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FA 초대석] 한국 대북방송협회의 이광백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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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제의 인물을 만나보는 RFA 초대석, 진행에 전수일 입니다.
한국에서 북한에 방송을 보내는 민간 라디오방송 4개사가 지난해 4월 대북방송협회를 만들었습니다. 자유조선, 자유북한, 열린북한, 북한개혁 방송이 바로 그들입니다.
이 협회의 초대 회장으로 자유조선방송을 이끌고 있는 이광백 대표.
그는 독재통치로 고립된 북한 주민에게 객관적인 정보와 소식을 전해 북한 사회의 개혁개방과 민주화를 이룰 수 있는 용기와 희망을 주는 것이 대북방송협회의 사명이라고 강조합니다.

서울 시내에 있는 대북방송협회의 이광백 회장을 만나 봤습니다.

전수일: 협회의 대북방송 4사 북한개혁, 열린북한, 자유북한, 자유조선 방송들이 협회를 만든 취지, 어떤 것을 지향하고 어떤 활동을 추진하는지 소개해 주십시오.

이광백 대표: 일단 저희가 협회를 만든 큰 이유는 대북방송의 목적이 있기 때문입니다. 북한 주민에게 정보를 전하면 북한 주민의 생각이 달라집니다. 북한 주민이 북한의 개혁개방과 민주화가 필요하다는 인식으로 바뀌게 되면 북한사회가 달라질 것이라고 저희는 믿습니다. 그렇게 되면 굶주림, 독재폭력에 시달리는 주민들의 삶도 바뀔 수 있습니다. 인권문제도 해결할 수 있다는 게 대북방송의 또 다른 취지입니다. 허나 현재의 여건은 역부족입니다. 일단 방송시간도 적고 주파수도 부족하고... 많은 주민들이 들어야 주민들 생각이 달라질 것인데 아직은 너무 적은 사람들이 듣고 있습니다. 지금 수준에 비해 2배3배 더 대북방송이 발전하려면 많은 사람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저희끼리만 방송하는 것 가지고는 안 되고 국민들에게 널리 알려서 대북방송에 참여해달라, 즉, 저희들에 대한 관심과 지원을 촉구하기 위한 활동이 필요했습니다. 근데 방송사가 각각 운영하다 보니 이런 활동을 하기가 불편하고 어렵더군요. 그래서 ‘협회를 만들어 같이 목소리를 내보자, 힘을 모아 보자, 그래서 국민적 관심을 높이면 지원도 한 단계 지금보다 더 성장할 거다’란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전: 협회 내 방송 4사의 방송내용에 특징이나 차별점이 있을 것 같습니다.

이: 각 방송사가 만들어 진 시기도 다르고 방송을 시작한 이유도 조금씩은 다릅니다. 예를 들어 저희 자유조선방송의 경우 ‘북한의 민주화와 개혁개방은 거스를 수 없는 대세다. 그렇다면 라디오를 통해서라도 민주화와 개혁개방에 기여할 수 있는 길이 있을 거다.’ 어떻게 보면 북한 민주화 운동 차원에서 시작했습니다. 자유북한방송의 경우는 ‘탈북자들이 북한주민들에게 직접 하고 싶은 말이 있지 않겠나, 그럼 그걸 라디오로 해보자’ 한 것이고, 열린북한방송은 ‘우리 남한사람듫의 목소리를 북에 전하고 북한 사람들의 목소리를 남한에 전하는, 즉, 방송을 서로 주고 받는 시대가 와야하는 것 아닌가’ 이런 취지로 시작했고, 북한개혁방송은 북한의 엘리트들에게 개혁개방의 메시지를 계속해서 전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해서 시작했습니다.

전: 그러니까 북한의 간부 지도층에 집중해서 방송을 한다는 것이네요.

