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FA 초대석] 어학·취업 연수(WEST 프로그램) 위해 미국 온 탈북대학생 이은서 씨

워싱턴-전수일 chuns@rfa.org
2011-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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웨스트프로그램으로 미국에서 어학. 취업 연수 중인 탈북대학생 이은서 씨.
화제의 인물을 만나보는 RFA 초대석, 진행에 전수일 입니다. 한국 대학생들이 미국에서 영어를 배우고 미국의 기업에서 실습 경험을 쌓도록 하는 어학. 취업 연수 프로그램인 ‘웨스트’(WEST)가 시작된 지 3년이 지났습니다. WEST는 일하고 영어 공부하고 여행한다는 말WORK ENGLISH STUDY AND TRAVEL의 첫글자를 따서 만든 프로그램입니다. 1년 반 동안의 단기 유학 같은 것이죠. 2008년 여름 당시 미국의 조지 부시 대통령과 한국의 이명박 대통령의 합의로 출범한 이 프로그램으로 매년 한국대학생120여명이 선발돼 미국에 오고 있습니다. 올 여름에는 웨스트 프로그램 처음으로 탈북 대학생 다섯 명이 미국의 수도 워싱턴에 와 어학 취업 연수를 하고 있습니다. 지난 5월 캐슬린 스티븐스 주한 미국대사가 탈북대학생들도 참여토록 하겠다는 약속에 따른 것입니다. 이들 학생 가운데 한 사람인 이은서 씨를 만나 봤습니다.

전수일: 미국에7월에 오자마자 영어 공부하러 다녔습니까?

이은서 학생: 도착해서 열흘정도는 워싱턴 지역을 유람했습니다. 마침 독립기념일이 껴서 행사에도 많이 가 봤습니다. 유람한 다음에는 바로 어학당에서 준비된 시간표로 아침 9시부터 오후 5시까지 영어공부를 해 왔습니다.

전: 거의 8시간인데 공부하기에 힘들거나 지루하지 않습니까?

이: 수업을 지도하시는 선생님들이 매우 재미있게 가르쳐 주십니다. 앉아서만 하는 게 아니라 많이 움직이는 방식으로 가르칩니다. 게임이나 영화 그리고 문화체험도 많이 하면서 활동적으로 공부를 하고 있습니다.

전: 문화체험은 어떤 것입니까?

이: 여기에서 오래된 장마당도 가보고 물건도 사보기도 하고 여러 민족의 음식도 먹어 봤습니다.

전: 미국에는 다민족이 살고 있지요.

이: 네. 특히 버지니아주는 여러민족이 많이 살고 있는 것 같습니다. 여러가지 음식을 마음껏 먹어 봤습니다. 값이 좀 비싸지만요.

전: 어떤 나라 음식들을 먹어 봤습니까?

이: 인도 멕시코 타이 그리고 또 중국 음식을 먹어 봤습니다.

전: 영어 공부를 가르치는 선생님은 미국분들입니까?

이: 네. 오리지날 미국 원어민들입니다.

전: 영어공부가 끝나면 1, 2개월정도 미국 현지 회사에 들어가서 일 경험을 하고 돌아 간다죠?

이: 네.

전: 현재 한국의 외국어 대학교에서 졸업을 앞두고 이번 웨스트 프로그램으로 미국에 어학 취업 연수 차 오셨는데 탈북 대학생 다섯 분이 이번에 특별히 선정됐습니다. 한국에는 800-900명의 탈북 대학생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어떻게 선정했을까요?

이: 저도 그게 제일 궁금했습니다. 무엇보다 운이 좋았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오기 전에 인터뷰를 많이 했습니다.

전: 인터뷰요?

이: 네. 조선말로 면접을 많이 했습니다. 세 번 했습니다.

전: 어떤 사람과 했습니까?

이: 웨스트 프로그램 관계자들로 생각되는데요, 처음에는 미국정부의 교육부 관계자와 했습니다. 처음 두 번은 영어로 했고 마지막에는 한국어로 했습니다. 많이 긴장했었습니다.

