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인권을 위해 뛴다-83] 다시 돌아보는 북한인권 관련 단체와 개인①

워싱턴-장명화 jangm@rfa.org
2011-0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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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빌리 캠페인 USA'의 설립자이자 이민법 전문 변호사인 앤 부왈다 대표.
'주빌리 캠페인 USA'의 설립자이자 이민법 전문 변호사인 앤 부왈다 대표.
RFA PHOTO/장명화
북한의 인권문제는 어제오늘의 얘기가 아닙니다. 짧은 시간 안에 해결될 수 있는 성질의 것도 아닙니다. 그럼에도 미국, 캐나다, 유럽, 한국 등 세계 각처에는 마치 자기 집안일처럼 북한 인권을 개선하기 위해 수년째 뛰는 단체와 개인이 많이 있습니다. 북한의 인권 문제를 포기하지 않고 계속 거론하는 일이 중요하며, 그럴 때 진전을 이룩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북한인권을 위해 뛴다,’ 오늘부터 세 차례에 걸쳐 이 프로그램에 나온 단체와 개인을 돌아봅니다. 질문에 양윤정 앵커, 대답에 장명화입니다.

양윤정: 장명화 기자, 이번 달로 ‘북한 인권을 위해 뛴다’ 프로그램이 막을 내리는데요, 지난 2009년 10월 초, 첫 방송을 탄 단체는 어딥니까?

장명화: 네. 벌써 1년 9개월이라는 시간이 지났네요. 첫 방송에는 국제적인 법률회사이자 인권과 관련한 비정부기구로 잘 알려진 '주빌리 캠페인 USA'가 소개됐습니다. 이 단체의 설립자이자 이민법 전문 변호사인 앤 부왈다 대표는 2004년 10월에 제정된 미국 북한인권법의 초안 작성에 깊이 관여한 인물로 유명한데요, 저희 방송에 북한인권법의 씨앗이 태동할 수 있게 한 원동력은 ‘주빌리 캠페인 USA'가 아니라 한국에 있는 한동 대학교 국제법률대학원 학생들이라고 밝혀 눈길을 끌었습니다. 잠시 부왈다 대표의 말, 들어보시죠.

앤 부왈다
: 북한인권법에는 저와 타릭 라드완 변호사를 포함한 주빌리 캠페인의 상주 변호사들이 직접 현장을 발로 뛴 사람들의 조언을 받고 관련 자료를 연구한 결과 만들어진 조항들이 꽤 있습니다. 물론 북한인권법의 조항 하나하나를 만들고 토의한 것은 저희지만, 처음으로 동기를 유발한 이는 난민법을 수강했던 학생들이었습니다.

양: 이 프로그램에는 특별히 미국과 한국의 인권대사가 출연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요.

장: 네. 미국 로버트 킹 북한인권담당특사와 한국의 제성호 인권대사가 자유아시아방송과 단독회견을 통해 각각 미국과 한국의 입장에서 북한인권문제에 대한 견해를 피력했습니다. 킹 특사는 제가 미국 국무부 사무실에 직접 가서 만나봤는데요, 북한 지도부에게 해 줄 조언이 없냐고 묻자, '헬싱키 프로세스'를 대안으로 제시했었죠. 참고로 ‘헬싱키 프로세스’란 70년대 동서냉전 시대에 합의됐던 헬싱키 선언에서 따온 것인데요, 인권 문제를 주제로 하는 지역 내 대화틀을 만들어 나가자는 접근법을 뜻합니다. 잠시 킹 특사의 말, 들어보시죠.

로버트 킹: 지금 여러 아시아 국가는 여러 동유럽 국가가 그랬듯이 자국의 경제를 개선하고 서방 세계와 접촉을 늘리면서 지구촌 경제와 문화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제가 보기에 이는 '유익한 진보'입니다. 30년 전 동유럽에서 일어났던 이런 변화가 북한에도 일어날 필요가 있습니다. 이런 변화는 북한에 크게 도움이 될 겁니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을 꼽는다면, 일본의 인권대사를 만나 일본 측의 북한 인권에 대한 견해를 청취자 여러분께 전해드리지 못한 겁니다. 앞으로 기회가 닿는 대로, 노력해보겠습니다.

양: 일본의 인권대사는 접촉하지 못했지만, 일본에서 활동하는 비정부 인권단체들이 많이 소개되었는데요.