이: 네. 이런 걸 보면 방송 4사의 각자 목적이나 취지가 따로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제가 볼 때 근본적으로는 하나, 즉 북한주민이 좀 더 나은 인간적 삶을 사는데 우리 방송이 할 일이 있다는 것이고 우리 방송을 통해 북한사회를 바꿀 수 있다는 희망과 기대에서 출발한다는 점에서는 공통적입니다.

전: 결국 그건 대북방송사들의 사명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이: 그렇죠.

전: 지금 맡고 계신 자유조선방송은 언제부터 시작했습니까?

이: 시작은 2003년부터였지만 당시 송출은 못했습니다. 프로그램만 2년 간 만들어 놓고 실제 송출을 하기 시작한 건 2005년 12월이었습니다. 공식적으로는 인권의 날인 12월 10일 공식 송출한 것으로 기록돼 있다. 첫 전파는 12월 5, 6일에 나갔습니다.

전: 지금 인터넷으로도 뉴스를 올리고 있죠?

이: 네. 인터넷으로도 저희가 하루 3시간 방송을 합니다.

전: 방송은 단파로만 나갑니까?

이: 현재는 단파로만 나갑니다. 하지만 북한주민에겐 중파가 더 나은 것 같습니다. 그래서 중파 주파수를 현재 알아보고는 있습니다. 빠르면 아마 상반기에는 중파도 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습니다.

전: 자유조선방송 프로그램 특징을 보고싶어서 웹사이트를 봤더니 ‘조선민주화의 길을 묻다- 박승희와 성용승을 북에 보내다’ 또 ‘정은이와 성택이 -인민들 돈은 다 내꺼야’ 또 ‘조선민주화전략강의- 경제지원실태’ 등의 프로그램이 있던데요 어떤 취지로 이런 프로그램을 하게 됐습니까?

이: 일단 저희들의 모든 프로그램은 공통점이 있습니다. 북한주민들에게 새로운 생각을 심어주자는 것입니다. ‘우리도 개혁개방으로 나가면 굶주림에서 벗어날 수 있다…우리도 인간답게 살 수 있다’ 라는 희망을 심어주는 게 가장 그것인데요, 저희가 방송하면서 느낀 것 중 하나는 이런 얘기를 딱딱하게 메시지만 아무리 전달해봐야 북한주민들의 마음이 움직이지는 않을 것 같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거기서 직접 살다 온 사람들이 그들의 정서에 맞는 이야기를 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시장경제와 개혁개방에 관한 이야기를 전하더라도 거기서 살았던 사람들의 정서에 담아야 한다는 것이죠. 그래서 저희는 탈북자와 남한사람이 같이 방송을 합니다. 왜냐면 북한사람들은 민주주의나 개혁개방된 사회가 뭔지 잘 모릅니다. 그런 사회를 살아보지 않았기 때문에. 그래서 그걸 살아본 남한 사람들이 알맹이는 전달하되 이걸 북한사람들의 정서에 담으려면 탈북자들이 함께 해야 한다고 생각한 것이죠.

전: 그러니까 방송 컨텐트 즉 내용은 남한 민주주의와 자본주의체제를 경험한 남한분들이 알지만 그걸 전달하는 수단과 포장은 북한식 정서에 맞게 해주자는 것이군요.

이: 그렇죠. 북한사람들이 익숙한 프로그램들이 많습니다. 꽁트도 그렇고. 북한에서는 정론이라고 부르는데 다른사회에는 없는 새로운 장르입니다. 그런 정론 같은 형식에 담는 것이죠.

전: 그걸 해주기 위해서는 북한에서 살던 사람, 즉 탈북자만이 할 수 있다는 것이구요?

