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FA 초대석] 서울에서 북한전통음식점을 운영하는 탈북자 안미옥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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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제의 인물을 만나보는 RFA 초대석, 진행에 전수일 입니다. 북한에서는 대학교에서 조선화를 가르쳤던 미술 교원이 한국에서는 북한전통음식점을 경영하는 요리가로 탈바꿈했습니다. 지난 5년 간 한국 대중 음식의 특징을 관찰하고 연구한 함흥 출신의 탈북자 안미옥 씨는 탈북자단체가 서울에 세운 음식점 ‘류경옥’에서 한국사람들의 입맛에 맞는 북한식 국수, 국밥, 만두를 요리해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김일성.김정일 부자가 찾을 만큼 유명한 신흥관 국수집 주방장이었던 할머니와 어머니의 요리솜씨를 타고 난 것 같다는 안미옥 씨에게 음식점 운영과 한국 정착 얘기를 들어 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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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4월 탈북자단체가 개업한 북한전통음식점 '류경옥'. (사진-연합뉴스 제공) (사진-연합뉴스 제공)

전수일: 류경옥 개업이 벌써 15개월째 됐습니다. 장사는 잘 됩니까?

안미옥

: 네. 잘 됩니다.

전: 취급하는 음식종류가 많다고 들었습니다. 어떤 음식들이 있는지 소개해 주세요.

: 네. 저희가 첫째로 꼽는 것은 북한 정식입니다. 그걸 메뉴 기본 음식으로 내 놓고 함흥냉면과 회냉면 평양온반과 원산시장국밥 청진동태탕과 개성만두국 그리고 접시만두 등을 하고 있습니다. 메뉴 종류는 많지만 저희가 하기에 힘들지는 않은 것들입니다.

전: 북한식 면은 감자전분을 써야한다고 들었습니다. 남한 것은 쫄깃한 맛이 없다고 하던데요.

: 북한식으로 한다면 함흥냉면은 감자전분을 기본적으로 써야 합니다. 근데 한국에서는 감자전분보다는 고구마전분을 갖고 만듭니다. 그래서 북한의 함흥냉면에 비하면 쫄깃함이 없고 색갈 자체가 하얗지 않고 약간 누리끼리합니다. 북한식과는 틀리죠.

전: 북한 감자전분을 들여올 수 있습니까?

: 네. 들여올 수 있습니다.

전: 정식으로 수입할 수 있습니까?

: 아닙니다. 정식 수입은 못하고 중국 국경에서 가까운 북한 대홍단 감자밭 농장이 있는데 거기 것을 어느정도 들여 올 수 있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한국분들이 감자전분으로 만든 면을 선호하지 않아서 북한 감자전분을 들여와야 할 지 생각 중에 있습니다.

전: 비록 쫄깃한 북한 감자전분을 들여와도 한국인 고객들의 입맛에 맞느냐가 문제라는 얘기군요.

: 그렇습니다. 여기 남한에서는 면이 질기다고 가위로 잘라 먹는데 북한에는 가위로 면을 짜르는 게 없습니다. 면이라면 질기고 입에서 씹기가 어려울 정도가 돼야 합니다. 그래서 북한에서는 밸(창자)까지 면이 내려가 연결 된다는 말도 있습니다.

전: 한국에 도착한 뒤 여러 음식점에서 일하며 남한음식의 특징을 터득했다고 들었습니다. 남한음식이 북한음식과 비교해 어떤 특징이 있습니까?

: 북한음식에도 맵고 짜고 한 것은 있지만 남한음식처럼 달지는 않습니다. 예를 들어 남한 냉면을 먹어보면 너무 달고 새콤하면서 조미료가 많이 들어간 것 같습니다. 북한 것은 담백합니다. 시큰하고 단 맛은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도 한국사람들의 입맛에 맞추려고 애를 쓰고 있습니다. 여하튼 북한식 냉면과는 차이가 많습니다.

전: 북한 냉면에도 얼음과 겨자를 넣습니까?

: 얼음은 넣지 않습니다. 북한사회가 냉동시설이 잘 안 돼있어 그랬는지는 모르리만 저의 할머니도 얼음이나 이빨에 자극되는 건 넣지 않더라구요. 겨자는 옛날부터 선조들이 넣었던 것입니다. 북한에서도 매운맛은 겨자로 합니다.

전: 비빔밥과 만두와 함께 정식을 언급하셨는데 남한과 북한의 정식은 뭐가 다릅니까?

