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C:
북한에서 일어나는 일이나 북한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일들을 진단하는 뉴스해설 ‘북한전망대’입니다. 이 시간엔 ‘두 종류의 강제송환’에 관해 이야기해 봅니다.
얼마 전 칠흑 같은 밤에 일가족을 포함한 대여섯 명이 국경을 넘어 이웃 나라로 들어갔습니다. 이들이 고향을 떠나 몰래 국경을 넘은 것은 먹고 사는 게 너무 버거워 입에 풀칠할 수 있고 기회가 많은 이웃 나라에서 새 삶을 살기 위해서였습니다. 자국이나 이웃 나라의 공식 허가를 받지 않고 무단으로 국경을 넘느라 국경경비대에 들킬까 조바심을 냈습니다. 어린 자녀를 데리고 국경을 넘은 부모는 낯선 이웃 나라에서 적응하는 게 힘들더라도 자식들만큼은 제대로 먹이고 입히고 키워보겠다는 일념에서 야밤에 월경을 결행했습니다.
그런데 이들이 불행하게도 이웃 나라 국경경비대의 감시망에 걸리고 말았습니다. 하기야 국경경비대는 이웃 나라 사람들이 자국 영토에 불법으로 들어오는 것을 막는 임무를 띠고 있으니, “살아야겠다”는 의지가 아무리 강해도 국경을 넘는 게 ‘식은 죽 먹기’는 아니지요. 일단 국경을 넘었다 해도 국경지역을 멀리 벗어나기 전에 잡히는 경우도 많습니다. 국경경비대에 잡힌 이들은 일단 국경지역의 보호소에서 조사를 받은 후 본국으로 송환됐습니다. 이들이 전혀 귀국을 원하지 않았으므로 강제송환이었습니다. 북한을 떠나 중국으로 갔다가 붙잡힌 탈북자들의 이야기처럼 들리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국경경비대에 체포돼 강제 송환된 사람들은 중남미 출신입니다. 그리고 국경경비대는 미국사람들입니다. 중남미 사람들이 국경을 넘어 미국 땅에 들어갔다가 잡혀 강제 송환된 것입니다. 이러한 강제 송환은 송환 과정에서 월경자들이 신체적 상해를 입어 간헐적으로 문젯거리가 되지만 국제적 논란을 일으키진 않습니다. 강제송환이 인권문제를 일으킬 수 있지만 이들 사이엔 이런 문제도 그다지 드러나지 않습니다. 미국이 불법 월경한 중남미 사람들을 강제 송환해도 이들이 자국에서 별다른 처벌을 받지 않기 때문입니다.
월경자들이 중국에 의해 강제 송환된 탈북자들처럼 북한에 당도해 교도소에 갇히고 고문을 당하고 심지어 처형되는 일은 없습니다. 만일 이들 월경자가 강제 송환됐을 때 고국에서 교도소에 가고 고문을 당하는 게 확실한 대도 미국이 이들을 무덤덤하게 돌려보내겠습니까? 국경을 불법으로 넘었다고 해도 이들을 사지로 몰아낼 수는 없는 노릇이니 말입니다. 그러나 탈북자들이 북한으로 보내졌을 때 어떤 고초를 겪을지 잘 아는 중국정부는 북한 정부에 자랑이라도 하듯 탈북자들을 가차 없이 내몰고 있습니다.
중남미 정부는 미국으로 넘어가는 자국민을 오히려 외화벌이 일꾼으로 여깁니다. 이들이 미국에서 열심히 일해 번 돈을 고향의 가족에게 보내면 개인의 살림은 물론 나라 경제에도 득이 되면 됐지 손해날 일이 없는 까닭이지요. 북한도 다르지 않습니다. 고국을 떠난 탈북자들이 고향의 가족과 친지들을 위해 알토란 같은 돈을 보내지 않습니까? 끼니 걱정하는 북한 주민에게 일용할 양식을 구할 수 있게 하고 파탄지경에 빠진 북한 경제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 겁니다. 물론 탈북자의 지원을 받는 북한 주민들이 마을 사람들보다 생활이 나아지면서 이웃 간에 위화감이 생길 수 있습니다. 이를 북한당국이 우려하는지 모르겠습니다. 북한당국은 “가족 중 누가 탈북하면 북한에 남아 있는 가족이 먹고 살 만하게 된다더라”는 소문이 퍼져 탈북이 증가할 것을 염려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중남미 정부는 자국민이 미국으로 수없이 불법월경을 해도 개의치 않습니다. 붙잡혀 강제 송환된 사람들은 고향 집에서 며칠 쉬었다가 다시 국경을 넘습니다. 이런 일을 여러 번 반복해도 누가 뭐라 하지 않습니다. 그러니 미국의 강제송환을 겁낼 리 없지요.
북한 주민들은 먹고 살길을 찾아 압록강, 두만강을 건너 중국으로 갑니다. 중남미 사람들도 보다 나은 삶을 위해 미국으로 불법 월경합니다. 미국은 월경한 중남미 사람들을 강제 송환합니다. 중국도 불법 월경한 탈북자들을 강제 송환합니다. 미국이나 중국은 앞으로도 강제송환을 계속할 겁니다.
그러나 미국의 강제송환은 공포를 수반하지 않습니다. 헌데 중국의 강제송환은 공포 그 자체입니다. 월경자로서는 미국의 강제송환이 또 다른 시도를 위한 경험이지만, 중국의 강제송환은 ‘죽음에 이르는 길’이나 마찬가집니다. 실제 지금 이 순간, 30여 명의 탈북자가 중국정부에 의해 강제 송환될 위기에 처해 있습니다. 그러니 국제사회가 중국정부의 강제북송을 반인륜적이고 비인도적인 처사라며 비난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더욱 더 근본적인 문제는 어디에 있을까요? 북한 정부가 중남미 정부처럼 월경하다 잡혀 송환된 사람들을 벌하지 않으면 강제송환이란 말은 섬뜩하게 들리지 않을 겁니다. 북한 정부가 탈북자를 탈북 전이나 후나 똑같이 대한다면 중국정부가 탈북자를 강제 송환한다고 해도 국제사회는 시큰둥해할 겁니다.
그러나 북한은 탈북자를 조국을 버린 배신자라고 쏘아붙입니다. 강을 건너는 탈북자의 등에 총을 겨눕니다. 탈북자가 송환되면 기다렸다는 듯 호되게 벌합니다. 일벌백계의 효과를 노리고 있습니다. 북한으로선 강제 송환된 탈북자를 엄벌해야만 하는 피치 못할 사정이 있나 봅니다. 탈북자를 처벌하지 않았을 때 북한 주민들이 너도나도 보따리를 싸 들고 나라를 떠나면 어쩌나 하는 걱정에서 그런 것은 아닌지요. 시대착오적인 북한 정권이 아무리 철권통치를 하더라도 다스릴 국민 없이는 ‘종이 호랑이’에 불과하다는 진리를 아는가 봅니다.
RFA 자유아시아방송 박봉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