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FA 초대석] 한국 의사국가고시에 합격한 탈북여성 김경희 씨

워싱턴-전수일 chuns@rfa.org
2011-0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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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대학교병원에서 아토피 피부염 환자가 치료를 받는 모습.
사진-연합뉴스 제공
탈북자 김경희 씨는 북한에서 종합진료소의 의사였습니다. 하지만 2007년 한국에 들어가서는 병원에서 일하지 않고 열린북한방송이라는 민간 대북방송에서 방송인으로 일해 왔습니다. 한국에서는 북한의 의사 자격증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자신의 천직을 찾겠다는 집념으로 2 년여 뼈를 깎는 노력 끝에 올 1월 의사국가고시에 합격했습니다. 나이 마흔 다섯에 3천4백명의 다른 합격자들과 함께 한국에서 의료 활동을 할 수 있는 길이 다시 열린 것입니다. 수련의 과정 준비로 분주한 김경희 씨를 전화로 만나 봤습니다.

전수일: 열린북한방송에서 얼마나 일하셨고 무슨 일을 하셨습니까?

김경희: 2년 동안 근무했고 피디로 일했습니다.

: 피디란 어떤 일을 하는 것입니까?

김경희: 방송 프로그램을 만드는 일로 제가 글을 직접 쓰고 녹음하고 완성해 방송까지 합니다.

: 방송 일을 하면서도 2년 간 의가국가고시를 준비해 합격하셨는데 공부는 일을 끝내고 틈틈이 하셨습니까?

: 방송국에서 저의 입장을 많이 고려해 주셨습니다. 제가 일을 끝내고 틈틈이 공부할 수 있게 해주셨고 대학에 강의 시간이 있을 때는 강의 듣고 회사에 와서 맡은 프로그램을 만들도록 편의를 보장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토요일과 일요일에도 쉬지 않고 공부했습니다.

: 대학교는 어디를 다니셨나요?

: 연세대학교에서 강의를 들었습니다.

: 의사국가고시 준비 중에 가장 어려운 과목이나 공부 과정은 어떤 것이었습니까?

: 모든 게 다 어려웠습니다. 시작부터 그랬습니다. 북한에서는 한글로 공부하고 진단명이나 약처방은 라틴어를 썼습니다. 그런데 여기선 모든 걸 영어로 하니까 그게 어려웠습니다. 영어를 다시 배워야 했고, 과목 내용을 번역해 이해해야 하고, 또 선생님들의 강의도 영어라서 알아듣기가 어려웠습니다.

: 영어로 강의하는 것을 알아 듣는 것은 남한 사람들도 쉽지 않을 텐데요.

: 여기 학생들은 6년 간 그런 강의를 받았기 때문에 잘 되는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첫 강의부터 안되니까 한 번에 따라가는게 어려웠습니다.

: 북한에선 영어를 배우지 않았습니까?

: 배웠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제목 정도나 영어, 한문, 라틴어로 써주고 교과서나 강의 내용은 몽땅 한글이었습니다.

: 북한의 의과대학에서 공부한 것이나 의사 경험이 한국 의사국가고시 준비에 도움이 됐습니까?

: 아무 도움이 안됐습니다.

: 의과대학에서 배운 의료 정보나 지식이나 경험이 쓸모가 없었습니까?

: 실기 면에서는 도움이 좀 도움이 됐습니다. 작년부터 국가고시에 실기시험이 추가됐는데요 실기에서는 환자를 대면해 아픈 곳을 알아보는 문진을 하는데, 제가 북한에서 직접 해 본 것이기 때문에 도움이 됐습니다. 하지만 필기시험에서는 북한에서 대학을 졸업한 지도 오래됐고, 그나마 배운 것도 별로 도움이 안됐습니다.

: 이제 국가고시에 합격을 하셨는데, 이후의 과정은 어떻게 됩니까?

: 북한에서와는 달리 한국에선 인턴, 레지던트 과정을 거쳐 전문의를 따게 됩니다.

: 인턴 레지던트라는 것은 우리말로 수련의라고 합니까? 무엇 하는 사람입니까?

: 수련의라고 합니다. 북한에선 의대를 나오자 마자 병원에 배치돼 의사생활하는데 남한에서는 인턴, 즉 치료하는 것을 수련시키는 과정을 거쳐야 합니다. 그리고 전문의가 되기위한 레지던트 과정을 거치고, 전문의 자격을 인정 받은 뒤에는 자신이 직접 개원하든지 아니면 대학병원에 들어가 전문의로 활동하게 됩니다.

