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망초 해외연수 김강남 탈북학생

워싱턴-전수일 chuns@rfa.org
2015-0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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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FA초대석, 진행에 전수일 입니다. 열여덟 살 돌격대원으로 평양의 건설현장 일군이었던 청년이 10년 지난 지금 영어를 배우는 학생으로 미국의 수도 워싱턴에 왔습니다. 김강남씨인데요, 한국 내 탈북자 지원단체인 물망초의 여름방학 해외연수자로 뽑혀 지난 7월부터 공부하고 있습니다. 2010년 탈북 후 한국에 들어가 어머니와 함께 살고 있는 그는 현재 한국의 동국대학교 3학년 재학 중이며 대학을 졸업하면 경찰이 되어 통일한반도 북쪽의 주민들을 돌보는 것이 꿈입니다. 오늘 초대석에서는 김강남씨를 모시고 영어공부와 그가 체험한 미국 문화, 그리고 북한을 떠난 사연과 미래의 꿈에 대해 들어 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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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자 지원단체인 물망초의 여름방학 해외연수자로 뽑혀 미국에서 공부 중인 탈북대학생 김강남씨(오른쪽)가 자유아시아방송을 방문해 인터뷰를 하고 있다. RFA PHOTO/이규상
전수일: 실제 영어를 배우는 분위기와 환경을 소개해 주시죠.

김강남: 영어 학원, 어학당 같은 곳을 다닙니다. 영어를 너무 못해서 처음에는 손발을 써 가면서 영어를 시작했습니다. 그런 식으로 시작했지만 분위기는 너무 좋습니다. 외국인 선생들이 정말 친절합니다. 모르는 사람인데도 인사를 하고. 처음에는 당황하기도 했습니다. 언제 봤다고 나한테 인사를 하는지. 처음엔 신경이 쓰일 정도였습니다. 문화 차이인 것 같습니다.

전: 배우는 학급에 한국인만 있는 것은 아니겠죠?

김: 중동국가 사우디아라비아 친구들도 있고 브라질, 러시아 등 여러 나라에서 온 친구들과 함께 영어를 배웁니다.

전: 그런 급우들의 영어 실력은 어떻습니까?

김: 영어 실력 급수에 따라 학급을 나눴습니다. 1급 제일 초보에서 10급까지 있는데, 저는 1급에 속하는 반에 들어 있습니다. 시험을 보아 급수를 정해 같은 수준끼리 배우니까 별로 차이를 모르겠습니다.

전: 한국에서는 동국대학교 경찰행정학과 3학년 재학 중이라고 하셨는데요, 한국 대학에서는 영어를 기본적 과목으로 알고 배워야 하지 않습니까?

김: 네. 그렇습니다. 그래서 제가 여기 온 것입니다.

전: 한국에서 영어를 배우는 것과 여기 미국 현지에 와서 배우는 것과는 무엇이 다른 것 같습니까?

김: 일단, 발음 차이가 많이 나는 것 같습니다. 예를 들어 한국에서 영어 발음 f 를 배울 때보다 여기에서는 혀를 안쪽으로 더 감아서 이상하게 발음하더군요. 그래서 발음하다가 혼자 웃을 때도 있습니다. 그래서 발음과 그 느낌이 다른 것 같습니다. 한국에서는 초짜 (초보자)들의 발음은 글을 읽을 때처럼 발음해 나가는데 여기 현지에서는 마치 물결처럼 올라가고 내려가고 하는 억양을 확실하게 배우는 것이 큰 차이인 것 같습니다.

전: 지금 북한에서도 학생들이 영어 공부에 열심이고 웹사이트를 통해 보면 시청각 실을 이용해 공부하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만, 지금 여기 영어 학원에서 가르치는 수업 방식은 어떻습니까?

김: 저희는 기초반이라서 문법적인 것을 많이 배우고 있습니다. 일단 배운 것에 대해 시험을 보고 나면 또 다시 다른 문법을 배우고. 이런 식입니다.

전: 대화 연습은 하지 않습니까?

김: 대화 연습 물론 합니다. 하지만 아주 기초적인 연습을 합니다. 신기한 것은 모두 초짜들인데 대화가 아주 편안하게 잘 진행된다는 겁니다. 단어 한 개만 알아 들어도 이 친구가 지금 무얼 말하려 하는 구나 하는 걸 압니다.

