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FA 초대석] 탈북화가 송벽의 개인전 '영원한 자유 위험한 탈출'

워싱턴-전수일 chuns@rfa.org
2011-0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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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제의 인물을 만나보는 RFA 초대석, 진행에 전수일 입니다. 북조선에서는 선전 포스터를 그리고, 선동 구호를 만들었던 황해도 출신 화가 송벽 씨. 두만강을 건너 2002년 한국에 입국한 지 9년만에 서울에서 처음으로 개인 전시회를 열었습니다. 한국 입국 후 공주대학 미술교육과를 졸업하고 올(2011) 2월에는 홍익대학교 대학원에서 동양화 석사 학위를 받은 송벽 씨는 지난 1월 마지막 주에 열린 전시회에서 김정일 체제의 압제아래 자유를 갈구하는 인민들의 현실을 형상화한 그림 30여점과 조각 작품들을 선 보였습니다. 그의 전시회는 미국의 주요 신문인 월스트리트저널과 로스엔젤레스타임스에도 크게 소개됐습니다. 이번 전시회를 끝내고 다음 전시회를 준비하고 있다는 송벽 화가를 전화로 만나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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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해도 출신 화가 송벽 씨. (사진제공-송벽 씨)
전수일 기자: 미국 신문에서도 사진까지 넣으며 작품들에 대해 흥미롭게 소개했습니다. 그중에서도 ‘벗어라’ 하는 작품이 있던데요, 미국의 유명한 여배우 마릴린 몬로의 몸통에 김정일 위원장의 머리를 붙이고 발 가에는 작은 물고기가 뛰어 오르는 그림입니다. 어떤 의미가 있습니까?

송벽
: 치마 밑에 있는 작은 물고기들은 북한 국민들을 형상한 것입니다. 북한 국민들이 어항에 가두지 말고 자유를 달라며 아우성 치는 모습을 나타냈습니다. 마릴린몬로의 치마는 이제 ‘벗을 때가 됐다’는 것을 묘사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북한 국민들에게 자유를 줄 때가 됐다는 것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 로스엔젤레스타임즈에는 ‘꽃보살들’이란 그림도 실렸습니다. 어린 여학생들이 나란히 서 있는데 눈은 감고 있고 아이들의 신발이 해져 있습니다.

송벽: 그건 외국인들이 평양에 가면 아이들이 ‘우리는 행복하게 산다’고 하는 말을 풍자한 그림입니다. 한 손에는 김일성 어록집, 또 한 손에는 김정일 장군님의 어린시절 이야기 책을 쥐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자신들이 세상에서 제일 행복하다고 하는 모습인데요, 북한사회가 진짜 자유국가이고 행복한 지를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 ‘앞록강가’라는 그림도 있습니다. 북한의 현실을 나타낸 것이라는데, 사진을 보면 이런 저런 실상이 많이 들어 있습니다.

송벽: 그건 중국쪽에서 북한을 바라보는 시선으로 북한에서 일어나고 있는 사람들의 생활상을 하나 하나 작품화 한 것입니다. 나무가 없어 산에 올라가 나무하고 풀 뜯는 모습, 짐을 지고 먹을 것을 찾아 장사 떠나는 사람들의 모습 등 현재의 북한 사람들의 생활상을 그렸습니다.

: 도강을 하다 끌려가는 주민의 모습도 들어 있다던데요.

송벽: 네. 탈북자들이 자유를 찾아서, 배가 고파서 중국으로 넘어가는데 50프로 정도는 잡혀 들어갑니다. 두만강을 건너다 잡혀서 감옥에 가고 매맞는 모습을 그렸습니다. 두만강가에서 여성 두 분이 배낭지고 넘으려다가 적발돼 신문받고 증명서 검열 받는 모습을 그려 넣었습니다.

: 도강이라면 송벽 화가도 2000년에 실제 두만강을 건너려다 북한 국경경비대에 붙잡혀 실신할 정도로 구타를 당했다죠?

송벽: 네. 까무러쳤죠. 감옥살이도 했고요. 그래서 이제는 뭔가 한국 국민들이 북한사람들의 자유에 대해 굶주림에 대해 새롭게 인식할 때가 되지 않았냐는 생각에서 이번 개인전도 열게 됐고 그걸 통해 메세지를 전달하려 한 겁니다.

: 그런데 아버님께서는 두만강에서 실종되신 겁니까?

송벽: 저희 아버지는 두만강에 물이 불어난 것을 몰랐어요. 우리는 저 아래 평야지방쪽에 살아서 국경지대까지 오려면 아주 멉니다. 황해도 지역입니다. 쌀을 구하기 위해 아버지와 고향을 떠난 때가 8월이었습니다. 장마때라 두만강 물이 불은 것을 몰랐습니다. 하지만 돌아갈 수는 없는 일이었습니다. 강을 일단 건넌 뒤에 다시 돌아와야 우리 가족이 살기 때문이었죠. 건너는데 물살이 너무 세어서 아버지가 떠내려갔습니다. 아버지 시체도 못 건졌습니다. 그래서 저는 북한경비대에 도움을 청하려 했더니 ‘너는 왜 죽지 않고 살았냐’면서 엄청 구타했습니다. 매맞고 족쇄 차고 보위부 구류장에 끌려가 두 달 동안 조사를 받았습니다. 그때 저는 ‘내가 아는 북한사회는 이건 아니다’ 라는 생각이 들면서 혐오감을 갖게 됐습니다. 그래서 감옥생활 하면서 내가 만일 살아서 나가기만 하면 이 사회를 떠나야겠다 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 감옥생활은 몇 개월 하셨습니까?

송벽: 6개월 정도 했습니다.

