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대현 직업교육원 허서진 원장

워싱턴-전수일 chuns@rfa.org
2015-08-10
이메일
댓글
공유
인쇄
  • 인쇄
  • 공유
  • 댓글
  • 이메일
장대현직업교육원의 한국어 학당을 운영하고 있는 허서진 원장.
장대현직업교육원의 한국어 학당을 운영하고 있는 허서진 원장.
사진-북한인권과민주화실천운동연합 제공

RFA초대석, 진행에 전수일 입니다.

탈북청소년들에게 한국말을 가르치는 한국어 학당이 부산 장대현직업교육원 안에 세워졌습니다.  7월 7일부터 시작한 이 학당은 오는 11월까지 5개월 교육과정으로 진행되고 있는데요, 이 학당과 교육원을 이끄는 인물이 탈북자 컴퓨터 교육자로 잘 알려진 허서진씨입니다. 14년전 탈북해 한국에 들어간 뒤 2년 만에 컴퓨터와 인터넷 자격증을 여러 개 따개 화제가 됐었던 허서진씨는 학당의 탈북청소년 학생과 성인들에게 한국어는 물론 컴퓨터 전문교육과 직업교육도 시키고 있습니다. 오늘 초대석에서는 허서진 원장을 모시고 장대현직업교육원의 한국어 학당 운영에 관한 얘기를 들어 봅니다.

전수일: 한국어와 조선말이 얼마나 다르기에 탈북청소년이나 탈북자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칠 필요가 있습니까?

Huh_SeoJin2_305

허서진 원장: 탈북여성들이 중국에 가면 원하든 원하지 않든 대체로 인신매매되어 결혼을 하게 됩니다. 한족이나 조선족 남성과 결혼하고 애를 낳게 됩니다. 하지만 이 여성들이 한국에 올 땐 자녀들과 함께 오는 경우는 드뭅니다. 왜냐면 중국가족이 엄마에게 애를 주지 않는 것이죠. 그래서 보통 탈북여성들은 중국에서 7년 내지 10년 정도 살다가 혼자서 한국에 들어 옵니다. 하지만 세월이 흘러 애들이 크게 되면 한국에 간 엄마를 따라 가겠다는 의사를 표현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가족의 동의 아래 한국에 가게 됩니다. 하지만 막상 한국에 오면 그런 아이들은 중국말 밖에는 할 줄 모릅니다. 그래서 한국 학교에 바로 갈 수가 없는 것이죠. 언어 장벽으로 애로가 큽니다. 그래서 우리가 그걸 도와주어 정식 학업을 받는데 지장이 없도록 하자는 것이죠.

전: 한국어 교육 외에도 컴퓨터전문교육과 직업교육을 시킨다고 하던데요, 한국에선 컴퓨터를 가장 필수적으로 배워야 한다고 하더군요. 왜 그렇습니까?

허 원장: 탈북자들이 한국에 오면 컴퓨터를 통해 많은 정보를 습득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는 컴퓨터를 할 줄 모르면 장애인 취급을 받습니다. 한국은 기술정보의 대국입니다. 모든 것이 컴퓨터를 통해 정보 소통을 하게 됩니다. 그 소통이 빠르고 정보 체계가 잘 돼있습니다. 탈북자들이 한국에 오면 서류작성 같은 기본적인 것을 컴퓨터로 할 줄 알아야 합니다. 하지만 북한사람들은 이런 걸 모르고 오는 겁니다. 여기 남쪽에선 어릴 때부터 컴퓨터와 함께 성장합니다. 특히 탈북여성의 경우 사무직에서 일을 하고 싶어 하죠. 돈을 벌기 위해 식당에서 육체적 노동만 할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컴퓨터로 직업교육을 받으면 취업해서도 편하게 일할 수 있고 장기근속도 가능합니다. 그래서 컴퓨터 배우기는 필수입니다.

전: 북에서도 살아보셨고 학교도 다니셨는데 북한 학교에서 학습할 때는 컴퓨터가 없었을 것 아닙니까? 남한에서는 학교에서 수업에 어떻게 컴퓨터를 활용합니까?

