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승절 김일성 우상화는 궁색한 변명”

서울-박성우·이현웅 parks@rfa.org
2017.07.26
war_victory_day_b "조국해방전쟁 승리 63돌에 즈음하여 김일성·김정일 부자 동상에 인민군 장병들과 각 계층 근로자들, 청소년 학생들이 꽃바구니와 꽃다발, 꽃송이들을 진정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2016년 7월 27일 보도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노동신문 다시 보기’. 여러분 안녕하세요. 지난 20여년간 하루도 빠짐없이 노동신문을 읽은 북한 전문가, 이현웅 안보통일연구회 수석연구위원과 함께합니다. 저는 진행을 맡은 박성우입니다.

박성우: 이현웅 위원님 안녕하세요.

이현웅: 안녕하세요.

박성우: 오늘은 어떤 기사를 살펴볼까요?

이현웅: 노동신문 7월 23일자 2면에 실린 “잊지 말자, 위대한 사랑으로 이어가신 화선천리”라는 제목의 김일성 우상화 선전 기사입니다. 북측 당국은 1953년 7월 27일 체결된 6.25전쟁 휴전협정 64주년을 계기로 ‘김일성의 어버이 상’을 조작하여 주민들을 기만하고 있는데요. 이 기사는 김일성이 6.25전쟁 기습남침 이후 전선이 남쪽으로 계속 내려가자 위험을 무릅쓰고 최전선을 찾아가 어린 병사들과 부상병들을 ‘어버이와 같은 정’으로 보살펴 줬으며, 이런 김일성의 전사들에 대한 사랑이 인민군의 단결을 이끌어 내는 동력이 되어 ‘조국해방전쟁의 승리’를 가져오게 되었다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박성우: 북측 당국은 ‘휴전협정’ 체결일을 1996년도에 ‘전승절’로 제정하였으며, 매년 이 ‘전승절’을 전후로 김일성 우상화 선전활동을 하고 있는데요. 이번에는 어떤 내용을 선전하고 있는지 구체적으로 말씀해주실까요?

이현웅: 김일성이 6.25전쟁 기간에 전선의 사기를 높이기 위해 나이 어린 전사들을 찾아가 위로하거나 생명이 위태로운 부상병을 치료하는데 어떠한 위험도 마다하지 않았다는 점을 여섯 가지 일화를 만들어 적고 있습니다. 이중 대표적인 것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김일성은 6.25전쟁 당시 ‘서해지구 해안방어부대’를 차를 타고 방문하게 되었는데, 전사들의 잠자는 시간을 방해하지 않기 위해 차에서 내려 동이 틀 때까지 찬이슬을 맞으며 걸어갔다는 일화를 꾸며 대고 있습니다. 전사들이 잠을 조금이라도 더 잘 수 있도록 하기 위해 김일성이 큰 배려라도 한 것인 양 이른바 ‘자애로운 어버이상’을 조작하고 있습니다.

둘째, 김일성이 또 다른 ‘해안방어부대’를 방문하여 포를 닦고 있는 어린 병사에게 고향은 어디며, 부모에게 편지는 쓰고는 있는지, 나이도 어린데 언제부터 전쟁에 참가했는지 등을 질문하면서 포를 닦고 있는 이유를 물어봤는데, 그 병사가 ‘미제를 쓸어버리기 위해 한다’는 답변을 했고, 이때 김일성은 그 병사를 한 명의 전사가 아닌 영원한 ‘혁명동지’로 여겼다는 것입니다.

셋째, 김일성이 임진강 철 다리를 건너 전선참호까지 찾아가 한 병사가 대구 출신으로 서울에서 고학하다 고향 해방을 위해 의용군에 입대한 19살의 어린 전사임을 확인하고 ‘어머니와 두 동생이 미제에게 유린되어 피를 흘리고 있다’며 ‘조속한 해방을 위해 무자비하게 싸울 것’을 독려한 바 있다는 것입니다.

넷째, 김일성이 어느 ‘동부전선 고지탈환 습격전’에서 ‘적의 화구’를 가슴으로 막고 쓰러진 병사 소식을 듣고 그 병사를 살리기 위해 전선사령관과 군 의사들에게 ‘치료 전투를 벌여 반드시 살리라’고 명령함으로써 그 병사는 살아나게 되었으며, 그 후에도 의약품과 인삼을 보내주고 최고사령부로 불러 위로했다는 일화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박성우: 우리 청취자들이 이해하기 쉽게 설명을 좀 해 주시죠. 이런 기사가 왜 문제입니까? 그리고 이 기사가 허구라는 건 어떻게 알 수 있나요?