전: 그러면 김강남 씨도 초짜인데 다른 친구들의 말을 이해하면서 자신도 말을 표현한다는 얘기네요?

김: 그렇습니다.

전: 듣기 쓰기 말하기 읽기 등을 모두 할 텐 데 어떤 부분이 제일 어려운 것 같습니까?

김: 문화가 제일 어려운 것 같습니다. 영어 언어를 배우는데 있어서 문화라고 하면 좀 생뚱맞은 얘기일 것 같지만 영어배우기가 어려운 것은 문화가 다르기 때문이 아닐까 하고 저는 생각합니다.

전: 예를 든다면요?

김: 이를테면 한국에서는 모르는 사람, 눈을 마주치면 그냥 지나치는데 여기서는 몰라도 Hi, How are you? 라고 인사하고. 모르는 사람인데요. 이것이 문화 차이 아닐까요? 그리고 노래만 해도 그 가사에 깃든 느낌이라든가, 음식이 다른 것 등 문화의 차이가 이 언어에 녹아있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전: 하루의 일과를 소개해 주시죠. 어떻게 하루를 지내시는지?

김: 아침에 일어나 8시쯤 지하철을 타고 한 시간 지나 학원에 도착합니다. 9시부터 11시 반까지 수업을 하고 30분간 식사한 뒤에 12시부터 또 1시 반까지 수업을 합니다. 수업이 끝나면 숙제를 받아 귀가합니다. 숙제 푸는 공부하고 다음날 다시 등교하는 일상입니다.

전: 동네 주위를 다닌다던가 주말에 수업이 없을 때 친구와 어울린다거나 하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학원 수업 외에 다른 생활을 해 본 것이 있다면 소개해 주시죠.

김: 저는 뮤지엄에 구경 가 봤습니다.

전: 북한에선 뮤지엄을 뭐라 하죠?

김: 박물관이라고 합니다. 그 박물관 구경을 갔었는데 제일 신기한 것이 무료더군요. 그래서 저는 북한에 온 줄 알았습니다. 북한에선 그런 곳이 다 무료이지 않습니까? 하지만 북한에서는 먹고 살기가 힘드니까 무료라도 박물관에 갈 시간이 있다면 그 시간에 농사일을 하는 게 더 낫습니다. 그래서 북에서 박물관에 갈 사람이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여긴 북한에서 말하는 소위 ‘미 제국주의자’ 들의 나라인데 공짜가 있는 게 신기했습니다. 제가 경찰행정학과를 공부하다 보니 미국의 헌법에 대해 관심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 박물관에 건국 초기 헌법 원본이 보관 전시돼 있는 곳이더라고요.

전: 경찰이라는 건 북한사람들이 이해할까요?

김: 보안원이라고 하면 이해할 수 있을 겁니다. 미국 나라가 탄생할 때 그 기초가 되는 법이 적혀 있는 초안지를 보고 왔습니다. 그러니까 2, 3백년 정도 된 것인데 그 내용은 모두 이해하지 못하지만 주요 내용 설명을 듣고 이런 헌법정신 아래 지금 초강대국이 되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고 또 의문점도 들었습니다. 이런 것을 공개하는 이유가 뭘까 하는 의문 등 여러 생각이 들었습니다.

전: 그러니까 1770년대에 이 나라가 영국으로부터 독립했을 때 건국의 아버지들이 만든 헌법 기초가 되는 문헌을 보신 거군요?

김: 네.

전: 여기서 텔레비전 방송도 보셨나요?

김: 여기 와서는 텔레비전 방송을 보지 않았습니다. 여기 와서까지 텔레비전에 마주 않아 있을 수는 없잖습니까? 여기는 외국이고 또 여러 가지를 즐겨야 하니까요. 저는 젊으니까 공부도 공부지만 여러 체험을 해야죠. 미국 텔레비전 프로그램은 한국에서도 웹사이트를 통해 볼 수 있으니까요. 한 순간이라도 미국 현지 땅을 밟아보는 것이 추억과 체험이 될 것이기 때문에 가능한 밖에 나가 보려 합니다. 마트에 나가 쇼핑을 한다든가 음식점에 가서 음식을 맛 보든가…모든 게 제게는 새로운 경험이라서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전: 마트라고 하셨는데 북한사람들에게는 무엇입니까?

