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 속 감동적 삶과 사랑 ‘Fading Away’

워싱턴-노정민 nohj@rfa.org
2014.07.24
Fading_Away_Director_305 영화 ‘Fading Away’를 연출한 Christopher H.K Lee 감독.
RFA PHOTO/ 노정민

북한에 계신 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북한을 중심으로 미국과 한국 등 국제사회에서 일어난 일들을 통해 북한의 정치와 경제, 사회를 엿보고 흐름과 의미를 살펴보는 노정민의 <라디오 세상>입니다.

지난 23일, 미국 존스홉킨스대 국제관계대학원 산하 한미연구소에서는 ‘Fading Away'란 기록영화가 상영됐습니다.

이 영화는 한국전쟁을 겪은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데요, 피난을 떠나거나 입대를 하면서 가족과 헤어져야 했던 사람들, 죽음보다 추위와 배고픔이 더 무서웠던 사람들, 그리고 전쟁 속에서도 사랑을 꽃피웠던 사람들이 영화의 주인공들입니다.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잊혀가는 ‘6․25 한국전쟁’, 전쟁에서 극적이고 감동적인 삶의 드라마를 경험한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 영화 ‘Fading Away'의 상영 현장을 전해드립니다.

- 한국전쟁 겪은 평범한 16명의 이야기

- ‘두려움’, ‘그리움’, ‘사랑’, ‘희망’ 등 삶의 이야기 조명

- 점점 잊혀가는 ‘6․25전쟁’, 아버지․어머니의 이야기

- 존스홉킨스대 SAIS에서 ‘Fade Away' 상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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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Christopher Lee] 제목같이 ‘Fading Away'라는 것은 '잊히지 말자'는 의미에서 지금 역사도 잊혀 가고, 관심도 잊혀 가고, 연세 드신 분들이 많이 돌아가셨기 때문에 (한국전쟁을) 기억하지는 목적으로 제목을 짓고, 한국전쟁을 배경으로 했지만, 전쟁에 관한 fact가 아니라 전쟁을 겪은 그 시대를 살았던 어머니, 아버지...가족을 그리워하는 주제로 만든 영화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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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박유진] 사방에서 포 터지는 소리, 사람 죽는 아우성 소리, 엄마 아빠 찾는 소리, 비행기가 폭격하는 소리...피난민들이 보따리와 구루마에 짐을 가져오다가 폭격에 맞아 죽고... 이런 사람 수없이 봤어요. 그때 어린 마음에 13살짜리가 뭘 압니까? 두려움이 엄습해왔어요. 나도 저렇게 죽으면 어떡하나?

6․25 한국전쟁을 체험한 아버지, 어머니들의 이야기, ‘Fading Away'는 13살 때 전쟁을 경험한 박유진 할아버지의 이야기로 시작됩니다. 전쟁이 발발하자 ‘너만은 살아야 한다’는 어머니의 권유에 따라 홀로 피난길에 오른 박유진 할아버지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6․25전쟁을 기억하는 16명의 다른 인물들이 당시 경험하고 기억했던 전쟁의 참혹함과 힘들고 어려웠던 피난 생활의 이야기를 생생하게 전해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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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의 시작과 함께 아버지가 인민군의 총에 숨진 비극부터 피난길 양옆으로 수북이 쌓여 있는 시신들, 피난을 떠나기 위해 기차의 지붕에 올라탔다가 터널을 지나면서 대부분 숨진 끔찍한 이야기, 인민군을 피해 정착한 남쪽 부산에서 구걸부터 시작해 구두닦이, 식당 종업원, 모판 장사, 심지어 윤락 여성으로 일하며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야 했던 삶의 고단함까지 할아버지, 할머니들의 전하는 전쟁 이야기는 어디서도 쉽게 들을 수 없는 가슴 아픈 역사였습니다.