이: 네. 아까 언급하신 프로그램들이 사실은 저희 나름대로 그 두개를 결합한 형식입니다. 그래서 ‘조선민주화의 길을 묻다’ 같은 것은 조선이 어떻게 민주화로 갈 수 있는가를 전하는 것인데 그 내용을 보면 북한 민주화 운동을 누가 할 건지, 또 어떤 과정을 거쳐 북한 민주화가 될 건지 등을 놓고 남북 사람들이 모여 얘기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 ‘정은이와 성택이’ 같은 경우는 북한주민들이 쉽게 재미있게 들을 만한 풍자 꽁트극입니다. 북한출신과 남한사람이 직접 대화를 주고 받으면서 실제 존재하는 인물을 풍자하는 프로그램입니다. 조선민주화전략강의란 프로그램은 고 황장엽 선생이 북한 민주화와 개혁개방에 대해 쓴 책이 있습니다. 북한에 직접 살아본 황 선생이 북한의 민주화에 대해 짜임새 있는 프로그램을 제안해 놓은 것인데요, 그걸 저희가 각색해서 민주화 전략을 짜서 어떻게 민주정부를 들어서게 할 것인지, 또 들어 서서는 어떻게 개혁개방정책을 분야별로 쓸 것인지, 예를 들어 농업정책과 공업정책은 어떻게 펼쳐야 후유증이 적을 것인지 등 이런 것을 방송하고 있습니다.

‘김정호의 시장경제 바로알기’는 시장경제가 무엇인지 북한 인민들이 잘 모릅니다. 하지만 장마당을 통해 지난 5-6년간 몸으로 터득했죠. 그런데 그걸 이론적으로 전달해 주면 몸으로 체득한 것과 이론이 맞아 떨어지면서 북한 주민들도 시장경제를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해서 시작했습니다.

전: 그럼 이런 방송내용을 방송하는 시간대가 궁금합니다. 북한 청취자들이 언제 방송을 들을 수 있습니까?

이: 탈북자들을 대상으로 조사를 해봤습니다. 북에 있을 때 라디오 청취 시간대가 언제였냐고? 역시 밤 9시부터 1시, 2시 시간대가 제일 방송을 많이 듣는 시간이었습니다.

전: 황금시간대군요.

이: 그렇죠. 저희는 1부 2부 3부로 크게 나뉘어져 있는데 1부와 2부는 밤 9시부터 11시까지 하고 3부는 새벽 5시부터 6시까지 합니다.

전: 방송을 모두 3시간하는데 그 3시간이 모두 새로운 내용입니까?

이: 네. 밤 2시간과 새벽 1시간 모두.

전: 청취 가능지역은 어디가 될 것 같습니까?

이: 저희가 단파로 중앙아시아에서 송출 중인데요, 이론상으로는 북한 전역에서 수신이 가능합니다. 다만 주파수가 하나뿐이라서 어떤 지역에선 잘 들리고 어떤 지역에선 잘 안 들리는 단파의 약점이 있습니다. 어떤 때는 평안도가 잘 들리고 어떤 날은 함경도가 잘 들리는 식으로 지역적인 편중은 있지만 이론상은 북한 전역에서 들을 수 있습니다.

전: 방송청취하는 북한주민들이 얼마나 되는지는 모르겠지만 자유조선이나 그밖의 대북방송협회 회원사들이 북한주민이나 탈북자가 보내오는 방송청취 소감을 받은 적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이: 현재로선 매우 드뭅니다. 다만 탈북자 가운데 저희 방송을 북에서 들어본 적이 있다는 경험을 전한 분은 몇 분 있습니다. 프로그램에 관한 평을 받은 적이 있는데요 문제는 너무 적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희가 전반적 반응을 확인하기에는 현실적으로 어려운 상황입니다. 다만 아까 언급하셨듯이 얼마나 들을까 하는 것은 저희도 늘 궁금한 데요, 다른 조사기관의 도움으로 탈북자들을 대상으로 한 조사 결과에 따르면 대상 200명에서 250명 정도 조사할 때 4-5명정도가 저희 방송을 들을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대략 2퍼센트 내외 인데요, 아마 다른 민간대북방송도 그와 비슷할 것으로 추정합니다.

