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FA 초대석] 북한정치범수용소철폐운동본부의 김혜숙 본부장

워싱턴-전수일 chuns@rfa.org
2011-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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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월 국회에서 열린 한나라당 주요당직자회의에서 북한 정치범 수용소에 수감됐던 탈북자 김혜숙(50)씨가 직접 그린 수용소 지도를 보여주며 북한 인권실태에 대한 증언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화제의 인물을 만나보는 RFA 초대석, 진행에 전수일 입니다. 얼굴도 알지 못하는 할아버지가 월남자라는 이유로 가족과 함께 정치범 관리소에 수감돼 30년 가까이 생지옥을 경험한 탈북자 김혜숙 씨. 아직도 평안남도 북창군 봉창리 제18호 관리소에는 수감된 이유조차 모르며 바깥세상과 고립돼 인간 이하의 비참한 생활을 하는 동생들이 있습니다. 2년 전 탈북해 남쪽에서 자유를 찾은 김혜숙 씨는 북한 관리소에 갇혀있는 동생들과 20만 수감자들도 그 자유를 누릴 수 있도록 하기위해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끔찍한 인권유린이 자행되고 있는 북조선 내 관리소의 철폐를 호소하고 있습니다. 한국에서 북조선 관리소 수감자 출신 탈북자들로 조직된 단체 ‘북한정치범수용소 철폐운동본부’ 본부장을 맡고 있는 김혜숙 씨가 다른 탈북자들과 함께 9월 넷째 주 미국의 연방의회 하원 외교위원회 청문회에서 북조선 정치범 관리소의 인권 유린 실태를 증언했습니다. 워싱턴 체류 중 저희 방송국을 찾은 김혜숙 씨를 만나 봤습니다.

전수일: 미국 워싱턴은 처음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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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21일 미국 워싱턴의 자유아시아방송을 방문한 탈북자 김혜숙 씨. - RFA PHOTO
김혜숙 본부장: 네.

전: 그동안 여러 외국을 돌아다니며 북한의 관리소의 인권유린에 대해 증언하고 인권유린을 개선할 수 있는 힘을 모아달라고 호소를 하고 다니시는데, 이번에 미국의 수도 워싱턴을 방문해 연방하원 외교위원회에서 20일 증언하셨습니다. 수용소 모습을 그린 그림을 갖고 나오셨다고 들었습니다. 수용소 지도와 수용소 내의 참상을 담은 그림이었다는데 그림은 직접 그리셨습니까?

: 네.

전: 어떤 그림이었습니까?

: 수용소 내 약도가 있는데 제가 28년간 18호 관리소에서 살면서 그 안에서 4번을 이사다녔고 지역마다 7-8년 정도 살아서 지리를 정확히 알고 있습니다. 우리가 이사를 가고 싶어서 간 것이 아니라 이사를 가라고 지시하면 이사를 해야 했습니다. 제가 그린 수용소 약도는 구글위성에서 찍은 수용소 사진과 딱 맞았습니다. 그래서 내가 그린 그림을 세계에 공개해도 북에서 할 말이 없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내가 북창관리소 안의 탄광에서 오래 일했기 때문에 건강이 나빠 평지길을 다니는 것도 숨이 찹니다. 그런데 수용소 설명을 할 때마다 질문이 쏟아지고 매번 대답을 하기도 힘들어 궁리하다가 수용소 실상을 그림으로 그리자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수용소에 관한 책이 나온 것도 없고 해서. 그래서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게 지금 50점 정도가 됩니다. 현재 카나다 이탈리아 일본에 전시해 놓은 곳이 있습니다. 이번에 미국 올 때는 색상을 많이 넣은 그림을 그렸습니다.

전: 결국 수용소 그림을 그리게 된 동기는 전세계를 돌아다니며 증언하면서 수용소에 대해 호기심 많고 알고싶은 분들이 자주 질문을 하니까 설명보다는 이해가 쉬운 그림으로 그리게 된 것이군요. 28년이나 수용소에서 살았으니 눈 감고도 지역을 잘 아실테고.

: 네. 눈 감고도 알 수 있죠. 한국에서도 대학생들이 제 그림을 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고합니다. 말로만 듣고는 수용소 실상을 상상하기가 어려웠다고 합니다.

전: 그림에는 사람도 있고 시설도 있겠네요.

: 네. 제가 북한에서 수용소에 잡혀 들어가 2008년 3월까지 살았습니다. 수감자들이 실제 생활하는 모습을 그렸습니다.

전: 주로 어떤 모습입니까?

: 관리소에서 유지되는 사람들의 형편입니다.

전: 어떤 형편입니까?