: 남한 정식이 북한 시골에서 먹는 정식과 거의 같더라구요. 다만 북한 사람들은 그게 남한의 정식과 같다는 걸 모를 뿐이죠. 여기서 와서 여러 음식점에서 일하면서 이게 바로 북한에서 먹는 것이로구나 알았죠. 그런 유사한 점에 착안해서 북한정식이란 메뉴를 만들었습니다.

전: 북한향토정식이라고 이름 붙였던데요?

: 그렇습니다.

전: 북한에서는 정식을 뭐라고 부릅니까?

: 일반적으로 밥상이라고 부릅니다.

전: 북한에서도 비빔밥을 많이 찾습니까?

: 북한엔 한국보다 못 살고 척박한 땅이지만 산채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그런 걸 이용해 지역별로 비빔밥이 잘 돼 있습니다.

전: 한국에서 유명한 전주비빔밥을 만들어 보셨습니까?

: 네. 함흥에서 먹어본 비빔밥과 같았습니다. 전주에 한번 내려가 봤습니다. 거기 음식문화가 거진 함흥과 같았습니다. 음식도 비슷하고 간도 맞고. 전주 사람들이 음식에 젓갈을 많이 쓰는 것이나 반찬들이 함흥식과 너무나 신통히 같았습니다.

전: 만두는 북한만두가 큼직하지 않습니까?

: 북한에서도 지역에 따라 만두 크기는 다릅니다. 북쪽으로 갈 수록 큽니다. 또 못 살 때는 식구가 많은 곳에서는 채소를 많이 넣다 보니 커집니다. 또 제가 남한에 오기 전에 북한에서는 손님 대접하는 만두와 식구용이 달랐습니다. 손님용은 식구용보다는 작았습니다. 그리고 일반 만두는 여기와 크기가 같습니다. 개성쪽에서는 임금님에 올리는 밥상의 소편, 떡처럼 만두도 작게 빚습니다. 어쨌든 북한에서는 위쪽으로 올라갈 수록 만두는 큽니다.

전: 류경옥에서 만드는 만두의 속은 주로 어떤 게 들어갑니까?

: 김치만두도 하고 부추를 넣는 고기만두도 합니다. 북한에서 일반 백성은 주로 김치만두를 합니다.

전: 만두에 고기는 돼지고기를 쓰죠?


: 네. 북한사람들은 소고기를 별로 먹어보지 못합니다. 어느 곳에 가도 쉽게 먹을 수 있는 육류는 돼지고기입니다.

전: 남한 손님들이 류경옥의 음식을 먹어 본 반응은 어떻습니까?

: 손님들 중에서도 50년도에 한국에 피난 온 나이 든 어르신들- 실향민들이 많이 오십니다. 북한 고향의 향수를 느끼는 분들이죠. 부산이나 전라도 출신 중에서도 우리 음식을 먹어보고는 다시 오는 분들이 많습니다. 서울 토박이 분들은 처음에는 별난 맛이라면서도 차차 적응이 되면서 자주 찾아 옵니다.

전: 류경옥 찾는 실향민이나 탈북자 또 일반 남한사람들 중에 어떤 사람들이 많이 옵니까?

: 저희는 한국분들이 많습니다. 그 다음이 실향민들입니다. 특히 모임이 있을 때 많이 옵니다. 일반 남한사람들은 가족끼리 토요일에 식사하러 저희 식당을 찾는 분들이 많고요. 탈북자보다는 한국분들이 많습니다. 6.25때 내려온 실향민들이 많습니다.

전: 류경옥 영업은 하루에 몇 시간이나 합니까?

: 아침 10시부터 밤 10시까지 합니다. 한국에는 24시간 하는 음식점들이 많지만 저희는 탈북자 직원들이 몸이 약해서 그렇게 하지 못합니다. 주변에 있는 분들은 일요일도 문을 열라고 하지만 탈북자 직원들의 체력이 받쳐주질 않습니다. 그래서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합니다.

전: 류경옥은 탈북자단체인 NK지식인연대에서 탈북자들에게 일자리를 마련해 주고 수익금을 탈북자 정착을 돕는일에 사용한다는 취지에서 사회적기업으로 개업을 했는데 현재 직원은 몇명입니까?

: 4명입니다.

전: 모두 탈북자입니까?

: 네.