전: 김정일이 2011년 12월 17일 사망시 한국의 일반 방송은 물론 대북방송들도 크게 특집으로 방송하지 않았습니까? 또 지난 12월 장거리 로켓도 발사하지 않았습니까? 이런 큰 일이 일어날 때는 대북방송으로서도 어떤 특집 프로그램을 만들 것 같은데 이런 큰 사변들을 어떤식으로 취급하고 있습니까?

이: 저희 같은 경우 특집방송은 크게 두가지 형태입니다. 하나는 북한에서 중요한 날들입니다. 김일성의 생일이나 김정일 사망일이라든가 혹은 조선노동당 창건일 등 북한주민들이 생각하는 중요한 날자에 맞춰 특집방송을 사전에 준비하는 경우가 일반적인 것입니다. 또 하나는 미사일을 갑자기 발사하든가 지난번 김정일 사망 때처럼 그때 그때에 비상 특집방송을 만드는 경우입니다.

전: 김정일 사망했을 때 어떻게 특집 프로그램을 만드셨는지 기억나시는 대로 소개해 주시죠.

이: 솔직히 저희는 전혀 예측을 못했습니다. 저희가 아침 9시부터 일을 시작하는데 사망했다는 뉴스가 저희 방송이 이미 송출된 이후에 나왔습니다. 그래서 아침에야 특집방송을 준비했습니다. 당시 어떤 언론도 사망에 대한 준비가 안되어있었기 때문에 컨텐트를 생산해 내지 못했습니다. 저희도 고심했습니다. 어떻게 할 지를 논의하기 위해 비상회의를 소집했습니다. 저희들이 볼 때 북한사회가 변화할 가장 중요한 변곡점이 있다면 바로 오늘 (김정일 사망 시점)이 될거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김정일의 사망은 북한 변화의 시작이다’라는 주제를 가지고 ‘새로운 변화의 시대가 열릴수 있다…그 어떤 변화의 싹이 틀 것이다’ 라는 내용을 담아 3시간 특집방송을 했습니다.

전: 전문가 얘기도 듣고요?

이: 그렇죠. 일단 저희가 가장 관심을 둔 건 김정일의 일생과 그 사망 후의 북한이 어떻게 갈 것인지를 전망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김정일의 10대 죄악’이란 제목으로 그가 그동안 어떤 죄악을 저질렀고 그 죄 때문에 인민들이 어떤 고통을 받았는 지를 다큐멘터리로 엮었습니다. 그리고 김정일 사망 이후에 북이 어떻게 달라질 것인지, 3대세습은 어떻게 될 것이고 정권은 어떻게 어떤 과정을 통해 세습될 것인지, 그것이 결국 북한 주민을 살릴 수 있을 것인지, 그러나 저희가 볼 때는 3대세습으로는 대안이 될 수 없다는 메시지를 담아서 전망 프로그램을 또 특집으로 엮었습니다.

전: 자유조선방송에서 방송하시는 분은 모두 몇 분입니까?

이: 15명이 일하고 있습니다.

전: 그 중에 남한 분과 북한 출신분들이 섞여 있다고 하셨는데요 어떤 구성으로 돼있습니까?

이: 대략 북한 출신 직원이3분의 1이고, 3분의 2는 남한에서 방송 아나운서를 하신 분이나 북한인권운동가 등으로 돼있습니다.

전: 그리고 조선족 출신 분도 계시다고 들었는데요.

이: 네. 중국분도 계십니다. 그분은 중국에서 조선족어로 방송을 하시던 분입니다.

전: 조선족어는 북한어와는 다릅니까?

이: 약간 다르지만 비슷한 면도 있습니다. 저희 남한 말은 워낙 한자어와 외래어가 많아서 듣기에 불편하다고 하더군요. 라디오 특성상 한 번 듣고는 지나가 버리니까요. 그에 비하면 조선족 언어가 조금 낫다고 합니다. 그래서 북한의 민주화 문제에 관심을 가진 중국분, 조선족 말을 잘 하시는 분이 저희방송을 하고 싶다고 하셔서 지금 같이 일을 하고 계십니다.