[영화: 박유진] 누나, 친구와 함께 간 부산은 낯설고 무섭고, 정말 사막과도 같은 그런 곳이었는데, 모든 것이 낯설고 어렵고 이상했어요. 어린 나이에 왜 여기에 사람이 많은가?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아무것도 없었어요. 정말 전쟁이라는 것을 겪어보지 못한 사람들은 느껴보지 못하고 생각지도 못하고, 그 험한 속에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를 생각지도 못한 사람이 피난민 중에 대다수였을 거예요.

그리고 증언과 함께 영화에 사용된 당시 기록 사진과 영상 등은 한국전쟁이 얼마나 끔찍했는지를 그대로 보여주기에 충분했는데요,

이 영화를 연출한 크리스토퍼 리 감독은 영화 제작을 위해 전쟁을 겪은 이민자들을 만나 보니 “연속극보다 훨씬 극적이고 감동적인 드라마를 갖고 있었다”고 말했습니다. 또 이 영화의 목적도 우리 아버지, 어머니들이 나누지 못한 한국 전쟁 이야기를 털어놓는 데 있습니다.

[감독: Christopher Lee] 한국 전쟁을 모르는 사람은 없더라고요. (전쟁을 겪은) 그 세대가 돌아가셨지만, 다음 세대가 아버지를 기억하면서 많이 알고 있어요. 저희가 일부러 대학을 가는 이유도 학생들에게 교과서를 통해 fact를 외우는 것보다 할아버지, 할머니 같은 분들의 증언을 통해 들을 수 있게 하려는 목적도 있고, 지역 사람들에게 보여주기 위한 목적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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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속 할아버지, 할머니들의 이야기는 단지 전쟁의 참상과 피난길의 어려움만을 전한 것은 아닙니다. 국군으로, 또는 여군으로 입대해 당당히 인민군과 맞서 싸운 이야기도 생생합니다.

트럭을 타고 작전을 수행하던 도중 대전차지뢰를 밟아 죽을뻔한 이야기, 부상자를 치료할 때 마취제가 없어 환자에게 독한 술을 먹이고 수술을 했던 여군의 이야기에는 관객 모두가 집중하느라 숨소리도 들리지 않았습니다.

또 전쟁 가운데 남녀 간 사랑의 감정이 싹트고, 정전과 함께 결혼에 성공한 ‘러브 스토리’, 특히 순진했던 할머니의 당시 첫날밤 이야기에는 관객들이 웃음으로 화답했는데요, ‘한국 전쟁 당시 우리 아버지, 어머니의 삶이 그랬구나!’라는 것을 관객들이 마음으로 이해할 수 있었던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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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Christopher Lee] 저도 1.5세로서 어렸을 때 미국에 왔는데 역사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거죠. 전쟁이 왜 났는지 모르고, 통일이 왜 안 됐는지 궁금하지 않았어요. 그런데 우리가 부모 세대가 되다 보니 ‘학생들은 어떻게 생각하는가?’가 중요해서 학생들의 의견과 관심을 모아 같이 만들었어요. 그런데 자신의 할머니, 할아버지 같은 분의 이야기니까 처음부터 끝까지 관심 있게 보더라고요.

Christopher Lee 감독이 영화 상영 이후 관객들과 질의응답을 하고 있다. RFA PHOTO/ 노정민
Christopher Lee 감독이 영화 상영 이후 관객들과 질의응답을 하고 있다. RFA PHOTO/ 노정민

이렇게 영화는 전쟁 발발부터 피난 생활, 전쟁에 관한 기억, 군 복무, 전쟁 속에서 싹튼 사랑 등 다양한 주제로 전개됩니다. 그리고 영화의 마지막은 정전 60년이 지난 오늘날, 자신을 먼저 떠나보낸 어머니를 그리워하는 박유진 할아버지의 눈물이 관객들의 눈시울을 뜨겁게 만들었는데요,

[영화: 박유진] 3~6개월이면 다시 만난다는 약속이 언 60년이 지난 오늘, 그래도 옛날로 돌아가서 ‘엄마’, ‘엄마’... 하고 부를 때 엄마는 ‘그래, 엄마 옆에 있다.’. 이 소리가 듣고 싶었어요. 부르고 또 불러도 잊을 수 없는 엄마~!

