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엔 지원 의료기구,약품시장서 암거래

워싱턴-노정민 nohj@rfa.org
2015.04.20
blood_pressure_305 유엔 지원품인 수동 혈압계. 취재협력자는 의료기구가 유엔 지원품이라고 설명했지만, 다른 해외 단체의 지원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2014년 10월 촬영)
사진-아시아프레스 제공

북한에 계신 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북한을 중심으로 미국과 한국 등 국제사회에서 일어난 일들을 통해 북한의 정치와 경제, 사회를 엿보고 흐름과 의미를 살펴보는 노정민의 <라디오 세상>입니다.

노정민의 <라디오 세상>, 오늘 순서 시작합니다.

- 유엔이 북한에 지원한 의료기구와 약품들이 북한의 암시장에서 팔리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일본의 언론 매체인 ‘아시아프레스’가 혈압계, 청진기, 주사기 등 시장에서 팔리고 있는 의료기구와 약품 가격을 조사해보니 유엔에서 지원한 것이 대부분이었는데요,

“의료 체계가 무너졌고, 100% 자기 부담으로 치료할 수밖에 없는데, 일단 돈이 있으면 치료받을 수 있는 것을 장마당이 보장하는 구조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유엔이 지원한 의료물품이 암시장에서 거래되는 데는 형식에 불과하고 제 역할을 하지 못하는 북한의 ‘무상치료제’ 정책 때문인데요, 의약품이 턱없이 부족한 데다 당국이나 병원 등이 의료 서비스를 충분히 제공하지 못하다 보니 유엔을 통해 들어온 의료물품을 통해 환자가 치료에 필요한 모든 것을 직접 부담하는 한편, 불법 의료행위까지 부추기고 있습니다.

이 시간에 다룰 <오늘의 초점>입니다.

- 시장에서 거래되는 의료기구, 유엔 지원 유출품

- 형식적인 ‘무상치료제’로 의료물품 부족한 북 주민

- 운영 안 되는 병원, 장마당에 팔 수밖에 없는 구조

- 암시장 의료기구, 불법 의료행위 부추겨

- 출산 돕는 의료기기로 개인 불법 낙태 수술 성행

- 유엔, 최근에도 북한에 의료지원 집행


유엔이 북한에 지원한 의료기구와 약품들이 북한의 암시장에서 팔리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일본의 언론 매체인 ‘아시아프레스’에 따르면 북한 내부의 취재협력자가 지난해 10월, 북한 북부 지역의 시장에서 팔리고 있는 의료기구와 약품 가격을 조사해보니 주사약과 여성 생리용품을 제외한 모든 의료기구가 유엔으로부터 지원받은 의료기기인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유엔이 북한 주민의 치료에 사용하라고 보낸 의료 물품들이 암시장에서 팔리고 있는 겁니다. 하지만 다른 해외 단체의 지원품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데요,

‘아시아프레스’가 지난 17일 자유아시아방송(RFA)에 제공한 자료에 따르면 ‘가정집에서 출산에 쓰이는 도구’란 제목으로 2014년 10월 14일 현재 의료기구 가격이 적혀 있습니다. 이는 취재협력자가 시장에서 팔리고 있는 의료 기구를 직접 조사한 겁니다.

물품 내용으로는 청진기, 혈압계, 주사기 5mL와 20mL, 체온계, 핀센트 등을 비롯해 페니실린과 레바놀, 위생대 등이 적혀 있는데요, 이중 청진기와 혈압계, 주사기와 주사기 케이스, 체온계, 핀센트, 겸자 등에는 ‘유엔’이라고 쓰여있습니다. 유엔에서 지원한 물품이라는 설명입니다.

실제로 지난해 4월, ‘유엔인구기금’은 중앙긴급구호기금으로 북한 산모를 위한 응급약과 출산용품 등을 지원한 바 있습니다. 당시 지원품은 아기를 낳을 때 필요한 응급 처방약과 출산용품 등이었는데, 이 중에는 항생제와 일회용 주사기도 포함됐습니다.