전: 그러니까 탈북자, 남한 방송인, 그리고 조선족 출신의 중국분이 함께 프로그램을 만들고 있군요.

이: 네. 북한의 민주화를 원하는 분이면 저희는 국적을 가리지 않고 씁니다.

전: 북한 주민들이 제일 듣고 싶어하는 소식이 무엇일까는 방송하는 분들이라면 알고 싶어하는 사항일텐데요 여러 경로를 통해 조사한 바로나 직접 청취자들로부터 들으신 바가 있다면 어떤 방송과 내용을 제일 듣고싶어합니까?

이: 어떻게 기준을 정하느냐 나름인데요 일단은 외부소식을 궁금해 하는 것 같아요. 바깥세상 소식을 전혀 듣지 못하고 있으니까요.

전: 외부중에서도?

이: 간부 엘리트 같은 경우는 국가를 가리지 않고 중국이든 미국이든 국제사회 돌아가는 목소리는 관심있게 듣는 사람이 있었고요. 보통은 ‘남한이 정말 미국의 식민지인가? 주한미군에 의해 늘 고통받고 헐벗고 굶주리는가? 이런 것이 궁굼한 사람은 남한 소식도 관심을 갖는 것 같습니다. 또 한 가지 저희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북한사람들이 북한 내부의 소식에 대해서도 매우 궁금해 한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왜 그런가 했더니 거기에는 우리가 생각하는 언론이란 게 존재하지 않는 사회이기 때문이죠. 그래서 주민이 알고 싶은 소식이 아니라 체제에 도움되고 지도자를 우상화하는 정보가 주로 공급되기 때문에 주민의 진짜 궁금한 소식은 전달되지 않는 것이죠. 전달이 된다해도 소문으로 일 주일이나 한 달 뒤에나 듣습니다. 그래서 저희가 그보다 빨리 북한 주민에게 소식을 전해준다면 북한 내부소식도 그들이 원하는 중요 뉴스가 될 수 있겠다고 판단했습니다.

전: 내부소식을 전하기 위해서는 내부인들이 그 소식을 전해야 하는데 어떻게 얻습니까?

이: 지금 현재에 가장 일반적인 방법은 탈북자들의 증언과 탈북자가 북한 내부의 가족에게 휴대폰이나 기타 여러가지 수단으로 연락을 하고 있는 방법입니다. 그 연락과정에서 흘러나오는 정보가 그대로 뉴스가 됩니다. 그리고 북한주민이 가장 듣고 싶어하는 내용이 무어냐고 물어보게 하면 그건 최고 지도부에 관련된 정보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김씨 일가와 그 주변 측근 간부들의 이야기. 그들의 생활. 그들의 속내. 이런 것들이 북한주민들이 가장 듣고 싶어하는 소식이었습니다.

전: 먹고살기 바쁘고 굶어죽는 사람이 많은데 자기 생활보다는 지도층의 실상을 알고 싶어한다는 얘기네요?

이: 네. 저희들이 탈북자들에게 남한에서 발간된 북한관련 서적들을 주고 어떤 것이 가장 인상에 남는지를 조사해 본 적이 있습니다. 열에 아홉이 뽑은 책이 ‘대동강 로얄패밀리’였습니다.

전: 이한영이 쓴 책이요?

이: 그렇죠. 이한영씨 수기였어요. 그 수기를 보면 김정일 일가의 생활이 고스란히 담겨있거든요.

전: 사생활 여자관계등…

이: 그렇죠. 북한주민이 전혀 알 수 없는 금단의 영역이었는데 그걸 알게되면 엄청난 충격을 받습니다. 그러니까 위대한 지도자, 인민을 위해 주먹밥 먹으며 쪽잠을 자는 인민의 지도자가 사실은 그렇지 않다는 진실이 담긴 책인데요 그런 게 엄청난 충격을 주고 또 그런 걸 듣고 싶어한다는 것을 그때 알았습니다. 그 다음으로 원하는 소식은 먹고사는 것. 즉 어떻게 하면 장마당에서 돈을 벌 수 있나? 중국의 물가는 어떻게 되는가? 환율이 어떤가? 등이 최근의 북한주민들에게 큰 관심사인 것 같습니다.

