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북삐라날리기 주도 박상학 대표

워싱턴-전수일 chuns@rfa.org
2013-0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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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kSanghak_400
대북삐라날리기를 주도하는 탈북자단체 자유북한운동연합의 박상학 대표.
RFA PHOTO/ 전수일

화제의 인물을 만나보는 RFA 초대석, 진행에 전수일 입니다.
탈북 후 한국에 정착해 북녘 주민들에게 독재자 김씨 일가에 대한 실체와 자유세계의 소식을 풍선으로 전하고 있는 자유북한운동연합의 박상학 대표.  북한당국의 테러협박과 암살기도에도 불구하고 그는 대북삐라 날리기를10년째 계속하고 있습니다. 2008년에는 미국의 조지 부시 대통령의 초청으로 세계 반독재투쟁 인사들과 함께 부시 대통령을 면담해 더욱 유명해졌고 그의 대북삐라살포운동은 국제사회와 세계 주요언론의 더 많은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탈북 전에는 평양 김책대학교 체신학부 무선과를 나와 수령의 청년조직으로 알려진 김일성사회주의청년동맹 선전선동부에서 열성적으로 일했던 박상학씨.
그를 만나 대북삐라살포 운동의 중심인물이 된 배경을 알아 봤습니다.

전수일: 대한민국에 오신 게 언제였습니까?

박상학 대표: 2000년도 봄입니다.

전: 가족과 함께 온 걸로 알고 있습니다.

박: 네. 아버지 어머니 남동생 여동생과 함께 가족 다섯이 다 함께 왔습니다.

전: 그런데 한국에 와서 대북 풍선날리기를 해야겠다고 생각한 동기가 있을 것 같습니다.

자유대한에 와서 할 일도 많았을 텐데 왜 하필 북쪽 고향땅에 삐라를 날리는 일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셨나요?

박: 김대중 정부 때 6.15선언을 했는데 우리는 그걸 북한의 수령독재정권과 야합한 걸로 생각합니다.  6.15선언에서 한반도평화가 가장 큰 현안으로 포함됐는데 그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이 비핵화였습니다. 북한의 비핵화 조건 하에 남북경협 등 여러가지 남북교류를 한다고 해놓았지만 북에서는 6.15선언의 가장 핵심적인 비핵화를 하지 않았습니다. 오늘까지도 계속 핵을 만들고 미사일을 쏘고하면서 북에서는 일방적으로 모든 합의를 파기하고 대한민국을 공갈협박하고 있지만 우리는 오히려 북한의 수령세습선군체제를 강화하고 북한주민에 대한 억압을 연장시켜주는 그런 대북지원을 묻지마 퍼주기식으로 끊임없이 했습니다. 또 6.15 선언에서 그 다음으로 중요한 건 서로 비방중상을 하지 않는 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북한에 대한 비방을 중단했습니다. 2000년대 초까지만해도 국군은 북한에 37년 간 심리전단을 보내왔었습니다. 대북삐라 대북방송 전광판 등을 일시에 중단했죠. 근데 북한은 그렇게 했습니까? 북한은 끊임없이 서울을 불바다로 만든다고 시도 때도 없이 위협했습니다. 그것도 우리 정부로부터 지원을 받아가면서 말입니다. 그리고 북한은 국가차원에서 대북 삐라도 보냈습니다. 2012년 5월과 8월에도 보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 대응방안을 생각하게 됐습니다.

제가 북한에 있을 때 대북전단을 92년과 93년에 받아봤습니다. 읽어 보고서는 저도 엄청난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한국정부는 북한에 속아 2천여만 동포들이 진실과 사실을 알 수 있는, 눈과 귀가 될 수 있는 그런 정보수단을 김정일 말을 듣고 중단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것만이라도 우리가 해야되겠다라고 생각했습니다. 우리 탈북자들이 압록강과 두만강 넘어 남한에 올 때 부모 형제들과 서로 약속한 게 있습니다. 그건 한국에 가면 한국행 결정이 잘 한 일이었나? 또 한국사회는 어떤 곳인가? 이에 관한 사실과 진실을 사랑하는 부모형제들에게 알려주겠다는 소박한 약속입니다. 우리 눈으로 본 대한민국의 사실과 진실을 북한 동포들에게 알리는 건 우리 탈북자들의 최소한의 양심이고 사명이고 의무입니다. 바로 여기에서 삐라날리기는 출발한 겁니다.  조선시대 관군이 왜적에게 쓰러지면 의병이 나섰듯이 정부가 중단하니 우리도 현재 의병이 된 심정으로 나선 겁니다.