전: 안미옥씨는 탈북자 직원들에게 음식 맛내기를 가르치신다고 하던데요, 식당음식을 만들어 보지 못한 분들입니까?


: 국경 연선에서 오신 분들이 태반이라서 생활이 넉넉하지 못했던 분들입니다. 제가 탈북해 한국에 가려고 국경쪽을 거쳤는데 그때 그곳 생활상을 보고 “아, 북한에도 이렇게 사는 사람들이 있구나”하는 걸 느꼈습니다. 거기 살던 분들에게 먹어 본 음식을 한 번 만들어 보라고 하면 별로 할 줄 아는 게 없습니다. 옛날 할머니 시대에 못 살아 쟁개비(냄비)에 지지개(찌개) 비슷한 것이나 만드는 정도입니다. 반찬도 별로 만들어 본 적이 없는 분들이죠. 한국에 와서는 다양한 음식을 먹어 본 적은 있지만 만들 줄은 모르는 것이죠. 그래서 부득이 제가 음식 만들기를 도와주어야 하는 상황입니다.

전: 안미옥 씨의 요리솜씨는 물려 받았다고 들었습니다.

: 저는 북한에서 교원생활을 오래했기때문에 음식에 대해서는 잘 몰랐습니다. 외할머니 증조할머니 당할머니 모두 식당부문에서 오래 일했습니다. 북한에서 96년부터 어려울 때 협동식당이 많이 나왔습니다. 어머니도 북한 신흥관에 배속된 협동식당 하나를 운영했습니다. 어머니와 할머니들의 요리솜씨를 천성적으로 받은 게 있나 봅니다. 어떤 곳에 가든지 음식에 관한 것이라면 자꾸 음식을 알고 싶고 더 파고들게 되더군요. 한국에 와서는 처음부터 여러 식당에서 일하면서 많은 걸 배웠습니다.

그러면서 한국분들에게 어떤 북한음식을 소개하면 좋을 지 궁리를 많이 했습니다.

북한 음식에는 예술적인 조화가 별로 없습니다. 그래서 그릇세트부터 먹는 국에 이르기까지 배웠습니다. 그래서 저희 음식점을 개업하는데 어렵지 않았고 직원들에게 음식가르치는데도 별로 힘들지 않았습니다.

: 신흥관이란 게 무엇입니까?

안: 함흥에 가면 평양 옥류관처럼 큰 식당이 있는데 그게 신흥관입니다. 그 유래를 보면 함흥의 발령산이라는 곳에 김일성 동상을 세웠습니다. 그곳에는 발령상 식당이 옛날부터 있었습니다. 우리 할머니가 그곳의 주방장이자 요리사였습니다. 할머니는 김일성에게 국수(냉면)를 말아 올렸고 김정일이 들어선 뒤에도 김정일에게 음식 해 올린 적이 있습니다. 1976년 신흥관을 짓기 시작했는데 옥류관 만큼이나 컸습니다. 거기서는 오직 함흥냉면만 전문으로 하는 것으로 유명했습니다.

전: 교원을 하셨다고 했는데요?

: 함흥예술대학에서 미술-조선화를 가르쳤습니다.

전: 조선화를 하신 분이 음식업을 생각했을 때는이유가 있을 것 같습니다. 한국에서 미술을 계속하고 싶지 않으셨습니까?


: 네. 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처음 왔을 때 식당업은 생각하지도 않고 미술협회 분들의 소개로 많이 돌아 다녔습니다. 제가 한국에 입국할 당시에는 여성 미술전공자로는 저 혼자였습니다. 미술협회 분들이 그래서 저를 데리고 8개월 간이나 미술계를 구경시켜 주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나이가 들어서인지는 몰라도 한국의 미술을 둘러 보면서 느낀 것이 추상파 미술을 받아들이기도 어렵고 그걸 표현하는 게 너무 어렵다는 것이었습니다. 한국의 미술대학을 나왔다면 그런대로 괜찮았겠지만 제 나이가 마흔이 넘었다보니 대학원에는 들어가야 할 처지였습니다. 하지만 대학원에 들어가서도 추상적 표현은 배울 수 있었지만 그걸 받아들일 마음의 자세는 서지 않아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전: 탈북은 언제 하셨나요?

: 2006년에 했어요.

전: 이제 5년이 됐네요?

: 네.

전: 남편께선 먼저 탈북했다고 들었습니다.

: 네. 1년 먼저 탈북했습니다.

전: 자녀는 있습니까?

