이라도 명분이 서질 않겠습니까?

김정은의 초고속 승진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대장 승진 하루 만인 9월28일 노동당 대표자회에서 당 중앙군사위원회 부위원장 겸 당 중앙위원회 위원으로 전격 발탁됐습니다. 김정일 위원장은 김정은을 대장에 머물게 하지 않고 정치권력을 휘두를 수 있는 당 중앙의 권부로 끌어올렸습니다.

그래도 당시 김정은이 김정일 다음가는 권력자는 아니었습니다. 전문가들의 분석으로는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조명록 국방위원회 제1부위원장,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 최영림 내각총리, 리영호 군총참모장에 이어 권력 서열 6위였습니다.

그런데 조명록이 사망하고 10월 7일 발표된 국가장의위원회 명단에서 김정일 위원장 다음에 김정은이 등장했습니다. 권력서열상 앞서 있던 김영남, 최영림, 리영호를 제쳤습니다. 김정일 위원장은 조명록의 사망을 계기로 실질적인 서열을 매기는 국가장의위 명단에서 김정은을 2위로 슬그머니 올렸습니다. 느닷없는 대장 승진 후 41일만입니다.

며칠 전 김정일 위원장이 조명록 장례식에서 고개를 숙이고 고인의 명복을 비는 사진이 공개됐습니다. 겉으로는 엄숙하고 비통한 모습입니다. 그러나 속으로는 회심의 미소를 지었는지 모를 일입니다. 자식 김정은으로의 권력승계를 순탄하게 해주었으니 말입니다.

RFA 자유아시아방송 박봉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