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북침? 심각한 언어도단”

서울-박성우·이현웅 parks@rfa.org
2017.06.28
kwar_py_rally_b 6.25 미제반대투쟁의 날을 앞두고 지난 21일 평양 중앙계급교양관 교양마당에서 노동계급과 직업동맹원들의 복수결의모임이 열렸다고 조선중앙통신이 보도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노동신문 다시 보기’. 여러분 안녕하세요. 지난 20여년간 하루도 빠짐없이 노동신문을 읽은 북한 전문가, 이현웅 안보통일연구회 수석연구위원과 함께합니다. 저는 진행을 맡은 박성우입니다.

박성우: 이현웅 위원님 안녕하세요.

이현웅: 안녕하세요.

박성우: 오늘은 어떤 기사를 살펴볼까요?

이현웅: 노동신문 6월 25일자 6면에 실린 “미제는 조선전쟁의 도발자”라는 제목의 기사입니다. 이 기사는 지금으로부터 67년 전인 1950년 6월 25일에 일어났던 6.25전쟁을 ‘미국이 일으킨 북침전쟁’으로 못박고 있습니다. 그리고 6.25전쟁을 ‘미국 주도의 북침’으로 날조하기 위해 당시 미국 조야의 다양한 논의와 38도선 인근의 총격 사건들을 북한에 유리한 방향으로 왜곡 해석하여 선전하고 있습니다.

박성우: 북한이 6.25 한국전쟁의 역사적 사실을 조작했다는 건 전세계가 다 알고 있는 일인데요. 이번 기사에서는 북측이 어떤 식으로 전쟁 도발의 본말을 전도하고 있는지 좀 더 짚어 주시죠.

이현웅: 첫째, 광복 직후 미 군정기에 한국에서 진행된 정치 일정들을 ‘북침전쟁을 일으키기 위한 준비 절차’로 왜곡하였습니다. “미국은 남조선에서 북침전쟁을 일으키는데 유리한 사회 정치적 환경을 마련하기 위해 조선 문제를 유엔으로 이관하였고, 단독선거를 통해 이승만 정권을 조작했으며, 북침 돌격대로 한국군을 신속히 편성한 다음 26억 달러를 투자해 신속하게 무장시켰다”는 것입니다. 이런 주장은 언어도단이 아닐 수 없습니다.

둘째, 미국은 6.25전쟁 도발을 위해 ‘에이엘(AL)-삼(3)’이라는 북침 전쟁계획을 작성하였고, ‘전쟁 구실’을 만들기 위해 미 군사고문단장의 지휘 아래 38도선 일대에서 무장도발을 감행했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이런 내용들은 근거가 없는 일방적인 선전에 불과한 것들이지요.

셋째, 미국 트루먼 대통령이 군사력 증강에 필요한 국방예산을 미국 의회로부터 확보하기 위한 수단으로 6.25전쟁을 일으켰다는 주장입니다. 이런 주장들은 정황 자료로는 될 수 있으나 전쟁 도발의 근거로는 될 수 없는 내용들입니다

박성우: 북한의 왜곡 선전에도 불구하고 6.25전쟁은 김일성이 구상하고 스탈린의 동의 아래 전쟁계획이 수립되었으며, 김일성의 ‘전면 남침’ 명령에 따라 발발했다는 것은 이미 객관적인 사실로 밝혀져 있습니다. 이와 관련한 설명을 북한에 계시는 우리 청취자들이 이해하기 쉽도록 좀 더 해 주시죠.

이현웅: 북한은 6.25전쟁 도발 책임을 미국과 한국에 떠넘기고 이를 기정사실화 하기 위해 끊임없이 허황된 증거들을 날조해 왔으며, 전쟁 경험이 없는 북한 주민들은 날조된 선전에 거의 다 세뇌된 상태입니다.

그러나 북한의 이러한 날조와 거짓 선전은 1991년 12월 21일 구소련이 붕괴된 후 1994년에 고 옐친 러시아 전 대통령이 고 김영삼 한국 전 대통령에게 6.25전후 김일성과 스탈린 사이에 오고 간 전쟁 관련 비밀문건들을 전해주면서 낱낱이 폭로되었습니다. 이런 비밀자료들로 인해 북한의 6.25전쟁과 관련한 선전선동들이 날조되고 왜곡됐다는 사실이 밝혀졌음은 물론, 국내외 일부 학계의 ‘미국 도발설’은 허위로 들어나 힘을 잃게 되었습니다.

