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인권을 위해 뛴다-69] 장 지글러 전 유엔인권위원회 식량 특별조사관

워싱턴-장명화 jangm@rfa.org
2011.03.29
JeanZiegler_afp-305.jpg 장 지글러(Jean Ziegler) 전 유엔인권위원회 식량 특별조사관.
AFP PHOTO / FABRICE COFFRINI
미국, 캐나다, 유럽, 그리고 한국에는 마치 자기 집안일처럼 북한 인권을 개선하기 위해 수년째 뛰는 단체와 개인이 많이 있습니다. 미국, 캐나다, 유럽, 그리고 한국이 침묵하면 북한의 주민은 세계의 외면 속에 방치될 수 있다고 우려하기 때문입니다. ‘북한인권을 위해 뛴다,’ 오늘 이 시간에는 장 지글러 전 유엔인권위원회 식량 특별조사관을 만나봅니다. 진행에 장명화입니다.

(한국 드라마 ‘시크릿 가든’) (김주원) "일어나봐. 일어나봐, 얼른."
(오스카) "아이! 아, 왜!" (김주원) "혹시..." (오스카) "무슨 일 있어?"
(김주원) "월세...사는 여자 만나본 적 있냐?"
(오스카) "뭐? 그거 때문에 이 오밤중에 자는 사람을 깨운 거야?" (김주원) "있어, 없어?"
(오스카) "아, 이 미친놈. 당연히 있지." (김주원) "있어?"
(오스카) "모델 걔 이름 뭐냐, 박... 어쨌든 올 초에 만났던 걔도 월세 살았고, 아나운서 걔도 월세 살았고. 강남 사는 애들은 거의 다 월세 살아. 한 달에 한 삼사백 할걸?"
(김주원) "그런 월세 말고. 한 삼십 만 원하는 그런데..."
(오스카) "아, 하루에 삼십? 호텔 디럭스 룸이 그쯤 하지 않냐?"
(김주원) "아이, 그런데 말고!" (오스카) "그럼 뭐! 상상이 되게 얘기를 해봐."
(김주원) "그 왜, 내셔널지오그래픽 같은 거 보면 파리 막 날라 다니고 불쌍한 애들 나올 때 꼭 뒤에 이렇게 배경으로 나오는 그런 집 있잖아."

올해 초 한국에서 인기리에 방송됐던 드라마 ‘시크릿 가든’에 나오는 한 장면입니다. 백만장자인 주인공 김주원 씨가 여자 대역배우인 길라임 씨가 사는 허름한 집을 보고 크게 충격을 받은 날, 자신의 사촌형인 오스카에게 질문을 던지고 있습니다. “도대체 길라임은 왜 가난한 거지?” 김주원 씨는 연인을 이해하기 위해 책을 집어 듭니다. 장 지글러 씨의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가 바로 그 책입니다.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는 이제는 보릿고개를 상상할 수 없는 한국에서 지난 4년간 13만 권이나 팔렸는데요, 이 책에는 유엔의 고위관리인 지글러 씨가 굶주림의 실태와 그 배후의 여러 원인을 아들과 나눈 대화 형식으로 설명하면서, 식량권이 소송을 제기할 수 있는 인권으로서 망명자의 피보호권처럼 새로운 국제법규로서 시급히 도입돼야한다는 주장을 설득력 있게 전하고 있습니다.

지글러 씨는 스위스 출신의 경제학자로 인도적 관점에서 빈곤과 사회구조의 관계에 대한 글을 의욕적으로 발표하는 저명한 기아문제 전문가입니다. 2000년부터 8년간 유엔인권위원회의 식량특별조사관으로 활동했고, 지금은 자리를 바꿔 유엔인권이사회의 자문위원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독일의 극작가인 베르톨트 브레히트 씨의 말을 빌려 ‘선거용지가 고픈 배를 불리는 게 아니라며’ 인권 가운데 식량권을 중시하는 지글러 씨가 진단한 북한 기아의 원인은 무엇인지, 자유아시아방송이 그의 입을 통해 직접 들어봤습니다.