: 네. 딸 하나 있습니다.

전: 딸도 북한에서 낳았습니까?

: 네. 북에서 같이 온 딸입니다.

전: 안미옥 씨가 남한 정착과정에서 느낀 걸 말씀하신 기사를 봤습니다. “무슨일이든 망서리지말고 몸으로 부딪쳐 봐라. 그래야 자립할 수 있다.” 는 것이었는데 어떤 뜻에서 이런 말을 하셨나요?

: 북한에 있을 때 힘든 일은 못해 봤습니다. 교원으로만 20년 가까이 오래 근무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한국에 오니 말도 틀리고 모든 게 제가 할 수 있는 여건이 안 되더군요. 많은 사람들은 제게 배운 재간이 미술이니까 그걸 하라고 권했습니다. 그래서 미술분야를 배우겠다고 많이 다니고 했는데 겉으로만 훓을 뿐이지 몸으로 체험하지 않고는 한국사회 속을 접근할 수는 없다는 걸 느꼈습니다. 그래서 탈북자들이 정착하겠다는 결심이 서면 몸으로 부딪쳐 모든 난관을 타개할 수 있다는 각오가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제 경험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제가 처음 한국사회에 발을 디뎠을 때 받아주는 사람들이 없었습니다. 제가 업체에 면접을 볼 때마다 저를 보고 교사출신이 왜 이런 구직하려는가 하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면접도 7,8번이나 계속해 떨어졌습니다. 회사에 취직을 할 수 없더군요. 그래서 생각한 것이 ‘밑바닥부터 배우자’ 해서 파출부부터 시작했습니다.

전: 파출부는 어떤 직업입니까?

: 저도 파출부가 무슨 말인지 몰랐습니다. 벼룩시장 신문을 보니 파출부란 직업이 많이 나와 있었습니다. 인터넷을 올라가 찾아 봤더니 파출부란 것이 나처럼 취직 못한사람들에게 일당제로 일거리를 알선해 주는 곳이었습니다. 그래서 거기부터 문을 두드렸습니다. 일거리를 얻으면 경험있는 다른 사람들을 따라 다니며 눈치껏 일을 배웠습니다. 일을 모를 때는 남의 뒤를 따라다니면서라도 조심스럽게 배워야 하죠. 일단 내 자신이 일을 배운 뒤에는 혼자서도 얼마든지 할 수 있지만 말입니다.

전: 파출부는 주로 어떤 일을 합니까?

: 파출부 업무는 여러가지 입니다. 개인집에 가서 일을 거들기도 하고 아이를 봐 주기도 합니다. 잡부일이죠. 식당에도 일당제로 나가 돕는 일이 있습니다. 파출부에서 그런 일을 소개합니다. 저 처럼 여러번 구직 면접에서 떨어진 사람들이 많고 중국에서 온 사람들도 많이 찾아 옵니다.

전: 그러니까 마땅한 정규직업이 없을 때는 이런 저런 일당제 일을 한다는 말이군요.

: 네.

전: 앞으로 류경옥을 잘 꾸려나가기 위한 계획이 있을 텐데요.

: 저희 식당을 보고 탈북자들이 지역별로 분점을 내보고 싶다는 분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분점 확장은 아직 시기가 아닙니다. 적어도 한 곳에서 5년은 터를 잡은 다음에야 분점을 낼 계획입니다. 그동안 우리는 메뉴 개발에 더 열심히 노력할 작정입니다. 북한에서 부모님께 배웠던 북한식 음식 요리법을 유지하면서도 남한 사람들의 반응에 민감하게 대응해 그분들의 입에 맛는 새로운 음식을 만드는 노력을 계속할 겁니다. 5년 뒤에는 분점도 내고요.

전: 류경옥에서 남한사람 입맛에 맞게 음식을 개발하면 결국은 류경옥 식당 자체가 남북이 통일된 음식점이 되지 않겠습니까?

: 네. 저희들 생각도 차츰 그렇게 될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북한 전통음식에다 남한사람 입맛에 맞겠금 배합하다보년 그게 음식의 남북통합이 될 것 같아요.

RFA 초대석, 이 시간에는 탈북자단체가 서울에 세운 음식점 ‘류경옥’에서 한국사람들의 입맛에 맞는 북한식 국수와 국밥을 만들어 인기를 끌고 있는 탈북자 안미옥 씨의 얘기를 들어 봤습니다. 저는 전수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