전: 방송매체 못지않게 북한에 외부소식을 알리는 수단으로 삐라가 활용되고 있습니다. 또 탈북자 단체가 대북삐라를 날림으로 해서 북한에서 대단한 위협이 오고 하는데 대북방송협회장으로서 이 대표께서는 원점타격 위협에 대해 성명서를 내기도 하셨습니다. 삐라가 북주민에게 외부소식을 전해주고 자유의 소식을 알려주는 매체로서의 효과가 있다고 보십니까?

이: 저희도 삐라에 관심을 갖고 실제 전단날리기에 참여도 해보고 조사도 해봤습니다만 일단 원론적 의미에서는 삐라도 한 수단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 삐라를 주울 수 있는 사람들에게는 충분한 정보가 될 것입니다. 다만 삐라날리기는 기구를 띄워 날리는 방식인데 바람의 영향을 절대적으로 받습니다. 저희가 원하는 장소에 날린다는게 정말 어렵습니다. 한반도 상공의 바람은 더구나 편서풍입니다.

전: 편서풍이란?

이: 바람이 중국쪽에서 동해쪽으로 불어오는 것인데요, 그래서 전단을 날리면 정북쪽 평양을 향해 가는 전단은 많지 않습니다. 대부분 인적이 드문 강원도나 동해쪽으로 날라가는 경우가 많아서 날리는 양에 비해 북한주민에게 전달되는 숫자는 너무 적습니다. 효율이 떨어진다는 치명적인 약점이 있어서 안타깝습니다. 그럼에도 주민에게 날아가는 양은 적지만 군사분계선 근처의 인민 군인들에게 전달되는 양은 꽤 많습니다. 그 사람들을 향한 효과적인 정보매체로서는 여전히 의미가 있다고 봅니다. 하지만 평양이나 함경도 등 정북으로 더 멀리 날아가게 하는 방법은 좀 더 연구해야 할 것 같습니다.

전: 이 대표께서는 한국 언론과 여러 차례 회견도 하시고 보도된 바도 많은데 거기에는 북한의 대남방송을 듣던 분으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사상적으로 북에 동정적인 분이었는데 지금은 대북방송을 이끌고 계십니다. 어떻게 대북방송을 하겠다는 생각을 하시게 됐습니까?

이: 제가 학생운동을 하던 1980년대 말, 1990년대 초만해도 냉전시대였습니다. 전세계 절반이 사회주의였습니다. 그래서 남한사회에 불만을 느꼈던, 더 나은 사회를 꿈꾸던 젊은이들의 일부는 진보라는 이름으로 사회주의를 만나게 됐고 사회주의자가 됐죠. 당시 한국의 학생운동, 구호는 통일과 민주주의를 내걸었지만 내용적으로는 90퍼센트 이상이 사회주의자였습니다. 그리고 기왕 사회주의를 할 바에는 우리민족이 북한에 건설해 놓은 북한식 사회주의가 우리 모델로 더 적합하지 않을까 하는 이른바 주사파학생들-주체사상파 학생운동이 또 주류였습니다. 저도 그 당시 그 주류에 섞여서 학생운동을 했던 것이죠. 근데 90년대 초 중반을 거치면서 냉전시대가 끝나고 전 세계 절반이나 됐던 사회주의 나라가 다 무너졌구요. 북한도 90년대 중반에 수 백만명이 굶어 죽으면서 북한식 사회주의가 남한사회의 대안이 아니라는 것, 우리사회의 모델이 될 수 없다는 게 증명됐죠. 그때 많은 사람들이 그만뒀습니다. 저희 같은 경우 그걸 그만둔다고 해서 끝나는 게 아니고 ‘어떤 식으로든 보다 나은 사회, 인간이 고통에서 벗어나는, 폭력이나 굶주림에서 벗어나는 그런 세상을 만드는 게 우리의 근본 정신이었다면 근본정신까지 버릴 건 없다…사회주의가 대안이 아니라고 해서 근본정신을 버릴 이유는 없으므로 보다 나은 사회, 민주주의, 인권 이런 가치를 간직한 채 일을 할 수 있다면 그건 이제 남한의 민주화가 아니라 북한의 민주화다’ 그래서 90년대 말 북한인권 운동을 시작했습니다. 다만 그 수단이 없었습니다. 북한에 들어갈 수는 없고. ‘그럼 과거에 우리들이 했던 사회주의 운동 방식에서 보고 들었던 경험을 살려보자. 그때 대남방송을 듣고 민주화운동을 하지 않았느냐? 그럼 대북방송을 하면 누군가 대북방송을 듣고 그 안에서 민주화운동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생길 수 있다.’ 그래서 라디오로 북한 민주화의 씨앗을 뿌려보는 일을 시작한 것이죠.