: 북한에서는 종합진료소에서 내과 의사를 하셨다는데 남한에서는 어떤 전문의 전공을 할 작정이십니까?

: 가정의학과를 하려 합니다.

: 가정의학과는 무엇을 하는 분야입니까?

: 북한에서의 내과와 비슷한 겁니다. 북한에서도 내과가 전문과목으로 돼 있습니다. 한국으로 치면 종합진료소의 내과와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감기라든가 하는 병으로 찾는 일반 의원이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 한국에서는 별 것 아닌 병이 북한에서는 생명을 위협할 수도 있는 심각한 병이 될 수 있다는 말씀을 하셨던데요, 북한 주민들에게 나타나는 흔한 질병은 어떤 것입니까?

: 북한에서도 소화기 질병이 제일 많습니다. 그리고 계절에 따라 오는 감기, 특히 겨울에 추울 때는 호흡기 질환 환자도 많고 또 기생충 질환도 많았습니다.

: 그런 병들은 남한에서는 쉽게 낫는 병인가요?

: 네. 남한에서는 약만 먹으면 쉽게 낫습니다. 그리고 남한에는 내시경, 초음파 등이 있어 진단을 정확히 내릴 수 있어 과학적으로 치료할 수 있지만 북한의 종합진료소에서는 그런 체계가 안돼 있고, 큰 대학병원 정도에서나 초음파 기계 한 대 정도만 있는 상태였습니다. 과학적인 치료 방법을 쓰기 보다는 동의학을 신의학과 병행해서 사용합니다. 동의학 약제를 주거나 침을 놓거나 해서 치료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 의과대학을 다니려면 한국이나 미국에서도 수업료가 굉장히 비싼데요, 학비에 대해 지원이 있습니까?

: 통일부에서 지원해 준 걸로 알고 있습니다.

: 전액지원이 됩니까?

: 우리는 한국 학생들처럼 몇년씩 다닌 게 아니고 의대 졸업하는 학생들이 듣는 강의를 함께 듣고 시험을 치는 식이었습니다.

: 그러니까 여하튼 학비는 자신의 부담이 아니라는 말이네요.

: 우리는 부담을 할 능력이 못되죠.

: 그러면 인턴이나 레지던트 일을 할 때는 돈을 받고 합니까 아니면 그것도 돈을 내야 합니까?

: 돈을 받고 일하는 겁니다. 일반 한국 학생들이 의사면허 따고 돈 받고 일하는 것과 같습니다.

: 그러니까 국가고시에 합격했다는 것은 의사면허증을 받았다는 것과 같네요.

: 그렇죠.

: 그러니까 북한이었다면 병원에 가서 진료를 시작할 수 있겠네요.

: 그렇습니다.

: 2000년에 탈북해 2007년에 입국하셨다던데 그동안 중국에 오래동안 체류하면서 중국 생활이 어렵지는 않았습니까?

: 많이 어려웠습니다. 언제든 잡혀 갈 수 있다는 불안감이 있는데도 중국에서 살아야 하는 상황이었고요. 많이 힘든 날을 보냈습니다.

: 그런데 불법체류자는 일자리를 얻기가 쉽지 않다고 하던데요.

: 저는 그래서 친척을 통해 중국에 들어갔고 한국회사를 찾아서 일했습니다. 그리고 중국에서 신분증까지 만들었지만 그러고도 안심할 수 없었습니다.

: 신분증이라면 위조 신분증입니까 진짜 신분증입니까?

: 위조신분증이죠. 돈 내고 만드는 사람한테 사는 것인데요, 그래도 마음은 가볍지 않았습니다.

: 한국에 오신 것은 혈혈단신 혼자 오셨습니까?

: 네.

: 만일 가족이 한국에 있었더라면 누구에게 제일 먼저 알리셨겠습니까?

: 부모님이 제일 좋아 하실거라고 생각했어요.

: 가까운 미래와 먼 장래 하고싶은 꿈이 있다면 무엇입니까?

: 인턴 레지던트 과정을 거쳐 더 많이 배워 한국에 온 많은 탈북자들을 위해 그 분들의 아픈 마음과 몸을 치료해 주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RFA 초대석, 이 시간에는 나이 마흔 다섯에 한국의 의사고시에 합격한 탈북여성 김경희 씨의 얘기를 들어봤습니다. 저는 전수일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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