구소련의 비밀문건을 통해 밝혀진 김일성의 6.25전쟁 도발에 관한 사실을 몇 가지 말씀드리면, 첫째 6.25전쟁은 김일성이 자기의 통치권을 한반도 전역으로 확대하기 위한 ‘개인의 야욕’과 이에 대한 ‘강박적인 집착’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입니다. 김일성은 박헌영 등과 함께 1949년 3월 3일부터 3월 20일까지 모스크바를 방문하여 스탈린에게 ‘남침 허가’를 요청했는데요. 이때 스탈린은 ‘남한에 아직 미군이 있고, 미 소 간에는 38도선에 관한 협정이 유효한 상태이며, 북한 인민군이 남한의 군대를 압도할 만큼 우월하지 못하다’라는 3가지 이유를 들어 남침을 허가하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김일성은 스탈린의 전쟁 승인을 받아내기 위해 무장력을 강화하면서 6.25전쟁 도발 논리를 만들었는데, 그 중 하나로 ‘남한 내 지하당원 20만여명이 존재한다’는 등 온갖 술수를 동원하였습니다. 이런 사실도 구소련 문건을 통해 밝혀지게 되었지요.

둘째, 김일성은 1950년 3월 16일 노동당 비밀회의에서 ‘무력통일노선’을 미리 확정한 후 3월 30일부터 4월 25일까지 재차 스탈린을 방문하여 남침전쟁 승인을 받아내는 데 성공하였습니다. 당시 스탈린이 김일성의 남침과 관련하여 지시한 내용은 공세작전을 위해 정예사단을 창설하고 전투장비를 기계화하며, 먼저 38선 일대에 무력을 집중배치 한 다음 한국에 ‘평화통일’ 방안을 지속 제시하고, 한국이 평화통일 방안을 거부하면 기습공격을 감행하는 ‘3단계 공격계획’을 수립하며, 모택동과 상의하여 전쟁하라는 것 등입니다. 이러한 사실들은 모두 기록으로 남아 있습니다.

셋째, 1950년 6월 15일 평양주재 소련 대사 스티코프가 스탈린에게 보낸 전문에 “6월 25일 북한 인민군이 남으로 진격한다”는 내용이 명확하게 들어 있다는 사실입니다.

박성우: 북한이 이처럼 곧 밝혀지고 드러날 6.25전쟁 관련 사실들을 북한 주민들만 모르게 거짓으로 세뇌시키면서 정보를 극도로 통제하고 있는 이유는 뭐라고 보면 되겠습니까?

이현웅: 가장 큰 이유는 세습 독재정권 유지에 있습니다. 북한 사회주의 독재정권은 적이 존재해야만 존립할 수 있는 비정상적인 체제입니다. ‘사회주의 혁명’이 지지를 받는 이유 중 하나는 혁명 이후에는 노동자계급 다수가 소수 반동세력에 대해 통쾌하게 독재를 실시한다는 것인데요. 이것이 바로 ‘프롤레타리아 독재’의 명분입니다. 그런데 김일성은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개인독재’를 둔갑시켰으며, 김정일은 이를 ‘수령독재’로 변질시켰고, 김정은은 ‘세습독재’로 개악했습니다.

세월이 가면 북한 주민들도 수령독재나 세습독재가 비정상적이고 불합리한 최악의 통치제도라는 것을 쉽게 알게 될 것입니다. 북한 통치집단은 이런 북한주민들의 인지적 깨달음과 이로 인한 밑으로부터의 저항을 매우 두려워하고 있으며, 이를 사전에 차단하기 위한 수법의 하나로 미국을 ‘철천지원수’로 만들고 미국의 위협을 계속 재생산하여 주민들을 세뇌시키고 있습니다. 결국은 김정은 세습독재 정권을 유지하고 체제 연명을 위해 이미 세상에 다 밝혀진 ‘김일성의 6.25 남침전쟁’ 정보조차 철저하게 통제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야 할 것입니다.

박성우: 6.25전쟁을 일으킨 당사자는 미국이 아니라 김일성이었다는 사실은 이미 오래전에 밝혀졌다는 점을 다시 한번 강조하면서 끝내겠습니다. ‘노동신문 다시 보기’, 지금까지 이현웅 안보통일연구회 수석연구위원과 함께했습니다. 오늘도 감사드리고요. 다음 주에 다시 뵙겠습니다.

이현웅: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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