: 애들이 학교갈 때 신발이 없어 맨발로 가는 그림, 탄광에서 언제 무너질 지 모르는 위험속에 광부들이 일하다 다쳐 죽는 그림, 12년간 탄광에서 제가 탄차를 밀면서 겪은 생생한 체험을 묘사한 그림, 어머니가 우리를 먹여 살리려고 높은 벼랑에서 산나물 뜯다가 빈혈로 떨어져 머리가 깨져 숨지는 모습, 또 우리 할머니가 어니가 숨진 뒤 우리 아이들 밥상에 반찬으로 나물과 소금과 물을 놓고 밥먹는 모습 등입니다.

전: 관리소 수용자들은 일반 주민들이 먹는것보다 못합니까?

: 물론 못하죠. 내가 지금도 그렇게 생각하지만, 저처럼 관리소 지역에 안들어가고 사회지역에 있다가 한국에 온 탈북자들은 너무나 행복한 사람들입니다.

전: 거기서 잘못하면 처벌도 받는다고 하죠?

: 때리고, 공개총살하고 교수형으로 목매달아 죽이고. 그림에도 있습니다.

전: 수용소 내의 처형방법은 교수형입니까?

: 관리소에 28년 있는 동안 두 번 교수형을 봤습니다. 하지만 공개처형은 수없이 봤습니다.

전: 공개처형은 총살입니까?

: 네.

전: 미국 연방 하원 외교위원회에서 증언하실 때 수용소 내의 고문같은 인권유린 행위에 대해 궁금해 하는 의원들이 많았다고 들었습니다. 가장 궁금해 하는 건 어떤 것이었습니까?

: 거기서 나무껍질과 풀입만 먹으면서 어떻게 살아 남았는지였습니다.

전: 영양가 없는 나무껍질인데 어떻게?

: 네. 제가 나이 13살부터 계속 주식으로 그런 걸 먹어 인이 배긴 점도 있고, 어머니 사망하고 할머니 돌아가시고, 아버지는 보위부에서 잡아가고 남동생은 죽고 하니까 내가 맏이로서 동생들을 떠 맡았습니다. 의지가 강해야지 약하면 제깍 죽고 맙니다. 그래서 거기서 생존했다고 생각한다고 답했습니다. 우리 동생들은 아직 그 관리소에 있습니다. 여동생 둘, 남동생 한 명이 아직 거기 있습니다.

전: 관리소 들어가면 몇 년 있어야 한다는 게 있습니까?

: 없습니다. 제가 13살에 들어갔잖아요? 어른들에게는 수용소 수칙12가지 조항을 알려주는데 우리 애들한테는 알려주지 않았습니다. 그냥 부모따라서 살면 되는거라서 그랬던 것 같습니다. 거기서 첫 조항은 이유를 묻지말라는 것입니다. 무엇이든지. 이유를 물으면 반항자로 규정돼 무조건 총살입니다. 그래서 할머니는 우리들이 나가서 매맞으면 가슴 아파하시면서 하는 말씀이 ‘벙어리처럼 아무말도 하지 말아라, 그래야 매맞지 않고 이 관리소 지역에서 살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우린 그렇게 살았습니다. 거기서 그냥 그렇게 살다가 죽는거니 했습니다.

전: 거기서 영영 사는 사람도 있겠습니다.

: 네. 거기서 영영 살다 죽는 사람 있죠. 아직 우리 동생들은 벌써 30년이 넘게 거기에 있지 않습니까? 우리보다 먼저 관리소에 들어간 사람들은 50년 60년이 된 사람도 있고, 한 평생 살면서 시집 한 번 못 가보고 결혼 한 번 못 해보고 죽는 사람이 수없이 많습니다.

전: 김혜숙씨는 혼자 탈출하신 건가요?

: 제가 자식이 둘 있었습니다. 여자는 28세 남자는 30세 되면 결혼을 승인해 줍니다. 그렇다고 나이가 되면 무조건 승인해 주는 건 아닙니다. 일을 잘 해야 합니다. 그래서 저는 거기서 28세에 결혼 승인을 받았지만 딸린 동생들이 많아서 배우자가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90년도에 시집가서 아이를 낳았습니다. 남편은 탄광에서 죽었습니다. 그래서 해제를 받아 수용소에서 딸 하나 아들 하나 데리고 나왔습니다. 나왔지만 돈이 없고 부모에게 인계받은 게 하나도 없어서 가족 부지를 못하고 아이들 학교도 붙이지 못했습니다. 집이 없어서 남의 집에 아이들 맡기고 장사를 했는데 홍수가 나 그집이 몽땅 떠내려갔습니다. 그래서 아이들의 생사여부도 모르는채 저 혼자 탈북했습니다.