허 원장: 여기 중고등학교-즉 북한 식의 고등중학교에선 한글, 엑셀, 프레젠테이션 등을 기본적으로 해야 합니다. 한글 프로그램은 마이크로소프트에서 나오는 MS WORD. 한국에선 ‘한글’이란 문서작성 프로그램이 있습니다. 학생들이 기본적으로 다뤄야 하는 프로그램이죠. 둘째로는 학생이 교실에서 발표, 즉 프레젠테이션을 할 때 사용하는 프로그램입니다. 자기 소개라든가 아이디어를 발표 하려면 파워포인트 엑셀을 필수로 알아야 합니다. 대한민국은 정보화 시대로 가고 있습니다. 모든 게 컴퓨터로 진행되죠. 한글작성 편지를 쓰고 과제-숙제를 하는 것도 컴퓨터로 하고요. 그러니까 컴퓨터를 모르면 학교에서 남한 아이들과 경쟁을 할 수 없습니다. 장님 취급을 받게 되는 것이죠. 필수적으로 컴퓨터 교육을 받아야 하는 이유입니다.

전: 직업교육도 있는데요, 그건 무엇을 가르칩니까?

허 원장: 탈북민을 위한 직업교육인데요. 여성들이 가장 선호하는 직종은 전산회계법입니다. 남성들의 경우는 정보를 많이 알아야 일자리를 스스로 찾을 수 있고 또 컴퓨터를 알면 인터넷을 통해 관련 정보를 습득할 수 있기 때문에 컴퓨터 학습에 집중합니다. 남한 사회에서 살아 가는데 필요한 물건을 구입할 때에도 관련 정보를 웹사이트에 올라가 볼 수 있고 살 수 있습니다. 북한에서는 상점에 직접 가야 살 수 있지만 여기서는 인터넷으로 간단히 상품을 구입할 수 있습니다. 남한 생활에 필수 적인 것이죠. 여성들의 경우 사무직에서 폼 나게 일해 보고 싶다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회계 등을 배워 세무사 사무실에 입사하는 사람도 있고 또 나이 든 분들은 아파트 경리나 중소기업 회계 업무 직으로 들어 가기도 합니다. 이런 직업 교육을 하고 있습니다.

전: 허 원장 자신도 2001년에 탈북한 뒤 한국에 들어가 처음에는 무얼 할지 모르고 절망에 빠졌었다고 들었습니다. 컴퓨터를 배우자는 생각을 하게 된 배경은 무엇인가요?

허 원장: 북한에서 제가 했었던 일이 회계 쪽이었습니다. 재정부기를 했습니다. 그래서 여기에 와서 제가 했던 일을 하고자 했는데, 문제가 있었습니다. 북한의 회계는 주산과 계산기로 했는데 남한에서는 컴퓨터 프로그램으로 모든 회계를 하고 있더군요. 가장으로서 먹고는 살아야 하겠는데 어쩌겠습니까? 그래서 컴퓨터를 배우기 시작한 것이죠. 그게 기초가 되어 오늘까지 오게 된 것입니다. 아주 열심히 했습니다. ‘한국정보화진흥원’의 부장님 도움으로 컴퓨터 트레이닝을 하게 됐습니다. 탈북민을 대상으로 컴퓨터 교육을 그때부터 맡아 하기 시작해 10년 이상을 하다 보니 공부도 많이 되고 경력도 쌓이게 됐습니다. 북한에서는 상상하지도 못한 분야이지만 학생들 본인이 하고자 하는 의지만 있다면 공부도 충분히 할 수 있고 직업을 구하는 것도 어렵지 않습니다. 저 역시 이런 꿈도 꿔 보지 못했었지만 여기 한국에 와서 이화여자대학교 박사과정까지 마쳤습니다.

전: 무슨 분야의 박사과정을 하셨나요?

허 원장: 북한 경제 쪽을 했습니다. 북한에서는 자기가 하는 직업밖에는 모릅니다. 다른 정보가 공유되지 않으므로 자신의 분야 밖의 사정은 모르는 것이죠. 저는 오히려 여기 와서 공부하면서 학문적으로 북한을 들여다 볼 수 있었습니다. 여기 와서 공부를 더 잘 해야 하겠다는 걸 느끼게 됐습니다. 제가 북한에서 살았지만 북한을 너무 몰랐었습니다. 박사과정을 공부하며 북한에 대해서도 더 많이 알게 됐죠. 탈북민 교육을 하면서도 제가 더 많이 알아야 이들을 잘 가르칠 수 있겠다 싶어 더욱 열심히 공부했습니다.

전: 컴퓨터 공부를 처음 시작했을 때가 40대 초반이었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 나이에 전혀 모르던 컴퓨터 공부가 어렵지는 않았습니까?