장: 일본의 민간단체인 ‘북조선난민구원기금’, 탈북자 취재를 통해 북한의 인권문제를 제기해 온 일본의 언론 기관인 ‘아시아프레스’ 등을 만났는데요, 일본의 인권단체와 활동가들이 점점 전반적인 북한인권문제로 관심을 확대하는 변화를 감지할 수 있었습니다. 이들은 기존의 납치된 일본인의 송환 운동, 북한 정부와 조총련의 허위 선전에 속아 북한에 이주한 약 10만 명의 재일 한국인과 그들과 결혼한 일본인 처들의 인권피해를 규명하는 운동 외에, 이제는 인권침해가 계속되고 있는 정치범수용소 해체운동과 중국 내 탈북자들을 보호하는 운동을 장기적 관점에서 재구축하는데 힘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양: 여러 나라의 중진급 의원들도 북한 인권문제에 큰 관심을 보여주어서 프로그램을 빛내주었는데요.

장: 네. 한국의 황우여 의원, 미국의 프랭크 울프 연방하원의원, 에드 로이스 연방 하원의원, 영국의 데이비드 알톤 상원의원, 캐나다의 배리 데볼린 하원의원 등이 저희 프로그램에 나와 주셨습니다. 이 분들은 정말 분 단위로 빡빡하게 짜인 일정에 따라서 바쁜 시간을 보내시더라고요. 일정을 담당하는 비서들과 짧게는 삼주, 길게는 4달에 걸쳐 전화와 전자우편으로 섭외를 부탁하고 인터뷰 시간을 잡으면서 이 분들이 얼마나 바쁜지 알게 됐습니다. 이렇게 바쁜 분들이 북한 청취자에게 꼭 들려주고 싶다며 자유아시아방송에 밝힌 개인적 메시지는 벅찬 감동으로 다가왔습니다. 울프 의원, 황우여 의원, 데볼린 의원이 북한 청취자에게 보내는 말, 들어보시죠.

프랭크 울프: 많은 사람이 북한에 공산주의가 몰락하고 자유가 오기를 기도하고 있습니다. 저는 1990년에 독일에서 열린 회의에서 나이가 꽤 든 할머니를 만났습니다. 이 할머니는 대뜸 제게 물었습니다. 구소련의 공산주의가 무너진 이유를 아느냐고요. 저는 ‘레이건 대통령과 크루즈 미사일 덕분’이라고 답했습니다. 할머니는 고개를 저으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수많은 사람이 오랫동안 공산주의가 무너지게 해달라고 기도했기 때문’이라고요. 아십니까? 1986년에 공산주의는 영원히 지속될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런데 1989년 베를린 장벽이 무너졌습니다. 이런 일이 북한에도 일어날 수 있습니다. 일 년 안에 일어날 수 도 있습니다.

황우여
: 저희는 한국 국민으로서 북한 주민을 그야말로 동포로 생각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북한을 비난하는 것이 아니라, 진정으로 북한의 인권상황, 인간다운 삶이 보장되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 노력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북한의 주민도 인권에 대한, 인간답게 사는 것에 대한 관심을 높여주시고, 희망을 품고 언젠가는 자유와 평화의 나라가 되고 번영하는 북한이 되리라는 기대 하에서 함께 일을 해주셨으면 합니다.

배리 데볼린: 북한은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남아 있는 냉전 시대의 잔재입니다. 그 대표적 상징물이 판문점인데요, 하퍼 총리와 그곳을 방문했을 때 건너편에 서 있는 북한 군인과 눈이 마주친 적이 있습니다. 그때 ‘한국어를 잘했으면’하고 얼마나 바랐는지 모릅니다. 그 군인에게 이렇게 말하고 싶었거든요. ‘여보세요. 냉전은 20년 전에 벌써 끝났어요! 끝났다고요!’라고요. 안타까웠습니다. 하지만 다행히 시간이 흐르면서 북한 내 주민과 북한 밖 사람 간의 접촉과 의사소통이 활발해지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더 많은 북한주민이 북한 정권의 거짓말을 깨닫고 있습니다. 이런 깨달음을 통해 북한 정권이 무너지는 것은 시간문제입니다. 이제는 그 끝이 어떻게 오느냐 인데, 이 과정에서 북한 주민이 고통을 겪지 않았으면 하는 게 제 바램입니다.

양: 그러고 보니, 정말이지 미국, 캐나다, 유럽, 한국 등 세계 각처에서 마치 북한 인권을 개선하기 위해 뛰는 단체와 개인들이 북한 주민의 고통을 결코 잊지 않았다는 것을 진하게 느낄 수 있네요.

장: 네. 저도 이 프로그램을 하면서 점점 많은 사람이 북한 주민을 위해 뛰고 있다는 것을 알려 드리려 나름대로 애썼는데요, 다음 시간에도 이어서 그동안 저희 프로그램에 나온 민간단체들와 인권활동가들의 구체적 노력을 전해드리겠습니다.

양: 장명화 기자, 수고하셨습니다.

‘북한 인권을 위해 뛴다,’ 질문에 양윤정 앵커, 대답에 장명화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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