전: 그렇다면 영어는 기본적인 실력이 있어야한다는 말이네요?

이: 그렇습니다. 대학교에서 원어민의 영어 멘토링을 받았습니다.

전: 멘토링이요?

이: 네. 도움을 주고 부족한 부분을 지도해주는 게 멘토링입니다. 학교에서 자원봉사 하시는 교수님이 우리 새터민 탈북자 학생들에게 학기마다 일주일에 2시간정도 영어를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 과정을 거쳤기 때문에 이미 영어에 대해선 별로 두려움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자신감 갖고 면접을 봤습니다.

전: 외국어대학에 들어가서는 중국어만 공부했습니까 아니면 영어도 공부했습니까?

이: 우리 학교에서는 전공은 최소 2개 이상 해야합니다. 그래서 복수 전공했습니다. 저의 주 전공은 중국어이고 둘째 전공은 영어입니다. 그래서 영어를 접했고 한겨레 고등학교에서도 영어를 열심히 했습니다.

전: 탈북청소년들이 영어에 어려움이 많다고 들었습니다.

이: 한국 학생들은 어릴 때부터 영어 공부를 했기 때문에 그들보다 많이 달립니다. 하지만 탈북학생들도 영어실력을 꾸준히 개발하고 향상시키기 위해 열심히들 하고 있습니다.

전: 외국어대학교의 중국어 학과에서는 중국말만 배웁니까?

이: 중국어과와 중문어과가 있습니다. 중문어과는 중국어 위주가 아니라 중국의 역사나 어학에 중점을 두고 제가 전공한 중국어과는 중국 언어를 위주로 하면서 중국 문화 역사 정치 등 두루 가르치는 학과입니다.

전: 북한에서 나와, 중국을 거쳐 한국에 들어간 것이겠죠?

이: 네.

전: 한국에는 몇 살 때 들어갔습니까?

이: 한국에 도착했을 때 21살이었습니다.

전: 중국에서는 몇 년 체류했습니까?

이: 거의 7년 있었습니다.

전: 그럼 중국에서 학교를 다녔습니까?

이: 네. 다행히 엄마가 아는분을 통해 중국 조선족 학교와 한족 학교를 거의 5년 간 다녔습니다.

전: 북조선에서는 어떤 학교에 해당합니까? 인민학교?

이: 중학교와 고등학교와 같다고 보시면 됩니다.

전: 중국학교에 다니려면 중국말을 했을 것 같은데?

이: 조선족 학교에서는 평소에는 조선어로 대화를 하고 중국어 수업시간에는 중국말 했습니다. 그리고 한족 고등학교에 갔을 때는 모든 것을 중국어로 했습니다.

전: 중국어로 공부하는 게 어렵지 않았습니까?

이: 한족 학교에 들어갈 즈음에는 조선족 학교에서 중국어를 어느정도 배운 후라서 소통에 문제가 없었습니다.

전: 중국에서 배운 과목들이 북한에서 배운 과목들과는 어떻게 달랐습니까?

이: 많이 달랐습니다. 북한에서는 역사를 수령위주로 배웁니다. 하지만 중국에서는 누구를 우상화 하는 것이 없이 역사를 그대로 가르치니까 그것이 신선했습니다. 또 제가 글을 매우 좋아합니다. 책 보는 걸 좋아하는데 이야기들이 매우 신선하고 재미있었습니다. 북한에서는 동화책이 거의 없습니다. 있다는 책이 김일성과 김정일의 어릴적 얘기가 전부입니다. 그래서 읽을 만한 책이 충분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중국에 오니 여러가지 역사책 동화책이 많아서 정말 좋았습니다. 도서관에 매일 붙어 있었습니다.

전: 중국에 머물다 한국에 간 때가 21살 이었다고 했는데 한국에서는 고등학교에 들어 갔습니까 대학교에 갔습니까?