김: 상점 같은 곳인데, 마트에 가니 상품 값이 모두 비싸더군요. GDP가 한국보다 높아서인지는 모르겠지만 한국돈을 달러로 바꿔 여기 상점에서 장을 본다는 것은 비효율적일 것 같습니다. 하지만 볼 것이 너무 많고 또 미국만의 특성이 있는 상점이었습니다. 한편으로는 한국보다 더 싼 물건도 있었습니다. 신발 중에 챔피언 이라는 상표 브랜드가 있는데 한국에선 한 켤레에 5만원이라면 여기서는 25달러 정도였습니다.

전: 2만5천원으로 보면 그 값이 절반 정도군요.

김: 그렇습니다. 그러니까 인터넷으로 상품 가격을 찾아서 비교해 보고 미국에서 더 싼 것을 골라 효율적인 쇼핑도 계획하고요. 그리고 식당에 가서 밥도 먹어봤는데요, 한 가지 놀라운 것이 있었습니다.

전: 어떤 식당이었습니까? 한국식 아니면 중국식?

김: 멕시코 식 식당이었습니다.

전: 북한말로 메히꼬 식당이었군요.

김: 근데 거기 가서 먹고 나니 팁을 줘야 한다고 하더라고요. 북한 말로 하면 수고비를 따로 줘야 한다는 것이었죠. 그러니까 밥값을 내고도 수고비를 추가로 내야 한다는 말이죠. 근데 적응이 안되더군요. 밥값을 냈는데 왜 팁을 줘야 하나? 이해가 안 되더라고요. 근데 미국에서는 다 주고 있대요. 어찌 보면, 감사하게 맛있게 먹었으니까 팁을 내는 것도 일리가 있다는 생각은 들었습니다. 그래서 내긴 냈는데 나오면서 좀 아깝더라고요. 제가 풍족한 처지도 아니고.

전: 두 달 가까이 영어를 배우고 또 그 배움이 한국에서 배울 때와는 다르다고 아까 말씀하셨는데 한국에 돌아가 다시 공부할 때 여기서의 공부와 문화 체험이 어느 정도 동기가 되고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하십니까?

김: 저는 어학연수와 미국 방문이 태어나 처음입니다. 제가 북한에서는 상상도 못했던 일입니다. 비행기를 14시간 이상 타고 미국에 연수 와서 영어 공부하며 코 큰 사람들 만나 Nice to meet you 라고 할 줄 누가 알았겠습니까? 여기 와서 보니 모든 것이 놀랍고 또 나 자신에게도 동기 부여가 많이 되는 것 같습니다. 일단 제가 한국에 있을 때는 나는 한국에서의 삶만 생각했습니다. 나는 한국에 속해 있으니 이렇게만 살아야지 하고 생각했었는데 미국에 와서 손발이 모자랄 정도로 손짓발짓하며 영어 배우고 외국인 급우들과 친숙하게 지내면서 느낀 건 ‘아, 내가 우물 안의 개구리였구나’ 하는 것이었습니다. 제가 한국에서 갈 수 있는 나라들은 많았습니다. 하지만 가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런 좋은 기회가 되어 미국에 나왔습니다. 그런데 북한에 있는 사람들은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멍해 지더군요. 내가 누리는 이 같은 자유를 북한에 있는 친구들에게 조금이라도 나눠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여러 가지 생각을 많이 하게 됐습니다. 그리고 나 자신 우물 안의 개구리 라는 생각은 ‘한국에 있는 것이 전부가 아니고 세상에 나와 서 봐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영어를]못하더라도 못 할 수록 바깥 세상에 나와서 봐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번 연수를 기회로 한국에 돌아가면 경찰시험을 열심히 준비할 겁니다. 한국에 있을 때는 이런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내가 경찰시험에 떨어지면 어떻게 하지? 그럼 나는 실패한 인생인가?” 하지만 지금은 ‘No problem.’ 안 되면 안 되는 것이고 또 적성에 안 맞을 수도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마음을 비우게 됐습니다. 많은 여유를 찾고 한국에 돌아가게 될 것 같습니다.

