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인권을 위해 뛴다-84] 다시 돌아보는 북한인권 관련 단체와 개인③

워싱턴-장명화 jangm@rfa.org
2011-0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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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7월 북한 고아원을 방문한 '한-슈나이더 국제아동재단'의 샘 한 이사장.
2008년 7월 북한 고아원을 방문한 '한-슈나이더 국제아동재단'의 샘 한 이사장.
PHOTO courtesy of Han-Schneider International Children's Foundation
북한의 인권문제는 어제오늘의 얘기가 아닙니다. 짧은 시간 안에 해결될 수 있는 성질의 것도 아닙니다. 그럼에도 미국, 캐나다, 유럽, 한국 등 세계 각처에는 마치 자기 집안일처럼 북한 인권을 개선하기 위해 수년째 뛰는 단체와 개인이 많이 있습니다. 북한의 인권 문제를 포기하지 않고 계속 거론하는 일이 중요하며, 그럴 때 진전을 이룩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북한인권을 위해 뛴다,’ 오늘은 이 프로그램에 나온 단체와 개인을 돌아보는 마지막 시간입니다. 질문에 양윤정 앵커, 대답에 장명화입니다.

양윤정: 장명화 기자, 북한의 인권문제, 그러면 보통 중국 내 탈북자 문제, 인신매매, 그리고 정치범 수용소에서의 인권 유린 폭력, 종교 탄압 등이 주로 거론됩니다. 하지만 이밖에도 여러 가지 첨예한 사안들이 산적해 있죠?

장명화: 네. 그렇습니다. 북한을 탈출해 중국 등지를 떠돌고 있는 탈북 고아들, 남쪽 고향에 대한 그리움에 눈도 제대로 감지 못하는 북한 내 국군포로들, 한국 전쟁의 와중에 서로 헤어진 이산가족들, ‘북한은 지상낙원’이라는 말을 믿고 일본에서 북한으로 간 재일한인들, 어느 날 갑자기 북한에 끌려간 수많은 외국인 등 일일이 나열하기에는 시간이 부족할 정도입니다.

양윤정: 그러고 보니, 탈북 고아들의 미국 입양을 제도적으로 뒷받침해 이를 촉진하기 위한 법안이 미국 상원에 이어 하원에도 지난 4월 발의됐죠? 미국 의회는 2년 연속해서 탈북 고아들의 미국인 가정 입양을 위한 행정부의 종합 대책 마련을 규정한 법안을 발의했는데요.

장명화: 네. 그렇습니다. 그런 움직임 뒤에는 미국의 민간단체인 한-슈나이더 국제어린이재단의 한상만 대표의 숨겨진 노력이 있습니다. 한 씨가 2007년에 설립한 '한-슈나이더 국제어린이재단'은 한 씨의 양아버지인 미국인 고 아더 슈나이더 씨를 기념해 만든 비영리 단체인데요, 이 단체는 캄보디아를 포함한 여러 개발도상국 고아를 도우면서, 특히 북한의 고아 돕기에 최우선 순위를 두고 있습니다. 이 단체는 S-3156, 즉 '2010년 탈북자 입양법안'을 지난해 추진했는데요, 한 대표의 말, 잠시 들어보시죠.

한상만: 제가 대학 시절에 '월드비전'에서 베트남 전쟁 때 자원봉사자로 일할 기회가 있었어요. 그때 많은 베트남 고아를 돕는 일을 하면서 너무 많은 기쁨과 행복을 느꼈습니다. 내가 앞으로 할 사역이라는 것을 그때 처음으로 경험했습니다. 그 후 1995년에 북한을 방문했습니다. 거기서 많은 고아가 어려운 환경 속에서 굶주림과 환란 속에서 사는 것을 보고 '바로 이게 내가 와서 이 아이들을 위해 생을 보낼 곳이구나'라는 사명을 재확인했습니다. 그러다가 2002년 후반에 제가 골수암 4기로 사형선고를 받고, 서둘러서 '한-슈나이더 국제어린이재단'을 만들게 됐습니다.

한-슈나이더 국제어린이재단 외에도 북한 인권과 관련한 저술활동을 활발히 펼치는 호프 플린치바흐 씨도 탈북 고아에게 깊은 관심을 보이는 미국인 가운데 하나입니다. 플린치바흐 씨는 ‘북한 밖으로: 탈북 소년이 그림으로 전하는 구출 이야기‘란 제목의 소설도 낸 작가인데요, 책을 쓰는 일 말고도 현재 미국 국무부를 통해 버마 출신 난민 고아를 위탁보호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탈북 고아가 미국에 합법적으로 올 수 있게 되는 때를 준비하기 위함이라고 하더군요.

양윤정: 참. 고마운 분들이네요. 탈북 과정이나 한국에 와서 부모와 떨어진 아이들, 북한에서 부모를 잃고 혼자 떠난 아이들, 탈북 여성이 중국 등 제3국에서 현지 남성과 사이에서 낳은 뒤 돌보지 못하는 아이들 등 탈북 고아들은 남북 분단의 비극 중 비극이라고 할 수 있죠.

장명화: 그런데 이런 남북 분단의 모순이 응어리진 또 다른 사람들이 있습니다. 바로 북한에 생존한 국군포로들인데요. 현재 한국의 국방부가 여러 경로로 파악하고 있는 북한에 생존한 국군포로의 수는 대략 500명입니다. 지금까지 귀환한 국군포로의 수는 세상을 떠난 조창호 중위를 비롯해 모두 79명인데요, 모두 제3국으로 탈출해 한국으로 돌아갔습니다. 이렇게 역사의 뒤안길에 완전히 묻혀버릴 뻔 한 국군포로 송환문제를 본격적으로 세계에 알린 단체가 바로 재미한인 정영봉 박사가 이끄는 ‘국군포로송환위원회’입니다. 정 박사의 말, 들어보시죠.