전: 그런데 미국 말고도 영국 카나다 유럽의회 일본 이탈리아 등 외국을 많이 방문하셨죠?

: 일본에는 네 번 갔습니다.

전: 그쪽 의회 의원들도 만나고 카나다에서는 정부 고위인사와 총리도 면담하셨죠. 그분들에게 증언하면 그분들 반응은 어떠했습니까?

: 그들은 우리가 어떻게 도와주면 되겠냐고 묻곤 했습니다. 그러면서 대체로 북한 주민들의 먹는 걸 공급하는 게 기본적인 급선무라고들 하던데, 저는 반대입니다. 왜냐면 여기 미국에서 북한에 식량을 지원하는 건 먹고살기 힘든 주민들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겠지만 나는 한 톨도 보지 못했습니다. 다만 빈 쌀자루만 시장에 내다 팔고 있습니다.

전: 내용도 없는 빈자루를 왜 사고팔고 합니까?

: 북한에는 자루가 없습니다.

전: 자루도 값이 된다는 겁니까?

: 네. 뭘 담을래도 담을 게 없어서 그걸 사서 쓰거든요.

전: 자루를 보면 거기에 뭐가 쓰여져 있나요?

: 대한민국, 쌀 이렇게 쓰여져 있지요. 그런데 그 빈자루도 사서 쓰다가 잡히면 매맞습니다. 못쓰게 해요. 왜냐면 대한민국, 미국 등이 적힌 마대는 쓸 수 없거든요. 우리 동생들이 아직 거기에 있으면서 먹지 못하고 헐벗고 신발도 못 신고 사는 걸 훤희 알고 있는데 여기서 쌀을 주민들에게 준다면야 왜 내가 그걸 반대하겠습니까? 결국은 중앙당이나 보위부 안전원들이나 처먹고 그 기운들이 뻗쳐서 주민들을 더 학대하고 때리고 기운이 뻗치니 잘못도 없는 사람들 오라고 해 때리고. 그러니까 북한에는 식량을 보내주지 말고 동물 사료를 보내야 합니다. 거기에서 우리들에게 말사료 개사료 닭사료를 배급해 주는데 그것마저도 충분하게 주질 않았습니다. 굶어죽지 않을 정도만 줍니다. 우리 일곱 식구가 4.5킬로로 한 달 먹어야 하는데 그걸 쪼개서 얼마나 먹겠습니까? 그래서 계속 풀뿌리와 나무껍질 뜯어 손이 손같지 않습니다.

전: 결국 주식이 동물사료네요?

: 초식동물이라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저 파란 것이란 모두 뜯어 먹습니다. 그러니 식량지원을 해도 소용이 없습니다. 그래서 내가 주장하는 건 북한 인권입니다. 물론 핵도 없애야 하지만 북한이 듣습니까? 특히 김정일이가 듣습니까? 그러니 국제사회는 이제 북한에 대해 인권을 앞세우기 전에는 너네와 거래를 안한다면서 세계적으로 고립을 시키면 북한은 우선 정치범수용소도 좀 철페할 것이 아니겠냐는 게 제 생각입니다.

전: 그러니까 결국은 정치범수용소 같은 곳에서 초식동물처럼 못 먹고 있는 이들을 위해 WFP와 국제사회 그리고 한국에서 식량을 지원하는건 좋겠지만 그게 제대로 전달이 안되고 있으니 그것보다는 인권유린 문제를 먼저 개선하는게 낫겠다는 얘기군요.

: 네. 그리고, 만일 식량을 보내 준다고 해도 사료를 보내줘야합니다. 그래야 그네들이 배급을 줄 것이거든요..

전: 그러니까 쌀 보다는 동물사료를 보내는게 오히려 낫다는 말이네요.

: 네. 자기들은 사료는 안먹으니까 배급으로 주거든요.

전: 그런데 관리소 내부의 사정이 이렇게 열악하고 참혹하다는걸 일반 북한주민은 압니까? 소문을 통해서라도 듣나요?

: 간혹, 군관 군인들은 알더라구요. 내가 나왔을 때 관리소에서 30리 떨어진 직동, 거기서 또 30리 더 가는 순천에 있는 사람들은 관리소가 어떤 곳인지 알더군요. 봉창에서 왔다면 벌써 등을 돌려요. 근데 청진, 원산 쪽으로 나가면 18호 관리소 봉창에서 왔다하면 모르거든요. 물론 우리는 나올 때 관리소 내의 삶을 밖에 누설하지 않는다고 다짐합니다. ‘누설하면 헌법 몇 조에 걸려 다시 체포한다’ 면서 지장을 찍으니까요.