이밖에도 페니실린, 레바놀 등 주사약과 위생대는 모두 국산, 즉 북한산인데요, ‘청진기’와 ‘혈압계’는 북한 돈으로 각각 3만5천 원, ‘체온계’와 ‘주사기 케이스’는 1만3천 원, ‘겸자’는 1만3천500원에 팔렸습니다. 이밖에도 ‘페니실린’은 650원, 레바놀은 1천500원, 위생대 10개짜리가 1천800원, 핀센트가 8천 원 등의 가격을 나타냈는데요, 일반 북한 주민이 개인적으로 구매하기에 결코 싼 가격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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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프레스’ 오사카 사무소의 이시마루 지로 대표의 설명입니다.

[Ishimaru Jiro] 이같은 의료 도구나 약, 생리용품 등은 기본적으로 병원에 납품되지 않습니까? 하지만 병원에 근무하는 의사나 간호사, 직원들은 거의 제대로 생활할 수 있는 수준으로 월급을 받는 것도 아니고, 대부분 의료 서비스 노동자들은 배급도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구조적으로 병원 관계자가 병원의 지원물품이나 국산 물품 등을 장마당에 팔 수밖에 없는 구조입니다.

북한 순천 제약공장에서 생산된 '페니실린' (2014년 10월 촬영). 사진-아시아프레스 제공
북한 순천 제약공장에서 생산된 '페니실린' (2014년 10월 촬영). 사진-아시아프레스 제공

북한은 ‘무상치료제’를 의료·보건 정책의 기초로 삼고 있습니다. 북한의 ‘사회주의 헌법’ 제56조에는 “국가는 전반적 무상치료제를 공고·발전시키며 의사담당구역제와 예방의학 제도를 강화하여 사람들의 생명을 보호하며 근로자들의 건강을 증진 시킨다”라고 기록돼 있습니다.

특히 '무상치료제'는 북한이 오래전부터 자신의 체제·제도에 대한 우월성을 선전하는데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단어인데요, 하지만 '사회주의 무상치료제'는 북한의 심각한 경제난과 함께 이미 사라져버렸고, 치료 제도는 이제 형식만 존재하고 있습니다.

지금도 북한은 무상치료제를 유지하고 있지만, 의약품이 턱없이 부족한 데다 병원이 처방만 할 뿐 의료 서비스를 충분히 제공하지 못하다 보니 환자가 치료에 필요한 모든 것을 부담하는 실정입니다.

실제로 일부 고위층을 제외한 대부분 주민은 모두 돈을 주고 약을 사 먹어야 하고, 병원에 입원해도 의사에게 대가를 지급해야 하는데요, 국가에서는 약을 판매하지 않을 뿐 아니라 개인의 약 판매까지 단속하고 있습니다.

또 병원은 혈압계와 체온계 등 초보적인 의료도구조차 갖추고 있지 못해 치료는커녕 환자의 병이 무엇인지조차 제대로 진단할 수 없는 상황인데요, 이 때문에 북한 주민은 어쩔 수 없이 시장에서 복용방법도 제대로 확인되지 않은 약을 몰래 사 먹다 보니 목숨까지 잃는 경우도 발생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경제난에 따른 식량 부족으로 영양실조까지 겹쳐 북한 주민의 보건·의료 실태는 매우 열악한 상황입니다.

[Ishimaru Jiro] 의료행위는 생명과 안전에 관계되는 분야이기 때문에 규율을 엄격하게 적용해야 하지 않습니까? 그렇게 하면 경비가 많이 들고 값이 비싸지니까, 싸게 진료해주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싸게 받으려니 열악한 치료밖에 못 받고, 결국 위험한 데다 위생에도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또 의사의 입장에서는) 병원에서 치료하는 것보다 몰래 치료해주는 것이 직접적인 수입이 되니까, 일반 가정집에서 출산을 도와주거나 수술까지 성행하는 거죠.