우리는 학연 인맥 지연과 돈 아무 것도 없지만 대한민국 국민들은 많게는 십만원 작게는 1만원 2만원씩 저희 대북전단사업을 지원해 주고 있습니다. 근데 대북전단에 호응해 지난 8년 간 탈북자들이 많이 들어 왔습니다. 북한 주민들이 우리 전단을 받다 보고 싶어하는 건 탈북자들이 보내기 때문입니다. 남한정부가 보낸다면 아마도 북한에 대해 일방적으로 선전선동하고 비난하기 위한 것으로 생각하겠지만 우리 탈북자 이름으로 보내면 북한 주민들로서는 더욱 믿음이 가고 호기심이 생기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삐라에 일방적으로 김정일 독재정권을 타도하자는 내용을 담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 탈북자들이 대한민국에 와서 생활체험으로 느낀 사실과 진실을 있는 그대로 전하는 것입니다.

전: 대북 삐라에 포함되는 주요 내용을 소개해 주시죠.

박: 북한 주민들은 인권, 자유, 민주주의 그 자체가 뭔지 모릅니다. 그래서 우리는 처음 삐라를 보낼 때에는 세계인권선언문도 보냈고 대한민국이 어떤 나라이고 자유민주체제와 시장경제가 무엇인지 등 한국 국민이 가장 기초적이고 상식적으로 알고 있는 사실을 보내고 있습니다. 북한에선 한국을 인간 생지옥이고 북한은 낙원이라고 했는데 그러면 왜 낙원이라는 북한에선 수백만명이 굶어 죽고 인간생지옥이라는 남한에서는 왜 이렇게 잘 사는가? 대한민국은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를 택해서 그렇다는 걸 북한 주민에게 알려줍니다. 또 북에서는 가장 큰 민족의 원수와 악마로 비난하고 저주했던 이승만 박정희 대통령은 사실상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만들고 수호했고 또 새마을운동을 시작해서 5천년 역사의 가난에 종지부를 찍었다는 것도 알려 줍니다.

북한이 민족의 위대한 스승이고 수령이라는 김일성과 김정일을 이승만과 박정희와 비교한 것입니다.

우리는 양쪽에서 살아봤기 때문에 객관적으로 역사를 비교해 그걸 북한주민에게 알려주는 겁니다. 사실과 진실은 아무리 감추려해도 결국 시간이 흐르면 드러나게 마련입니다. 거짓이 이길 수 없습니다.

전: 북한 주민들은 남한의 역사나 발전사 혹은 기타 정세에 굉장히 어두울텐데 삐라를 줏어 보고 그런 사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을지 궁금합니다.

박: 저도 북한에서 대북전단을 받아봤을 때 이런 생각을 했었습니다. ‘일단 삐라 내용이 사실이라고 하더라도 내가 실제 이걸 누릴 수 있겠냐?’  근데 남한에서 보내 온 삐라를 보니까 지금 저와 같이 활동하고 있는 친구인 강철환, 안혁 같은 사람이 북에서는 정치범수용소에 수감됐었지만 남한에 가서는 한양대학을 다니고 있다는 내용과 해수욕장에서 비키니 입은 미녀들과 찍은 사진도 들어 있더군요. 그걸 보고 우리도 이 사람들처럼 남한에 갈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은 했죠. 하지만 그건 그림의 떡입니다.
그런 삐라는 별 효과가 없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내가 북한에 살아 봤으니 북한 주민들이 가장 알고 싶어하는 게 무언지 알죠. 그건 ‘왜 우린 그렇게 좋다는 남한을 가지 못하고 이렇게 살아야 하나?’란 의문입니다. 남한정부 삐라에는 그런 중요한 기본 내용이 빠져 있었습니다. 북한 주민의 의문은 김일성이 누구이고 신 처럼 모시는 김정일의 정체는 무엇인가? 그들의 가족력과 역사적인 실체가 핵심입니다. 그걸 알려줌으로써 수령 우상화를 깰 수 있습니다. 북한으로서는 가장 치명적인 내용이죠.

전: 지금 말씀한 대북삐라의 내용은 어찌보면 남조선 정부에서 주도해야 할 일이기 때문에 지원이 있어야 할 것같은데 왜 정부의 지원이 없다는 겁니까?

박: 이건 참 역설적인 얘깁니다. 정부차원에서도 특히 대북활동을 한다는 사람들조차도 대북삐라를 보낸다고 해서 무슨 효과가 있겠냐고 말합니다. 그 효과는 탈북자들에게 물어보면 알 수 있습니다. 여기에 2만5천명의 탈북자가 오지 않았습니까? 북한에서 삐라를 받아도 안 보고 하루도 살아 본 적이 없는 사람들이 효과가 있니 없니 말하는 건 황당한 일 아닙니까?