전: 그러니까 그만큼 생각의 틀이 넓어지고 선택의 다양성을 인식하게 됐다는 좋은 경험이 된 것 같습니다. 방금 한국에 돌아가면 경찰시험을 준비하겠다고 했는데 북한의 보안원격인 경찰이 되겠다고 생각한 동기가 있습니까?

김: 네. 저로서는 확실한 동기가 있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경영학과나 요리학과를 선택하라고 조언할 때에도 저는 무조건 경찰행정학과에 들어가겠다고 했습니다. 그 이유는 제 기구한 탈북 사연 때문입니다. 파란만장합니다. 북한 법이라고 할 수 있는 보위부에 들어가 많이 구타당했기 때문에 사람다운 법인이 되고 싶다는 생각이 많았습니다. 약자의 목소리를 들어주는 보안원, 경찰이 되어야겠다는 생각이었습니다. 제가 당시에 피해를 입었지만 지금도 북한 주민들 중에는 그런 피해를 당하는 사람들이 분명히 있을 것으로 생각하거든요. 언제까지 주민들이 그런 고통을 겪어야 하겠습니까?

통일은 반드시 될 것이고, 통일이 되면 약자의 편에 서는 경찰. 북한에서는 내가 피해자였지만 통일되면 내가 그런 사람들을 돌보는 정의를 구현하는 경찰이 되고 싶어 경찰행정학과에 들어갔습니다. 저는 경찰행정학과에만 입학하면 무조건 경찰이 되는 줄 알았는데 실제 쉽지 않더군요. 시험이란 벽이 있지만 열심히 하려고 합니다.

전: 경찰학과도 4년제이겠죠?

김: 그렇습니다. 시험을 봐서 합격해야 보안원, 즉 경찰이 되는 것이죠.

전: 한국 생활도 이제 5년정도 하셨는데요, 북한의 보안원과 한국의 경찰, 가장 다른 점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김; 한국 경찰은 너무 바보 같아요.

전: 어떤 뜻에서입니까?

김: 북한에서는 공권력 자체가 법입니다. 북에서는 경찰, 보안원들을 하늘처럼 여기고 두려워합니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경찰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경찰에게 아무 말이나 다 합니다. 경찰은 그런 말을 다 들어 줍니다. 두려운 존재가 아니라 친구 같습니다. 물론 범죄를 저지른 사람들은 경찰이 두려운 존재이겠지만 일반인들에게는 북한 보안원같지 않은 경찰, 그냥 친구 같은 경찰인 것이죠.

전: 그러니까 일반 주민에게는 봉사하는 사람 정도로 비쳐지는 군요.

김: 그렇습니다. 북한 기준으로 보면 마치 바보같이 보일 수 있다는 것이죠. 그 표현이 좀 지나칠 수도 있겠지만.

전: 그만큼 북한에서는 보안원이 권력의 상징이고 주민들을 억압할 수 있다는 말이군요.

김: 북한의 경찰은 사람을 폭행해도 문제가 없습니다. 임산부에 폭행을 가해 낙태가 되어도 법에 걸리지 않습니다. 법은 언제나 경찰의 손을 들어 줍니다. 또 경찰은 뇌물을 엄청나게 받아도 괜찮습니다.

전: 한국에서는 따귀 한 대 때려도 큰일나죠?

김: 따귀가 뭡니까? 여성의 손만 잡아도 큰 일 납니다. 그래서 이런 걸 볼 때 ‘이것이 민주주의이고 사람 사는 세상이 아닌가? 이런 경찰이 진정한 경찰이 아닌가?’ 라는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경찰에 대해 호감을 갖는 것 같습니다.

전: 청취자들에게 진취적이고 희망적인 얘기만 들려주면 좋겠습니다만, 되돌아 볼 때 가슴 아픈 얘기도 많을 것입니다. 본인이 북한에서 어떻게 살다가 왜 탈북 하게 됐고 현재 남한에 정착하게 됐는지 청취자들이 궁금해 할 것 같습니다.