이: 한겨레고등학교에 다녔습니다. 한겨레고등학교는 2001년 한국정부가 북한 새터민청소년들을 위해 중고등학교로 설립한 학교입니다. 처음에는 교사가 몇 분 안되어 선생님들이 많이 힘들어 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자금이 확대돼 많이 좋아졌습니다. 교육의 질이 여러면에서 일반 중고교 수준에 미칠 만큼 개선됐고 학생과 선생님의 수도 늘어났습니다.

전: 한겨레 학교에서는 몇 년 배웠습니까?

이: 2년 정도 고등학교 수업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나서 한국 외국어대학교에 들어갔습니다.

전: 외대에 들어가서는 북한 출신 청소년들과 함께 남한 젊은이들도 사귀었을텐데 북한과 중국에서 사귄 친구와 남한 동무들이 달랐습니까?

이: 대학 1학년 때 동아리에 들어 갔습니다. 중국 원어 연극회였는데 열심히 해보자고 생각했습니다. 원래 연극에 취미가 있었습니다. 제 나이가 당시 23살이라서 동기들이 나보다 어리고 선배의 경우도 나이가 어리거나 같거나 했습니다. 동아리에서 시즌, 명절마다 연극을 하는데 내가 후배 새내기라서 나이 어린 선배들이 이리 저리 지시하곤 했습니다. 그때는 그게 살짝 걸끄럽기도 했지만 나중에는 재미있어서 연극 작품마다 동아리 친구들과 만나고 활동하는 게 즐거웠습니다.

전: 북조선에서 동아리란 말은 뭐라고 하죠?

이: 서클이라고 합니다. 제가 알기로는 당시 북한에서는 음악서클이 제일 유명했습니다.

전: 한국의 가족 사항이 궁금합니다.

이: 엄마와 남동생이 있습니다.

전: 남동생도 학교에 다닙니까?

이: 네. 대학 진입을 준비중에 있습니다. 여명학교라는 탈북학생 학교에 다녔습니다.

전: 남동생도 공부를 열심히 합니까?

이: 제 남동생은 공부에 취미가 없습니다. 그래서 아직 진로와 학과 선택에 고민 중입니다.

전: 미국에서 연수 프로그램 끝내고 내년 1월에 한국에 돌아가 대학을 졸업하기까지 몇 달 더 공부해야 합니까?

이: 한 학기, 세 달 더 남았습니다. 하지만 그 간에 공부만 하는 게 아니고 취업 준비도 해야 합니다. 정말 바쁜 시간이 될 겁니다.

전: 한국에서는 대학교 4년 마치고 사회에 나가 일자리를 잡아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 준비들 많이해야 하는 모양이죠?

이: 어마어마하게 많이합니다.

전: 어떻게 준비합니까?

이: 흔히 한국에서는 스펙이라고 해서 자격증 같은 것을 땁니다. 제 경우 어학자격증부터 필요합니다. 기본적으로 토익이나 중국어 자격증이 있어야 하고 취득 시 당연히 점수는 최고 점수를 받도록 해야 할 것이고요. 다른 자격증들도 때때로 많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전: 사회로 나가 일자리 얻을 때 어떤 직종이나 분야에서 일하고 싶습니까?

이: 저는 제1, 제2 전공외에도 중국어 교직 과목을 이수했습니다. 교생 실습도 마쳤습니다. 중국어 교사가 되는 게 꿈인데 한국에서는 교사되기가 정말 어려워서 걱정입니다.

전: 왜 어렵습니까?

이: 한국 학교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사립과 공립 학교입니다. 그런데 공립학교에서 교사를 하려면 정말 어려운 시험을 거쳐야 합니다. 한편 사립으로 가려면 돈이 있어야 합니다. 돈이 많이 듭니다. 그래서 제 경우는 국립학교를 가고 싶은데 교사 시험을 보기 위해 1년정도 공부를 해야 합니다. 하지만 그 사이 시험공부하면서 무직자로 있어야 하는 게 고민입니다.

전: 졸업자가 취업을 못 해도 부분적으로 일하면서 돈을 버는 방법도 있다고 들었습니다.