전: 그러니까 관리소에서 고생하고 죽을 정도로 살았다는 걸 밖에 나가 발설하지 말라는 얘기군요?

: 네.

전: 관리소에 수감된 사람들의 혐의는 여러가지일텐데요. 요덕관리소의 강철환씨는 재일교포였고, 김혜숙씨는 할아버지가 월남한 가족이었고, 또 김기철이란 탈북자는 국군포로가족이었다고 하고. 기독교인도 있고. 김영순씨의 경우는 예술인이고. 노동당 간부와 탈북방조자 등도 있고. 김혜숙 씨가 28년 있으면서 북창 관리소 내 주변에 살던 사람들은 주로 어떤 혐의와 죄로 들어온 사람들이었나요?

: 제가 아는바로는 70년대에는 6.25 월남자의 연유자들이 많았습니다. 예를 들어 우리는 할아버지 얼굴도 모르지만 가족이란 연고로 수감됐습니다. 그 다음 96년부터 2000사이에는 심화조사건 연유자들이 들어 왔습니다. 그들은 직업이 고위급이던 사람들, 잘 살던 사람들로 우리와는 비교도 안되는 그런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 사람들이 갑자기 몰려 들어왔는데 관리소 내에는 집이 한정돼 있어서 기존 수감자들의 오막살이 매세대마다 몽땅 몰아 넣었습니다. 우리집에는 남포시 행정위원회 위원장 엄정돈이 들어와 살았습니다. 그는 우리와 비교도 안될 정도로 잘 살던 사람이었습니다.

전: 심화조 사건을 일반 북조선 인민들은 무엇인지 압니까?

: 네. 압니다.

전: 잠간 설명해 주신다면?

: 김정일이 집권한 당시 김일성의 측근과 고위층 간부들을 몰아내고 자기 측근들을 기용했습니다. 그때 숙청한 사건입니다. 지주 아들이라는 식으로 문건을 위조해 몰아 냈습니다.

전: 그런데 오길남씨 아시죠? 1985년 입북했다 그 다음해 혼자 탈북하고 부인 신숙자씨와 딸 둘은 요덕관리소 통제구역에 있다가 평양 인근의 무슨 통제구역으로 옯겨졌다고 합니다.

: 우리도 관리소에 있을 때 살다가 아침에 일어나면 누구네가 갑자기 없어지곤 했습니다. 이렇게 갑자기 없어지는 사람들의 정체를 알 수 없었습니다.

전: 심화조 사건처럼 당 간부나 보위부등 높은 사람들이 관리소에 들어가면 거기에 있는 일반 수감인들과 똑같이 취급 당합니까?

: 똑같아요. 먹는 것도 같고 노동도 같고. 몽땅 탄광에다 몰아 넣었습니다.

전: 김혜숙 씨는 북조선에 관리소가 없어져야 한다고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호소하고 있습니다. 이유가 뭡니까?

: 저는 28년 간 수감된 이유를 모르고 살았습니다. 나오고 나서 큰아버지네 가니까 설명해 주셨습니다. 그분 말씀이 장남이 부모를 모시고 살게 돼 있었지만 장남 차남은 이미 결혼해 살고 있어서 막내아들인 우리 아버지가 군대 나갔다 돌아와 할머니와 함께 살았다고 합니다. 결혼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할아버지는 집을 나간 뒤 돌와오지 않아 행방불명이었지만 월남자로 처리됐습니다. 나는 할아버지 얼굴도 못봤습니다. 그래서 관리소에 들어가게 됐고 그렇게 살다가 나온 것입니다. 나는 관리소를 나와 그런 내용을 알게 됐지만 우리 동생들은 관리소에서 30년이 넘도록 그 이유를 모르고 같혀 있단 말입니다. 왜 우리가 그렇게 당해야 하는 것입니까? 정치범수용소 안에는 그런 [수감된 이유를 모르는]사람들이 한 둘이 아닙니다. 그래서 나는 그걸 없애야 된다는 겁니다. 그 사람들에게 자유의 삶을 줘야 한다는 겁니다. 이건 누구한테 들어서 하는 말이 아니라 내가 경험으로 깨달은 겁니다.

RFA 초대석, 이 시간에는 북조선 북창 18호 관리소에 근 30년 갇혀 살다가 2008년 북조선을 탈출해 지금은 한국에서 ‘북한정치범수용소철폐운동본부’라는 탈북자 단체를 이끌고 있는 김혜숙 씨의 얘기를 들어봤습니다. 저는 전수일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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