허 원장: 어려웠죠. 많이. 북한에서 대학 다닐 때 여기서 말하는 C 언어, 자바 같은 것을 저희 전공 과목에서 조금은 배웠습니다. 비록 북한 현실에서 실제 컴퓨터는 접해보지 못했지만 이론적으로 배웠던 것이 여기서 많이 도움 됐습니다. 하지만 저와는 달리 북한에서 이런 걸 전혀 배워보지 못했던 분들은 여기 남한에서 컴퓨터 배우기가 정말로 어렵습니다. 그렇지만 여기에서 정착하는데 컴퓨터를 모르면 정말 힘들게 됩니다. 그리고 비록 컴퓨터 분야가 넓기는 하지만 하나를 익히면 고리고리 연결이 되기 때문에 일단 자기가 노력만하면 배울 수 있습니다. 저의 경우도 ‘여기서 잘 정착해 잘 살아야 나중에 통일되면 북한 고향에 가서 할 말이 있지 않겠나?’ 하는 심정으로 아주 열심히 했습니다.

전: 컴퓨터를 배우고 가르치기 까지는 자격증을 여러 개 땄다고 들었습니다.

허 원장: 네. 한글 자격증. 계산위주로 하는 엑셀 자격증. 컴퓨터 활용능력 자격증- 한국에서 공무원 취업에 제일 알아 주는 자격증이죠. 또 전산세무회계자격증도 받았고 탈북민을 대상으로 교육을 하다 보니 평생교육사 자격증도 따게 됐습니다. 인터넷정보검색사 자격증도 있고요.

전: 한국정보화진흥원에서 10년 넘게 가르치셨는데요, 허 원장님께 배운 탈북 학생들은 몇 명이나 됩니까?

허 원장: 2천5백명 정도 됩니다.

전: 학생들이 컴퓨터을 배운 다음 취업하는데 활용하기도 하고 남을 가르치기도 하겠네요? 학생들이 어떤 분야에 진출했습니까?

허 원장: 교육계에 상당히 진출했습니다. 그리고 세무사 사무실에 들어간 분들도 있고요. 그런 사무실에서 오랫동안 일하다 보면 경력이 쌓여 폼 나게 사는 분도 많습니다. 저희 교육으로 도움을 받은 분들이 많죠.

전: 탈북청년들이 한국사회에서 정착하는데 도움을 주는 교육 전문가이신데
남한 사회정착에는 어떤 자세가 필요하다고 생각하십니까?

허 원장: 중요한 것은 탈북민의 동기입니다. 각자 살아온 환경이 다 틀리지만 한국에 도착하는 순간 모든 걸 내려 놓아야 합니다. 새 땅에서 새 문화와 환경에 익숙하려면 일단 모든 걸 내려놓고 초심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말이지요. 여기 대한민국은 노력만 하면 그만큼 결과는 꼭 나오는 곳입니다. 북한에서는 아무리 열심히 해도 기득권층에만 가능한 것이 많습니다. 대한민국은 본인이 열심히 하면 결과물을 가져올 수 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목표가 정확히 있어야 합니다. 그 목표를 향해 열심히 노력하면 이 사회에서 충분히 사는데 지장이 없습니다. 결국 열심히 사는 것이 답입니다.

전: 5개월 후 한국어 학당을 마치는 학생들의 한국어 실력은 어느 정도 늘어 날까요?

허 원장: 한국어 학당 시작 후 몇 주가 안 됐지만 어린 학생들은 물론 일 하면서 야간 공부하는 사람들 모두 학업열의가 대단합니다. 배우려는 의지가 있어서 열심히 하고 있고 또 배우는 속도도 빠릅니다. 제가 볼 때 5개월 수업기간이 끝나면 간단한 의사소통을 할 수 있고 또 빠른 학생들은 일반 학교에 가서 배우는데 큰 문제는 없을 것 같습니다. 하루에 3시간씩, 한 주에 12시간씩 배우고 있습니다. 또 컴퓨터 시간에 각자 배운 한글을 직접 한글프로그램으로 입력하고 또 서로 한국어로 얘기하는 시간을 가져 효과가 큽니다.  저희 한국어학당 5개월 강좌 교육이 이들에게 큰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합니다.

RFA 초대석, 이 시간에는 탈북청소년들에게 한국말을 가르치는 한국어 학당이 최근 부산의 장대현직업교육원 안에 신설된 것과 관련해 이 교육원을 이끌고 있는 탈북자 허서진 원장을 모시고 얘기를 들어 봤습니다.
저는 전수일 입니다.

하고 싶은 말 (0)
  • 인쇄
  • 공유
  • 이메일
원본 사이트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