이: 네. 계약직이라고 해서 1년 2년정도 임시적으로 일하는 일자리가 있습니다. 저도 계약직으로 회사에 취직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래서 돈을 벌면서 공부를 계속하거나 아니면 그 계약직이 적성에 맞으면 그 일을 계속 할 수도 있겠죠.

전: 한국에 먼저 도착한 탈북청소년들이 대학생활하면서 나중에 도착한 중고등학교 탈북청소년들의 학업을 도와주는 활동이 있습니까?

이: 한국사회에서 탈북청소년들을 돕는 민간단체들이 많습니다. 탈북청소년들의 공부 돕기는 물론이고 종교단체와 민간단체들이 탈북청소년들을 위해 아까 설명한 멘토링으로 1대1지도해 주는 일도 합니다. 방과 후에 과외로도 돕습니다. 청소년들은 한국에 도착하면 막막합니다. 무엇을 어떻게 구체적으로 할 지 모릅니다. 종교단체, 민간 시민단체에서 이들에게 직업 진로 그리고 생활 자세 등에 대해 지도상담해 줍니다. 어른이든 아이든 탈북자들은 한국에 오면 한 살배기나 같습니다. 지하철 타는 것부터 배워야 합니다. 그런 걸 세심히 도와주는 분들이 많습니다. 그에 따라 자기 적성에 맞는 학과를 선택하거나 바로 직업을 잡는 탈북청소년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대부분 학교에 진학합니다. 한국에서는 학교를 나와야 사회정착이 쉽기 때문입니다.

전: 한국 생활중 한국에 오길 잘했다라는 보람을 느낀 적이 있다면 어떤 때였습니까?

이: 힘들 때가 많지만 가장 보람을 느낀 적은 꿈을 가질 수 있다는 게 축복이란 걸 알 때입니다. 내가 원하는 게 있다는 걸 발견하는 자체도 중요합니다. 북한이나 중국에 있었다면 내가 원하는 걸 몰랐을 것입니다. 내게 맞는 것을 찾을 수 있고 노력해 얻을 수 있다는 걸 알아가는 그 자체가 큰 보람입니다.

전: 북한에서는 그걸 모른다는 말입니까?

이: 쌀독에서 인심난다는 속담이 있습니다. 먹는 게 그만큼 중요하다는 말인데요. 생활의 기본이 되는 먹는 것이 충족되어야 꿈도 있고 미래도 있는 것인데, 기초적인 생활이 안 되고 어려우니 자신의 꿈을 생각할 겨를이 없습니다.

전: 하지만 한국에 와서 문화적인 충격도 클 것이고 자본주의 시장경제에서 살아가는데 걸림돌이나 힘든 일 여러가지가 있을텐데요. 그걸 경험한 사람으로 후배들, 특히 한국을 동경하고 한국에 가려고 하는 청소년들에게 해주고 싶은 충고가 있다면 무엇입니까?

이: 굳이 충고라기 보다는 제가 경험으로 얻은 걸 말씀드리겠습니다. 한겨레 탈북청소년 학교를 나와 대학에 들어가 알바를 시작했습니다. 알바는 일시적으로 당분간 방학 중에 일 하는 것입니다. 당시 일한 곳이 화장품가게였습니다. 한국에서는 화장품 명이 모두 영어로 돼있고 직장문화도 생소했습니다. 처음엔 용어들도 모르고 말의 억양이 달라 알아듣기 힘들었습니다. 중국에서 오래 살다 와서 그렇다고 변명도 하고 너무 당혹스러워 쩔쩔맸던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 와서 생각하면 사람사는 게 다 같습니다. 다른 사람을 배려하고 최선을 다하고 늘 밝게 생각하면 자기 자신에게도 이롭고 옆에 있는 사람들을 행복하게 합니다. 매사 긍정적으로 임하고 너무 걱정하지말고 우려했던 것 보다는 주위 사람들이 까탈스럽지도 않습니다. 너무 자의식에 사로잡히지 말아야 합니다.

RFA 초대석, 오늘은 미국에서 어학공부와 취업 연수를 하고 있는 한국에서 온 탈북 대학생 이은서 양의 얘기를 들어 봤습니다. 저는 전수일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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