김: 성공적으로 정착하셨다고 하셨지만 저는 성공한 것이 아니고 대한민국의 일반인들은 모두 저처럼 살고 있습니다. 물론 북한 사람들이 볼 때는 성공했을 지 몰라도 한국 사람들은 다 저처럼 살고 있습니다. 자기가 원하면 외국에 나갈 수 있고 하고 싶은 대로 살 수 있습니다. 특히 여자의 경우 자신의 권리와 인권을 지키며 삽니다. 그런 점에서는 남과 북이 엄청난 차이가 있죠. 여기서는 누구나 다 이렇게 살 수 있다는 말을 꼭 해주고 싶었습니다. 제가 어떻게 해서 한국에 오게 됐는지 궁금해 하시는 분들을 위해 간략히 설명한다면 저는 당초 한국에 갈 팔자도 아니었고 가고 싶지도 않았고 북한에서 다른 사람들과 함께 살고 싶었습니다. 왜냐면 저는 태어나 북한밖에 몰랐으니까요. 어릴 때부터 김정일 장군님밖에 몰랐고 오직 장군님만이 정의이고 세상인줄 알았거든요. 북한주민 여러분과 똑같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평양에서 일을 하다가 제가 입당할 수 없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그 이유가 좀 웃깁니다. 부모님이 뭔가 잘 못해서 가족 서류에 검은 칠이 되어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이 말이 됩니까? 저는 나라를 위해서 무보수로 3년동안 열심히 일을 했는데 돈 일전도 안 주고 입당도 안 시켜 준대요. 입당을 왜 하자고 했겠습니까? 당을 위해서, 장군님을 위해서 열심히 했었는데 입당 안 시켜준대요. 너무 황당했습니다. 고향에 돌아와서 중국에 넘어갈 생각을 했습니다. 왜냐면 내게 너무 희망이 없었기 때문이죠. 그런데 넘어가다 잡혔습니다. 범죄자 취급을 하더군요. 외국에 못나가는 건 알았지만 그것도 너무 싫었습니다. 나는 젊었고 하고 싶은 것이 많은데 왜 갇혀 살아야 하는지. 나는 당을 위해 헌신했는지 나의 앞길을 막고 더 이상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고. 정말 개보다 못한 인간처럼 살아야 하고. 그게 너무 싫어서 탈북하려 했고 그 과정에 제게 총을 쏘더군요. 이게 할 짓입니까? 내가 북한의 무슨 기밀문서를 훔쳐 달아나는 것도 아니고 그냥 자유를 얻고 싶어서 중국으로 가는 것이었는데. 총질을 받고는 이 땅이 내가 살 곳이 아니라는 것을 또 한 번 통감했죠. 보위부에 끌려가 엄청 매맞고 다시 탈북해 한국에 왔습니다. 북한이 나를 버린 것이지 제가 북한을 버린 건 아닙니다. 수많은 주민들이 저와 같은 처지에 있고 저와 같은 경험을 했을 겁니다. 저는 선동을 하는 것도 아니고 제가 겪은 일을 그대로 전하고 있는 겁니다. 제가 한국에 가서 그리고 지금 미국에 와서 제일 놀란 것은 어릴 때부터 배운 그렇게 가난하다는 남조선이 또 미제 양키의 나라가 실제는 다르더라고요. 똑같은 사람들이더라고요. 양심 있는 사람, 친절한 사람 많고. 그리고 제일 중요한 건 내가 무엇을 하면 된다는 것입니다. 제가 북한에 있을 때 아무것도 될 수 없었습니다. 원하는 건 아무것도 안 됐습니다. 3년 무보수로 일해 입당하려 했지만 안됐습니다. 근데 저는 남한에 가서 1년동안 용접 일을 했는데 돈을 왕창 주더군요. 그 왕창 이란 금액은 북한에서 집을 다섯 채 살 수 있는 돈이었습니다. 깜짝 놀랐고 그 돈이 부담스러웠습니다. 어떻게 그걸 다 쓸 것인지. 북한에 친구들이 들을 지 모르겠지만 제가 대학생이라서 성공했다는 말씀을 하셨는데, 일반인도 모두 대학생이 될 수 있습니다. 북한에서 저 같은 사람은 대학교의 대자도 생각할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여기서 나는 혼자 공부를 하고 싶고 공부를 하니 저절로 대학교에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또 여기선 공부한 만큼 학점, 점수가 나옵니다. 또 어느 날 미국에 가고 싶어 신청하니 좋은 단체의 후원으로 이렇게 미국에 왔습니다.