(장 지글러) First, the North Korean government is totally neglecting…

(더빙) 무엇보다도 북한 정부는 군사, 안보 분야에 치중해 농업에 대한 투자를 완전히 무시하고 있습니다. 과거에는 잘됐던 논농사나 밭농사, 목축 등이 농지와 생산품의 강제 집단화 정책으로 완전히 몰락해 버렸습니다. 게다가 1995년의 홍수, 1997년과 1998년의 연이은 가뭄은 식량 생산에 치명적인 타격을 주었는데도, 북한 정부는 농업 정책을 바로잡거나 재해 복구에 힘을 쏟지도 않았습니다. 과거의 전시 망상에 사로잡힌 채, 군의 과잉무장과 핵무기 개발사업에 매년 엄청난 예산을 들이고 있습니다.

지글러 씨는 특히 유엔 세계식량계획이 북한의 굶주림을 돕기 위해 10년이 넘도록 대규모의 식량을 지원하고 있는데도 북한 정부가 식량을 분배하는 과정을 감시하는 기본 절차에 여전히 협조하지 않는데 큰 불만을 토로합니다.

(장 지글러)
The North Korean government wants the monopoly of the transport from the harbor to the people…

(더빙) 북한 정부는 지원된 식량이 북한 항구에 도착해서 수혜자에게 도착할 때까지의 운송 과정을 독점하고 있습니다. 세계식량계획은 지원된 식량이 절실히 필요한 사람에게 전달되는 것을 확인하기를 원하기에 이 과정을 감시해야만 하는데요, 북한 정부의 비협조로 그렇게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설상가상으로 지원된 식량 가운데 일부는 군부와 비밀경찰이 중간에서 가로채고 있다는 의혹이 있습니다. 도시나 지방의 고아원에서는 아이들이 속속 죽어나가는데, 지원 식량은 결국 북한 주민을 억압하는 기관원들을 먹여 살리는 역설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자유아시아방송은 이어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에 나오는 아들처럼 북한에 ‘식량 원조를 계속하는 일이 옳은 일이냐’고 물어봤습니다. 지글러 씨가 2000년 이 책을 처음 출간한 이후 이에 대한 견해가 혹시 바뀌었나 해서입니다.

(장 지글러) Even if monitoring issues are not respected by the North Korean government…

(더빙) 북한 정부가 분배 감시체계를 존중하지 않는다 해도, 지원된 식량이 전용된다 해도, 국제사회의 대북 식량지원은 계속돼야합니다. 지원된 식량이 소량이나마 고아원이나 임산부, 노약자 같은 취약계층에 갈 겁니다. 어떤 대가도 한 사람의 생명에 비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단 한 명의 굶주리는 사람이라도 더 살릴 수 있다면 그 모든 손해를 보상받게 되는 겁니다.

북한의 김 씨 일가가 김일성에 이어 김정일, 그리고 김정은으로 권력을 이양하고 있는 시점에, 북한의 새로운 권력층에 조언하고 싶은 게 있다면 한마디 해달라는 부탁에, 과거 스위스 사회당에 소속한 연방의원이었던 지글러 씨는 이렇게 대답합니다.

(장 지글러)
It would be very arrogant to give advice to a foreign government coming from an European intellectual…

(더빙) 일개 유럽 출신의 지식인이 외국 정부에 조언한다는 게 매우 오만해 보일 수 있습니다만, 굳이 한 가지 권해 드린다면 북한 주민 한명, 한명의 인권을 절대적으로 존중하라는 겁니다. 모든 사람은 식량권, 거주권, 의료서비스를 받을 권리, 식수권을 누리며 살아갑니다. 이 같은 권리는 북한 주민에게도 동등하게 주어져야 합니다. 이런 권리 외에도, 북한 주민에게 핍박에서 벗어나 안전하게 살고, 사고하고 행동할 권리를 돌려줘야 합니다. 불행하게도 지금 북한 주민의 이런 권리 하나, 하나가 북한 정부에 의해 대규모로, 심각하게 침해당하고 있습니다.

순전히 ‘출생의 우연’에 의해 운 좋게도 스위스에 사는 백인으로 태어났다는 지글러 씨. 운이 ‘덜’ 좋게 굶주림이 만연한 북한에 태어났다면, 마찬가지로 운이 ‘덜’ 좋은 사람들이 자신의 아내나 아들, 딸이 될 수 있었음을 수차례 되뇌는 지글러 씨는 그래서 북한의 권력층이 자국민에게 끼니를 거르지 않을 권리, 존엄성을 유지할 수 있는 권리를 주라고 오늘도 열심히 외치고 있습니다. 이런 권리가 있음으로 해서 인간은 인간다울 수 있기 때문입니다.

‘북한 인권을 위해 뛴다,’ 오늘은 여기까집니다. 진행에 장명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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