점점 우리의 기억 속에서 잊혀가는 관심과 역사, 6․25 한국 전쟁. 이 전쟁으로 944만 명 이상의 남한 국민, 157만 4천 명의 미국인이 숨지거나 다쳤고, 2만 9천 명이 포로로 붙잡히거나 실종됐습니다. 또 한국 전쟁은 767만 명의 이산가족을 만들었는데요, 오늘날 한국과 미국, 또 북한에서는 한국 전쟁을 얼마나 기억하고 있을까요?

이날 존스홉킨스대학에는 미국에서 자란 젊은이부터 한국 전쟁을 경험한 세대까지 다양한 연령층이 참석해 영화를 관람했습니다. 관람객들은 나이와 세대를 떠나 한국 전쟁은 모두에게 반드시 기억돼야 한다는데 공감했는데요,

[윤명자] 저도 이 세대입니다. 저는 큰 기대를 하고 왔습니다. 각 방면에 계신 분들이 좋은 이야기를 해 주셨는데, 전혀 듣지 못하고 상상하지 못했던 이야기를 들었고요, 전쟁 당시 사진을 많이 보여줘서 저도 기억이 많이 희미해졌지만, 그런 기억이 새로 떠올랐습니다. 전쟁이라는 것은 아름다운 기억이 아니니까 잊혀가는 것을 크게 괴로워할 필요는 없지만, 그러나 그 전쟁이 일어났던 배경과 그 전쟁 이후 어떠한 결과가 나왔다는 것을 역사 속에서 배워서 - 젊은 사람들이 앞으로 나라를 지킬 사람들이니까 - 깊이 생각해봤으면 좋겠어요.

[크리스챤 테이] 저는 한국계 미국인입니다. 매우 감동적이었고, 제가 상상하지 못했던 비극적이고 흥미로운 이야기를 많이 접할 수 있었습니다. 저는 한국 전쟁이 언제 일어났는지 알고 있는데요, 한국 전쟁은 한국 역사에서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에 최소한 한국 전쟁에 관해, 또 당시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등은 알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영화 제목 ‘Fading Away'는 '점점 사라지다’라는 뜻을 갖고 있습니다. 이는 젊은 세대들에게 6․25 한국 전쟁이 잊혀가고 있음을 대변하는지도 모릅니다. 실제로 지난 6월 한국에서 성인남녀를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도 20대의 절반이 정확한 한국전쟁의 발발시기를 모를 정도로 6․25의 비극은 더는 알고 싶지 않은 사건이 됐는데요,

[감독: Christopher Lee] ‘Fading Away'에는 사라져가는 관심도 있고, 기억도 있어요. 미국에서는 조지 워싱턴을 초등학교에서 대학교까지 배우는데, 한국은 (역사가) 선택이더라고요. 우리가 촬영할 때도 ‘한국전쟁을 아느냐?’고 물어보니까 들어본 적은 있지만, 누구와 누가 싸웠는지도 몰라요. ‘미국과 중국 간 싸움이다’, ‘미국과 일본 간 싸움이다’라고 부산에서 들었어요.
누구 탓인지 모르겠어요. 무관심이죠. 사회가 너무 발전하고 앞만 보며 가다 보니까 뒤를 돌아볼 생각은 없었어요. 지금은 우리가 잘 살지만, 너무 경쟁하다 보니 오히려 더 피해가 온 것 같아요. 그래서 역사를 중요시하지 않은 것 같아요.

하지만 우리의 아버지, 어머니, 할아버지, 할머니들의 이야기는 한국 전쟁이 결코 잊혀서는 안 될 역사의 교훈이자 반드시 기억해야 할 미래의 밑거름임을 당부하고 있습니다.

노정민의 <라디오 세상> 오늘 순서는 여기서 마칩니다. 다음 시간에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지금까지 진행에 RFA 자유아시아방송, 노정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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