전: 방금 얘기한 단체가 탈북 젊은이들에게 외국에 나가 어학 연수할 수 있도록 기회를 주고 있는 물망초 란 곳이라고 알고 있습니다만, 모든 사람이 가고 싶다고 다 갈 수 있는 것은 아니고 경쟁을 통해 선정이 됐을 텐데요. 어떻게 뽑히셨습니까?

김: 물망초는 동국대학교 법학과 교수인 박선영 이사장님이 이끄는 단체인데요, 북한 사람들은 물망초라는 말을 들으면 물망초 만화영화 제목을 떠 오를 겁니다. 그런 것이 아니고 물망초라는 꽃에 그 뜻을 두고 있습니다. 물망초 꽃말에는 ‘나를 잊지 말라’는 뜻이 있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약한 사람들을 잊지 말자는 뜻에서 설립된 사답법인입니다. 탈북자 국군포로 사회적 약자 등을 대상으로 좋은 일을 하고 있는 단체입니다. 제가 존경하는 교수님이신데 어떻게 그렇게 큰 일을 하시고 수많은 사람들을 살리는 일을 하시는지 모르겠습니다. 물망초에서 탈북대학생을 대상으로 해외 연수기회를 준다는 걸 알고 저도 신청을 했습니다. 경쟁률이 얼마나 됐는지는 모르겠지만 어느 날 저한테 합격됐다는 통보가 왔습니다. 저의 영어 실력이 바닥인데도 이런 기회가 온데 대해 정말 열심히 하겠다고 결심했습니다. 남은 일정 잘 마무리 하고 귀국할 예정입니다.

전: 남은 일정 동안 무얼 하실 건지요?

김: 일단, 남은 공부를 하는 건 기본이고요. 또 제가 젊으니까 멀지 않은 곳에 여행도 해보고 싶습니다.

전: 어떤 곳을 여행하고 싶으신지요.

김: 뉴욕을 가보고 싶습니다. 미국에서 가장 큰 도시이고 상업도시라고 알고 있는데요, 거기에서 자유의 여신상을 꼭 보고 싶습니다. 아메리카의 상징인 그곳에서 사진을 찍고 싶습니다. 또 뉴욕의 복잡한 거리에서 미국인들과 함께 파묻혀 보고 싶습니다. 모르는 미국인들과 마주치면 인사도 해 보고 싶습니다. 돌아오면 한 주일 정도 남는데 공부를 해야죠.

전: 북한에는 아직 남은 가족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누나 에게 보내는 방송 편지를 보내 주시죠.

김: “잘 지내? 나 한국에서 미국에 왔어. 여기서 영어 공부하고 있어. 기초적인 대화는 한다. 누나도 알겠지만 내가 공부하는 것 자체가 웃기는 일이지. 사람 질 못할 놈이라고 늘 손가락질 받았지. 하지만 누나는 항상 걱정해 주고 뒤돌아 울곤 했지. 사람답게 사는 내가 솔직히 행복해. 사는 게 사는 것 같아. 맛있는 것 먹고. 그렇지만 한쪽으론 항상 미안해. 누난 그렇게 못하잖아. 그게 제일 미안해. 날 위해 고생하고 챙겨주고 부모처럼 아껴주던 누나는 정작 고생하는데, 행복은 내가 누리고 있으니. 미국에 왔으니 열심히 해야 한다는 생각이야. 열심히 해서 꼭 성공할 거야. 통일되면 내가 헛 살지 않은 것을 누나에게 보여주고 싶어. 거기 내 친구들 나를 어떻게 생각할 지 궁금해. 어떤 아이들은 나를 조국을 배반한 변절자라고 할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상관없어. 가서 꼭 들려 줄거야. 어떻게 사람이 사는 건지를. 내가 어떻게 성장했는지를. 누나 잘 지내고 아프지 말고 밥 꼭 챙겨 먹고 통일되면 보자.”

RFA 초대석, 이 시간에는 여름방학을 이용해 미국의 수도 워싱턴에서 어학연수를 하고 있는 탈북 대학생 김강남 씨를 모시고 영어공부와 미국 문화 체험, 그리고 북한을 떠난 사연과 미래의 꿈에 대한 얘기를 들어 봤습니다. 저는 전수일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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