전: 마지막으로 대북방송, 즉 한국에 거점을 둔 한국방송의 미래를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이: 여건은 좋지않습니다. 대북방송 4개 있지만 모두 열악합니다.

전: 정부의 지원은 전혀 없는 겁니까?

이: 문제는 거기에 있는 겁니다. 남한사회에 10년전 동서냉전시대의 유물이 그대로 있습니다. 그게 보수 진보가 나뉘어 갈등하는 것, 좌우가 나뉘어 치열하게 다툼을 벌이고 있는 것입니다. 이념갈등이 여전히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북한주민을 구하고 한반도 미래를 위해 방송을 통해서라도 북한주민과 만나야 한다는 저희의 진심이 대북정책에서 유화정책이나 포용정책을 쓰는 사람들에게는 불편한가 봐요.

전: 대화에 도움이 안 된다면서…

이: 그렇죠. ‘대화에 도움이 안되고 북한 정권에 거슬리는 일을 왜 우리가 하느냐’는 이런 정치권 논란으로 흘러가 버립니다. 저희의 진심이 그런 식의 정치권 논란과 좌우 이념 대립의 함정으로 휩쓸리다보니 …저희가 볼 때 합리적이고 건강하게 이 문제를 토론해야 많은 국민이 관심을 갖고 참여할 텐데 정치권 논란으로, 좌우로 대립되다 보니 정작 왜 이걸 해야 되는 지에 대한 필요성이라든가 이걸 통해 북한 사회를 얼마나 어떻게 바꿀 수 있는 지에 대한 논의는 물 건너 가는 겁니다. 그러다 보니 대북방송이 한국사회에서는 굉장히 어려운 상황입니다. 어쩔 수 없이 국제사회의 도움으로 근근히 버티고 있는 상황입니다.

전: 도움을 누구로부터 받고 있습니까?

이: 현재는 미국의 국립민주주의재단의 NED와 국무부의 도움을 받아 어렵게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상황인데 저희가 볼 때 이것만으로는 북한사회를 바꿀 수 없다. 그래서 남한사회의 보다 많은 사람들의 관심과 지원이 반드시 필요하고 또 가능하다면 NED와 국무부뿐만 아니라 다른 국제사회의 지원을 더 얻어내고 싶습니다. 아직은 그런 활동이 여의치 않습니다. 방송 만들기에도 급하다 보니. 그러나 대북방송협회 그리고 저희 자유조선방송에서도 그런 노력을 더 많이 할 생각입니다.

RFA 초대석, 오늘은 한국에서 북한에 방송을 보내는 민간 라디오방송 4개사로 구성된 대북방송협회의 이광백 회장의 얘기를 들어 봤습니다.

저는 전수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