이현웅: 김일성이 6.25전쟁 기간에 실제로 행한 불의의 활동은 모두 숨기고 독재정권의 필요에 의해 역사를 왜곡하고 있다는 점이 가장 큰 문제입니다. 김일성의 6.25전쟁과 관련한 활동 중에서 민족적 비극을 낳은 기습 남침이나 인민군 최고사령관으로서 행한 냉혈적인 작전지휘 내용 등에 대해서는 일체 생략하고 있다는 것이죠.

또한 한반도 전체를 잿더미로 만들고 철저하게 패배한 전쟁을 ‘승리한 전쟁’으로 뒤바꾸고 있다는 것도 큰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 동안 북한 당국은 패배한 전쟁을 승리한 전쟁으로 탈바꿈하려다 보니 김일성의 과거 활동에 대해 정확한 사실을 알고 있고 있는 사람들을 정적으로 몰아 숙청하였고, 사실에 근거한 자료는 모두 없애버리는 ‘분서갱유’를 서슴지 않았습니다. 이에 덧붙여, 북측 당국은 김일성과 관련된 혁명역사 자료나 노작에 있는 내용 중 거짓으로 발각되거나 사실과 부합하지 않는 모순이 발견될 때마다 끊임없이 위작이나 개작을 했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거짓이 거짓을 낳는 악순환을 거듭했다는 것이지요.

김일성은 6.25전쟁 기간에 전선의 병사들이나 전사들을 보살피고 적극 지원하기보다는 자기 살길을 찾아 ‘평양’을 버리고 도주하기에 바빴으며, 당시 국제정세와 전쟁 전략의 무지로 인해 한민족과 역사에 치욕을 남긴 자로 평가되고 있습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해 보겠습니다. 인민군은 남침할 때 한 톨의 식량도 가지고 오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정규군을 동원한 전쟁을 벌이면서 가장 중요한 보급부대를 편성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오직 빨치산 투쟁 경험밖에 없는 김일성이 빨치산식 현지 약탈을 통해 병사들의 식량을 해결하려 했다는 것은 ‘천출명장’이나 ‘천재적인 군사전략가’라는 칭송이 그에게 전혀 어울리지 않음을 보여주는 방증입니다.

또한 이미 확인된 사실 중 하나는 김일성이 낙동강 전선에서 유엔군의 반격으로 전선 유지가 어렵게 되자 인민군을 사지에 방치했을 뿐 아니라 전장에서 도망하려는 자는 ‘즉시 총살’하라는 이른바 ‘제81호 명령’을 내렸다는 점입니다. 그리고 평양이 유엔군에 함락되기 일주일 전에 본인은 만포진으로 도망가면서 전선과 전장에서 도주하는 자를 전문적으로 처형하는 ‘독전대’를 조직하여 ‘즉결 처형’하라는 명령도 내렸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김일성이 6.25전쟁 기간에 전쟁 도발 책임자로 또는 전쟁 패배자로 패주 과정에서 보여준 행태는 ‘자상한 어버이 상’과는 전혀 달랐으며, 이를 증명하는 많은 사례들이 당시 중국과 소련의 외교문서에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박성우: 북측 당국이 이런 기사를 지속적으로 쓰고 있는 이유와 목적은 무엇일까요?

이현웅: 김일성의 전사들에 대한 ‘어버이 상’을 조작하는 사례를 반복적으로 제시하고 있다는 점에서, 김일성을 중심으로 ‘김씨가문 우상화’를 극대화하여 3대 세습 독재권력을 공고히 하려는데 목적이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또한 김일성이 전선의 참호에서 만난 병사들에게 ‘고향 해방’을 위해 ‘미제와 무자비하게 싸울 것’을 독려하고 ‘미제를 쓸어버리기 위해 포를 닦고 있다’는 내용을 부각하고 있는 것으로 볼 때 미국과 한국에 대한 인민군의 적개심을 고취시키고 전쟁불사 결의를 고조시켜 대외적으로 옥죄어 오고 있는 제재와 이에 따른 각종 어려움을 타개해보려는 목적에서 비롯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박성우: 기회가 있을 때마다 반복되는 이런 식의 김씨일가 우상화 기사를 매번 접해야 하는 북한 주민들의 고충도 이루 헤아리기 어렵지 않겠나 싶습니다. ‘노동신문 다시 보기’, 지금까지 이현웅 안보통일연구회 수석연구위원과 함께했습니다. 오늘도 감사드리고요. 다음 주에 다시 뵙겠습니다.

이현웅: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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