‘아시아프레스’에 따르면 유엔이 지원한 의료기구가 시장에서 판매되는 것과 관련해 2013년에 탈북한 30대 여성은 “앞서 언급한 의료기구가 집에서 출산할 때 쓰이기도 하지만, 불법 낙태 시설에 더 많이 쓰일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북한 주민, 특히 여성들이 고난의 행군을 거치면서 어려운 생활형편 탓에 아이를 많이 낳지 않으려 하는데, 북한 당국은 출산을 장려하며 별다른 병이 없는 경우 원칙적으로 낙태 시술을 해주지 않기 때문에 개인 집에서 몰래 불법 낙태수술을 받는다는 겁니다.

유엔 지원품인 여성용 피임기구. (2014년 10월 촬영). 사진-아시아프레스 제공
유엔 지원품인 여성용 피임기구. (2014년 10월 촬영). 사진-아시아프레스 제공

“특히 불법으로 낙태수술을 받는 경우 시술하는 사람이 의사자격증이 없거나 시술 기구가 소독돼 있지 않아 수술을 받은 여성 중 사망자가 발생하는 경우도 목격했다”고 이 탈북여성은 덧붙였는데요, 최근 자유아시아방송(RFA)이 접촉한 자강도의 소식통은 북한 당국이 불법적인 낙태 시술을 일절 금지하고 있다고 전했습니다.

물론 임산부 가운데에는 병원에 가도 필요한 약품이나 시설이 없기 때문에 개인이 불법으로 치료하는 집에서 출산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런 가운데 장마당에서 암거래로 팔리는 의료 기구는 북한 내 불법 의료행위를 부추기고 있는데요, 병원이 아닌 개인 집에서 불법 의료행위를 하려는 사람이 장마당에서 유엔 물품, 또는 국산 의료기기를 구매해 돈벌이에 나서고 있는 겁니다.

[Ishimaru Jiro] 혈압계는 집마다 필요한 것이 아니지 않습니까? 이런 것으로 불법 진료를 하는 사람이 따로 있다는 거죠. 개인이 갖고 있는 것이 아니라 암거래 시장에서 판매하는 것을 구매해서 의사들이 부업으로 돈벌이를 하는 거죠. 의료제도가 무너지면서 불법 의료행위를 하는 사람에 대한 도구라고 말할 수 있을 겁니다.

유엔은 올해도 북한을 지원하는 사업을 위해 배정한 중앙긴급구호기금 200만 달러를 통해 북한에 식량과 보건 지원을 집행했습니다. 특히 보건 분야에 지원된 38만 달러는 취약계층이 많은 지역의 임산부와 신생아의 의료지원에 쓰이는데요,

이렇게 지원된 유엔의 의료기구와 의약품 등이 북한 암시장으로 흘러들어 가면서 의료혜택을 받지 못하는 북한 주민에게 팔릴 뿐만 아니라 제대로 검증되지 않은 불법 의료행위까지 부추기고 있습니다. 그리고 배경에는 형식만 남은 ‘무상치료제’ 정책이 있는데요,

[Ishimaru Jiro] 북한에서 자랑했던 무상의료·무상교육 등이 사실상 유상화가 됐고, 제도만 남아있습니다. 국민이 부담하지 않으면 아무런 교육·의료 서비스를 받지 못하는 상황입니다. 말을 들어보면 북한은 지금도 무상의료제가 아닙니까? 그런데 사실상 병원이 운영되지 못하기 때문에 병원에 가도 진단만 받지, 치료를 받지 못하는 거예요. 의료 체계가 무너졌고, 100% 자기 부담으로 치료할 수밖에 없는데, 일단 돈이 있으면 치료받을 수 있는 것을 장마당이 보장하는 구조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북한 체제가 무상치료제가 무너지고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현실에 맞게 새로운 의료체계를 세워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처럼 사실상 북한의 ‘무상치료제’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하면서 많은 북한 주민이 제대로 된 치료를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북한 당국은 아직도 의미 없는 복지 제도를 고집하고 있는데요, '무상치료제'의 허구와 붕괴를 인정하고 북한 주민의 건강과 치료에 필요한 현실적인 의료·보건 제도가 하루빨리 수립되기를 기대해 봅니다.

노정민의 <라디오 세상> 오늘 순서는 여기서 마칩니다. 지금까지 진행에 RFA 자유아시아방송, 노정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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