: 북한에서는 선전선동 포스터를 그렸다고 하던데요.

송벽: 네. 김정일이 찬양하는 구호도 쓰고 포스터 그림도 그리면서 선전일꾼으로 일했습니다.

: 몇 년이나 그런 일 하셨나요.

송벽: 한 7년 했습니다.

: 2002년에 한국에 입국하셨다던데 그때는 홀로 탈북한 겁니까?

송벽: 네. 홀로 있던 시절 어지간히 몸의 건강을 추렸습니다. 당시 제 어머니와 여동생이 있었는데 제 결심을 얘기했습니다. 내가 이 사회에서 더 이상 살기 싫다고요. 제 어머니한테는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말을 안했습니다. 아버지는 중국에 들어갔고 나 혼자 잡혀서 감옥에 갔다가 이렇게 나온 것이라면서 일주일 간 어머니를 설복했습니다. 그래서 저 혼자 나왔습니다.

: 그럼 어머니는 아직 계십니까?

송벽: 돌아가셨습니다. 2005년도에 앓다가 돌아가셨다고 들었습니다.

: 근데 남한에 들어가셔서 홍익대 대학원에서 석사 학위를 취득하셨는데, 동양학과를 전공한 특별한 이유가 있습니까?

송벽: 북한에서도 그림을 그린데다가 여기서는 한지나 신문지에 그림 그리는 걸 좋아했습니다. 제 적성에 맞고 해서 동양화를 선택했습니다.

: 그런데 한국에 들어가서는 남한 그림에 대해 거부감도 많았고 충격을 받았다고 하던데요.

송벽: 북한에서는 한국 작품이나 외국 작품을 접할 수가 없었거든요. 그런데 여기 와 보니 비구상이나 추상화 쪽의 그림이 많았습니다. 이게 도대체 무슨 그림이냐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북한에서는 상상도 못했던 그림들입니다. 하지만 여기서 하나 하나 공부를 하면서 그림이란 게 화가의 개성을 나타내며 그 자체에 철학적인 의미가 들어 있고 그림을 통해 사회를 변혁할 수 있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 그러니까 그림에 개인의 독창성이 묻어나온다는 얘기군요.

송벽: 그렇죠. 자기만의 이야기, 자기만의 독창성과 메시지를 확실하게 전하는 것이죠. 이것이 진정한 미술이고 예술의 자유가 아니겠냐는 생각이 들더군요.

: 그런데 이번 전시회에서는 그림뿐만 아니라 북한에 있던 여동생과 주고 받았던 편지들도 전시했다고 들었습니다.

송벽: 네. ‘소통의 벽’이라는 주제로 갈라진 철책선에 북한 동생이 보낸 편지들과 편지 봉투들을 붙여서 전시했습니다.

: 그런데 여동생 가족을 2007년에 한국에 데려 가셨다죠?

송벽: 네. 제가 데려 왔습니다.

: 그런데 당시 여동생과는 편지를 어떻게 쉽게 주고 받을 수 있었습니까?

송벽: 중국에 저희 친척이 있습니다. 그래서 제가 한국에서 산 약품하고 입을 옷을 중국 친척에게 보내면 그 친척이 중국에서 보내는 것처럼 재포장해서 북한 동생에게 보냈습니다. 동생은 한국에서 오빠가 보냈다는 걸 알고 답장 편지를 써 다시 중국 친척에게 보내곤 했습니다. 그럼 그 친척은 동생의 편지를 봉투채로 저한테 그대로 보내줬습니다. 그렇게 주고 받은 겁니다.

: 이번 전시회 때 관람객 반응이 어떠했는지 궁금합니다.

송벽: 한 마디로 충격적이었습니다. 여기에 탈북화가들이 몇 분 됩니다만 그분들도 이미 개인전을 열었었습니다. 이분들은 주로 화려하고 아름다은 기법만을 사용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북한사회를 신랄하게 비판하고 김정일의 독재를 풍자하는 그림들을 전시했거든요.

: 관람객들이 송 화가에게 여러가지 질문도 했을텐데요 기억에 남는 질문이나 반응 한 가지 소개해 주시죠.

송벽: 어떤 50대 부인과 딸이 함께 왔습니다. 전시회가 거의 끝날 무렵에 그림을 둘러 보고 있던 이 모녀에게 제가 전시회 팜프렛을 드렸습니다. 그랬더니 저를 끌어 안고 울더라구요. 그분은 북한사람들이 먹지 못해 대량 탈북하는 티비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을 보았다는데 그 프로그램에 제가 북한 실상을 설명하는 부분이 있었습니다. 그분은 한국 국민이 탈북자들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야 할 때가 왔다고 하면서 저를 붙잡고 울더군요. 저와는 아무런 연고가 없는 분인데 봉투 하나를 주고 가셨습니다. 3십만원이 들어 있더군요. 그래서 저는 느꼈습니다. 아직 5천만의 대한민국 국민이 동포에 대한 정이 있구나. 제게 연락처도 안주고 가신 그분을 어떻게든 찾아 뵙고 감사를 드리고 싶습니다.

: 앞으로 북한 실태와 김정일체제를 풍자 비판하는 그림을 계속 그리실 겁니까?

송벽: 그런 테마를 유지할 겁니다. 하지만 새 전시회를 열면 남북한 사람들만이 아닌 세계인들이 함께 북에서 인권을 유린당하고 자유를 누리지 못하는 주민들을 위해 한 목소리를 내야한다는 주제로 하고 싶습니다.

RFA 초대석, 이 시간에는 황해도 출신의 탈북 화가 송벽 씨로부터 한국에 입국한 지 9년만에 서울에서 처음으로 개인 전시회를 연 소식에 대해 들어봤습니다. 저는 전수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