정용봉
: 2005년 4월 22일에 미국 의회 건물에서 청문회를 열었어요. 같은 해 5월에 헨리 하이드 국제관계 위원장이 5월에 하원에서 북한의 인권문제에 관한 결의안을 발의해서 통과했습니다. 그 결의안 내에 국군포로 문제가 포함돼있습니다. 우선 일본의 납치자 문제가 인도적으로 묵인할 수 없는 문제라고 했고, 탈북자들이 중국으로 건너가다가 잡혀서 송환되는 문제를 지적하고, 제3항에 4월 22일 개최된 포럼을 거론하면서 “북한에 아직 국군포로가 억류돼 있다고 하는데 이게 말이 되느냐, 제네바 협정에 위반될 뿐만 아니라 인도주의 상 인정할 수 없다”라고 한 내용이 통과됐습니다.

양윤정: 지금은 고인이 되신 조창호 중위가 당시 청문회 증인으로 나왔죠. 증언 내용을 들으면서, 무척 가슴이 아팠던 기억이 떠오르네요.

장명화: 북한 내 국군포로들이 남쪽 고향을 그리며 눈을 감지 못하는 데, 이와는 정반대로 북한의 고향을 그리며 눈을 감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바로 미국 내 이산가족입니다. 이들 중 이미 많은 사람이 사망하였고, 앞으로도 얼마 남지 않은 생을 살고 있는 사람들이기에 시간이 촉박한 상황입니다. 재미이산가족상봉추진위원회의 이차희 사무총장은 실질적인 개선방안을 찾기 위해 일찌감치 나선 사람 가운데 한 명입니다. 이 사무총장의 말, 잠시 들어보시죠.

이차희: 2000년 3월에 마크 커크 의원을 찾아가서 미국에 한인 이산가족이 있다는 사실을 알렸습니다. 당시 커크 의원은 입후보자였습니다. 커크 의원의 동생이 한국인 입양아고, 그의 아버지가 한국전쟁 참전용사였습니다. 그런 배경을 가진 사람이라면 우리 사정을 잘 알아주겠다 싶었습니다. 제 가족 이야기를 하고 이산가족에 대해서 설명했습니다. 커크 의원은 그해 11월에 당선됐는데요, 2001년 3월 커크 의원이 제게 이메일을 보냈습니다. 제 가족의 사례를 들어 미국 하원에 이산가족이 있다는 점, 미국 시민 가운데 이산가족이 있다는 사실을 하원에 보고한 겁니다. 그것이 미국 정계에 처음으로 이산가족을 알린 때였습니다. 2007년 9월에 Congressional Commission을 구성했습니다. 일종의 준비작업이었습니다. 하원에 가서 부결되리라 예상했기 때문입니다. 결국 부결됐습니다. 이걸 극복하기 위한 Congressional Commission을 구성했습니다. 그 결과, 그 해 10월 3일에 상원에서 법이 통과됐고, 하원에 갔다 부결된 것이 12월 22일에 통과됐습니다. 2008년도 1월 28일에 부시대통령이 서명했습니다.

양윤정: 장명화 기자, 이 프로그램 출연자 가운데 특히 기억에 남는 사람이 있다면, 소개해주시죠.

장명화: 네. 두 사람인데요, 한 명은 유엔인권위원회 식량특별조사관이었던 장 지글러 씨이고, 또 다른 한 명은 미국 중앙정보국 북한담당 수석분석가였던 헬렌-루이즈 헌터 씨입니다. 지글러 씨는 서방 금융자본이나 다국적 기업에 대해 비판적인 시각을 멈추지 않는 좌파적 지식인인데요, 북한의 권력층더러 자국민에게 끼니를 거르지 않을 권리, 존엄성을 유지할 수 있는 권리를 주라고 강력하게 요구한 점이 무척 인상적이었습니다. 헌터 씨는 1990년대 말에 ‘김일성의 북한’이라는 방대한 연구 자료를 쓴 전문가인데요, 언론과 회견을 잘 안하는데도, 자유아시아방송에 예외적으로 출연해주었죠. 헌터 씨의 말, 잠시 들어보시죠.

헬렌-루이즈 헌터: 미국에는 아직도 북한의 핵문제에만 초점을 맞추려는 전문가, 정책 입안자, 행정부 관리들이 많습니다. 그러다보니 인권 문제에는 소홀히 하게 됐습니다. 북한이 싫어하는 인권문제를 제치고 핵문제를 다뤘다고 해서 그 문제가 해결됐습니까? 최근 들어 양국 관계가 악화하고 있는데요, 지금이야말로 인권문제를 적극적으로 제기할 좋은 시기입니다. 버락 오마바 행정부는 예상과는 달리 북한 문제를 다루는데 있어 부시 행정부보다 오히려 강경한 태도를 견지하고 있습니다. 부시 전 대통령은 6자회담에만 정신을 팔지 않았습니까?

양윤정: 주간 기획 프로그램 ‘북한 인권을 위해 뛴다’에 이어서 장명화 기자가 8월 중순부터 세계 각국의 인권 문제를 다루는 새 프로그램을 준비하고 있는데요, 많은 청취 부탁드립니다.

‘북한 인권을 위해 뛴다,’ 질문에 양윤정 앵커, 대답에 장명화였습니다. 그동안 청취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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