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다운 법 집행

워싱턴-박봉현 parkb@rfa.org
2013.12.16
trial_execution_305 북한은 2013년 12월 12일 국가안전보위부 특별군사재판을 열어 2인자로 통하던 장성택에게 '국가전복음모죄'로 사형을 선고하고 곧바로 처형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앵커: 북한에서 일어나는 일이나 북한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일들을 진단하는 뉴스해설 ‘북한전망대’입니다. 이 시간엔 ‘북한다운 법 집행’에 관해 이야기해 봅니다. 박봉현 기자입니다.

수십 년간 인권을 짓밟아 온 정부에 반기를 들고 투쟁하다 27년간 교도소 생활은 한 뒤 대통령까지 한 남아프리카공화국의 넬슨 만델라가 12월 5일 95세로 세상을 떠났지만, 인권이 보장되는 세상을 향한 그의 외침은 이 땅에 고스란히 남았습니다. 만델라는 자신을 혹독하게 괴롭힌 상대조차 증오하지 않았고, 대통령이 돼서도 권력을 남용하지 않고 준법절차를 존중했습니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물론이고 북한의 동맹국인 쿠바의 최고지도자 라울 카스트로 등 100여 명의 각국 전 현직 국가수반이 만델라의 장례식에 참석해 평생 인권을 위해 싸운 그의 열정을 기렸습니다.

‘인권’ 하면 북한이 빠질 수 없습니다. 최근 북한은 장성택과 그 측근 처형으로 스산한 분위기입니다. 반혁명 세력 운운하며 몰아쳐 대는 ‘숙청 한파’에 곳곳에 포진해 있는 소위 ‘장성택 사람들’은 잔뜩 움츠러들었습니다. 주민들은 북한을 호령하던 장성택이 왜 단숨에 날아갔으며 그 지지세력을 솎아내는 과정에서 얼마나 무자비한 일이 벌어질까 하며 수군대고 있다고 합니다.

북한은 장성택을 ‘국가전복음모’란 죄목으로 처형했지만, 그의 숙청에 대한 진실은 드러나지 않고 그럴듯한 설만 난무합니다.

장성택이 부인 김경희에게 전화로 김정은을 무시하는 듯한 발언을 한 것이 도청돼 괘씸죄로 숙청됐다는 얘기가 있습니다. 장성택의 측근이 지휘하는 국방위원회 산하 54국이 군부대에 물자를 공급하라고 한 김정은의 지시를 무시해 그리 됐다는 견해도 있습니다.

김정일이 장성택 제거를 유언에 남겼다는 설이 있습니다. 비슷한 맥락에서, 김경희가 자신의 사후에도 ‘김씨 왕국’이 유지되도록 장성택을 제거하는 데 나섰다는 주장이 있습니다. 김정은의 형 정철과 여동생 여정, 이복누이인 김설송과 그의 남편 신복남이 이번 숙청에 간여했다는 얘기도 있습니다.

군부의 반발로 장성택이 처형됐다는 설이 있습니다. 장성택이 확고부동한 2인자 자리를 놓고 최룡해 군 총정치국장과 권력다툼을 벌이다 밀렸다는 것입니다. 장성택과의 권력다툼에서 밀렸던 당 조직지도부가 반격하고 여기에 국가안전보위부와 보위사령부가 가세했다는 분석도 있습니다.

장성택이 건설, 통신 등 분야에서 수십억 달러에 달하는 이권을 거머쥐자 김정은이 이를 빼앗기 위해 처형했다는 설도 있습니다. 장성택이 자본주의에 빠져 고급 향수를 사들이고 술판을 벌이는 등 방탕하게 지내 화를 자초했다는 의견도 나왔습니다. 세계 주요 나라에 있는 북한의 식당 '해당화'를 통한 광범위한 비리로 숙청됐다는 시각도 있습니다. 은하수 관현악단 단원들을 기쁨조로 활용하며 부적절한 관계를 맺은 게 화근이라는 얘기까지 나돌았습니다.

장성택 숙청 이유와 관련해선 이처럼 다양한 해석이 있지만, 확실한 것은 장성택과 최측근인 당 행정부의 리용하 제1부부장과 장수길 부부장의 처형입니다. 이들은 형식적인 재판에서 전광석화처럼 판결을 받고 제대로 항변도 못한 채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습니다.

북한 당국이 밝힌 대로 이들이 ‘반당 반혁명 행위’를 범했다고 하더라도 적절한 절차를 거쳐 법 집행을 했어야 옳습니다. 그러나 북한은 무엇이 그리 급했는지 이들을 돌풍처럼 순식간에 처결했습니다. 정상적인 법질서가 잡힌 나라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죄를 지었으면 법의 절차에 따라 재판을 받고 충분한 심리를 거쳐 판결이 내려져야 합니다. 하지만, 북한에서는 최고권력자의 말이 곧 법이니 이런 초 법적인 집행이 버젓이 자행되고 있는 겁니다. 인권을 무시하는 너무도 ‘북한다운 법 집행’입니다.

장성택과 그 측근들이 무자비하게 철퇴를 맞는 모습을 본 간부들도 언제 어떤 사유로 ‘북한다운 법 집행’의 대상이 될지 모릅니다. 북한은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인권이 무시되는 사회입니다. ‘인권 유린의 칼날’은 일반 주민뿐 아니라 고위 간부에까지 겨누어져 있습니다. 조직폭력배 사이에서나 있을 법한 ‘폭력적 권력’이 군림하는 사회입니다.

김정은이 지금은 칼자루를 쥐고 맘대로 휘두르고 있습니다. 그러나 ‘칼로 흥한 자 칼로 망한다’라고 했습니다. ‘권력을 함부로 쓰지 말라’는 만델라 전 남아프리카공화국 대통령의 당부가 저 멀리 평양에도 닿았으면 합니다.

RFA 자유아시아방송 박봉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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