전: 하지만 2만5천명의 탈북자들이 모두 삐라를 받아보고 온 건 아니잖습니까?

박: 물론 그렇죠. 근데 북한은 철저히 외부로부터 정보가 차단된 국가입니다. 한국인들의 상상을 초월할 정도죠. 우리는 디지털사회에 살지만 거기는 아날로그 사회입니다. 아날로그 사회인 북한에 지리역학상으로 열린 공간은 하늘 밖에 없습니다. 풍선을 날려야죠. 저도 7, 8년전 북한인권운동을 하면서 압록강 지역에 나가 북한의 밀수꾼들을 통해 USB와 성경도 보내 봤는데 도움이 안됐습니다. 밀수꾼한테 돈을 얼마쯤 쥐어 줘서 보내야 하는데 이 사람들이 압록강 물에 그걸 모두 버리는 겁니다. 들여갔다가 보위부에 잡히면 정치범수용소에 갈 수 있으니까요.
전: 그러니까 돈은 받고 전달할 물품은 모두 물에 버린다는 거네요.

박: 그렇죠. 죽는 행위니까요. 그래서 우리는 도저히 이 방법은 안되겠다 해서 삐라를 보내기로 한 겁니다.

전: 최근의 삐라내용은 어떤 겁니까. 아까 3대세습관계는 언급하셨지만.

박:  탈북자 조명철씨와 북한이 통일의 꽃이라고 떠들던 임수경이 한국에서 국회의원이 됐다는 사실도 담겼습니다. 북에서는 임수경이 남한에 가면 감옥귀신이 된다고 선전했습니다. 영원히 인간사회에서 살 수 없을 것이라고 했는데 그런 임수경이도 자유로운 신분으로 국회의원이됐다는 사실을 알려 주는 것이죠. 이런 진실이 북한사람들에게는 아주 파격적인 소식입니다.

또 북한에서는 김정은을 신 이상으로 선전하면서 체제 결속을 하고 있는데 우리는 삐라에 김정은의 실체도 넣습니다. 검증하는 셈이죠. 김정은이 줴기밥을 먹으며 엄청 가난하게 산 것처럼 선전하지만, 김정은이 유럽에서 산 건 사실 아닙니까? 그가 유학생활을 어떻게 했고 또 북한인민들로서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세습왕자로서 인간이 누릴 수 있는 모든 부귀영화를 다 누렸다는 것. 주민들과는 하늘과 땅 차이의 그런 삶을 살았다는 사실과 진실도 근래의 삐라에는 들어 있습니다.

전: 근데 북한이 대북삐라에 대한 위력을 알기 때문에 삐라를 살포하는 주체에 대해 예를 들어 박 대표를 위협하고 살해 기도를 했었지 않습니까? 저와 인터뷰하는 지금도 경찰 그러니까 보안원 두 분이 신변경호를 하고 있는데요, 이런 북한의 암살기도 위협은 현실화될 수 있는 것인데 박 대표의 신변안전을 우려해 부모님은 반대하지 않습니까?

박: 부모와 형제 온 가족이 같이 나가서 대북전단을 보냅니다. 심지어 제 제수씨와 제 처를 포함해서요. 임진각 현장에 직접 나가서 함께 보냅니다. 남에게 희생하라고 할 수는 없으니까요.

전: 온 가족이 총동원되어서 대북삐라 사업을 하는 셈이군요.

박: 네. 위험한 일이니까요. 우리 가족이 솔선수범 안 하면 누구도 후원을 안 할 것이고 믿지 않을 겁니다.

전: 대북삐라만 보내는 게 아니라 1달러짜리 지폐도 넣어 보내고 씨디 알판을 넣어 보내는 경우도 많지 않습니까?

박: 그렇습니다.

전: 그럼 돈이 더 들텐데요.

박: 1달러짜리를 보내는 이유는 진실의 편지도 중요하지만 그와 함께 북한 주민을 생각하는 따듯한 정도 담아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북한 주민이 가장 힘들어 하는 게 경제적 고난인데 조금이라도 그 어려움을 덜어 주자는 것이지요. 1달러를 보내면 그게 암거래 시장에서는 2만원 3만원 가치가 있습니다. 공정환율은 3천원이지만 실제는 8배 10배씩 받을 수 있습니다. 왜냐면 북한에선 1불짜리를 구경할 수가 없습니다. 오히려100불이나 50불짜리는 볼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1달러짜리는 아주 운이 좋은 돈이라고 북한 주민에게는 알려져 있습니다.

전: 행운의 돈이란 얘기군요?

박: 네. 행운의 돈이죠. 여기 남한에 오니까 2불짜리가 행운의 돈이라고 하던데 북한에 있을 때 저도 2불짜리에 대해서는 몰랐습니다. 1달러짜리는 지갑에 기념품처럼 넣어 갖고 다닙니다.
거기다 2-3만원이면 북한에서는 큰 돈이 되니까 경제적으로도 도움이 되고요. 1석2조입니다.

또 달러가 떨어 진다고 하니까 북한 주민은 서로 줍겠다고 합니다. 전연지대에 있는 군인들은 대북전단이 떨어졌다고 하면 가서 줍곤 했는데 이제는 병사들을 안보낸다고 합니다. 군관들이 자신들의 처들을 보낸답니다. 1불짜리를 줍도록 하기 위해서 자기 아내들을 대북전단 수거에 보내는 것이죠.

이 돈은 고맙게도 미국에 있는 북한자유연합의 수잔숄티 여사와 남신우 선생이 1불짜리를 꼬박 꼬박 모아서 보내주십니다. 그러니까 풍선에 매다는 1불짜리 대부분 이분들이 보낸 겁니다. 물론 우리 대한민국 현지에서도 모아 보내기도 하지만요. 또 미국의 고려서점의 정운표선생이란 분이 있다. 이분도 해외 교포분으로서 우리 대북전단을 적극적으로 후원해 주십니다. 지금은 북한에 수령동상만 몇 만개 있지만 나중에는 그걸 무너뜨리고 이분들의 동상을 세워드려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전: 방금 군관들이 아내들을 시켜 1달러짜리를 수거해오라고 한다고 하셨는데 이걸 띄워 보내는 곳은 주로 강화도와 임진각인가요?

박: 디엠지 전역에서 합니다. 공식적인 행사는 임진각에서 하는데 그건 10번 띄워 보내면 1번정도나 합니다. 우리 후원자들을 격려하는 차원에서, 또 북한주민들에게 우리 언론을 통해 –라지오를 듣고 있는 주민을 위해- 언제 우리가 보낸다는 걸 알게 해 그걸 줍도록 하기 위해 여러 복합적인 목적으로 공식적인 행사를 하는 겁니다.  절대다수는 비공개로 보내는데 동해쪽 강원도 속초와 최북단 거진에서 부터 시작해 서해쪽 강화까지 풍향이 맞기만 하면 240마일 비무장지대 그 어느 곳에서도 보내고 있습니다.

전: 한 번 띄울 때마다 보내는 삐라 숫자가 2,3십만장 정도라고요?

박: 2십만장씩 보냅니다. 그 이상을 보내기에는 기존 장비로는 좀 힘듭니다.

전: 그걸 보내면 대략 어디에 많이 떨어질 것으로 예측하십니까?

박: 동해쪽에서는 함경남도 함흥 원산 지구, 서해쪽으로는 남포와 평양 지역에 많이 떨어집니다. 일부로 평양을 목표로 많이 날립니다.

전: 황해도쪽은 어떻습니까?

박: 황해도는 사리원 해주 지역에 많이 떨어집니다. 평양에도 많이 떨어졌는데 조선일보같은 우리 언론에서도 객관적으로 기사화한 사실입니다. 될 수 있으면 평양에 많이 떨어지게 하려고 노력합니다.

전: 풍선을 날리기 시작한 게 몇 년 도 였죠?

박: 2천4년도였습니다.

전: 현재 한 달에 평균 몇 차례 정도 날리십니까?

박: 평균 3-4차례 날립니다. 하지만 12월 1월 2월은 대륙성 고기압인 북서풍이 내려와서 이 기간에는 거의 안 합니다. 가장 좋은 계절은 4월 5월 6월인데요 이때는 훨씬 많이 날립니다. 그래서 어떤 달에는 한 번도 못할 때도 있지만 어떤 달에는10차례 할 때도 있구요.

전: 박 대표께선 대북삐라날리기를 언제까지 계속하실 작정입니까?

박: 미사일 실험이나 핵실험 등 대한민국과 국제사회를 위협하는 무력도발이 중단되고 우리 대한민국 국민에 대한 공갈협박을 멈추고 최소한의 개혁개방으로 나가 북한주민에 대한 생존권과 인권 침해를 하지 않는다면, 중국 공산당의 절반의 절반만큼이라도 북한국민을 위해 경제적 정신적 해방의 길을 연다면 우리 대북전단도 중단될 겁니다. 그러나 3대세습 독재에 의한 북한 주민의 인권유린과 피해가 계속되는 한 북한주민을 향한 사실과 진실의 편지는 중단될 수가 없습니다.

RFA 초대석, 오늘은 김일성사회주의청년동맹 선전선동부 출신으로 한국에서 대북삐라살포 운동을 이끌고 있는 자유북한운동연합의 박상학 대표를 만나 봤습니다.

저는 전수일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